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양현부인 광산김씨 묘갈명(번역문)
╺ 靑陽縣夫人 光山金氏 墓碣銘╺
연산조(燕山朝) 계해(癸亥) 7월 19일에 청양현부인(靑陽縣夫人) 광산김씨(光山金氏)께서 대방(帶方, 남원) 어은동(漁隱洞)에서 졸(卒)하시니, 부자산(夫子山) 동록(東麓) 계좌(癸坐) 원(原)에 장사(葬事)한 지, 우금(于今) 527년(五百二十七年)이라. 아직까지 비(碑)의 현각(顯刻)이 없음으로 족질(族姪) 상준(相駿)이 스스로 출자(出資)하여 석재(石材)를 마련하고 입비(立碑)하려 하면서 불초(不肖)에게 갈명(碣銘)을 청(請)하니, 내 어찌 감(敢)히 이를 감당하겠는가? 사양타 못해 보책(譜冊)을 고찰(考察)하여 서술(敍述)한다.
부인(夫人)께서는 광산(光山)의 대족(大族)으로 옛 사공(司空) 김길(金吉)이 고려(高麗) 태조(太祖)를 도와 공신(功臣)이 되었고, 그 후(其後) 누세(累世)를 경과(經過)하여 휘(諱) 달손(達孫)은 녹사(錄事)로 증(贈) 참판(參判)이요. 휘(諱) 수(洙)는 부사(府事)로 증(贈) 판서(判書)요. 휘(諱) 이석(以石)은 현령(縣令)이시니, 즉(卽) 고(考), 조(祖), 증(曾) 삼세(三世)라.
현령(縣令公)의 배위(配位)는 중서사인(中書舍人) 경주이(慶州李) 장손(長孫)의 영녀(令女)로 부인(夫人)을 생(生)하시다. 생년(生年)은 부전(不傳)이라. 부인(夫人)의 천성(天性)이 온정(溫貞)하고 순부형(順父兄)의 교훈(敎訓)을 받아 약년(若年)에 한씨(韓氏)에게 출가(出嫁)하시다.
부군(府君) 휘(諱) 종손(終孫)은 용모(容貌)가 괴위(魁偉)하고 기우(氣宇)가 준매(俊邁)하며 심오(深奧)한 학식(學識)과 원대(遠大)한 도량(圖量)으로 발군출류(拔群出類)의 인물(人物)이신데, 세종조(世宗朝) 정묘(丁卯)에 등제(登第)하여 광묘(光廟) 을해(乙亥)에 책훈(策勳)으로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 가정대부(嘉靖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을 특사(特賜)하고 청성군(淸城君)을 봉(封)하였다.
청양현부인(靑陽縣夫人)은 의례종부직(依例從夫職)이라. 책훈사적이(策勳事績) 국사(國史)에 등재(登載)되었고, 또 부군(府君)의 묘비(墓碑)에 상기(詳記)되어 있음으로, 이에 생략(省略)하거니와 계출(系出) 청주(淸州)하여 고려(高麗) 태조(太祖) 위양공(威襄公) 휘(諱) 란(蘭)이 시조(始祖)요. 증조(曾祖) 휘(諱) 리(理)는 문과(文科) 이부상서(吏部尙書)이시니, 여말(麗末)에 불이신절(不二臣節)로 시(諡) 충간(忠簡)이요. 조(祖) 휘(諱) 승순(承舜)은 증(贈)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 병조판서(兵曹判書) 봉(封) 청성군(淸城君)하고, 고(考) 휘(諱) 서룡(瑞龍)은 자헌동지중추원사(資憲同知中樞院事)로 증(贈) 이판(吏判)하고 5자(五子)가 다 등과(登科)함으로써 세급미(歲給米)를 받으시다.
비(妣) 정부인(貞夫人) 청도김씨(淸道金氏)는 참찬(參贊) 호강공(胡剛公) 휘(諱) 점(漸)의 여(女)로 5남 3녀(五男三女)를 생(生)하시니, 부군(府君)이 제(第) 삼남(三男)이라. 생년(生年)은 부전(不傳)이요. 무자(戊子) 3월 21일(三月二十一日)에 졸(卒)하시니, 경기(京畿) 파주군(坡州郡) 연대산(蓮臺山) 임좌(壬坐) 원(原)에 장사(葬事)하였는데, 조가(朝家)로부터 우례(優禮)로 조장(助葬)하고 증시(贈諡) 안양(安襄)하고 특명(特命) 부조전(不祧典)하다. 부조묘(不祧廟) 재(在) 연산(連山) 모촌(茅村)하다.
유(有) 2남 1녀(二男一女)하니, 장(長)의 휘(諱)는 희(曦)로 진산군수(珍山郡守)요. 차(次)의 휘(諱)는 절(晣)로 창원부사(昌原府使)요. 여(女)는 첨추(僉樞) 김맹유(金孟鍒)에게 출가(出嫁)하니 안산인(安山人)이라. 증현손(曾玄孫)은 불록(不錄)한다. 부인(夫人) 만년(晩年)에 이자(二子)를 인솔(引率)하고 어은리(漁隱里)에 남하(南下)하시니, 자손(子孫)이 잉거(仍居)하다. 경종(景宗) 계묘(癸卯)에 부조사(不祧祠)를 어은리(漁隱里)에 이건(移建)하다.
오호(嗚呼)라. 부인(夫人)의 가언선행(嘉言善行)이 후세(後世)에 모범(模範)될 바, 많을 것임으로 이를 자상(仔詳)히 기술(記述)하고자 하나 세대(世代)가 침원(寢遠)하여 치란(治亂)의 누변(累變)으로 미거(微據)가 무(無)하니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기유덕여음(其遺德餘蔭)의 가보소재(家譜所載)와 책훈사작(策勳賜爵)의 국사실록(國史實錄)을 증좌(證佐)로 하여 서술(敍述)했을 뿐, 감(敢)히 일언일구(一言一句)도 더 쓴 것이 없도다. 이어 銘하여 이르노니,
윤의영덕(允矣令德)이요 효우(孝友)가 그 본성(其本性)이라.
부형(父兄) 교훈(敎訓)으로 공검자양(恭儉慈諒)하시다.
덕(德)이 군자(君子)에 배합(配合)하고 은택(恩澤)이 후승(後承)에 유전(流傳)하다.
맹모(孟母)와 같이 현철(賢哲)하시어 이사(二嗣)를 교양(敎養)하시다.
종족(宗族)에 돈화(惇和)하고 가정(家庭)에 법승(法繩)이 있도다.
파주(坡州)와 대방(代房)에서 멀리 상망(相望)하시도다.
이 땅에 남하(南下)하시어 자손(子孫)이 만세(萬世)토록 살게 하시도다.
수석(壽石)에 명(銘)을 각(刻)하니 영세불린(永世不磷)하리라.
경술 추 구월 하한일 (庚戌 秋 九月 下澣日)
십칠세손 대연 근찬 (十七世孫 大淵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