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해변과 자갈치, 국제시장을 지나 영도로 가는 남파랑길(#3-2)
2024년 4월 7일 (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12~22도
거리 14.2km 4시간 동행 : 14명
암남공원-송도해수욕장-남항체육공원-남항-자갈치시장-용두산공원-영도대교-절영산책로
예년보다 1주인 늦게 핀 벚꽃
김천 휴게소
암남 공원 : 소여, 나나, 초롱이, 개미, 꼬모, 쪽빛, 해송, 주루, 범털, 매암, 산줄기따라, 중봉, 청산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을 연결하는 케이블 카
암남 공원 주차장
송도 해수욕장
계단 트레킹
해외여행으로 남파랑길 여정에 불참했던 일행들이 함께하는 3코스는 벚꽃이 늦게 만발하는 시기에 일정이 맞아 눈이 행복했다.
암남 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송도해수욕장으로 걷는 길이 처음에는 오르막이었으나 이내 편안한 조망이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경사가 꽤 있는 계단을 내려서며 일행들은 송도해수욕장에 들어섰다.
송도해수욕장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에 개장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이다.
부산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 부산에 거류하던 일본인들이 송도 유원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해수욕장을 개발한 것이 시작이다.
1987년과 2003년에 태풍 ‘셀마’와 ‘매미’로 인해 다이빙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여 해수욕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기도 하였다.
2013년에 해수욕장 개장 100주년을 기념하여 송도 100년사 편찬, 추억의 다이빙대 복원, 전국 해양 스포츠 제전, 국제 컨퍼런스 등의 사업이 펼쳐졌다.
부산광역시에서는 4계절 다양한 연령층이 찾을 수 있는 해양 관광 휴양 기능을 구축하기 위해서 복합 해양 휴양지 조성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신라의 달밤을 부른 현인 선생 동상
얼마 남지 않은 남파랑길 여정이어서 오늘 코스는 길게 잡지 않아 편안하게 천천히 걷는다.
일행들과 어울려 좋은 장소에서 사진도 찍으며 희희낙락 이야기 나누며 걸으니 즐겁다.
신라의 달밤을 부른 현인 선생님 동상을 지나 송도 거북선 테마 휴양공간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해수욕장 주변의 산에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는 데에서 송도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는 설과 거북섬에 소나무가 많아 송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는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작은 반도를 야망대(夜望臺)라 불렀는데 이곳에 소나무가 울창하다는 데에서 송도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송도로 불리기 이전에는 거북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섬의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기 때문이다.
송도해수욕장
천마산이 뒤쪽에 있는 송도해수욕장은 고층 아파트와 백사장이 어울린 근사한 곳이다.
송도 반도(혹은 암남 반도)의 남단에 있으며, 해수욕장의 서쪽과 북쪽으로는 천마산, 장군산, 진정산이 있다.
장군산과 진정산은 서로 이어져 있지만, 천마산은 시가지에 의해 장군산과 분리되어 있다.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은 길이 약 800m, 너비 약 50m에 달한다.
해수욕장의 파도가 조용하고 물이 깊지 않아 천혜의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송도해수욕장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모래가 전혀 없어서 백사장 유지를 위해서는 매년 모래를 공급해야 한다.
송도 거북선 테마 휴양공간
송도해수욕장과 빌딩 아파트
어부와 인용의 사랑
옛날 송도에 효성이 지극한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부가 어느 날 바다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거대한 풍랑을 만나서 근처 용 굴에 잠시 피신했다.
굴에서 어부가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는데 물에 있는 온갖 약초란 약초는 다 캐서 지극정성으로 치료를 해 줬다고 한다.
깨어난 여인은 용왕의 딸이었으며 바다를 지키는 인용(人龍)이었는데, 어부들에게 악행을 일삼는 바다 괴물과 싸워 제압하려다가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어부의 은혜에 감사함을 느낀 인용(人龍)은 어부와 혼인하고 싶어 용궁에서 계속 천일기도를 했다. 그러나 999일까지 기도를 잘해 놓고 마지막 1,000일째 기도일에, 어부와 인용
둘의 사이를 안 바다 괴물이 마지막 기도를 방해했으며, 이에 화가 난 어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괴물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자기도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치료하지 못하면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바다의 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공주 또한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반은 사람, 반은 용인 인용(人龍)이 됐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용왕이 이쪽에다가 거북바위를 만들어 어부와 인용이 여기서 함께 행복해지도록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부산 천마산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가까이에 있는 산으로, 해운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하다.
특히 해 질 무렵에는 일몰과 함께 노을이 빛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천마산에는 산벚이 하얗게 피어 환상적인 모습으로 해변을 굽어 보고 있다.
충무동 새벽시장을 둘러 보며 해변 남항체육공원을 지나는데 인조 잔디에 만들어진 파크 골프장에서 많은 시민들이 운동하느라 여념이 없다.
시장에는 각종 해산물을 팔고 도심에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우린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시켜 맥주와 먹으며 부산의 낭만을 즐겼다.
남파랑길 여정에서 국제시장 골목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음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헌책방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 용두산공원으로 향했다.
부산 근현대사역사관
용두산공원은 부산항이 동쪽, 부산광역시청이 동남쪽 바로 밑에 있고, 부산 시가지와 영도가 내려다보여 시민들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아낌을 받는 부산의 명소이다.
용두산공원 내에는 부산의 지나간 역사를 보는 듯 4·19의거 기념탑, 이충무공 동상, 국민교육헌장비 등 동상과 비(碑)가 많이 세워져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용두산의 모양이 가마솥 같다 하여 부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고 하여 송현산이라 했고, 임진왜란 후에는 용과 같은 산세가 왜구들을 삼켜버릴 기상이라 하여 용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초량 지역에 있다고 하여 초량소산(草梁小山)이라고도 했다.
개항 이후 산의 형세가 용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용두산이라고 불렀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기에는 국립국악원, 중앙정부 기관 일부 그리고 피난민들의 판잣집들이 있었으나 1954년 12월 용두산 대화재로 불타버렸다.
그 후 녹화사업이 이루어져 1957년에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 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60년 4․19 혁명 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되었다.
용두산공원
왜관 : 조선시대 일본인들이 입국하여 교역을 위해 설치하였던 장소로, 사관(使館) 및 상관(商館)의 기능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상관이 태종 때부터 여러 곳에 설치되었는데, 이를 왜관이라고 하였다.
조선에서 왜관을 설치하였던 목적은 조선의 해안가에 출몰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합법적인 교역의 대상으로 끌어들여 무역을 장려하고 왜구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자 설치한 것이었다.
1407년(태종 7)부터 부산포와 내이포를 왜인의 교역 장소로 한정시켜 출입과 교역품을 통제하였으며, 모든 교역 업무를 초량왜관에서 처리해야만 했다.
왜관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관과 서관으로 구분되었고, 동관에는 관수 왜가, 재판 왜관, 개시대청이 있었다.
남파랑길 3코스
영도대교를 건너기 전에 3코스 안내판이 보인다. 대교를 건너며 보이는 부산항의 모습이 무척 크다. 남항과 함께 여러 개의 부두가 있는 부산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무역항이다.
영도대교는 너비 25.3m, 길이 214.7m로 1931년에 착공되어 1934년 3월에 준공, 개통되었다.
처음에는 돛이나 굴뚝이 높은 큰 배가 다리에 걸리지 않고 그 밑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도개식(跳開式)으로 설계된 것이었으나, 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기계가 낡고 또 이 다리에 붙어서 영도로 들어가는 수도관이 놓이게 됨으로써 1966년 9월 이후 약 47년 동안 들어 올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2011년 4~11월 구 영도대교를 철거한 후 길이 214.7m, 너비 25.3m로 확장하고(왕복 6차로), 도개 기능도 복원하여 2013년 11월 27일에 영도대교가 개통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도개 기능을 다시 갖춘 영도대교는 매일 낮 2시에 상판을 들어 올리는 도개 행사한다.
당시만 해도 이 교량이 영도와 부산 내륙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었으나, 교통량과 물동량 증가로 유통이 한계에 도달하자 1980년 부산대교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새로 건설된 부산대교와 함께 영도와 부산 도심을 연결하는 교통로 및 산업도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부산시민의 정과 6·25전쟁 중 피난민의 애수가 담겨 있는, 영도의 발전에 공로가 큰 유서 깊은 교량이다.
부산항
부산대교
자갈치 시장은 부산항의 남항에 있는 3층 건물로, 6·25전쟁 이후 일본 등 해외로부터 귀국한 동포와 월남한 이북 동포들이 현재 위치에서 노점상을 형성하여 장사를 해오다가 1969년 공유수면 매립과 법인설립인가를 얻어 부산 어패류 처리조합이라는 사단 법인체로 발족했다.
1970년 개장하여 연근해에서 어획되는 모든 어패류가 집결되고 1985년 4월 화재로 시장 전체가 전소되었으나 1986년 1월 현대식 시설로 보수·개선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산의 10대 명소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멀리 동남아시아까지 알려져 부산 관광길에 꼭 한 번씩 찾는 곳이다.
첫댓글 오랜만에 동참하게 된 남파랑길 여정 이번 코스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고 거리도 짧아서 여유롭게 부산의 멋을 느껴볼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여기가 우리나라가 맞나? 싶을만큼 많은 외국여행객들로 붐비던 국제시장 골목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일행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듯 싶고 남파랑 완주를 두 코스 남겨놓은 지금 어쩌면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일행분들과의 따뜻한 유대감이 더욱 소중하게 새겨지는 하루였던것 같습니다. 걸어온 발자취 기록을 대신해 주시는 청산님의 노고에 즐거이 감상하고 글과 사진 친구들과 공유하는것으로 감사함을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