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예언을 꽃피우다/ 안창천
* 읽은 날짜: 2월 3일
* 줄거리: 365권 이전에 읽었지만 다시 보고 의미를 살펴보고자 포함함
- 필자는 D3 왕의 사역을 창안하여 사역하던 중 홍바울 목사님을 만나 그의 예언 사역을 소개하여 영적각성을 일으키자는 마음으로 집필하다.
1. 홍바울 목사에 대하여
- 어렸을때 교회에 나갔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다니다 마다 회개 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교회의 월세를 전세로 전환한다고 하고 안해서 350만원의 손해를 입고, 소의 간을 먹다가 피를 먹지말라는 음성을 듣고서 죽을 것 같아 토해낼려고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기도하라는 음성이 들렸다.
- 아내의 10년 주벽을 감당하다. 자신이 술취한것처럼 정신이 없는 병으로 재산을 다 탕진하다. 고통가운데 기도로 고치기를 맘먹고 설움에 하소연하니 “내가 너를 도구로 크게 쓰리라”는 음성에 제 아내가 믿음이 없어요 하니 “그녀는 내 딸이니라” 음성을 듣자 아내를 미워했던 마음, 속상한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내를 주님께 맡겼다.
- 51세부터 63세까지 병마와 아내의 주벽으로 큰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준비하게 하였고 2002년 신학교 1학년때 사명을 받다. ----세계적으로 쓰리라 너는 교회들을 깨우는 사명을 감당하리라. 막16:17-18을 하루도 건너지 말고 입으로 외치라.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실력을 갖추다.
2. 한국교회를 향한 예언을 말하다.
- E교회를 향한 예언 - 은사를 사모하라는 메시지를 담임목사에게 전함, “앞으로 성령사역을 하는 교회는 흥하고 지식중심의 교회는 쇠퇴할 것이다.”
- 김포 공항 근처 교회 임파테이션impartation 을 하라 - 목사 혼자만 신유의 은사를 사용하시면 안되요. 접목을 시켜야 합니다. 모든 성령의 은사는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혼자만 사용하시면 성령께서 거두어들이실 수도 있습니다(롬1:11).
- 압구정에 있는 교회들에게 - “이 교회는 그 부자들을 바로 세우고 기도하고 전도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좋은 부자들이 되게 하는 사명이 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할 경우 ,,,” “이곳은 민족적인 사명이 있다. 세계적인 사명이 있다. 이곳을 위해 기도하라. 세계적인 사명이 있다.이곳을 위해 기도하라 세계선교를 위해 이곳의 부자를 붙여주겠다.” 소망교회는 민족적 사명과 세계적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교회마다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 대한민국을 봉헌하라/뚝섬연합기도 - “이곳은 영적인 장소이다. 한강은 죄 씻음의 역할을 하는 영적인 강이다. ....”
- 경기도를 봉헌하라/만남의 교회
- 죽은 자들의 절규 - “선생님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되었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제발 예수님 좀 믿으라고 해 주세요.”
- K교회에서는 기도하지 말라
- D순복음 교회를 흩으신 이유 -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이북에 쌀을 보내라
- 방언을 하지 않는 교회 - “이 교회는 내가 기뻐하는 교회가 아니다.”
- 충북 제천의 교회들을 향한 예언 - 나라를 위하여
- 교회의 문을 항상 열어야 - “네가 부자가 되는 방법은 복음을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다. 영적으로 부요케하면 그 보상이 물질로 오느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기도와 말씀과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영적싸움은 기도로써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세상적인 방법, 즉 물리적으로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 “네가 몸이 아프거나 힘이 없을 때 방언을 하라.”
- 장충교차로에서 - “이 교회는 부처마귀를 물리치는 사명이 있다. 그것이 이 교회의 본 사명이다.”
- 배형규 목사의 부르짖음, 저는 죽어 지금 하나님 품에 안기어 있어요. 홍강도사님 그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해주시기를 부탁해요.
3. 대한민국을 향한 예언을 말한다.
- 신학교 1학년 때 40일 금식기도를 하라고 명령하시면서 목적은 남북의 통일을 위함이라고 하셨다. “하루에 한끼만 금식하라.”
- 통일이 안된 이유는 “ 나의 종들의 책임이다...” “너의 민족은 960번 이상의 외침을 받았다. 육로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사대사상이 인습화되어 이웃을 외국에게 고하고 아부함으로 죄가 크다.”
-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이용하는 귀신이다.
- 2020년에 평화적인 통일을 내다보며, 2017년에 북한 내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보아라 너희 민족은 개 같은 놈들이란다.” 개는 싸움 잘하고 음란하고 욕심 많은 동물이다. 개는 얼마나 음란한지 아무나 하고 한다. 개는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먼저가서 물어뜯는다. 개는 얼마나 욕심한지 다른개가 먹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 이라크 전쟁에 “부시를 사용한다..”
- 핵 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하나님의 뜻 - 변산 앞바다 섬에 신학교 3학년 때
- 우리는 한 나라의 길흉화복이 교회의 영적 상태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땅의 나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교회에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는 지역적 특성을 책임져야 사명이 어떤 교회는 근처의 대학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사명이 어떤 교회는 근처의 기업체 또는 초중고 학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개 교회가 받은 고유한 사명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감당해야 한다.
- 만경강에서 세족식을 거행하다. - “가난한 자들에게 있는 가난의 저주가 물러가게 되는 중보의 의식이 될터이니 가서 거행하라”
- 교회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
- 고려대학교, 숭실대학교, 유한대학교
4. 세계열방과 종말을 향한 예언을 말한다.
- 거대한 쓰나미 재앙 - “아시아에 대재앙이 있으리라” “아시아에 우상이 너무 많아서 내 머리가 아프단다.”
- 싸스와 에이즈 - 싸스는 일종의 공해병이다. 중국에만 싸스가 발생하고 중국에 대한 경고다. 에이즈는 저주병이다. 아프리카 동물들이 아무하고 하듯이 사람들도 아무나하고 한다.
- 중국은 지고 일본은 가라앉고 미국은 자주재앙이 적그리스도는 정면으로 도전한다.
5. 성경적 예언을 말한다.
Ⅴ. 성경적인 예언을 말한다.
〔문제 제기〕예언에 대한 자신의 올바른 해석관을 가지고 있는가?
1. 예언이란 무엇인가?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에 예언사역을 보편적인 현상으로 필자는 본다.
예언의 사전적인 의미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이나 신탁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또는 그런 말”을 뜻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예언과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차이점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네부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듣거나 이상을 통해 본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우리말의 예언이라는 단어보다 대변인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다고 본다. 즉 구약에서 선지자(예언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며 하나님을 대신해서 한 말이 네부아 즉 예언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프로페테스’는 미리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또는 밖으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예언은 시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시간적(앞날을 알아내는, 길흉화복을 맞추는)인 개념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의미로 더 비중있게 사용되고 있다.
*예언함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서 성령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셔야 하지만 사람으로서 사모하고 그 은사를 얻기 위해 수고를 해야 한다(고전14:1-5).
예언이 혹은 예언의 은사가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 따라 좌 우될 수도 있기에 풍성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영적인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성경말씀과 예언은 어떻게 다른가?
성경말씀과 예언을 모두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해야 한다(롬1:18; 마11:25; 엡1:17). 그러나 권위에 있어서 성경은 오류의 가능성이 절대 없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예언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사적인 계시로서 성경말씀에 종속된 영적인 은사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면 오늘날 예언이 하나님의 계시로서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잘못해석하기 때문이다(성경해석도 마찬가지다). 또 계시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마귀로부터 온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영분별의 은사필요). 세 번째는 하나님이 계시하셨지만 올바로 해석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이 예언하면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분변하라(고전14:29)고 권면하고 있다.
*예언과 설교는 어떻게 다른가?
예언이 길흉을 점쳐주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물으러 오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것으로 앞서 정의하였다.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예언이나 설교나 모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과 관심과 마음과 사랑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것)하나 예언과 다른 점은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단계적으로 계획적으로 일반적으로 전달된다.
2. 지금도 예언사역이 필요한가?
*왜 혹자는 예언사역이 필요 없다고 주장할까?
첫째, 성경은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계시나 예언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고전13:9-10). 여기서 그때는 재림 때로 보기에 성경이 완성된 때, 온전한 것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필자는 본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계시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은 아닌 차이를 이해하여야 한다.
요한계시록22: 18-19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의 해석에서 신구약성경 이외의 예언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더 나아가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뭔가를 더하는 행위로서 하나님께 재앙을 받는다고 경고하는데 필자는 해석의 잘못으로 보면서 이 말씀은 본문의 말씀대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내용에 가감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예언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닌 것으로 밝힌다.
둘째로, 예언과 같은 계시적인 은사는 초대교회나 당시에만 필요한 것이지 지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도시대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이런 은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주장으로 필자는 보면서 오늘날에도 영적인 은사는 개인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더 교회가 세워지고 없어지고 하며 초대교회보다 더 박해받고 순교 받는 선교지가 많기에 더욱 더 필요하다고 필자는 본다.
셋째로,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서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주장한다.
예언이 길흉화복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언을 통하여 일어날 일들을 알게 하신다면 우리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에 잘 대처하여야 할 것으로 보며 성경말씀과 예언을 모두 인정하며 한쪽으로 쏠리지 말 것을 필자는 말한다.
* 왜 오늘날에도 예언사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
첫째로, 예수께서 친히 예언사역을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선지자이므로 말씀사역을 하셨다. 말씀사역에는 설교, 가르침, 예언이 있다. 말씀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예언사역이고, 그 다음에 율법이 오면서 가르침이 나타났고 예수께서 오셔서 천국을 전파하심으로 설교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예수께서 온전히 말씀사역을 하셨기에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 예수를 닮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설교)하며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사역을 감당해 가야 한다.
둘째로, 장차 성도들이 예언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17-18 “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에서 말세란 벧전1:20에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나는 시대를 가르킨다. 또 요한계시록 11장 3절도 두 증인이 계속 예언할 것을 말씀한다.
셋째로, ‘예언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4:1,5).
넷째로, 신약교회가 예언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다(아가보, 빌립집사의 딸들 사도바울 -행).
다섯째로, 성경이 율법과 예언서를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와 선지자의 글이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유대인들의 관용적인 표현으로 모세 율법은 가르침을 뜻하는 말로,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이고 예언은 특정시대의 특정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을 뜻한다. 신약시대에도 말씀이 있지만 말씀과 더불어 우리가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말씀하시는 예언이 필요한 것이다.
여섯째로, 사람들이 장차 일어날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점점 잘못된 것들에 심취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 유용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신약시대의 예언사역을 전망한다. - 은사주의자는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표현하는 반면, 전통적 복음주의자는 ‘성령께서 이렇게 감동을 주셨다’고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 성령님의 감동, 자원하는 마음, 등 지혜의 은사로 교회의 덕이 되도록 표현을 잘 나타내어야 한다.
3. 신약시대의 예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첫째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한다(고전14:3).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예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예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한다(사도행전18: 9-11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 예언의 말씀에 두려웠지만 18개월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셋째로, 장차 일어날 일을 알게 하여 준비하게 한다(행27: 9-10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중). 예언을 듣고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바울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사명에 순종 하며 죄수로 나아가다.
넷째로, 책망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게 한다(고전14:24-25).
4, 예언사역 이렇게 하라
첫째로, 예언하기를 사모해야 한다(고전14:1). 예언의 은사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 중보기도의 은사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중보기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예언사역을 할 확률이 매우높다(예언을 하고 싶으면 타인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하다보면 응답이 되고 그것이 예언이 될수도 있다).
둘째로,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을 해야 한다(롬12:6). 예언하는 자는 자신의 신앙과 대치되는 것을 말하면 안 되기에, 사사로운 이유(자신을 나타내고자)로 자신도 믿지 않는 충격적인 말을 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하며 항상 하나님의 대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
셋째로, 예언의 은사를 개발해야한다(딤후1:6). 연습하여 은사를 받는 다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발전시켜 나가라는 뜻이다.
넷째로, 서로를 필요한 자로 인식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전12:25).
성령께서 각 사람의 문제들에 대해 직접 말씀하실 수 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돌보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예언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은사 중 하나이므로 예언자가 다른 사람보다 믿음이 좋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섯째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언을 해야 한다(고전4:15). 예언자는 심판자의 마음으로 사역하기 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한다.
여섯째로 항상 예언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일곱째로, 예언을 돈 버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5. 예언에 이렇게 반응하라
첫째로, 성경보다 예언을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예언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살전5:20). 혹 예언이 틀릴지라도 멸시하지 말아야한다. 예언은 영감적인 예언과 계시적인 예언으로 나누어진다. 매순간 성령충만 하면 영감적인 차원에서의 예언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해 주어지지만 틀릴 수도 있고 실 수 할 수도 있다. 예언자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의 예언을 할 수 있다(ex).
셋째로, 예언은 분별해서 받아야 한다 -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 할것이요”(고전14:29). 예언을 하는 자도 분별해야 하겠지만 받는 자는 더욱 더 분별해야 한다(고전14:3).
넷째로, 장차 일어날 일을 알기 위해 예언기도를 받는 것은 삼가야 한다.
믿음이 부족하면 예언에 매여 운명론자가 되고 신앙의 참 진리를 누릴 수 없게 된다.
다섯째로, 다른 사람의 예언보다는 성령의 내적인 인도를 따라야 한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의 말과 자신 안에 거하는 성령이 주시는 응답이 다를 수도 있다(사도바울).
여섯째로, 예언은 조언이나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곱째로, 예언의 성취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임을 알아야 한다. 예언의 성취가 우리의 태도에 따라 바뀔 수 있다(히스기야 왕 15년 연장).
< 결론 > 성경적 은사 예언은 보이는 사실(예언이 이루어졌다 안 이루어졌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언의 주체(하나님이 하실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이신 하나님의 마음(뜻)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평가 > 신앙생활에서 예언과 성경말씀에 균형을 이루어 미혹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