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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길- 경기수필 원고 - 2015년도
임화자
인생 길
내가 살아온 길 중에 잘 선택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만난 것 이고둘째는 교사의 길을 택한 것이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탄하다가도 굽어지고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이 있는 험한 인생길을 어찌 평안히 살아올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너무도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로 30여년 살아왔다. 매일 매일 맑은 눈동자의 아이들 앞에 서면 신들린 사람처럼 기운이 솟았다.
세 아이의 어머니로,30여년을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나는 줄곧 담담한 향기를 풍기는 그러면서도 싱그러운 꽃을 피우는 그런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어머니의 길, 선생님의 길은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기에 정말 천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30여년을 아이들 속에 파묻혀 아이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울고, 웃으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는 슬기와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어찌하여 나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길 이었다.
나의 삶이 힘들고 짐이 무거워질 때 하나님은 언제나 옆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위로해 주어 나를 실망시키지 않게 지켜 주셨다. 그래서 그 길이 한없는 짐일지라도 벗어 던질 수 있는 길 이 되고 외롭거나, 괴로울 때도 그 길은 마술사처럼 평안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이제 여자나이 70년을 넘게 살고 보니 비로소 내 살아온 삶의 뒤를 뒤돌아보면서 뒤늦게나마 인생을 관조하고 반성하고 성찰하게 된다.
과연 내가 살아오면서 이룩해 놓은 것이 무엇일까?
어릴 적 힘들게 짊어지고 오던 황홀하고 아름다웠던 꿈은 다 어디로 가고 나는 어느덧 인생의 석양을 맞이하고 있는가?
아니 어쩌면 나는 70여년 세월을 살아왔는데도 아직 인생에 담긴 오묘한 그 어떤 진리도 깨닫지 못한 채 지금껏 살아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흐르면 꿈도 세월 따라 멀어져 간다는 지난시절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항상 기대에 부풀게 했고 살포시 내게로 다가와 나의 동심에 언제나 푸른 꿈을 안겨 주었던 내 마음속 깊숙이 잠재해 있던 내 꿈을 깨워 놓았다.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은은한 사랑을 베풀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여 남은여생에 후회 없는 나만의 인생길을 걷는 것이 잠재해 있던 내 꿈을 이루는 길이라 생각하고 싶다.
훈장처럼 남은 흔적
임화자
우리가 고작 해야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인간사인데 세상에서 사람이 평생을 사노라면 갖은 희로애락을 다 겪는 것은 다반사이다. 상상조차 못했던 불의의 사고나 자신의 인생길에서 전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타인의 삶 속에서도 없었으면 하는 갖가지 우환과 근심 걱정거리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하여 우리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때가 많다.
내게도 언젠가부터 오른 팔에 물건을 쥐고 있으면 힘없이 떨어져 그릇도 많이 깼다. 그러다가는 괜찮고 해서 이러다가 났겠지 하고 지냈다. 대부분 사람들이 병을 키워 병원을 찾는 일이 많듯이 나도 점점 어깨에 통증이 와서 밤이면 끙끙 앓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오른 손이 잘 올라가지 않고 간신히 올리려면 통증이 오면서 바로 힘없이 떨어진다. 가까운 한의원에 갔더니 큰 병도 아닌데 내가 괜히 힘을 주고 신경을 써서 그렇다고 핀잔을 주며 손을 올리는 운동을 하면 괜찮다고 하며 침과 물리치료를 해 주었다.
일주일을 다녀도 팔은 차도가 있기는커녕 더 아파 이제는 오른 팔로는 식사조차 하기 불편해 왼손을 받히고 숟가락 젓가락을 들어 올려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머리를 감기조차 힘들고 드라이는 더욱 할 수가 없어 미장원에 가서 해결해야 했다.
자주 다니는 정형외과에서는 어깨 팔에 힘줄이 끊어진 것 같은데 60넘은 사람은 수술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수술을 해도 약해서 또 끊어지니 그냥 두면 옆에 힘줄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의사선생님 말이 신뢰가 가서 시키는 대로 치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좀 낳는 것 같더니 점점 팔 쓰기가 불편하고 잘 때는 통증이 더 심하게 온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잘 고친다는 다른 병원으로 가보았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세 군데나 가서 진찰을 받아 보니 어깨 힘줄이 파열되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너무 늦어 어떻게 이런 팔을 하고 견뎠냐며 빨리 수술을 하면 할수록 좋다고 한다.
그동안 이 곳 저 곳 아팠지만 치료하면 낳았기 때문에 비교적 별 불편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오른 손의 고장으로 생활에 불편을 느끼고 보니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른 손의 고장은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다. 교회에서 성경을 나누어서 쓰는 행사가 있다. 여럿이 나누어 써서 한데 모아 내년부터는 그 성경으로 예배시간에 읽기로 했다. 나도 한 몫을 맡았으나 수술을 하면 회복이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니 쓸 수 없어 딸에게 인계하였다. 170명이 넘게 성경을 써서 오래 오래 교회에 남기는 기념물인데 그 사람들의 명단에서 내 이름이 빠진 것이 어찌나 서운한지…….
젊어서는 일이 맡겨지면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으나 나이를 먹고 보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생긴다. 그 뿐 아니라 집 청소등 사소한 집안일도 아이들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걸스카우트 이사 모임에서 제주여행을 가기로 비행기 예약했다. 지내기가 좀 힘들지만 할 수 없이 수술 날짜를 연기하기로 했다. 예약 할 때까지는 이런 일이 생길 줄 상상도 못한 일이다. 수술을 하고 나서도 걱정이 된다. 마음대로 씻을 수도 없을 테니까.
건강은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이 이렇게 아프고 보니 모두가 내게 해당되는 일인 것 같다.
제자의 소개로 서울 아산 병원에 예약을 하였다.
그런데 수술을 하려니 메리스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병원은 물론 밖에 조차 나가지 말아야 하는 비상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연기해야 한다. 그대로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부했지만 연기하면 더 복잡할 것 같아 그대로 제 날짜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아산 병원에는 응급실에 메리스 환자가 한 명 있었으나, 병원에서 예약 환자 외에는 외래 환자를 받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를 잘 해서 인지 병원에는 환자보다 병원 직원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병원에 가 보니 참으로 많은 종류의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중에 가장 큰 복임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메리스 덕분에 수술을 안전하게 받을 뿐더러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6인 실에서 일주일 동안 입원할 수 있어 입원비도 절감 되었다.
수술을 하고나니 얼마나 다행인가? 간병인 외에는 병문안도 사절이라 병실이 조용하여 치료 받기가 편했다. 수술 중에 무릎 수술이 제일 아프고, 다음이 어깨 수술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겁을 준다. 어깨 힘줄 3개가 완전히 파열되어 옆으로 녹아 붙어 관절이 올라와 뼈를 깎아 내야 한단다. 끊어 진지가 너무 오래 되어 좀 힘든 수술이라고 한다. 전신 마취를 하고 4시간에 걸쳐 수술을 하고 나니 정말 아팠다.
더욱 무통 주사나 진통제가 맞지 않아 더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속이 메스꺼운 것 보다는 아픈 것이 견디기가 나았다.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어요.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기도하며 십자가 선상에서의 예수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생각하고 참았다.
일주일 입원하고 재활 치료 방법만 가르쳐 주고 퇴원을 시켰다. 수술 자리는 꿰매지 않고 본드로 붙혀서 이틀 후에 샤워를 해도 된다고 한다. 정말 의학 기술이 옛날과는 다르게 많이 발전 된 것에 놀랐다. 수술 후 물리치료도 없이 재활 운동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
직사가형 통을 옆에 끼고 2개월을 견뎌야 했다. 그 동안 옷 입기, 샤워하기, 음식 먹기, 잠자기가 불편했지만 조금씩 낳아지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 하겠지 생각하고 참았다.
새삼 그동안 살아온 것을 반추해 보게 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니 인간사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듯이 매번 다가오는 갖은 우환을 손수 물리칠 수 없는 것이 인간사 원칙이라 일상생활에 노크 없이 찾아드는 불행과 우환의 발걸음을 막을 자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기에 누구 하나 자신의 코앞에 닥쳐올 우환이나 재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가졌다고 자랑 말고 성하다고 자랑 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많이 지닌 재물도 자랑하지 말고, 몸이 성하다고 아픈 사람 업신여기지 말고, 성한 육신 자랑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일 게다.
일주일간의 짧은 입원생활이었지만 여러 교훈과 깨우침을 얻게 했다. 상처가 아물고 나면 내게 주어진 본분 다 하며 남은 시간 한층 더 열심히 살아보리라.
아파서 병원에 가기 전에 평소에 몸 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걷기 운동부터 시작했다.
어깨에 훈장처럼 남은 수술 흔적을 보며 무엇이든 꾸준히 하여 이 세상을 하직 하는 날 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야할 텐데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제주에서 핀 노년의 우정
임화자
걸스카우트에서 오랫동안 훈련 강사로, 이사로 봉사하다가 퇴임한 후 ‘크로바’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이렇게 모임을 만들어 정담을 나눈 지도 10여년이 가까워 이제는 서로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읽을 정도로 가까워 졌다. 모여서 밥만 먹고, 헤어지기 보다는 더 나이 먹기 전에 여행을 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이 이번 제주여행이다. 이사님 한 분이 제주도에 콘도가 있어 숙비는 절감이 되고, 그동안 회비를 모아온 돈이 비행기 값은(저가 비행기) 낼 수 있어 가서 다닐 차 렌터와 기사 사례금과 기름 값, 그리고 식비만 준비하면 되었다. 모두 70대라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아 걱정이지만 가볍게 관광을 하면서 제주도의 특산물을 먹으며 즐기는 것이 큰 목적이다.
제주 공항에 내리니 날씨가 화창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상쾌하게 우리를 맞았다. 역시 제주도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고 우리나라에 보물이다.
인원이 8명이라 12인승 봉고를 미리 예약해서 제주공항에서 맞아 주었다. 기사는 50대로 보이는 훤칠한 키에 멋진 노신사였다. 특히 제주도 원주민이라고 하는 바람에 회원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했고, 2박 3일의 여행에 기대를 했다.
모두 여러 번 제주도에 와 보았기에 이번에는 건강상태가 안 좋으니 보통 관광회사에서 다니는 코스는 빼고, 숨겨진 제주도의 진수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점심때가 기울어서 모두들 시장하여 첫 식사를 갈치조림을 먹었다. 제주도에서 먹는 갈치조림은 정말 별미였다.
-애월 한담 산책로-
점심을 먹고 첫 코스는 애월 한담 산책로였다.
커핀 그루나무 카페 옆길을 따라 내려가면 걷기 좋은 유명한 애월 한담 산책로가 바로 연결되어 길이 나오는데 바닷바람을 제대로 느끼면서 산책할 수 있었다. 푸른 바닷물을 보며 걸으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바닷가에 모래가 있는 게 아니라 현무암으로 깔려 있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다. 에메랄드빛 바다도 너무 예쁘고 푸른 하늘에 동동 떠 있는 하얀 구름도 너무 예뻐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었다.
다음 코스는 올래 길인데 모두 21코스라는데 우리는 차로 7, 8, 10코스를 돌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해풍을 쐬며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올래 길을 지나 유리 성으로 갔다.
유리성에 입장하자 보이는 커다란 연두색 조형이 영롱한 보석 같은 유리알이 장식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황금알이 가득하다. 화장실 인테리어도 남다르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나비가 가득하다. 시원한 폭포소리와 함께 펄떡이는 연어 떼가, 연못에 장식되어 수조들과 함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유리 공예 작품으로 안드레센 동화의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와 멋진 왕자님, 예쁜 유리 구두를 신고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호박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가는 신데렐라의 모습도 신비로웠다.
-말 공연 (아∼고구려)-
말을 탄 사람들은 몽골 사람들이다. 말들이 멋지게 인사하고 공연이 시작된다.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이라 그런지 말 공연이 다르다.
넓은 곳에서‘아-고구려’란 스토리를 짜고 공연을 하니 훨씬 보기가 좋았다. 당당하기도 하고 강한 남자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도 해 역동성이 제대로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저들이 오래 전‘징기스칸’시대에 태어났으면 세계를 호령했을 텐데 시대를 잘 못 태어났으나 그래도 그 포즈만큼은 후예답게 지금도 감출 수는 없는가 보다. 씩씩하고 용맹스러웠다.
저녁은 제주생선중의 으뜸인 옥돔구이를 먹었다. 한 마리에 삼만 원이라 둘이 한 마리를 먹었다. 제주사람들은 굴비보다 옥돔을 좋아한다고 한다. 싱싱한 옥돔을 제주에서 제 맛을 즐기며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저녁에는 수산 시장으로 갔다. 내일 아침은 전복죽을 끓여 먹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전복을 1인당 한 마리씩 8마리를 샀다. 요리 전문가인 강 이사님을 믿고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우린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이틀째 되는 날 아침식사로 끓인 전복죽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그렇게 많은 전복을 넣은 죽은 처음 먹어본 것 같다. 역시 강 이사님의 솜씨는 대단하였다. 회원들 모두 행복한 모습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두 번째 날 관광길에 나섰다.
- 사려니 숲길 (왕복 40분)-
산책하기에 날씨가 너무 좋다. 날씨가 화창해서 여인이 머리를 날리며 누워있는 듯한 한라산의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사려니 숲길은 약 15km의 산책로이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 지역으로 주변에는 탄소 흡수원인 나무심기를 통해 자연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는 생태공간으로 활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햇살 사이로 비추인 길들이 너무 평화롭고 더덕 향기 같은 풀 향기가 우리를 유혹 하였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공간이라 그런지 제주도 자연의 풍경 속에 대한 순수함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공간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적막하지만 순수한 자체의 자연 경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에코랜드-
에코랜드 테마파크는 2011년 30만평의 곶자왈 원시림을 기차로 체험하기 위해 관광용 목적으로 기차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1800년대 증기기관차인 볼드윈 기종을 모델화하여 영국에서 특별주문 제작한 수제품인 빨간색 링컨 기차는 총 5대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기찻길을 놓고 호수를 만들어 자연생태체험도하고 산책 및 피크닉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아, 기차 여행을 즐기는 동안 신비의 숲 곶자왈에서 서식하는 곤충과 동물 그리고 다양한 식물을 체험 할 수 있다.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마치 그 아름다움은 바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하게 심어놓은 정원은 마치 19세기 어느 유럽지역에서 어디론가 여행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기차를 타고 에코랜드 입구로 향해 갔다
점심은 해녀 촌에서 흙 돼지를 먹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는 제주에서 싱싱한 회를 먹지 못한 것이 좀 아쉽지만 회원들 모두 흙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역시 오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선녀와 나무꾼-
아스라이 남아있는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 미소 짓게 하는 선녀와 나무꾼은 제주에 가면 가끔 둘러보는 곳이다.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는 즐거운 곳이다. 어릴 적 산골 같은데 가면 초가집들이 많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70. 80세대 어른들에겐 그 시절을 떠오르며 추억의 시간들을 만드실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그 시절 문화를 배워보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미소 가득한 즐거움을 주는 곳이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곳이다.
-쇠소깍-
제주에 와서 처음 보는 곳이라 흥미로웠다. 제주도 서귀포시 하효동에 있는 쇠소깍은 원래는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쇠둔이라는 지명이었는데, 효돈 천을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어 ‘쇠소깍’이라고 붙여졌다.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쇠소는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굳어져 형성된 계곡 같은 골짜기로 이름만큼이나 재미나고 독특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쇠소깍은 서귀포 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또 이곳의 명물인 테우라고 하는 작고 평평한 뗏목이 있는데, 줄을 잡아당겨 맑고 투명한 물 위를 유유히 가르며 갖가지 재미있는 모양의 바위 등 ‘쇠소깍’의 구석구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이색적인 자랑거리다. 쇠소깍이 위치한 하효동은 한라산 남쪽 앞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감귤의 주산지로 유명하여 마을 곳곳에 향긋한 감귤 냄새가 일품이다.
전설에는 용이 살고 있어 용소라고 불렀다고 하며 가뭄이 들면 동네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기우제를 올렸는데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또 주인 아가씨와 머슴의 슬픈 사랑의 사연이 있기도 하다.
해수탕으로 피로를 풀고 맛있는 해장국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박 이사님의 아이디어로 아침 국으로 콩나물 해장국을 사가지고 왔다.
-해안 산책로 애월리-
2001년 연안 정비 사업으로 애월읍 애월리 속칭 한담마을에서 곽지 해수욕장간 1200m구간에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를 개설하였다. 이 지역은 해안 절경이 수려함은 물론 일몰시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며, 한편 계절에 따라 해안 친수 공간을 이용하여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적지라고 한다.
양식장이 많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광어를 좋아하여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한다.
현대 해비치 호텔이 있는데 무궁화 6성급으로 아주 호화로운 호텔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지나쳤다.
-치소기암-
곽지 과물 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애월리 한담동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이 바위는 한 마리 솔개가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치소기암이라고 한다, 이 바위는 과오름의 셋째봉인 말젯오름의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 만들어진 거대한 암석으로 솔개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포란 지형이라고도 한다. 역시 바다를 끼고 바다 해풍을 안고 걷는 길은 피로를 풀어주기에 최고의 산책로이다.
-남원 큰 터널(리조트에서 나오면)-
점심은 유명한 제주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역시 제주도에서 먹는 고등어구이는 모두의 식욕을 돋우었다. 점심을 먹고, 큰 언덕 해안 도로 1km를 돌며 마지막 제주 관광의 마무리를 하였다.
모발 칼국수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모두들 배가 부르다 면서도 막상 음식이 나오니 맛있게 먹었다.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모발 칼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다슬기 같이 생긴 것에서 살을 빼서 죽도 쑤고, 칼국수를 해서 먹는다고 한다. 죽도 전복죽 못지않게 맛있어 제주에서 먹는 마무리음식이 또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다.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또 하나 입맛을 돋운 것은 오매기 떡이다. 배가 불러도 마냥 먹어지는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오매기 떡을 우린 가족을 위해 한 바구니씩 품에 안고 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도가 중국 사람들에게 많이 팔리고 있다니 안타까웠다. 정부 차원에서 더 이상 팔리지 않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회원들의 건강 문제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서는 얼굴에는 청정지역의 해풍을 받아서인지 밝고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다 무사히 다녀와서인지 서로에게 감사하며 안도의 기쁨을 갖게 되어서 일게다. 다음에는 기차여행을 하자고 약속하며 집으로 향했다. 사는 날 동안은 모두 건강하게 살아 이 기쁨을 오래 오래 함께 누리자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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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