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꿈을 성취하려면...
성경 본문 : 사무엘상 17장 41절-49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3년 8월13일 주일 오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우리 개인에게 있어 최대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 앞에 놓인 거인(巨人)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면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합니다.
물론 약간의 도움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힘 그 이상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적극적인 사고방식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어떤 이는 승리하려면 “열심”이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열심히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열심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가요?
믿음의 용사 <다윗>을 보면.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에 있어
<다윗>을 별과 같이 사용하셨는가?
그가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꿈을 이루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1). (동기)를 점검하라.
우리의 꿈의 성취에는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하려고 하는 일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반드시 목적을 확인하라.
그 일이 앞으로 닥칠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빨리 그만 두어야 한다.
만일 얻어도 그것은 내 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별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도 그 앞에 있는 큰 장애물인 <골리앗>을
대항해 싸우는데 이런 동기가 있었다. 무슨 동기인가?
<사무엘상>17장 26절. 36절. 45절. 말씀에
26절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 하겠느냐?
36절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 이리 이까....
45절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대적해 나섰던 것은
만용도, 객기도, 영웅심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동기는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고 하나님의 군대가
업신여김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작부터 강한 동기를 가지고 나설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은 어린 소년의 몸이고, 상대는 274cm의 거구였다.
세계 최장신 북한의 <이명훈>농구선수도 235cm였다.
<골리앗>은 그의 갑옷의 무게만도 60Kg이나 되는 장수였으나,
<다윗>의 하나님을 위한 강한 동기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선한 목적과 분명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일을 해도 더 한다.
평균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이다. 잘 지치지 않는다. 불타는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수명도 길어진다고 한다.
예) 장수 노인들의 공통점
노인 건강을 연구한 어떤 의사의 발표에 의하면, 100세 이상
장수한 노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무엇인가? 그것은 건강식 요법도 아니었고,
규칙적 운동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이었다고 한다.
살 목적이 있으면 인생을 긍정적으로 산다. 더 장수케 된다는 것이다.
<골다공증>이 오는 가장 큰 원인도 <칼슘>을 안 먹어서가 아니다.
일이나 운동을 안 하므로 뼈가 강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뼈의 <칼슘>이 빠져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몸도 그럴진대, 하물며 우리의 인생은 어떠하겠는가?
강한 동기와 목적으로 우리의 꿈을 꼭 이루시기를 바란다.
2). (비용)을 계산하라.
문제와 씨름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가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
<누가복음>14장 말씀에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선발하실 때 2가지
예를 들어 비용을 앉아 계산하라고 하셨다.
망대를 세울 때에 비용을 계산해야 하고,
적군을 대항해 싸울 때 이길 수 있는지 계산해 보라고 하셨다.
<다윗>은 <골리앗>을 공격할 때 이런 값을 지불해야 했다.
즉, 주위의 많은 비웃음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사무엘상>17장 28절 말씀에
28절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 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을 제일 먼저 비난하고 막고 나선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친 형이었다.
친 형의 비난은 3가지였다.
비난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받았다.
(1). 자신의 직분에 대한 불충실을 지적한다.
아니 양치기가 양이나 치지 않고 뭐 하러 이런 곳에 왔느냐?
그것도 겨우 몇 마리 양을 치는 주제에...
(2). 성품에 대한 지적입니다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3). 하려고 하는 일의 자격 시비입니다
군인도 아닌 것이 이런 데는 왜 왔느냐,
전쟁을 구경하러 왔느냐?
완전히 주눅이 드는 비판이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여기서 그냥 주저앉았을 것이다.
거기서 형보다 더 <다윗>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다윗>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왜 형들은 그를 업신여겼을까?
<다윗>은 서자 출신이라고 한다.
배 다른 형들 속에서 천대 받고 자랐다 한다.
그 뿐이 아니다. 그가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아무도 그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했다.
거인과의 싸움에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렇게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시작할 때는
대부분 혼자다. 혼자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예) <리빙스턴>의 ‘길’
선교사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선교의 길을
처음으로 연 사람이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언젠가 한 선교 단체의 편지가 그에게 왔다.
우리 단체에는 당신의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계신 곳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좀 알려 주십시오.
<리빙스턴>박사가 답장을 써서 보냈다.
만일 좋은 길이 있어야만 오실 분들이라면, 제겐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사람은 길이 전혀 없을지라도 오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대개는 값을 지불하는 일은 잘 안하려고 한다.
말하는 것에도 이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말하는 것도 남자들이 힘이 더 많이 든다.
그래서 여자가 말이 많다.
예) 남성들이 여성들 보다 말이 적은 이유?
남성들이 여성들 보다 말이 적은 이유를 아시는 가?
남성의 성대는 여성의 것보다 무려 세 배나 길어서
말을 할 때 여성보다 세 배의 산소가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남성이 말을 잘하고 많이 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에 비해 여성은 말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공기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어휘력도 남성보다 훨씬 풍부하다.
그래서 여성은 전화기에 대고 두 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고 도,
말을 하고도 이렇게 전화를 끊는다.
“얘 우리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자동차 발명한 <헨리 포드>에게 친구가 말했다.
자네 자동차를 발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운전할 곳이 없지 않나? 도로가 없지 않은가?
도로가 없으니 갈 곳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자동차를 왜 만드나?”
이 같은 주위의 비난에 대해 기꺼이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꿈을 빨리 포기하시라.
무슨 일을 하든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격려도 있지만 비난도 반드시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값을 지불할 준비를 하시라.
(3). (작은) 승리들을 체험하라.
큰 승리를 이루는 데는 작은 승리의 체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산을 자주 오르면 큰 산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지 않는가?
<다윗>도 <골리앗>과의 싸움 이전에
사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체험이 있었다.
곰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경험이 있었다.
용사와 위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지 하루아침에 우리 눈앞에 나타났을 뿐이다.
<사무엘상>17장 37절 말씀에
37절 ...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싸움에서 자신의 힘으로 이겼다고 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건져 내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과거의 체험으로
<다윗>은 이제는 하나님이 거인과의 싸움에서도 능히 건져 주실 것을 믿었다.
<다윗>이 만일 거인과의 싸움이 처음이었다면
아마도 이런 믿음이 생기지 아니했을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 한 체험이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을 경륜이라고 한다. 경륜은 수많은 경험 속에서 나온다.
저는 지금도 계속 성령 체험을 해 나가고 있고,
성령의 종들을 만나고 있고, 성령의 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요즘은
민간의 경험으로 치료하는 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는 민간인들의 지혜를 빌어 병을 고쳤던 예 가 많았다.
그래서 고대 <바빌로니>아 같은 곳에는 의사가 거의 없어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이 독특했다고 한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누군가 병에 걸리면
환자를 도시의 광장에 눕혀 둔다고 한다.
그러면 그 곳을 지나던 사람들 중에
그와 비슷한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나
혹은 그 병이 어떤 방법을 써서 치료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그 환자에게 치료법을 알려 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병을 나았다고 한다.
참 놀라운 지혜이지 않은가?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스포츠에도 적용된다.
예) 세계 신기록
1954년에 인간의 신체는 4분 이내에 1마일을 달릴 수 없다고
한 의학 보고가 있었다. 물리적으로 인체는 그 만큼의 압력을
견디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해에 <로저 배니스터>라는
젊은 의학도가 4분 이내에 1마일을 주파한 것이다.
이 <로저 배니스터> 한 사람이 4분의 벽을 허문 이후에,
1954년부터 2년 동안에 무려 213명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주파해 냈다.
더구나 오늘날엔 웬만한 달리기 선수라면 4분 이내에 1마일은 보통이다.
무엇을 의미하나? 한 사람이 장벽을 넘으니까
이젠 쉽게 사람들이 넘는 것이다.
1900년 올림픽 대회에서 <어빙 백스터>는
높이뛰기 6피트 2인치(1.889m)를 기록했다.
이 때 사람들은 인간은 7피트(2.133m)는 불가능하다고들 했다.
그리고는 정말 아무도 7피트를 뛰어 넘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포즈베리>라고 하는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선수들은 반대 방향으로
높이뛰기 막대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발이 아니라 머리 쪽을 뒤로 하여 먼저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 비정통적인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비웃고 조롱했다.
비평가들은 그의 방법을‘<포즈베리> 엉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가 68년도 <멕시코> 올림픽에서 7피트 이상을 넘자
그 뒤로는 모든 사람들이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8피트 정도도 넘게 되었다.
<골리앗>은 그 동안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던 태산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소년 <다윗>이 이 산을 넘으니 이젠 <이스라엘>군사들이
저마다 앞을 다투어 진격해 갔다.
꿈을 성취하려는 우리의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주여!. <다윗>이 넘은 산 나도 넘게 해 주옵소서!
(4). 자신에 (맞는) 방법을 사용하라.
<사무엘상>17장 39절 말씀에
39절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 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다윗>은 <사울>왕이 주는 군복을 입어 봤으나, 맞지 않았다.
놋 투구를 써 보았으나 그것 역시 불편했다. 거기다가
갑옷까지 입으니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좋은 갑옷이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다윗>은 차라리 자신이 편하게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만사가 다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도 편해야 하고, 생활도 편해야 하고, 사람도 편해야 한다.
일도 편해야 한다. 불편하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는 익숙하지 못한 <사울>왕의 투구와 갑옷을
통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목동이 그에게 조금도 어색함 없이
숙달되어 있었던 돌팔 매질을 통해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의 꿈을 이루는데 방법이 중요하다.
물론 아무 방법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당신의 강점으로 승부하라.
당신이 제일 잘 하는 것으로 인생을 승부하라.
<박 한서> 목사 나는 “성령, 성령 충만함으로”
내 남은 인생을 승부하기로 했다.
나는 세계를 위한 의료 선교사역”으로
내 인생을 마무리 하려 한다.
여성분들은 아마도 아름다워지기를 대부분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코를 높이고 눈을 크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예) 여성잡지
얼마 전 한 여성 잡지에
“행복을 전해 주는 의학 성형 수술”이란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거기에 이상한 얼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사람 얼굴은 분명한데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여져 있었다.
‘이것은 컴퓨터가 만든 세계 제일의 미인입니다.’
즉 그 얼굴은 다름 아닌
<잉그리드 버그만>의 넓직한 이마를 따 왔고
<브룩실즈>의 매력적인 눈을 따 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입을 넣었다.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인들의
가장 예쁜 부분만을 본 따 만든 얼굴이었던 것이다.
최고의 미인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 본 따 만들었다면
가장 아름다워야 되는데 실은 전혀 이상한 얼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조화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의 직업도 그렇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좋다고 모두 다 대통령이 될 수가 없다.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꿈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맞는 적성과 은사, 재능을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자기만의
일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라.
(5).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라.
<사무엘상>17장 45절 말씀에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은 오중 무장을 하고 나왔다.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했고, 그의 갑옷, 엄청난 체구,
경험, 기술로 무장했다.
이에 반해 <다윗>은 오중무장 대신에 다섯 개의 물맷돌을 가졌다.
그것도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주웠다.
사실 <다윗>은 돌을 의지한 것이 아니다.
돌을 사용했지만 돌을 의지하지 않았다.
<다윗>이 의지한 것은 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물맷돌 5개에 대한 참 재미난 성경 뒷얘기가 있다.
<다윗>이 물맷돌 5개를 든 이유는
<골리앗>의 거인 동생들 4명이
더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은 아예 <골리앗> 거인
일가족을 다 죽일 각오로 전장에 나간 것이다.
이 얼마나 태산 같은 기개인가?
진정 <다윗>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당신의 나라의 왕으로 쓰실 만한 거인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하며?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요?
예) <중국> 황제의 이름
옛날 <중국>에서는 황제의 이름과
유사한 글자는 못 쓰게 했다고 한다.
예로 범죄의 죄를 나타내는 원래 한자는‘고(辜)’였다.
<진시황>은 이 글자의 모양이 황제를 의미하는
‘황(皇)’과 유사하다 해서‘죄(罪)’로 바꿀 것을 명령했다 한다.
고기를 잡는 대나무 그물이란 뜻으로 쓰였던 단어였다.
절기를 나타내는‘경칩(驚蟄)’의 본명은‘계칩(啓蟄)’이었었다
한나라 때 어느 황제가 자신의 이름‘유계(劉啓)’와
겹치는‘계’을 피하기 위해‘경칩’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황제의 이름 등을 일상용어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런 것을 피휘자(避諱字:이름을 피한다)라고 하는데,
송나라 때는 이런 것이 무려 50글자 이상이 되었고,
이것을 외어 지키지 않으면 평생 벼슬을 할 수 없었고,
실수라도 하면 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정반대다.
오히려 자꾸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3장 말씀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을 들어가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그들에게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걸인에 대해,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용될 때
기적은 일어난다.
물론 누구의 이름이든지 다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골리앗>도 자기가 믿고 있는 신들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것도 하나의 신이 아니라
여러 신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다윗>을 저주했다.
하지만 <다윗>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을 사용했다.
그 어떤 이름 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당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는 인생을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승리가 있을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