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1922년 문경 동로면 生
·1934년 13세에 상주 남장사에서 임제응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040년 문경 김용사에서 강원 대교과 졸업
·1971~74년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주지 역임
·1974~75년 조계종 감찰원 원장 역임
·1980~ 삼각산 도선사에 주석
계절은 늘 변하지만 지난해의 가을과 올해 맞는 가을이 다르지 않습니다.
본래 한자리니까요.
내가 젊었을 때 가을저녁 참선정진을 하고 있으면 성철스님이 살포시 옆에 오셔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예전에 한 조실스님이 조실방에 계셨는데 사자 한 마리가 늘 그 앞에서 지키며 방에 들어가려는 사람이면 모두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사자에게 물리지 않고 조실방에 들어갈 수 있겠냐?”하시고는 우리가 답을 하지 못하면 죽비를 내렸습니다. 항상 스님들의 가르침 하나하나를 받아적어 가며 공부하던 그때 성철스님의 말씀은 바로 나를 건져주는 가르침의 죽비였습니다.
나는 보통학교를 마치고 13세 때 절에 들어가 <초발심자경문>부터 배웠습니다. 상주 남장사에서 임제응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지요.
김용사 강원에서 <원각경>을 보다가 중생이 본래 청정하다 하는데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려 고민 하던 중에 <화엄경>을 접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는 <화엄경>의 가르침에 의심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습니다. 마음이나 부처나 중생이 차별없이 모두 부처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청정하지 못하고 부처와 같지 않으니 결국은 마음을 깨달아야 그 경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참선하여 마음을 깨닫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
한 나는 김용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직지사 천불선원에서 ‘이뭣고’ 화두를 배워서 오나가나 ‘이뭣고’를 참구하며 그렇게 첫안거를 보냈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어떠한 부처의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부처를 알려주고저 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처의 마음자리를 활발하게 쓰지 못합니다. 처처에 걸리고 울고 불고 야단 법석을 피우며 초조하고 불안해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불성이 탐진치 삼독
에 둘러 싸여 있어서 본래 자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비싼 보석이라
도 산중에 묻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니다. 광부가 땀흘려
흙속에 묻힌 보석을 캐내고 또 열심히 다듬어야만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되
는 것이지요. 우리도 그렇게 참선하고 염불하고 정진하는 등 부단한 방법으로
탐·진·치라는 광산에 묻혀 있는 본래의 불성을 캐내야 합니다. 이 본래 부처를
캐내는 피나는 노력이 모두 수행입니다. 그리하여 일단 본래 부처모습을 캐내어
놓으면, 이 세상의 어느 곳에 가도 걸림이 없어져 그 몸 그대로 지옥에 들어가도
지옥이 부서지고 아귀에 들어가도 아귀가 만족하고 축생에 들어가도 지혜가 생깁
니다. 지옥이니 축생이니 하는 것은 모두 탐진치 삼독의 컴컴한 그림자에 가려진
세계이므로, 마음하나 밝히면 광명이 비치어 어두운 온갖 그림자는 사라지게 마련
입니다. 내 본래 마음하나 밝힐 때 이 세상 모든 고통 사라지는 이치를 알았다면
이제 모두 그 마음 밝히는 작업에 힘써야 하겠지요.
내가 한참 참선 수행할 당시만 해도 먹을 것이 귀할 때라 매일 도토리를 따다가
밤이면 그것을 모두 까서 도토리밥을 해먹었습니다. 아마 요즘 사람들은 도토리밥
을 구경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매일 도토리를 따러 다니다가 옴이 올라서 더
이상 도토리를 먹을 수도 없고, 약도 없어서 탁발을 나섰다가 서울 선학원으로 가
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학원에서 청담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어요. 갈데가 없다고 하니, 나를 따라
가자 하셔서 따라 나섰는데 그때 간 곳이 속리산 복천암입니다. 청담스님하고 그
곳에서 쌀, 들깨, 솔잎, 좁쌀을 갈아서 생식을 했습니다. 매일 한 주먹씩 나눠 먹으
며 수행하다 보니 어느날 해제가 되었어요. 성철스님이 청담스님을 만나러 복천암
에 오셨는데 그때부터 성철스님은 남달랐습니다. 눈빛이 형형하고 아는 것이 많고
명랑쾌활하셨어요. 같이 살기도 했는데 그때 내 나이 22세, 성철스님은 32세이셨
고, 청담스님은 42세로 꼭 10년씩 차이나더군요. 나이에 관계없이 공양주를 번갈아
맡아가며 정진했지요.
그후에도 청담, 성철스님과의 인연은 계속돼 문경 봉암사에서 청담, 성철스님을 모
시고 ‘공주규약’이란 것도 제정하고, 결사 안거중에 현재의 삼배례, 오계, 보살
계, 포살 등과 가사, 장삼, 발우공양의식을 제정했습니다.
당시는 의식주 모든 면에서 현재와 비교해 열악하기 그지 없었지만 수행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해서 누구하나 예외없이 하루에 나무 두 짐씩을 하면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자세로 임했
습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하니 그때가 수행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참선정진과 염불수행을
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수행하던 그 시절이 또한 가장 행복하고
충만된 시절로 기억됩니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구산선문으로부터 태고보우선사 나옹스님 등 선종이 중심
이 되어 내려왔지요. 그러나 선으로만 도를 깨친 이는 별로 없고, 일반적으로 각
사찰에서 스님들이 하는 모든 의식은 아미타불극락정토(阿彌陀佛極樂淨土)로 구경
회향하는 조석염불수행이 주를 이룹니다. 선(禪)과 정(淨)이 둘이 아닌 것이 한국
불교입니다.
<미타경>에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불은 아미타불 무량수불이라 하였습니다.
자기본성을 깨친 이는 자성이 미타요, 유심이 정토니라. 사바세계가 극락이지, 달
리 극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옳은 말입니다. 이는 상근대지, 돈오돈수, 최
상승, 확철대오한 대선지식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대자유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원효스님은 ‘일체유심조’를 깨치시고도 화엄종, 해동종을 개종하면서 구경회향
은 서방극락세계로 돌리고, 서민 대중들도 염불하면 극락정토에 가서 수행한다고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권고하셨습니다.
화엄종 의상대사도 부석사 무량수전을 짓고 법당정면에 무량수불을 모시지 아니하
고 서방에 모시어 자연스레 서쪽 아미타불께 예배했다고 전해옵니다.
그러고보면 신라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교종에 원효, 의상 두분의 정토왕생사상은
구경에 가서는 서방극락세계에 가서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성불한다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목표는 바로 해탈입니다. 그러나 이 해탈을 향해서 들어가는 방편은 그 사
람의 정도, 자기바탕,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업력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양합니다.
원칙적으로 보면 골격은 다 같지만 들어가는 문이 다를 뿐이지요.
인간이 천차만별로 다양하지만 고통속에서 헤매는 모양은 다 같고, 또 모두가 고
통에서 벗어나려고 하지요. 사람의 정도나 환경 차이에 따라서 자기가 느끼는 현
실에 따라서 공부하는 방법은 달라집니다. 산란심이 많은 사람은 산란심을 제거하
는 방편을 쓰고, 둔탁한 사람은 생각을 일으키는 방편을 써야 합니다.
세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용기가 약하거나 어느 시간에 전력으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중생의 근기와 수행에 우열을 무시할 수 없어 구품으로 등급을 두
었습니다. 평생 악한 죄업을 지은 사람이 임명하면서 법사의 말을 듣고 바로 언하
에 왕생하게 되면 하품하생에 탁생하는데 죄업이 다 녹아야 연꽃이 열려 관음세지
보살에 염불염법염승하여 차차로 마음이 열려서 상품상생으로 올라 구경에는 성불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6자염불 왕생과 다라니로 발원한 상품상생원 극락
세계는 가는 것이 아니라 수용한다고도 하였습니다.
깨친 사람 입장에서는 사바가 정토요, 정토가 사바요, 삼천대천세계가 정토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상품상생으로 바로 가서 일찍이 성불할 길이 있으니
그 길은 단지 염불만 해가지고는 갈 수 가 없고, 다라니 수행공덕으로 가는데 염
불공덕보다 다라니 수행공덕이 더 수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말세에 있어서는 중생의 근기가 점점 약해져서 부처님 말씀도 잘 믿지 아니
하고 믿는마음이 적으니 공부도 소홀히 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극락왕생한다는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평소에 부지런히 정업을 닦지 않는다면 한 생을 헛되이 보
내게 된거요. 지은바 업에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제때 내가 금강산 여러사찰을 돌아보고 내려오니 사불산 대승사에서 청담스님을
비롯한 여러 소장스님들이 <무량수경>에서 정토발원을 했습니다. 왜 정토발원을
합니까 하고 여쭸더니 우리가 여기서 여름을 지내면서 모든 스님이 정토발원을 했
다 하셔서 그때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나도 따라서 정토발원을 했지요. 그래서
이후 선과 정을 함께 공부하다 보니까 많은 선사들이 선정쌍수 하신 것을 알게되
고, 육조스님도 나무아미타불에 대한 말씀을 남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이 만세(萬世)의 티끌 번뇌를 뛰어넘는 묘한
길이요, 부처가 되고 조사(祖師)가 되는 정당한 원인이며, 삼계(三界)의 천상인간의
눈이요, 마음을 밝히고 제 성품을 보는 지혜등불이다. 지옥을 파(破)하는 맹장(猛
將)이요, 삿된 무리를 베는 보검이며, 오천대장경의 골수요, 팔만다라니의 중요한
문이며, 암흑을 여의는 등불이요,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배이며, 삼계를 뛰어나
는 지름길이요, 가장 존중하고 가장 높은 묘한 문이며,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이
니라. 이 한 구절을 생각하여 생각마다 앞에 나타나고 때고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
며 무사시(無事時)에도 염하고 유사시(有事時)에도 염하며, 살았을 적에도 이렇게
염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하여 한결같은 생각이 분명하면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
어서 갈길을 찾으랴. 이른바 한 구절 아미타불뿐 다른 생각없으면 손가락 한 번
튕길 필요도 없이 서방(西方)에 가오리다”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느냐는 물음에 육조대사가 <선정쌍수집요(禪淨雙修集要)>
에서 이처럼 답하셨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이나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오로지 부처님 법을 믿는다고 한다
면 나무아미타불 공덕이라는 한가지는 알고 믿어야 나중에 이 육신을 버리고 갈
때 자신의 나아갈 바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힘이 없다면 자신
이 어디로 갈지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래 인내하고 공부하지 못하는 것은 젊으니까 다른 곳에 신
경 쓸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늘 염주, 합장주를 몸에 지니고, 오계를 명심
해야 합니다. 내가 이 종교를 믿는 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늘 불법을 믿고 따
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젊다해도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가서 추락하고, 캄보디아에서도 여객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뒤에서 누가와서 부딪치면
죽는거지 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누구든지 내 명호를 부르면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안하고
믿지않는 사람은 부처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수행하세요. ‘내일 하지 뭐’하고 미룬다면 죽을 때까지 미
루게 됩니다. 늙어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믿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극락세계 못
갈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을 날 받아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극락세계에 가려면 믿는 힘을 길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몸과 마음
을 바로하고 수행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평초와 같아서 바람이 이리로 불면 이리로 가고, 바람이 저리로
불면 저리로 가고, 그렇게 중심없이 흔들리다가 보면 사람신세 어떻게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경계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해탈자재해서 조금도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부처의 삶입니다.
불자 여러분들도 항상 자신의 분을 생각하고 힘껏 노력하여 정토왕생을 구경회향
처로 발원하세요. 늘 일과를 정하여 집에 있을때나 다른곳에 가더라도 부지런히
염불참선수행을 한다면 정토는 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