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9일 주일 설교
제목: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https://youtu.be/khE0enWfilc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성경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최근에 톰 라이트의 강연을 들으면서 고대의 신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예루살렘성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전에는 그 중앙에 신상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복을 주는 그 신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며 그를 경배하는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점에서 하나의 성전이다. 그 성전의 중앙에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만들어 두셨다. 그 형상은 아담 부부였다. 남자와 여자에게 자기 형상을 입히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게 하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된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형상
에덴동산이 성전이라면, 아담과 하와는 그 성전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들이 나타내는 하나님은 어떤 모습일까? 성경은 무슨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자신들에게 비추어진 하나님의 모습을 탐구하면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순전한 사람 요셉의 삶에서 드러나고, 그것은 성경에 담겨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규례(規例)들로부터 품어 나오는 향기로운 교훈이다. 예언자들은 그 핵심을 요약하여 백성들에게 제시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미가 6장 8절인 정의와 인자와 경건이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골로새서 1:15). 요한복음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소개했다(요 1:18). 그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일까?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9)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가르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준다. 예수님이 어떻게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예수님이 어떻게 악한 자들과 타협하지 않으셨는지를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인 산상수훈의 말씀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자비를 행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는 사도 바울의 사역
사도 바울은 교회에 편지할 때 자신의 사역목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라디아서 4:19).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것은 율법이라는 조문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함으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그들의 모임에서 억압하는 행태로 나타났다. 편견과 편협함과 우월감은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심하게 일그러질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얼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걸까?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을 대표한다. 신분증에 담는 사진이 얼굴인 이유도 얼굴이 그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얼굴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표시라면, 결국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얼굴에 나타난다.
사람이 가장 많이 보는 얼굴은 부모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서 우리는 웃음과 찡그림을 본다. 그 얼굴에서 우리는 인정과 정죄를 읽는다. 그 결과 우리는 용기를 얻기도 하고 두려워 떨기도 한다. 부모의 얼굴은 자녀의 마음에 평생토록 기억된다. 그리고 그 얼굴은 자녀의 마음에 새겨져 결국 자기 자녀들에게 같은 얼굴을 보여준다. 그렇게 가풍이 형성된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는 의미다. 그 빛나는 영광을 잃어버리고 어둠과 혼돈과 공허를 반영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인간이 구원받아야 하는 이유는 본래 가졌던 형상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혐오와 냉담, 그리고 차별과 증오를 발산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이라고 했다(엡 2:1).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인간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다(엡 2:6). 하늘에 앉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면 우리를 다시 하나님이 계시는 그 지성소로 들이셨다는 의미가 아닐까? 다시 에덴동산의 중심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의미일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지어져 간다(22절).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일까? 구원받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전에 하나님의 백성과 권속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그 명령을 따라 살던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말씀을 준행하는 삶은 그 자체로 빛나는 삶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 완성된 성전
이런 실존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보좌에 앉은 존재로 설명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고 말했다.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는 말은 성전이 커져간다는 의미다. 완성된다는 의미도 된다. 성전이 완성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된다. 성막이 완공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다. 성전이 완공된 후에도 그랬다.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애굽기 40:33하~35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역대하 7:1~3, 16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교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과 같은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할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완성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리고 그 완성은 곧 충만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이며, 곧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주님은 교회에 각 직임과 은사를 주셔서 성도를 돌아보게 하셨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셨다(엡 4:12, 16). 교회가 세워지는 만큼 세상은 더 밝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빛의 자녀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인 교회가 성도들의 상호협력과 돌봄을 통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세워져 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성도들의 삶도 그 자체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이 된다고 가르쳤다. 다음의 구절이 그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8~9
의로움과 착함과 진실함은 예언자 미가가 제시한 하나님의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공의(의로움)와 자비(착함)과 경건(진실함)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름받은 교회는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빛을 나타낼 수 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조언한다. 그 관계들은 남편들과 아내들이며(5:22~33), 부모와 자녀들이며(6:1~4), 상전들과 종들이다(6:5~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새롭게 된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그것을 그는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4, 개역개정판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4:24, 공동번역 개정판
시리즈 설교의 리뷰1. 세상
나는 최근에 구원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일찍이 정의한 바 있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주제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도의 관점에 대하여 나는 설교했다.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완성하실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둘이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세상을 말한다. 그것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한다.
시리즈 설교의 리뷰2. 인간
그러면 인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이것이 지난 주일 설교였다. 인간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거룩한 곳으로 인도되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왕으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그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 소임을 외면할 때 인간은 벌거벗음을 인식하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숨게 된다. 그러나 본연의 소임에 충실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벌거벗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 – 요약 정리
그리고 이번 주일에 나는 인간에 대하여 한번 더 생각했다. 그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고대 신전들과 비교하여 설명하였고, 아담과 하와가 맡은 임무에 대하여 다시금 정리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와 규례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암시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율법의 종합을 통하여 제시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실이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본받는 이유가 이것이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역목표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그 얼굴에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얼굴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처소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같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나타내는 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교회에 각종 직임과 은사를 주셔서 서로를 돌보게 하셨다.
그런데 교회라는 공동체뿐 아니라 성도 개인의 삶도 빛의 자녀로서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다. 그것은 의로움과 착함과 진실함이다. 아울러 성도가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바르고 따뜻한 가정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의 소임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