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때 ‘불가 기공’ 좀 했거든요. 허허!”
생활 한복을 걸친 50대 P씨. 듬성듬성 하얘진 짧은 수염을 손으로 훑으며 한쪽 무릎 위에 얹어놓은 발목을 까딱거렸다.
“수식관(數息觀)이란 게 원래 입정에 드는 방편으로 하는 거 아닙니까. 정좌 또는 반가부좌로 앉아서 눈을 감고 숫자를 세 나갑니다. 아주 편하게…. 너무 숫자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말고 그냥 물 흐르듯이 합니다. 맞죠?”
“네, 맞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사인가 입정 상태가 될 것이고, 그러한 느낌이 온다면 수 세기를 멈추고 배골(단전)에 기운을 몰아버립니다. 맞죠?”
“……”
“배골에 기운을 넣어서 그 느낌을 느끼고, 그 상태로 다시 숫자를 세어도 좋고, 안 세어도 좋고. 명상은 그렇게 이어지는 거… 아닌가요?”
“어디에 그렇게 쓰여있나요?”
“……”
자신감 가득하던 P씨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본인이 했던 수련에 비하면 수련이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쉬운 수련이지 않던가.
나름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수련 공부를 해왔다 자부했다. 그런데도 가시지 않는 목마름에 새로운 수련법을 찾아 헤매다 본 수련을 만나게 됐다.
고작 몇십 분. 짧게 두, 세 번 해본 게 다지만 단전을 휘도는 기운이 한층 강하게 느껴졌고, 감은 눈앞에서 흰빛이 번쩍번쩍했더랬다. 역시 그동안 해왔던 수련이 있기에 총알 택배 오듯 반응이 바로 왔다고 생각했다.
“제가 아직 잘 몰라서. 예전에 선도(仙道) 수련도 좀 했는데 수련하다 선병(仙病)인 기충두에 걸려서 조심조심 수련하느라 더딘 감이 약간 있긴 합니다.”
“선병은 발공을 해서 백회에서 회음까지 중맥을 열어주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혹 사부가 있으시면 그분한테 열어달라고 하시면 되고요.”
선병이란 명상(瞑想)병의 다른 이름이다. 단전 호흡을 하다 생긴 병이면 보통은 기가 중간에 막혀서 불편하고 아픈 증상으로 나타난다. 예전에도 수련하던 사람들이 많이 걸렸고, 그 때문에 수련 포기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결국, P씨의 문제도 그것이었다. 각종 수련법을 해봐도 가슴과 머리의 답답함이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수련 두, 세 번 만에 그 고통이 엷어지다니. 오랜 세월 수련을 해왔던 자존심 때문에 여러 수련법을 어깨너머 독학하던 그가 체통도 잊고 달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름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한 그이기에 정작 수련모임에서는 삐죽삐죽 눈치만 보다 입도 뻐끔 못해보고 끝이 났다. 그저 직접적인 발공을 통해 머리털 나고 처음 느껴보는 기체험을 했다는 위안만 남았을 뿐.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수련모임이 끝나고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들려왔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듣다 보니 몇 시간이 후다닥 흘러가 버렸다.
‘아 차!’하며 정신 차리고 보니 두 번째 기회마저 날아간 상황. 식사 뒤에도 남은 몇 사람이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하는 좌담회에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따라붙었다.
“카페 글을 읽다 보니 이 수련법이 소주천(小周天)을 뛰어넘어 대주천(大周天)에 이른다고 하는 거 같은데. 뭐, 그것이 이런 명상법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가 본 것 중에는 가장 쉬워 보이더군요.”
“거창한 철학이나 인문학적 이론들은 모두 빼고 실질적인 수련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췄으니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원전 언저리에 만들어진 수련을 그대로 한다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고, 그런 형식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지도 의문이죠.”
수련 카페가 문을 연 지도 벌써 20년. 본 수련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그동안의 수련 경험이나 사는 이야기들을 가볍게 공유하는 자리였다. P씨와 같은 신입은 귀동냥하다가 떠오르는 의문들을 묻기도 했다.
“그런데 이 수련법에 주천(周天)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없던데, 이건 그냥 기의 응축 정도만 되는 건가요?”
“…그동안 주로 무슨 수련을 하셨나요?”
“뭐, 그냥 이것저것 많이 했죠. 허허! 근데 아까 수련할 때 회음에 기가 빵빵하게 차면서 의념(意念) 없이도 백회까지 주천화후(周天火候)가 일어나던데 혹시 이거… 소주천 속성법 같은 건가요?”
“……”
P씨는 주로 호흡을 중시하는 수련법을 많이 접했던 분인 듯합니다. 당연하게도 수련의 공법에 따라 수련의 진행 과정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주천은 호흡을 통해 축기(蓄氣)된 기를 임맥과 독맥을 따라 주천 시키는 방법을 따릅니다. 하지만 수련의 공법에 따라선 소주천을 통하지 않고도 차크라를 깨우고 기맥을 유통하는 방법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 본 수련법은 중맥(中脈)이라고 하는 인체의 중심축이 되는 경맥을 열어 한꺼번에 7개의 차크라를 여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조식(調息)이나 지식(止息) 같은 호흡 수련법을 통해 기를 축적하는 이론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입정을 통해 호흡의 문제를 극복하는 수련 방법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신이 해온 수행을 믿는 것이 잘못이라 할 순 없겠지만, 그를 교만함으로 바꿔 아집에 사로잡히는 것은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면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행동이겠죠. 어제와 같은 나로 남지 않으려면 어제와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는 게 수련인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열린 마음에서 열린 생각이 피어나듯이….
첫댓글 소설처럼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