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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협회 홍보 스크랩 유달산 산책 코스
목포 전영자 추천 0 조회 169 13.10.02 10:3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유달산  산책 코스 :

 

                                                                              노적봉 & 이순신 동상 - 대학루 - 천자총통체험장 - 유선각 -일등바위(율동바위)

 

시간

장 소

이동 시간

비고

오후 4:30

                                   

 

5분

 

 

이순신장군 동상 & 박정희 대통령

 

 

4: 40

 

 

 

 

 

대학루 목포 시내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5:00

 

 

 

 

 

 

 

 

 

유선각 목포 최초 정각 신익히선생이 쓴 현판글씨

 

 

5 : 40

 

                     

 

 

 

유달산 일등바위: 낙조전망

 

 

6 : 00

                               

   

 

 

 

시민종각 -유달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

 

 

 

                

 

 

 

 

 

노적봉 큰바위 얼굴

 

 

** 위 상황은 날씨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유달산 :

시인 이은상 선생님께서 유달산은 생활의 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지 않아서 아이들과 함께 등산하기 좋은 유달산의 경관 포인트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시민종각에서 바라보는 겨울 유달산의 풍경은 남농 선생님의 한국화처럼 아름답습니다.

천자총통 체험장에서 아이들과 타종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228m, 유달산 정상 일등바위에 오르면 다도해와 신안, 무안, 영암, 해남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등바위 아래 야외조각공원에서는 50여점의 조각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순신장군과 목포 :

1597년 10월 29일에 목포에 도착한 이순신장군은 고하도는 서북풍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전선을 감추기에 적합한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에 진성을 축조하였답니다. 그는 고하도로 진을 옮겨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습니다. 1000여명의 군사는 8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11척의 배는 29척을 새로 만들어 40여척이 되었습니다. 서해안 일대를 오가는 배로부터 통행세를 받은 것으로 군량미를 사들여 2만여 석의 군량을 확보한 곳이 호남의 곡창지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한 바로 목포였습니다. 고하도는 이듬해 2월 17일 까지 왜군의 침략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수행 했습니다

 

고하도에는 이순신장군이 진을 쳤던 흔적과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모충각이 있습니다. 1722년 8월에 충무공 5대손인 이상봉에 의해 건립한 [유허비] 비문은 남구만이 찬하고 글씨는 조태기님이 썼습니다.

 

남구만이 지은 시조입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삼학도 건너편 용당에 위치한 해군3함대 장병들의 외출·외박 명소로 손꼽히는 목포 유달산(해발 288미터)은 목포 사람들과 이순신장군의 후예 3함대 장병들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특히 유달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싸우지 않고 적을 무찌른 지혜가 묻어 있는 ‘노적봉’이 있습니다. 노적봉을 마주하여 유달산 입구 계단 위에는 1974년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비명은 고 박정희대통령이 썼고, 노산 이은상님이 비문을 지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큰칼을 옆에 차고 예리한 눈빛으로 일본인들의 기를 꽈~악! 누르고 서 계십니다.

 

대학루 :

유달산 입구에서 첫 번째 정자이다. 대학루의 뜻은 ‘기대어 서서 학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목포 시가지를 파노라마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안타까움을 어찌할끄나... 삼학도 전설로 듣는 사랑이야기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유선각 : 이 곳은 1932년 10월 1일에 건립되었고,

이때가 목포가 개항된 지 35년이 지난 시기라서, 현재 유선각 비문에는 개항 35주년 기념으로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유선각은 목포시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 개항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주심포양식에 전통적인 우리 건축양식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누각의 명칭은 현상 공모를 했다고 합니다. 한말 유학자인 무정 정만조선생을 비롯해서 많은 선비들이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고 풍류를 읊었던 곳이라 하여 유선각이라 정했다고 합니다.

 

유선각 건립에 참여한 인사들은 목포부 초대 부회의원이었던 차남진·김용진·김철진·천독근( 최초의 여류작가 박화성선생의 남편)김성진·김용문 등이었으며, 건립 당시의 건물은 무안에서 문중 제각을 사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그 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태풍으로 무너져 다시 목조로 중건하였으나 비바람으로 퇴락하여, 현재의 건물은 1973년 8월 1일에 옛날 모습을 되살려 철근콘크리트로 개축한 것입니다.

 

1932년대 지어졌으며 유달산의 가장 오래된 정자이다. 현판글씨는 해공 신익히 선생님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3. 유선각 신익희, 차재석의 시비

눅(6:46-49) : 집을 짓되 깊이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라는 성경말씀이 떠오릅니다. 옛 분들은 사방이 열린 이곳에서 세속적 이익을 억제하고 올바른 이익을 추구했던 조선의 마지막 선비는 아니었을까.

공자가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고 했는데, 요동치는 사회에서 반석과 같은 의를 추구하려면 흔들리지 않는 바위 위에 앉아서 풍유를 즐겼을 것도 같습니다.

 

유선각의 비문을 쓴 해공 신익희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장개석 (張介石) 전 대만 총통 만시입니다. (晩 詩)(고(故) 신 익희 (申翼熙) 선생 서거시)

樞星一夜落江城

 

天動地悲水自鳴

 

추성(떠돌이 별)이 하루 밤 사이에 강변에 떨어지니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슬퍼하며 물이 스스로 울더라,

血淚津津滄海闊

憤心疊疊泰山輕

피 눈물이 흘러 흘러서 푸른 바다를 가득 메우고

원통하고 분한 마음은 첩첩이 쌓여서 태산도 가볍더라,

堂堂意氣生前業

千秋怨恨憑誰問

당당한 의기는 살아 생전의 업이요

천추의 원통하고 한되는 생각을 누구에게 기대볼까

烈烈精神死後名

 

그 당당한 열열한 정신은 죽은 후에 이름이 있도다.

 

 

시민종각 :

종은 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시간을 알리는 매체라고 하는 점에서 볼 때, 현재 목포 시민의 종이 있는 노적봉 옆은 과거에 오포대라고 해서 낮12시 정오를 알려주는 대포인 오포대가 있었던 자리라는 점에서 그 위치적인 특성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보면 일반적으로 종각의 방향은 정남쪽으로 하는 것이 통례인데, 환태평양시대를 주도해 나갈 목포시의 의지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중국대륙을 향한 미래지향적인 뜻에서 이 목포 시민의 종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 물론 종각의 현판은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유달산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민의 종은 새로운 21세기를 기념하기 위해서 목포시의 새 천년 출발 기념 사업으로 98년부터 기획·추진하였던 것인데, 2000년 10월 1일, 3년 만에 제작을 완료하고 유달산 노적봉 옆에 종각의 건립과 함께 설치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작 논의가 있던 당시에는 예산낭비라는 이유로 반발도 심했는데, 목포시에서는 21세기 국가와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 남북 통일과 동서화합을 기원하고, 또한 목포가 한반도의 동맥인 국도 1·2호선의 시발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서 후손에게 물려줄 훌륭한 유산으로 남기고자 이 종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99 행정인센티브 평가결과 최우수시로 선정되어 수상한 상 사업비중 6억원으로 이 시민의 종 건립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전체 중량은 21톤이 나가는데, 희망의 21세기를 상징하는 의미로 그렇게 제작되었습니다. 직경은 2m29cm, 종의 전체 길이는 3m90cm 가량입니다. 시민의 종의 정확한 명칭은 '새 천년 시민의 종' 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새 천년 시민의 종은 서울대학교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에서 제작 설계를 하였고, 종의 몸통부분에는 서예가로 명성이 높은 여초 김응현 선생의 글씨로 새 천년 시민의 종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종각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글씨로 시민종각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김대중대통령 현판글씨

정말이지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일순간에 달라진다.

'자살'를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되고,

영어로 스트레스를 (stressed)를 반대로하면 디저트(dessert)란 말이 된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했으나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라고 말했고, 헬렌캘러는 삼중고를 겪으면서도 "내 생애 행복하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 김 전대통령께서는 생전에 지인들과 여러 곳의 요청으로 많은 휘호를 쓰셨다. 주로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인여천(事人如天)', '실사구시(實事求是)', '行動하는 良心' 등의 글귀를 한자로 썼는데 미국 망명 중에는 휘호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휘호를 써 넣은 도자기를 만들어 국내외 인사들에게 선물로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쓰신 휘호는 4월 24일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에 보낸 휘호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을 한자로 써서 보냈다. 이 휘호는 지금 하의도 기념관 건물 전면에 새겨져 있다. 이것이 생애 마지막 쓴 휘호다.>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대통령께서는 2009년 1월 6일 일기에 "내가 살아 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라고 했다.

목포 유달산에는 전국에서 오신 모든 분들이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市民 鐘閣>현판글씨가 있습니다.

해서체로 짱짱하게 쓴 글씨에는 반듯하고 강직한 김대중대통령님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으며, 그가 쓴 글자 한자 한자마다 역사와 국민에 대한 믿음이 진하게 베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달산 일등바위에 올라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산이 있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등바위는 유달산의 최고 봉우리로 사람이 죽어 이 바위에서 영혼의 심판을 받는 하여

'법률율'자를 써서 ‘율동바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등바위는 유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일등바위에서 심판받은 영혼이 이 바위로 이동하여 잠시 대기한다 하여 ‘이동바위’라고 하였다 합니다.

 

유명한 재판에 대한 이야기로

성경 속 인물 솔로몬의 재판을 과정을 기억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초기 걸작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가 32세 무렵이던 1596~1597년에 쓴 작품으로, 1605년에 초연된 후 지금까지 수없이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주인공 안토니오 외에도 유대인 샤일록, 지혜로운 여성 포셔 등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희비극입니다.

목숨과 사랑이 걸려 있는 계약과 예상치 못한 해결 과정에서 셰익스피어 특유의 극적인 요소와 기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재판이란 [사전적인 의미는 사법 기관이 법률에 근거하여 소송에 대한 공권적 판단을 내림, 법률에 근거하여 공권적 판단을 내리다. ]입니다.

 

또 다른 재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창녀에게 돌 던지던 무리에게 소리쳤습니다.

"누구든 죄 없는 자가 일어나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이 말은 우리들 스스로 양심의 재판을 먼저 받으라는 말이었을 겁니다.

 

율동바위에 서서 그동안 수많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지요?

우리가 살면서 세치 혀로 얼마나 많은 재판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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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0.02 10:47

    첫댓글 전국에 계시는 한문관 회원님들께서 올려주신 자료를 읽다보면 참으로 유익하고 기쁜일입니다. 내용중에 남구만 선생님이 있어 무척 반가운 마음 더 들었습니다. 남구만 선생 묘역과 사당이 용인에 있습니다.

  • 작성자 13.10.02 10:50

    그렇군요~~^^* 저도 반갑고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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