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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를 다녀 온 후
작성자 정해정
5월 28일 인천공항 3층 A카운터 오후 3시 반이 되었다. 대한항공 17번 노랑풍선 앞에 큰형님 모습이 보이고 큰시누남편 작은형님 작은시누남편 우리시동생네가족 우리남편과 필자까지 모두모여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여기 다 모였다. 비행기 탈시간이 되어 비행기는 하늘로 떠오르고 한국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면서 공항이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고 부풀었던 마음 또한 작아지고 있었다. 비행기를 LNO17 인천국제공항에서 18시 20분에 출발하는 태국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 여승무원들이 예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고객을 응대했다. 승무원 복이 간편하고 활동하기 편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머리는 어깨정도 길러서 머리끈을 뒤로 깔끔하게 하나로 묶고 열심히 일하는 나이어린 20대들의 모습이 내 새끼 같은 마음이 들어 밤 잠 못자고 일하는 모습이 한 없이 안쓰러워 보였다.
비행기에서 주는 식사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사이 5시간이란 긴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태국 치앙마이에 21시50분에 도착하였다. 태국 치앙마이 도시권의 면적은 2,905km2, 인구는 960,906명에 달한다고 한다. 역사 멩라이 왕은 1296년에 치앙마이을 세우고 치앙라이에 이어 란나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고한다. 더운 나라들이 주는 특유의 후덥지근한 습기가 나를 반겨줄 줄 알았는데 밤공기가 초가을 날씨 같아 잠바를 입을 정도로 쌀쌀했다. 시차가 우리나라하고 2시간 나는데 우리나라가 2시간 빠르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아 나와 노랑풍선 피켓을 든 가이드와 미팅을 잠깐 한 후 여행사에서 준비 된 버스를 타고 한 20분 정도 호텔로 갔다. 공항 근처에 우아하고 근사한 고급 호텔 쿤푸캄 호텔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 호텔에 우리가족들은 오늘하루 여정을 풀고 치앙마이 여행 첫 날 밤을 묵게 되었다. 필자의 룸메이트는 작은시누하고 하룻밤을 지내며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이드님께서 낼 아침에 일어나면 호텔 뷔페로 식사를 한 후 짐을 챙겨 나와 낼은 치앙라이호텔 (시라마니리조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낼 모레는 다시 이 곳 쿰푸타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자고 난 후 마지막 관광을 하고 쇼핑을 한 후 치앙마이 공항에서 밤 11시 비행기를 타면 6월1일 일요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귀국을 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지금 이후부터 생애 첫 태국 치앙마이 해외여행이 3박 5일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할 우리 일행 팀들과 같이 현지 가이드 태국인 여자 한 분 과 한국 가이드님 태국인 운전 기사님과 모두 15명은 한 팀이 되어 태국 치앙마이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우리 차 가이드님은 고향이 부산이고 부산엔 어머님 만 계시고 5남매 중 장남이라고 했다. 나이가 지금 45세인데 본인보다 12살 어린 여자 태국 현지인과 결혼해서 5살짜리 아들을 한 명 두었다고 하였다. 부산 사투리를 쓰면 여행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어 표준어를 쓰기 위해 본인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부산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완벽한 표준어 목소리와 서울 말투로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 여행자 귀에 영혼의 보약을 제공해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 일정은 코끼리쇼, 코끼리트래킹, 우마차, 대나무땟목 래프팅체험, 중식후 사이남풍 난농원관광이다. 한국도 유월 초순이지만 더위가 빨리 찾아와 덥다. 우리나라처럼 조석으로 쌀쌀하고 낮은 너무도 덥다. 후끈후끈한 열대지방의 태국의 기후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에 반하고 조용하고 편안해 보여 안전한 치앙마이의 도시다. 새로운 나라의 모습은 왠지 내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오늘의 관광 첫 번째는 먼저 우마차를 탔다.
우마차를 타는데 소가 하얀 소인데, 낙타처럼 생겼다, 마차의 바퀴가 나무로 된 건 지 잘 굴러가지 않아 소두마리가 두 사람씩 사람을 태우고 끄는데 힘에 부쳐 마지못해 마차를 끌고 가는 것 같아서 소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소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남편과 우리 둘은 코끼리 타는 곳을 이동 했다.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안 떨어지고 또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안 떨어지는 스릴 넘치는 코끼리 타기는 너무나도 재밌었다. 어린아이처럼 그냥 깔깔깔 웃음이 나와 엔도르핀 세라토닉 행복 바이러스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슬아슬한 산비탈 길을 걸어가는 덩치 큰 귀여운 코끼리는 그동안 많은 숙달 된 경험으로 엉금엉금 이 곳 저 곳으로 조심스럽게 좁은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코끼리 마부는 코끼리 머리위에서 여유있게 자유로운 몸짓으로 행동을 하는 모습이 묘기처럼 신기했다. 코끼리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망치 같은 끝이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코끼리 몸을 마구 찍을 때 마다 여기저기 몸에서 피가 나기도 해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얼마나 아플까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중간 쯤 내려오다 보니 팁을 따로 받는 곳이 있어서 준비해 둔 2달러를 주었다.
아슬아슬 떨어 질 듯 안 떨어지기 위해 깜짝 놀라 재밌어 행복하고 즐거운 비명 소리가 저절로 뛰어나왔다. 한바탕 웃고 또 웃고. 성실하고 묵묵히 말없이 걸어가는 우직한 코끼리였지만 걸어가다가 똥을 계속 연거푸 싸는 모습은 여행자들을 경악시켰다. 코끼리에서 내린 후 이어서 코끼리쇼는 정말 너무 귀엽고 신기했다. 미련한 줄 만 알았던 코끼리가 혹독한 교육을 받고 반복 된 훈련을 통해 놀랍게 지능적으로 변하여 똑똑하고 신기한 묘기를 부려 여행자님들에게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 했다. 코끼리 마부의 모자를 버껴 관광객들에게 쓰워줄까 말까 장난치기도 하고 또 쓰워주기도 하고 코끼리 코 로 관광객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가 툭 치기도 하며 장난을 쳐 관광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필자에게도 장난을 몇 번 치다가 코끼리 코로 내 머리를 꽝 때려 좀 아프기도 했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마냥 신기하고 사랑스럽고 귀엽워 헤헤헤혜 웃음 만 터져 나왔다. 코끼리쇼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코끼리가 실수를 하면 어쩌나 걱정을 내심 했는데 코끼리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잘 해냈다. 코끼리들이 그림을 그리는데 나무도 그려내고 과일도 예쁘게 색칠까지 멋지게 그리고 새도 완벽하게 그려 관광객들로 부터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받아 냈다.
코끼리 쇼가 끝나고 곧 바로 뗏목 타기 또한 재밌었다. 6명이 한 조가 되어 우리 팀은 2조로 나누어 탔는데 앞 과 뒤에서 두 사람이 노를 저었다. 우리 팀 노젖는 분은 너무 깡마른 체구에다가 입은 옷도 여기저기 다 헤어지고 찢어져 있어 한국 사람들의 사치스러움은 이런 모습을 보 고 도 나 몰라라 외면하는 마음은 지성인이라고 볼 수 없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잘 안 된 다. 내 영혼이 따뜻해 지던 날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말없이 실천하리라 약속해 본다. 사실 저 분은 비록 헤어진 옷을 입었지만 그 분 영혼만큼은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여 여행을 즐기는 우리들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 눈빛 이었다. 땟목을 탈 때 우리남편이 대나무로 황토 물살을 그 분을 대신 하여 앞에서 노를 저어보기도 했지만 실력은 그 분 보다는 처음이라 왠지 낮설어 보였다.
우리가족은 어느새 신나게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은 우리들을 손 짓 하고 있었다. 라오족이 이 대나무 기념품을 가지고 물속을 해치고 노는 것 도 또 한 신기한 이 나라의 관광의 하 나의 볼거리 이었다. 이제 중식시간이다. 태국뷔페로 된 식당에 먹을 만한 음식은 수박과 상추 닭고기 뿐 향식료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날 뻔 도 했다. 큰형님께서 이런저런 한국식 밑반찬을 준비 해 온 덕에 깻잎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태국 음식은 한국과는 달리 그 향이 매우 강하고 독특했다. 한국인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쉽게 먹지 못할 뿐더러 대부분의 음식들이 향신료가 첨가된 그런 종류의 음식이었다. 중식 후 사이남풍 난 농원관광을 했다.
난 농원 관광은 희한하고 처음 보는 신기한 요술스런 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색적인 태국의 열대성 식물들이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게 핀 이름 모를 꽃들 그리고 우리 일행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사진을 찍고, 이름 모를 외국 고목나무 아래서 찍은 아름다운 추억의 가족단체사진 한 장 을 찍고 함께 호흡을 맞추어 여행을 즐기는 우리가족들은 우주의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지면서 겸손해져 갈 때 자연 앞에 더욱 진실하고 착한 모습으로 변해 보였다. 진짜 사랑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잠깐 난 농원을 관광하고 나와서 라오스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승차 했다. 여기서 3시간 30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치앙라이로 이동 중 태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대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가이드님은 투박한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고 서울 표준 말 로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강의 듣는 걸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귀를 쫑긋 세워 한 마디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귀담아 열심히 들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국의 옛 이름인 얌 왕조는 1391년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더 이상의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단절된 양국관계는 1950년 태국정부가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한국전쟁에 파견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태국 군대는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고, 전쟁이후에도 1972년까지 한국에 주둔하기도 하였다 한다. 1959년 양국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게 되고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경제․ 관광 등 다방면에서 교역이 이루어지게 되고 1981년 양국 간에는 사증면제 협정이라는 조약이 체결되므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비자 없이 90일간을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964년에는 재 태국 한인회가 설립되고, 관광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한인회가 만들어지고 2002년에는 방콕 한국 국제 학교도 개교하면서, 세계 2차 대전 중 일본군의 강제징용에 의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 지역으로 강제이주하게 된 교민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민사회도 차차 안정을 찾게 되고 정착화 되면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4세대까지 진출한 상황에서 교민수도 차츰 증가하여 현재 총 약 2만여 명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 했다.
태국이라는 나라는 태국인 75%, 중국인 14% 불교국가(95%가 불교사원(4600개) 가 있으며 만 20세 남자는 출가하여 3개월 정도 승려생활을 한다. 4h는 아침 일찍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팝 야뎃 국왕 1946년 즉위, 75세, 세계최장수 재위 기록 되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 위치 한반도의 2.3배 열대기후 연평균 28.7℃, 습도 34.8%계절. 건기, 우기, 여름의 세계절 몬순 5-6월에 비가 많고 11-4월은 비가 적다. 예전부터 살생을 금하여 동물은 식용이 아니라 농사나 수송용으로 생각하였다. 태국의 음식은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생선, 닭고기, 채소가 주재료로 사용을 기름은 적게하고 시각적인 요소를 중요시하고 맛은 자극적이다 .5가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주며.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는 조미료로 소금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태국음식은 이슬람교도가 많고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 남부는 향료를 많이 사용해 한국인은 입맛이 안 맞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귀를 쫑긋하고 듣다 보니 어느새 골든트라이앵글 3개국 미얀마, 라오스, 태국 메콩 강에 도착했다. 허름한 배를 타고 황톳물 같은 물줄기를 잠깐 타고 라오스에 입국했다. 라오스는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라서 세계에서 빈민국가 가난하기로 소문난 나라라고 한다. 배에서 내리니 가방 벨트 가죽 피혁 상품이 많이 진열 되어있는데 전기 불을 몇 개 만 키 고 어두컴컴하게 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 필자와 시현 선희 우리 셋은 친구라서 커플로 똑같은 짝둥 배태통 가방을 고른 다음 사기로 약속하고 가격을 흥정 하는데, 좀 깍 달라고 실랑이를 하다가 우리 셋은 안 깎아 준다는 말에 좀 참으면 된다. 충동구매란 순간을 잘 넘기면 되는거야 그럼 아무 문제없어 하고 그냥 안 사고 말았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라오스 시원한 흑맥주는 여독을 풀어주고 피로를 가시게 해주는 청량감을 주는 맥주가 한국 돈 병당 1.200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님 거 까지 해서 12명을 주문해 마시고 계산을 하려고 하니 25병이나 마셨다고 터무니없는 바가지 요금을 요구 해 또 실랑이를 해야 했다. 나중에 병을 보여주고 진실을 말하고 계산을 하고 나왔다. 라오스에서는 잠시 30분 정도 머물다가 또다시 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 넘어왔다. 메콩 강을 넘어와서도 강 건너 라오스 전통 건축이 멀리서 나마 보인다. 메콩강가에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근대화의 폭풍이 휩쓸고 간 아시아에서 과거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라오스 현지를 가보고 싶지만 아쉽게 유명한 라오스 원주민 돈 사오 마을을 방문해 짝둥가방 판매하는 마을에서 맥주를 한 잔 씩 만하고 건너 나와야 한 것이 끝내 아쉬웠다. 배를 타고 다시 메콩 강을 건너올 때 강 건너 문화유적지들 중에 화려하고 매력적인 것은 메콩 강 건너 저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불교사찰들이 멀리서도 화려하게 보였다. 가장 유명한 사원은 메콩강가 한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태국, 미얀마, 그리고 라오스 3개국이 상상외로 더러운 메콩 강을 중심으로 한 국경지역인 골든트라이앵글 이곳은 예부터 마약의 대량밀매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저녁 식사는 우리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규모가 아담하고 운치가 제법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 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수원 화성지구에서 치앙마이로 이사 온 지 2년 되었다고 한다. 모처럼 한식으로 입맛을 되찾고 시라마니 리조트 호텔로 이동을 했다. 시라마니 리조트 호텔은 탄성이 저절로 나 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호텔은 한 사원의 유리 한 조각 한 조각이 모두 불빛에 반사되어 기분도 업 시켜주어 별빛도 더욱 반짝거렸다. 감탄의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일 것으로 기억 될 것이다. 수영장이 눈앞에 보이는 황홀한 아름다운 이 밤 이런 장소에서 생맥주도 마시고 건강을 기원하며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를 빌며 우리 모두 건배의 잔을 높이 들었다.
오늘이 진짜 내 생일날이다. 치앙마이 시라마니호텔 이곳에서 함께 좋은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내 생일날을 보내게 되어 어느 해보다 뜻 깊은 한 해가 되었다. 파티 장에서 아름다운 시도 낭송하고 노래도 부르고 고운 여행자님들과 함께 생맥주를 마시며 지저귀는 산새소리와 풀벌레 소리의 장단에 맞춰 케이크를 자르고 저 촛불은 춤을 추며 활활 타들어 갔다. 내 인생의 황홀한 멋진 52번째 맞는 생일을 올 해는 이 곳 차잉마이에서 이렇게 보냈다. 리조트안의 수영장은 낮에 열을 받아서인지 식지 않아서 수영장 물이 따뜻해 온천 목욕탕 물에서 물놀이 하는 기분이 들어 한 시간을 해도 나오기 싫었다. 수영장에는 바닷물을 옮겨 놓은 듯 물이 아주 짜고 바닷물처럼 파란색을 띠고 있어 실제 바다 물속에 내 몸과 영혼은 푹 숨 죽여 잠시 나며 배추를 소금에 절구 듯 나를 바닷물에 담가두어 강한 나를 부드럽고 착한여자로 변화되고 싶었다. 낼은 콤푸캄호텔에서 자고나면 태국 여행 마지막 날이 된다. 낼은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태국 전통 재래시장에 들러 이곳 소수민족들의 전통시장에서 물물교환 및 시장거래 물건들을 보고 전통시장 모습도 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들은 땅콩 바나나 옥수수등 기타등등 한국에서 사먹어도 되지만 그래도 현지인 태국산을 먹어 보고 비교해 보기로 했다. 그래도 옥수수만큼은 우리한국 옥수수가 쫄깃쫄깃하고 맛있었다. 다시 버스로 이동해 소수민족 마을에 들어가 토속적인 생활상을 보기로 했다. 태국 사원에 가면 자주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국불교는 소승불교라고 한다.
다음에 간 곳은 고산족 마을이다. 우리는 라오족과 카렌족, 아카족을 만났다. 라오족은 고구려의 후예로 우리와 같은 핏줄을 나눈다고 했다. 그리고 아카족은 마약을 많이 제배하는 족으로 주로 양귀비를 많이 제배하고 해외에 몰래 수출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신기했던 족은 카렌족이었다. 목이 길면 길수록 미인으로 손꼽힌 다는 카렌족. 원래 카렌족의 목걸이를 매는 풍습은 산에서 사는 카렌족 여성들이 산 밑으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건 시점으로 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한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그 사람에게 고통스러움을 보여주기 위해 참고 인내하며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손님맞아 관광자들의 눈요기로 상품화한 것은 인권유린 이라 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이 나라의 풍습이기는 하지만 요즘 물질만능 좋은 세상에 이렇게 비참하게 생활하는 그들이 좀 치근하고 불쌍해 보였다. 아주 나이어린 아이들이 사진 한 장 찍고 돈 벌기 위해 상품화하는 태국 정부의 복지정책과 관광 사업이 정말 너무 잘못 되었다고본다.
여성들이 하는 목걸이의 무게는 자그마치 5-6kg.이나 되는 걸 하루 종일 목에 걸고 배를 짜고 이런 생활에서도 밝게 웃으며 생활하는 카렌족 여성들이 불쌍하기도, 존경스럽기도, 측은하면서도 하루속히 인권을 찾아주고 싶었다. 필자는 거기서 100바이트 우리나라 돈 4000원 짜리 팔지를 두 개 샀다. 고산족 마을을 둘러보며 흙이 우리나라 흙보다 더 붉은 빛이 나 필리핀에 갔을 때에도 흙색깔이 똑같아 보였다. 열대지방은 다 그런가 싶었다.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자리를 이동 할 때마다 들었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런저런 관광을 하며, 흔치 않은 치앙마이 태국관광은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이다. 3벅5일이란 긴 여행이라 많니 도 걸어 다니고 다리도 아프지만 자리를 이동 할 때마다 자연이 주는 알 수 없는 기쁨이 내 정신건강에 힐링이 저절로 되었다.
패키지상품이라고 저렴해서 따라온 태국치앙마이 여행은 환상적이고 낭만이 있는 고품격 여행, 이 정도면 매우 만족스런 여행을 한 것 갔다. 저녁은 태국전통 칸톡 디너쇼 저녁을 먹으며 춤을 구경하는 것 이였다. 색다른 저녁식사라서 더욱 관심이 갔는데 메뉴는 산에서 뜯은 나물이랑 치킨 보시찰밥 김치 떡 치킨소스에 향신료 냄새가 나 서 난 먹지 않았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백인들이 10명 정도 그룹으로 앉아 저녁을 먹으며 디너쇼를 봤다. 참 독특한 것은 의자가 일본식 의자처럼 방바닥에 앉을 때 다리는 일반 의자에 앉는 것처럼 다리가 밑으로 툭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식당 입구에 들어 설 때 도 태국전통 의상을 입고 악기를 다루며 우리들을 반겨 줄 때 기분도 무척 좋았지만 세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장사를 해 돈을 벌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 공통적으로 생활하는 게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자리를 이동해 신상의 사원이라 불리던 도이수텝을 방문했다, 도이수텝은 약 30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사원으로 이곳을 걸으면 용의 기운을 받는다 고 한다. 걸으면서 계단의 수도 세어보고 치앙마이에 도착하여 그동안 관광한 곳들을 세어 보았다. 태국인은 시체 안에 실제로 진신사리가 있다고 믿는다. 중태국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절에 가서 감사의 공양을 드리고 절에서 혼례를 올리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절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한다고 한다. 인생의 처음과 끝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불교와 함께 하는 것. 태국인들에게 불교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신기하고 묘한 것은 진신사리가 절대로 있다고 믿는 것이다. 태국인 이라면 누구든지 그렇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94% 이상이 불교신자인 국가답다고 생각이 들지만 필자는 종교가 기독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쎄라고 의문을 던져 보고 싶다. 사람이 살다보면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죄를 지을 때가 많다. 그러나 신은 나의 모든 행실을 기억해 머리털 까지도 세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잠시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복은 닦은 데로 받고 죄는 지은 데로 돌아온다는 명언을 가슴 판에 새겨본다.
않지만 구지 말이 필요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껴지고 마음의 온도가 마음의 키 가 우리 여행자님 각각 다른 이색적인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 볼 것이다.
개구리는 우물 안에 있을 때 그 곳이 최고 인 줄 만 알지만 점프해 보면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구밀복검은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배 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인데, 실수를 했다 치더라도 실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또 도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결국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실수를 알고 있다는 건 자신이 잘못했다는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고 깨닫는 것은 발견하고 다시금 정답을 위해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이다. 실패를 했다해서 끝이 아니고 실수는 다시금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작의 첫 단계다. 이 번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굳게 믿고 변화를 시작하면서, 이제 나 자신의 내면에 존재 가치를 바로알고 발전을 향하여 부정의 장애물들을 제거해 버리고, 이 순간부터라도 꿈이 이루어지는 성공의 법칙데로 모든것들을 긍정의 에너지로 변화시켜 행복한 삶의 질을 한 층 더 높여보는 교훈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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