'암벽루트의 이름과 사연'
작년 가을
설악산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 중 하나인 '솜다리봉'에 있는 암벽루트 '솜다리추억'을 찾았습니다.
이 루트를 개척한 주인공인 산악인 전용학씨와 전씨가 운영하는 산악단체 KMG(Korea Mountain Guide)의 회원 두사람과 함께 루트를 보수하고 새로운 피치(마디)를 추가하기 위함입니다.
보통 암벽등반을 하기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필요한데 클라이머들이 소지하는 장비 외에 암벽에도 필요한 조치를 합니다.
이 필요한 조치가 바로 '볼트'입니다.
드릴로 바위에 구멍을 뚫고 볼트를 박은 후 고리를 걸 수 있게 끔 행거를 붙여줍니다.
그러면 클라이머가 등반할 때 이 볼트에 자신의 장비인 쿽드로우를 걸고 거기에 로프를 통과시켜서 추락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보통 루트를 개척했다함은 미등의 루트를 처음 오르고 난 후, 중간 중간 꼭 필요한 곳에 볼트를 설치하고, 마디가 끝나는 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매달릴 수 있도록 두 개 이상의 볼트를 설치하고 스텐체인으로 이어줍니다. 이 곳(앵커 포인트)에서 여러 사람이 머물거나 하강도 할 수 있도록 하는겁니다.
그리고 루트를 처름 개척한 사람에게는 루트명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데 사람마다 각각의 사연과 사정을 담아 이름을 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헤어진 연인의 이름, 별명 생년월일로 하기도 하고, 가족이나 부모님의 이름 첫 자나 끝 자를 모아서 짓기도 합니다.
혹은 자신이 속해있는 산악회의 이름을 많이 넣습니다.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에는 수십개의 암벽루트들이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이 산악회의 이름입니다. 은벽길, 현암길, 경송길, 의대길, 우정길 등은 산악회 이름이고 취나드길, 민남길 등은 그 길을 개척했던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본 취나드 : 주한미군 복무 시 인수봉을 찾아 처음 등반한 길에 이름을 붙였음. 취나드A, B
세계적 장비회사인 블랙다이아몬드와 파타고니아 설립자 이기도 함)
위에 언급한 암벽루트 '솜다리추억'을 개척한 전용학씨와 저는 해당 루트에 유실된 볼트를 새로 설치하고 새로운 하강지점 설치, 그리고 새로운 마디를 추가할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 함께 했습니다.
(마디 : 영어로 피치 pitch 라고 하며 보통 20m~ 40m 정도 길이로 나누어 암벽등반 루트를 만듦.)
이 루트에 '솜다리추억'이라는 이름이 붙은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설악산을 사랑하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즐겨부르는 노래. '설악아 잘있거라'는 서울고 산악부 출신의 원로 산악인 김태호씨가 만든 곡입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산에 미쳐 다녔던 김태호씨는 공군군악대에서 복무하였고 음악에도 소질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코오롱스포츠에 근무하였던 김태호씨는 코오롱스포츠의 로고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 코오롱스포츠의 기초를 닦은 분입니다.
설악아 잘있거라/내 또 다시 네게 오마/포근한 내 품속을 어디간들 잊으리오/철쭉꽃 붉게 피어 웃음 짓는데/아 나는 어이해 가야하나 //
선녀봉 섧은 전설 속삭이는 토왕성아/밤이슬 흠뿍젖어 손짓하던 울산암아/나 항상 너를 반겨 여기 살고픈데/아 나는 또다시 네게 오마 //
보랏빛 코스모스가 찬바람에 흩날릴 때/ 포근한 네눈동자 그리움에 젖었네/가을이면 잊으마 한 그리운 그대여/아 나는 잎 떨어진 나무인가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선녀봉은 비룡폭포 위 토왕골에 위치한 날카로운 침봉입니다.
토왕성폭포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인데, 선녀봉의 섧은 전설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설악산 눈 덮인 선녀봉 산정에는 솜다리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소녀는 아름다운 인간 세상을 동경하여 사람의 옷을 입고 인간 세상에 내려온 하늘 나라의 선녀였다.
어느 날 한 소년이 별을 따러 그곳을 오르다가 우연히 그 소녀를 만났는데,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산을 내려온 소년은 소녀에 대한 상사병으로 가슴앓이 끝에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감으며, 사람들에게 솜다리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소년들이 그 소녀를 만나기 위해 높은 산정에 오르려고 했지만 험난한 절벽을 오르다가 그 소녀가 있는 곳까지 가보지도 못한 채 떨어져 죽고 말았다.
소녀는 너무 슬픈 나머지 인간 세상을 뒤로 하고 다시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자신을 만나고 싶은 소년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을 잊을 수 없어 고귀한 흰 빛이 나는 꽃 한 송이를 산정에 남겨두었다.
훗날 사람들은 소녀가 살던 봉우리를 선녀봉이라 불렀고, 선녀가 그곳에 남겨놓고 간 꽃을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하여 솜다리꽃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 초
설악산 노적봉에 암벽루트를 개척하고 '4인의 우정길'이란 이름을 붙인 산악인 전용학씨는 맞은편 선녀봉 바로 앞에 솟아 있는 봉우리를 발견하고 암벽등반 루트를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루트 개척에 나서게 됩니다.
총 6마디의 이 암벽루트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있는 등반루트가 되었는데 루트가 끝나는 정상 봉우리가 원래는 이름이 없었습니다만, 루트가 개척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루트이름으로 인해 '솜다리봉'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 등반루트의 이름이 '솜다리추억'이 된 것은 당시 함께 등반하며 루트개척에 참여하였던 산악회원인 심종혁신부님이었습니다.
루트개척의 주인공인 전용학씨는 루트 이름을 뭘로 했으면 좋겠냐고, 작명할 수 있는 권한을 심신부님께 일임하였고 고민하던 신부님은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선녀봉이고 선녀봉에 얽힌 전설을 들으시고는 주저없이 바로 '솜다리추억' 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솜다리봉 바로 위 선녀봉에는 바위길이 또 하나 개척되어 있는데 루트 이름이 '별을 따는 소년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그러면서 신부님은 '솜다리의 추억'이 아닌 '솜다리추억'임을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이 심종혁신부님이 2021년 2월에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신 심종혁총장이십니다.
이 '별을 따는 소년들' 루트는 산악인이자 시인인 김기섭씨가 붙인 이름입니다.
그는 경원대 국문과에 입학한 후 대학교내에 산악부를 창설하고 많은 길을 개척합니다.
설악산에 '별을 따는 소년들' '경원대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몽유도원도' '체 게바라길' 북한산에 '신동엽길' '배추흰나비의 추억' '녹두장군길' 등을 개척한 바 있습니다.
산악시인답게 시적이고도 낭만적인, 멋진 루트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산악인은 사귀던 여인과 헤어지고 나서 설악산 장군봉(비선대 휴게소에서 바라보이는, 금강굴이 있는 가장 큰 바위 봉우리) 에 후배와 함께 암벽루트를 만들고 '나의 소중한 사랑 10월 1일생' 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10월1일이 헤어진 여인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그 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다고 합니다.
저와 개인적인 인연인 있는 산악인인데, 가슴은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남자로써 멋지고 낭만적인 멋진 사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등반루트' 우리말로 '바윗길'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수많은 제각각의 사연이 담겨있습니다.
설악산의 암릉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인 '석주길'에도 그런 사연이 있습니다.
산악회 내의 커플이었던 두 사람이 있었는데 여자분이 폭포에 떨어졌고 그 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남자분과 함께 익사한 일이 있습니다.
뒤에 산악회에서 새로운 바위길을 개척한 후 두 분의 이름 끝자를 따서 '석주길'이라고 이름붙이고 추모동판을 붙였습니다.
그 동판과 석주길의 전설은 아직도 설악을 찾는 산악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메아리 쳐 가는 요델소리와 함께
젊음에 사라져간 岳友
엄홍석, 신현주
이 아름다운 설악의 山陵에
한송이 에델바이스로 피어나
영원히 山情마시며
편안히 영혼의 깃 펴소서,
이 길을 故 岳友의 영전에 드림
요델山岳會
개척 : 1969. 10. 7 추모등반"
북한산 인수봉과 더불어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메카로 불리는 도봉산 선인봉에는 '재원길' 이라는 고난이도 암벽루트가 있습니다.
유재원은 1972년 한국산악회에서 꾸린 제2차 알프스훈련원정대(대장 김인섭) 대원으로 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ENSA)에 파견된 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남아 활동한 클라이머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알피니즘을 추구하던 그는 그곳에서 서른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1977년 몽블랑 뒤 따귈 '코리안 필라' 코스를 초등반하는 등 5년간 23회의 공식 등반기록을 비롯해 수많은 등반활동을 펼쳤던 산악인입니다.
유재원의 활동소식은 당시 등산잡지와 한국산악회 회보를 통해 국내에 간간히 소개되었습니다.
자신의 등반기에서 '클라이머는 등반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어도 절대로 후회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다시 더 큰 등반을 두려움 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클라이머를 더 큰 산으로 보낼 뿐'이라고 했던 유재원.
그는 1977년 7월 23일 일본 산악인 마사오(早野雅雄·당시 28세)와 에귀 노아르 드 프트리 남벽을 등반하러 떠난 뒤 실종돼 다음달 8일 북벽 아래에서 유해로 발견되었습니다.
일본에 우에무라 나오미가 있다면 한국에는 유재원이 있다 할 것입니다.
이 '재원길'은 유재원의 친한 후배이자, 유재원을 스승처럼 생각하고 등반을 배웠던, 경동고 산악부 6년 후배였던 조성대씨가 유재원을 기리며 개척한 루트입니다.
그는 한산 산악기술위원회장을 역임했었고, 가셔브롬4봉 서벽 중앙립 코리안루트 초등팀의 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유재원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서울 집을 찾아 유품을 정리하고 유재원이 사고를 당했을 당시 마침 알프스 산행에 나섰던 산악인들을 통해 받은 유품과
사진을 정리해서 1979년 여름 프랑스문화원에서 추모사진전을 열고, 선인봉에 재원형을 추모하기 위해 '재원길'을 개척한 다음에야 비로소 슬픔을 삭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재원의 후배로써 같은 길을 걸어간 산악인으로써 조성대씨의 저 의리있는 행동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래서 '재원길'을 바라보고 생각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오르고 있는 수많은 바윗길의 개척자들, 사연의 주인공들은 바위결과 입자 하나하나에 그 자취와 숨결이 남아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공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며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등반을 하다 보면 작명 배경이 궁금해지는 곳들이 종종 있었는데, 오늘 형 글을 읽으면서 많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구슬픈 사연을 알고 나면 별자리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듯이 등반길 또한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형~~
글을 쓰고 보니 글 내용에 설악산 '기정길' 사연이 빠져있다는걸 이제 알았네요.
샤모니 식구들과 루트 보수작업하고, 나중에 금진이가 우리 나이 됐을 때 다시 오자고 했던 약속도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