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장 결혼 제도와 구속의 경륜
남편과 아내-그리스도와 교회
하나님께서 인간은 위하여 제정하신 제도들 중에 결혼 제도만큼 구속의 경륜을 잘 예시하는 것도 없다.
우리는 앞에서 아담의 아내 하와의 창조 과정이 어떻게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다. 아내 또는 신부인 하와의 존재와 생명은 그의 남편인 아담의 고통과 깊은 잠[죽음의 상징]을 통하여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결혼 예식을 주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장 24절)라고 선언하셨다. 그런데, 얼른 보기에는 단순히 결혼 선언문으로 보이는 이 구절이, 신약에서 바울의 신학적인 적용을 통하여 그 이상의 심원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라. …남편들 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 라.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 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 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에베소서 5장 22~31절).
이 인용구의 마지막 구절은 앞에서 인용한 창세기 2장 24절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그의 말을 꿑내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에베소서 5장 32절)고 함으로써 그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과 순종의 관계와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사실은 하나의 위대한 비밀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혼 제도는 구속의 경륜을 예표하는 또 하나의 표상적인 제도로서, 그 제도에 얽힌 몇 가지 사항들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에 관련된 중대한 국면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형사취수 제도
고대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결혼 및 가족 제도는 단순히 종족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인하여 자식을 낳는 것은 그 자식을 통하여 부모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을 뜻했고, 따라서 후손을 갖지 못하는 것은 생명이 중단되는 것 즉 멸망과 동일시되었다. 이러한 사상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지게 되었다 :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명기 25장 5, 6절). 간추려서 말하면, 형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기 전에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형을 위하여 후사를 이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편의상 형사취수 제도라 일컫는다. 영어로는 이것을 “레버리트”(levirrate)라 하는데, 그 어원은 라틴어로 “남편의 형제 또는 시동생”을 뜻하는 “레비르”(levir)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거니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도를 지시하신 배경에는 후손이 끊어지는 것은 생명이 차단되는 것이라는 사상과, 특정한 방법으로써 후손을 이어 주는 것은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 즉 구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제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그 제도가 상징하는 바 구원의 계획을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공중 앞에서 크게 수치를 당하였다(신명기 25장 7~10절).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9, 10절).
이러한 형사취수의 관행은 창세기의 후반에까지 거슬러 오른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의 넷째인 유다에게 아들 셋이 있었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창세기 38장 6~10절).
이 사건의 액면만을 본다면, 오난에게 내려진 벌이 퍽 가혹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오난의 행위가 함축하는 바 그 실상을 이해한다면, 그의 죽음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 이해된다. 오난이 저지른 잘못은 단순히 질외 사정이라는 하나의 피임 행위가 아니라 형제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제도 즉 구속의 경륜이 상징된 결혼 제도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형제의 생명을 차단하고 구원의 방법을 부정하는 엄청난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그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오난을 죽이셨다(창세기 38장 10절). 구속의 경륜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당장에든지 또는 나중에든지 그의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기업 무르는 제도
결혼 제도와 관련된 다른 하나의 제도는 이른바 기업 무르는 제도이다. 여기서 “기업” 이라 함은 주로 “토지”를 뜻하나, 토지를 위시한 재산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 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는 다음과 같다 :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 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 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 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 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레위기 25 장 23~28절).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기업 즉 토지도 후손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기업이 상실된 자는 그 백성에게서 존재가 없어지거나 끊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기업을 판 사람은 가까운 친족이 그것을 물러 주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희년을 기다려서 원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여기서 “무르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가알”인데, 이것은 “구원하다, 무르다”(redeem), "속량하다“(ransom), "회복하다”(recover)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실행하는 사람 즉 “기업 무르는 자”을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흔히 “혈족 구주”( : Kinsman-Redeemer)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혈족 구주의 모습으로 뚜렷이 나타나는 인물은 보아스이다(룻기 1~4장 참고). 룻이 그의 남편을 잃고 적수공권으로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보아스를 가리키면서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2장 20절)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룻은 보아스에게 접근하여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3장 9절)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룻은 그의 혈족 또는 근족인 보아스로 인하여 모든 기업을 회복하게 되고, 그와 결혼을 함으로써 아들을 낳아 후손을 잇게 되었다. 상징적인 의미에 있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 모든 점에 있어서, 결혼 제도는 구속의 경륜의 한 그림자요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