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인 칼럼>
향우회와 진도의 발전방안 고찰 및 제언
향우의집과 향우동산을 만들자
현대사회를 흔히 ‘상실의 시대’라고 한다. 고도화된 도시문명에서 가져온 소외와 삶의 황량함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그리운 것은 뒤에 있다고 한다. 길을 걷다 어떤 풀잎 내음, 들꽃 향기, 구름 한 조각을 바라보다 문득 아주 오래 잊었던 기억들을 되살려 본 적이 있는가. 알 수 없이 가슴을 뛰게 하던 첫사랑의 추억. 함께 어울려 들녘을 뛰어놀던 그리운 친구들, 가슴에 깊이 묻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구름 사이로 절로 떠오르는 경이에 홀로 가없는 감동에 젖어본 적이 있는가. 아른거리며 촉촉한 눈으로 편지를 써 날려 본 적이 있는가?
고향은 누구에게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명절날이 가까워지면 고향을 떠난 향우들은 어디서부터 오는지 설렘에 젖기 마련이다. 나이 들어 자수성가해 제법 자리를 잡은 인사들도 ‘고향’이라는 그 마법의 향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한반도에서 가장 먼 지역인 진도를 안태고향으로 삼는 우리 향우 분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천리타향에 살고 있는 분들은 진달래꽃처럼 물들어지는 성장기 시절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어지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임을 자각하며 새로운 충전에 들어갈 것이다.
지난 시절엔 가까운 일가친척 하나 없고 옛집마저도 사라진 고향마을을 애써 찾아 성묘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군내 버스 종점 앞에서 마을 점방(연자방아집)을 보았던 우리 집(박경석. 이남심)은 그런 분들과 고향 친구들의 정담이 막걸리 잔에 가득 넘쳐나곤 했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명절날 하루 앞이면 동구 밖에 버스나 택시가 들어오면 마당 돌담 가에 목을 빼고 자식들이 행여 오는가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이 많이 계셨다. 어디서 어떻게 살던 그 때 만큼은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환한 웃음으로 큰 맘 먹고 산 선물꾸러기를 하나도 힘들기 않는 씩씩한 걸음으로 동네 안길로 들어오면 ‘오메 내새끼 왔냐’라는 반가움이 울려 퍼지곤 했었다.
관계형성의 지향점 구체적으로 찾아야 할 때
향우회와 진도군은 실과 바늘의 관계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대체재 관계가 아니다.
십여년 전에 제주애향회(회장 허충현. 이춘성 박정기 향우 등)는 매년 진도의 어르신들 200여명을 초청해 제주 효도관광여행을 가져 커다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김영식 재부산향우회장이 진도상설시장 화재로 어려움에 처한 상인들을 위로하는 성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서울의 박영철 향우회장도 고향에 올 때마다 푸짐한 선물보따리를 푼다고 한다. 어디 꼭 이분들뿐이겠는가.
얼마 전 행사참석차 목포에 다녀왔다. 향우 중 한 분이 목포시장 선거에 나서기 위해 출범식을 하는 자리였다. 진도는 물론 서울에서도 많은 향우 분들이 찾아와 진심으로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사천리에서 함께 자란 허성환(전 재경진도향우회장) 형과 반가운 해후를 하고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무슨 명절 기분에 젖기도 했다. 박홍률 후보자가 조도면 관매도출신이라서인지 조도 향우 분들이 더욱 눈에 띄었다.
바쁜 가운데도 많은 향우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울에서 온 한 향우는 사석에서 정담을 나누다 갑자기 진도군수의 역할에 대해 침을 튀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민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진도군수들이 향우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짝사랑인가 투정인가
일부 향우들이 고향에 대한 애정이 ‘짝사랑’에 불과하다며 군과 간부들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군민들이 향우들의 예우와 대접 요구가 지나치지 않느냐는 인식도 없지 않다. 고향에 대한 많은 지원과 관심 보다는 가끔 사업적 이해관계로 접근하다 안 되면 뒤돌아 욕을 한다는 편견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더 먼저인지 갈피잡기가 힘들지만 지난 20년 전까지 관선시대엔 서울향우회에서 진도군수를 지명, 발령 낸다는 소문이 파다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간혹 있었다고 듣기도 했었다. 고향을 잘 알고 헌신하고픈 의욕이 높은 출향 공직자 중에 물색해 추천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이해하게도 된다. 그만큼 서울향우들의 위상과 영향력은 커 향우회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군수와 군 간부, 면장들이 대거 만사를 뒤로하고 서울로 찾아들곤 했었다.
그런 만큼 또 수도권 향우모임에선 진도 특산물 판촉행사에 적극 나서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며 고향 농어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진도군에서는 관내 농수협, 농어민단체와 함께 수도권을 찾아 특산품 판촉활동을 하며 진도의 뛰어난 문화예술공연을 펼쳐 커다란 호응을 얻는다.
진도 향우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판매장을 찾아 함께 판매활동을 하고 직접 구입해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천리 밖 바다 건너에 자리한 고향이 잠시 서울나들이를 온 기분에 젖는 것일까. 시인 조병화씨는 진도를 ‘정이 넘치는 고장’이라고 노래했다.
진도인들은 또 장사보다는 문화 예술적 소양이 뛰어나고 탁월한 실력으로 한국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하는 실정이다. 하철경 향우(임회면 삼막리 출신)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회장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예향진도신문사에서는 2년 여 전 ‘진도군민의날’을 앞두고 전국 향우 대표 임원분들과 진도군 기관사회단체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상호협조사항을 나누고 일부 소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토론회를 진도문화원(원장 박정석)에서 개최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향우들은 진도군이 전국 향우들의 역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보다 항시적이고 유기적인 관계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하였다. 진도군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해 군 홈페이지에 향우회소식 란을 별도 개설해 놓았다. 이제 진도군과 향우간의 아름다운 신뢰와 통섭이 이뤄져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시도가 보다 구체화되어야 할 때라고 본다.
여러 가지 소통의 아쉬움 등은 진도군수 일개인만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4년간의 군 수장이자 큰 머슴을 자처하는 민선군수가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서 향우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효율적인 활용과 상호상승작용을 이끌어 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군수로서의 자질과 능력의 잣대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도군의회도 출향인 향우회 교류 및 지원 조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갈수록 노령화되는 지역현실을 타개하고 출향인사와의 직접교류 지원으로 기업유치 활성화, 귀향유도는 물론 출향인의 지위 명시, 군민과 동일한 수준의 혜택부여, 군정자문관 위촉근거 및 기능 역할을 마련하는 취지를 살리고 출향인 포상근거도 명시해 고향에 대한 관심을 재고토록 하자는 것이다.
고향 홍보대사 자처한 이웃 지자체 향우들
이웃 강진군은 작년 800여명의 향우들을 초청 식사와 대담시간을 가졌다. 향우회장은 “시집간 딸이 친정을 걱정하듯 향우들은 항상 우리 고향이 잘 살기를 바라고, 군 행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고향의 홍보대사 역할을 자청했다고 하나. 또한 인재육성장학금 전달도 해 부러움을 사게 한다. 장흥군도 지역 번영회를 통해 고향에서 채취한 쑥, 머위대 등 봄나물과 표고버섯을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향우들 가정에 전달했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통해 애향심 고취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올 해 같은 농작물 판매에 어려울 때 ‘진도봄동’을 진도를 찾는 향우들에게 한 상자씩 선물하면 어떨까?
어느 향우분의 경험담을 잠시 고개해 본다. “언젠가 재경향우회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본부석 앞에는 찬조금을 낸 향우들의 이름과 액수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었다.”면서 돈으로 향우회 내에서 위상을 서열화하는 듯하고 일반 향우들의 자존심을 흔드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껴 그 뒤로는 향우회 행사모임에 가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또 한 지역 내 단체장은 “서울출장을 가게 되면 자연스레 향우들과 저녁자리를 하게 된다. 제법 잘 나가는 향우들은 악수를 나눈 뒤 자리를 뜨게 되는데 임원도 아닌 지인 향우가 음식 술값을 다 부담하고 해서 아예 자리를 떠 다른 곳에서 간단한 술자리로 회포를 푼다”는 고백도 들은 적이 있다.
강강술래하는 향우회가 되자
민도 즉 ‘민주적 소양’이 높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이런 풍경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강강술래를 하듯 서로서로 높낮이 순서를 가리지 않고 손에 손을 잡고 위로와 격려, 혼연일체가 되는 진도인들의 높은 문화공동체의 전형을 널리 자랑할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어제 만난 한 향우분은 “진도사람들은 진짜 특별하다. 어디가도 기가 죽지 않는다. 잘 융화되고 리더쉽이 뛰어나다”고 했다. 진도아리랑은 누구나 매김소리 선창을 하면 당당한 주인공이 되며 후렴구와 함께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이루는 기적을 내보인다. 그게 진도의 ‘한없이 부러운 문화’인 것이다.
국가명승지(제9호)로 지정된 세계적인 축제인 ‘신비의 바닷길’행사에 많은 향우분들이 진도를 찾는다. 군은 진도문화원이나 예총진도지부 등 문화예술단체들을 통해 진도를 찾은 향우들과 우의를 다지는 기획행사를 가질 필요가 있다. 화가 시인 서예가 가수 음악인 등이 예술재능을 기부하는 행사를 해 그들이 고향에 기여하고 소중한 동반자임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축제 현장에서 직접 붓을 들고 고향방문 기념 휘호와 즉흥시를 쓰게 하자. 특별한 체험과 뿌듯한 진도군 주인으로서의 참여의식을 주면서 소중한 자원화를 동시에 이루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가을이 되면 진도군은 아리랑축제를 연다. 군에서는 해마다 향우 분들을 초청해 저녁자리를 함께 하고 진도의 발전과 변화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조언과 참여를 부탁하고 있다. 진도군민의 상 시상식에서는 별도로 진도를 빛낸, 진도군에 기여한 향우들을 위한 공로표창제를 실시했으면 한다. ‘진도아리랑상’을 진도문화원에 위탁 제정해 수상토록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