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일러스트레이터를 그림책 속에서 만나다 ▲1970년 부산 출생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담배 ‘레종’ 캐릭터 일러스트 등 다수의 상업 일러스트 작업 ▲<엄마 마중>으로 2004년 백상출판문학상 수상 ▲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북치는 곰과 이주홍 동화나라>, <안내견 탄실이>, <비나리 달이네 집>, <하늘길> 등 다수의 어린이책 일러스트 작업 ▲홈페이지 : http://kds.psshee.com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그리고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엄마 마중> 전문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에 휑하니 눈보라가 쓸고 간 듯 시릿한 여운이 꼬리를 길게 드리우는 그림책, <엄마 마중>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수묵채색기법의 환상적인 색채로 스토리에 진한 생명력을 부여한, 그림작가의 담담한 붓끝에 있다.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간신히 호흡하는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행간에 숨겨진 시대적 슬픔을 판타지의 풍경으로 승화시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도록 재창조해낸 그림은 시대를 뛰어넘어 원작에 꼭 어울리는 맞춤날개가 되어 주고 있다. 한 편의 시 같은 이 짧은 이야기를 진한 감동으로 빚어낸 그림작가 김동성.
있는 듯 없는 듯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재미없고 조용한 아이였던 그는 워낙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진로에 대한 고민없이 당연하게 그림 그리는 학교에 가게 됐고, 정작 현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건 멋모르고 미대에 들어간 이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화단이라는 게 실력과 동떨어지게 정치를 잘해야 통하는 면들이 있어요. 실천미술, 현실주의적 미술에 관심이 많다 보니, 기존의 동양화단에서 보여 주는 그림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도 있었고, 대중과의 소통의 부재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그래서 자연스럽게 졸업 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제서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거죠." 답보 상태인 동양화단에 대한 회의와 시대적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80년대 학번으로서의 고민은 그를 정통화단으로부터 멀찍이 떨어뜨려놨고, 미대 졸업생들의 상당수가 그렇듯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서 현실적인 밥벌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채인선 글/재미마주/1998년)의 작업에 참여한 계기로 현재까지도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어린이책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어린이책 작가로서의 입장이나 생각을 물어 볼 땐 난감합니다. 이름없는 상업 일러스트에 비해 어린이책은 제 이름이 알려지는 작업이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 어린이책 작가가 되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전 '일러스트 작가'예요."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작가'로서의 정체성이나 확고한 신념 따위로 자신을 치장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경계없는 자유로운 그림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산다는 건...불안하죠.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극히 일부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거든요. 자신의 신념이 담긴 작업을 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론 누려야 할 기본적인 생활이 있으니까. 좋은 걸 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여가를 통해 자기 안을 계속 채워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출판, 작업과정에서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많고. ▶▷ 담백한 수묵채색화법에 숨겨진 은근한 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100선'에 선정된 안데르센 원작의 <나이팅게일>) 일련의 작품들 속에 드러나는 그의 그림은 다분히 한국적이며, 동양적 색채가 짙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력을 들추지 않아도 이미 많은 독자들이 '동양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로 그를 꼽고 있음에도 그는 의외로 자신의 그림을 '동양화적'으로 표현하는 데 이의를 단다. "정서적으론 동양적일지 몰라도 제 작업이 동양화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단지 먹과 붓으로 작업을 했다 뿐이지 동양화에서 말하는 정신이나 어법을 따르지 않고서 제가 내가 동양화기법으로 작업한다고 말할 순 없죠." 하지만 지난 해 발간된 '안데르센 걸작 그림책' 시리즈 중 하나인 <나이팅게일>(안데르센 원작/김서정 글/웅진닷컴/2005년)을 보면 서양의 오랜 고전 동화임에도 마치 그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닐까 싶을 만큼 동양적 색채가 강하다.
실천미술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던 그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은 '찰스 키핑'의 <창 너머>. 전율이 일 정도로 회화적이고 강렬한 그림에 비해 주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는 스타일은 그가 지향하는 그림세계와 닮아 있다. 여기에 더해 민화적 색채가 선명한 '이억배', 민중의 생명력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던 판화가 '오윤'은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구조에 가까운 작가들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슬로건이죠. 적어도 '예술'이라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작가만의 장치를 통해 아우라를 느낄 수 있어야 감동을 주어야죠. 저 역시 사실적이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좋아해요." 주제의식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시선을 짐작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 바로 제45회 백상출판문화상(한국출판문화상) 수상으로 언론과 독자로부터 '김동성'이란 이름을 각인시킨 <엄마 마중>(이태준 글/소년한길/2004년)이다.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월북작가 상허 이태준의 짧은 소설을 재해석한 이 작품은 풍부한 서정적 정취만으로도 그림책이 지녀야 할 미덕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지만, 한꺼풀 벗기고 밀도있게 들다 보면 작가만의 상징적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볼수록 새롭고 의미심장한 빛을 발한다. "<엄마마중>은 불과 몇 줄밖에 안 되지만, 울림이 크게 다가오는 글이에요. 보기엔 작은 구멍인데 들여다 보면 커다란 동굴이 존재한다고 할까? 글 자체가 무한한 공간을 열어 주면서도 내부적으론 아주 옹골찬 글이어서 말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되고 갖춰져야 그림과 글이 모두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가를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죠.
전차 정류장에서 하루종일,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애틋한 이야기 뒤에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커다란 동굴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단적으로 보면 '엄마를 마중하는 아기'의 모습이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 이태준 선생님의 시대적 배경을 접목시켜 보면 조국을 잃어버린 상황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즐거운 이야기일 수도, 우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요. 노골적으로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담담하게 상황을 그려낼 뿐인 원작을 그림으로 옮긴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는 감정 과잉의 함정에 빠지지도, 공허한 빈틈을 남기지도 않고, 오히려 여운이 메아리치는 마무리로 감동의 차원을 끌어올렸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담백하고도 화려한 수묵채색화법은 낯설지만 아름다운 경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그림책의 다양한 표현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마지막 문장이 끝나고 난 뒤 펼쳐지는 골목길 어디쯤에, 손을 맞잡은 채 눈발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묻혀 있는 엄마와 아기의 모습! 마치 필름이 다 돌아가고 난 뒤 적막한 소음을 삼키며 여운을 길게 내뿜는 무성영화처럼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도는 이 장면에서, 비극적 결말의 기운을 감지하던 독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카타르시스의 전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노골적인 해피엔딩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엄마를 기다리는 '현실' 속의 아기(왼쪽)는 색감이 최대한 절제된 흑백 모노톤으로, 엄마를 태우고 있을지도 모를 전차(오른쪽)는 화려한 컬러의 판타지로 한 화면 속에서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구성은 소박한 듯 화려하고, 지극히 사실적인 듯 몽환적인 이중구조로, 그림작가 김동성만의 재해석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엄마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시간과 공간의 확장을 통해 아이의 바램(환상)과 현실(엄마를 기다림)이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대목입니다. 사실성을 부여한다기보다 환상에서나마 엄마를 만나길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그림 속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 복잡한 장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가 등장한 것이나 그조차 환상적 설정일 수 있다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분들이 많더라라구요." ♠<엄마 마중>은 예스24에서 플래시 동화로 기획, 제작해 '파주 어린이 책잔치'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http://image.yes24.com/momo/TopCate43/MidCate04/4233550.swf"> --->플래시 동화 감상하기 ▷▶▷▶▷▶ 아빠와 아들, 아내 그리고 꿈 '그림 그리는 아빠'인 그에게 아이는 호의적인 독자일까, 냉혹한 독자일까? "아빠가 그린 책은 별로 안 봐요^^; 독립된 작업실 없이 집에서 그림 작업을 병행하는 그의 일상은 여느 평범한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7살난 아들에게 적어도 50점짜리 아빠는 되지 않겠냐며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들을 열거하는 그. "직업병이라 그런지 작업 시간 외에는 붓을 잡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직접 미술을 가르치는 건 아내가 잘하고, 전 그저 지원하는 수준이죠.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기대 같은 게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제 아이도 밖에 나가면 '우리 아빠 화가예요!' 하는 자랑으로 아빠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를 표현하곤 합니다. 그 기대를 채워 주기 위해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겠죠." 평소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다할 관심을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부인도 실상은 하나하나 배워가며 악전고투 끝에 그의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줄 정도라고 한다. 아내와 아들...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냉혹한 그러나 애정은 누구보다 두터운 열혈독자를 둘씩이나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내 아이를 위한 나만의 글과 그림이 엮인 그림책을 만들고픈 꿈은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일이란 것이 억지로 꾸미려고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정체성도 완성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 형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좀더 내공을 쌓고,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게 우선이겠죠."
그는 최근, 조선일보에 새롭게 연재되고 있는 소설가 신경숙 씨의 신작 <푸른 눈물>의 일러스트를 통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낭만의 시대'를 펼쳐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책으로만 익숙한 그의 그림과 소설의 만남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때로 익숙하고, 때로 낯선 작업들을 통해 다채로운 그림을 선보이며 독자와의 다양한 교감을 시도하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린이 독서도우미 클럽'의 책 읽어 주는 엄마, 아빠들에게 당부하고픈 이야기를 청했다. "아이에게 책을 골라 줄 때 너무 교육적이거나 정보를 얻는 데만 목적을 두지 말고, 순수하게 재밌는 그림책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은 그림책 자체만으로 봐야지 지능개발의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되거든요. 그림책 나름의 역할과 가치가 있고, 좋은 책 나쁜 책이 있을 뿐이지 용도가 정해진 건 아니니까요. 미완의 일러스트레이터...그래서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은 걸 기대하게 하는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림책을 골라 주는 엄마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숙제처럼 한아름 안고 온 기분이다.♠ |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