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入城(드디어......)
"대공자!"
무척 불쾌한 음성이 나를 잠에서 깨웠다. 빙화령이 눈을 뜨고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야......' '엄마 엄마......' 아무리 영악하다고 해도 이럴 때면 영락없이 원래 나이 가 보이기 마련이었다. 나는 빙화령을 잠시 바라보다가 창문을 열었고, 잠시 놀라고 말았다.
눈앞에 횃불을 반사해서 그런지,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지권백의 대가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뭬요? 깜딱 놀랐잖쏘, 그 큰 머리통을 들이밀고 있수니......"
"돌아왔소이다. 밤을 꼬박 세워 낙양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거요. 도착했기에 보고를 드 리는 거외다."
영 퉁명한 목소리였다.
"훔......"
"그 염병할 강무태라는 쉑, 이 늙은이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말이오......."
지권백은 이미 내가 빈손으로 폐가에서 나왔을 때부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는 상태였다. '어린 녀석이 어른을 우습게 보고......' '동방예의지국이라더니 그게 무슨......'
"어르신 고정하시죠......"
남궁혁필이 달래는 소리를 냈다. 난 혀를 차며 가마를 세우게 했다.
"구만 투덜대고 가마나 세웁시다."
밝은 빛이 희미하게 동쪽하늘에서 퍼져오고 있었지만 아직 기본은 어둠이었다. 문을 열기 직전에 다시 졸고 있는 빙화령의 혈도를 짚고는 자리에 곱게 눕혀놓고 문을 열고 나섰다.
물론 옷 속에는 변신했을 때 입을 어른용 옷을 넣어두었다.
"까마를 저 숲 군처에 옮겨 놓으시요."
"왜요!"
내가 근처의 숲을 가리키자 지권백이 화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구냥......구냥 하시오. 여기까지 고생울 하고 왔눈데 요거 하나 못해서 강영웅이 나타나지 않우면 어떻게 책임을 지시려고 그러시요?"
"그럼, 이 일을 하고도......니들 비켜!"
지권백은 가마꾼들을 물리치고 나를 바라보며 한손으로 가마를 들어올렸다. 아주 무거운 가마는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힘에는 지권백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 했다.
"그 넘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멀 어떻게 하겠소, 올때까쥐 기다려야쥐......"
내 말에 지권백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가마를 들어 성큼성큼 걸어가서 내가 말한 곳에 내려두었다. 난 아장아장 걸어서 가마 쪽으로 걸어갔고 혁필이를 포함한 일행이 내 뒤를 따랐다.
가마의 문은 마침 적절하게 숲 쪽으로 향해 있었다. 말하자면 멀리 보이는 천산의 남문과 일행의 눈에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 방향이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마쉬오......혁필공자."
"왜 그러시오?"
"그 자리에서 정확히 스무 보 뒤로 물러서시요. 흠, 니들도 모두 뒤로 물러서라......흠, 그 정도면 좋쏘. 난 조금 있다가 가마에 타겠쏘. 곧 너무 졸릴 것 같소......"
"대공자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빨리 지껄이자 지권백이 버럭 고함을 쳤다. 난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구대도 한때는 내 나이였을 것 아니오? 애가 하눈 말에 멀 구렇게 따지고 드시요? 누구 안에 들어가서 은성노모와 어른둘을 좀 모시고 오시요! 특히 노모님은 빨리 모셔와야 하오!"
별로 조리 정연한 말은 아니었지만 나와 몇 번 함께 다닌 바가 있었던 정기당의 제자들은 눈치가 빠른 편이어서 대공자의 말이 아무리 이상해도 따르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재빨리 천산남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노모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좀 끌어야 했다.
난 가마 앞에 쪼그려 앉아 괴물 남궁혁필을 바라보았다.
폐허에서 내 손에 잡힌 그 터무니없는 물체, 나를 무진장 당황하게 만든 고대 로마인들이나 했음직한 몸에 딱 맞는 흉갑, 그것도 여자가슴처럼 불룩 튀어나와있던......하하, 처음에는 그게 무지 딱딱하게 만든 뽕브라라고 생각 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남궁혁필에게 절대로 던져서는 안 될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나나나남궁......구대 여자요?'
나를 바라보는 남궁혁필의 표정이라니, 잠시 웃는 듯 했다가 이내 극도의 분노로 새빨개졌다.
'나를 모독하는 저의가 무어요. 천산대공자, 유세엽.'
그 목소리는 내가 들었던 혁필이의 음성 중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아뉘, 아뉘요. 모욕이라뉘, 그저 이건 지극히 학술적인......'
'천산이 아무리 강하다 하나 남궁가의 아들은 존중은 할지언정 두려워하지는 않소.'
'훗, 아니 우리도 구렇소. 다만 구대의 가숨이 너무 이상하다는 말이외다. 만져보니......'
혁필이는 나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궁금해 하지 마시오. 내 비록 서역에서 건너온 진기한 흉갑을 하고 있으나 이런 일로 그대 에게 모욕 받을 이유는 없소이다. 이것은...... 더 이상 말하면 서로 감정이 상할 듯 하니 그 만 말합시다.'
'흉갑이 꼭 여자용......'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남궁은 옆구리에 끼고는 전속력으로 달려가며 고함을 쳤다.
'그만 말하라고 하지 않았소! 대공자, 내 그대의 총명함을 높이 사고 있소이다. 내 호의를 이대로 저버리실 생각이오? 어리디 어린 그대에게 결투라도 청해야 하겠소?'
이 상황에서 어리디 어린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본래는 적절한 시점에 아래쪽도 탁 탁 두드려서 확고부동한 물증을 확보할 생각이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냥 순순히 일행에게 돌아와서, 순순히 지권백의 잡소리를 들으며 가마를 타고, 순순 히 빙화령의 핀잔을 듣고, 순순히......
'쭈아......원래 네 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밝히는 것은 유세엽의 일이 아니라 강무태의 일이었지, 비밀이란 드러나게 있는 거란 말이다!'
"대공자, 응가라도 하는 거라면......"
내 고민과 번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막지한 지권백의 고함 소리에 몇몇 겁대가리 상실한 녀석들이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웃은 녀석들의 이름을 외우며 천천히 일어났다. 멀리 여러 필의 말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누가 타고 오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난 일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좋쏘. 잠시만 기다리쉬오. 일 다경(차 한잔 마실 시간) 정도 지났는데도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와서 찾아도 좋쏘이다. 난 강무태 영웅과 뒤쪽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가마에 들어 가 자려하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대공자! 위험하니 혼자 들어가지 마시오."
"천산에서 누가 내게 위해를 가한단 말쑴이오? 너무 겁먹지 말고 차분히 기다뤼시오. 지권 빽!!!......짱!!!......로"
고함소리에 지권백이 잠시 당황하는 동안 난 후다닥 숲으로 들어갔고, 가마의 뒤에 이르러 즉시 옷을 벗어 가마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속에 감추어둔 옷을 내려놓고(이럴 거라면 뭐 하러 귀찮게 옷을 숨겨 들었을까?) 즉시 천외경의 무학을 중간쯤부터 내공을 담아 일주 시켰다. 모든 과정을 끝내자. 아주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고, 눈을 감았다 뜨자 몸의 사이 즈가 강무태로 변화해 있었다.
몇 번 겪었지만 이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기이해서 스스로 느끼기 힘들 정도였다.
순식간에 어른이 되고 순식간에 아이가 된다. 슈퍼맨은 전화박스에서 회전을 하고, 배트맨은 하인의 코디를 받아가며 검정 고무 옷으로 도배를 하고, 스파이더맨도 비슷한 짓(무슨 짓이 더라......)을 해서 멋지게 변하는데 난 이게 뭐냔 말이다. 스스슥 어쩌고 하는 효과음도 없다!
무언가 찬란한 서기라도 뿜고,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전용 커스튬 정도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장차의 보다 멋진 변신 계획을 구상하는 동안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대공자! 뭐하고 있는 겁니까? 속하는 차를 빨리 먹기 때문에 벌써 두 잔을 비운 참이외다.
대공자!"
짜증나게 만드는 고함, 지권백이었다. 나는 그가 했던 그대로 한 손으로 가마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 어른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20보 앞부터 천산의 남문너머까지 진을 치고 있던 무수히 많은 군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말발굽 소리가 들렸나 싶었더니 무지 빠르게들 움직인 모양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내가 가장 찾던 은성노모가 있었고,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와 여러 장로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아직도 부목을 달고 있는 종부기 장로의 모습도 있었다.
"소생 강무태라하오. 천산의 여러 영웅들을 다시 한 번 뵙소이다."
3갑자 내공을 죄다 쥐어짜서 터뜨린 목소리였다. 잠시 후에 온 천산이 내 메아리 소리로 가득 찼다.
"잘 찾아오셨구려. 강무태 소협."
내 목소리가 잦아들자 은성노모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노모는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가마를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건강하셨습니까, 노모님. 대공자님은 가마 안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노모는 싱긋 웃으며 내 앞으로 걸어와서 남들의 시선을 가리자마자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무척 아팠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억......허허, 노모님......"
"호호, 그대도 건강한 듯 싶구료. 어디......"
그녀의 손은 나를 꼬집자마자 귀신처럼 뻗어나가 가마에 달린 창문을 슬며시 열고 있었다.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빠르면서도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대공자 노고가 많으셨소. 호호, 그래요. 편히 주무세요."
노모는 빙화령이 정신없이 잠들어 있는 가마를 보고 존재하지도 않는 유세엽과 대화를 나누었다. 일종의 공모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창을 닫으며 다시 한 번 내 뺨을 꼬집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두 차례 통증은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최대의 난관을 벗어난 셈 이었다. 노모가 손짓을 하자 가마꾼 들이 달려왔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들에게 가마를 넘겨주었고 가마꾼들은 가마를 받아 들었다.
은성노모가 다소 불안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영웅, 가마꾼들이 곤히 주무시는 대공자를 깨우지는 않을 겁니다. 자, 천산의 어른들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는 문의 바로 앞에 나와있었다. 강무태로 변한 나를 보는 눈길은 세 사람 모두 제각각 이었다. 아버지는 담담해했고, 어머니는 기분이 나쁜 듯 했으며, 할아버지는 뭐라 형용하기가 어려운 눈빛이었다. 그들을 향해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 망설이는 찰나 쩌렁쩌렁하고 무척 귀에 익고 무척 불쾌한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 귀하가 바로 강무태요?"
나를 부른 인물은 다름 아닌 지권백이었다. 그는 내게서 다섯 장 앞에 있었는데 은성노모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노인네가 묻고 있지 않소, 귀가 멀었소!"
"소인이 바로 강무태요. 그런데 자기 이름도 밝히지 않고 남을 귀머거리로 몰고 있는 댁은 대체 뉘쇼?"
내 방자한 대꾸에 지권백의 술독 올라 붉으죽죽한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허허, 어린 녀석이 조금 고강한 내공만을 믿고......"
"어린 녀석은 일단 무시하고 보는 게 천산의 법도인 거요?"
"하하하하! 거 참......"
지권백이 웃음을 터뜨리자 뒤에서 어머니가 조그만 목소리로 기침을 했다. 다음 순간 은성 노모가 슬며시 옆으로 물러섰고, 지권백은 역군이라는 별호답게 어마어마한 힘을 담은 두 주먹을 불끈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이 왔다.
'젠장,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일종의 시험이 틀림없었다. 달려오고 있는 지권백의 두 주먹은 새벽 하늘빛을 받으며 어마 어마한 사이즈로 변화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주먹의 크기가 변한 것이 아니라 주먹이 미미하게 떨리면서 워낙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안력을 높이자 곧 정상 사이즈로 보였다.
난 손을 들었고, 반골장이나 천외경의 무학대신(은성노모의 당부도 있고 할아버지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무당파의 무공이라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진 짜 무당파에서는 결코 익히지 않는다는 짝퉁 무당무공인 성씨태극권화경(성씨태극권화경)을 시전했다.
두 손을 수박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둥글고 부드럽게 감아 나가는 것은 태극권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하하, 무당파의 태극권이더냐? 평범함 무공을......"
스스슥, 쉬쉬쉭!
지권백은 양 주먹을 좌우로 넓게 벌렸고 나 또한 그의 두 주먹이 펼쳐진 거리만큼 양장을 넓게 펼쳤다.
"조심하시오. 그건 태극권이 아니외다!"
누군가 장로의 목소리였다. 지권백은 코웃음을 흘리며 강력한 펀치를 내 안면에 밀어 넣었다. 정신을 차릴 경황도 없이 다음 주먹이 복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퍼버버버벅!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마치 복서가 샌드백을 치는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천산의 몇몇 사람들이 근심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장로,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손에 사정을 주십시오!"
놀란 청수진당 형제들의 목소리였다. 꽤나 용기를 낸 발언일 것이었다. 물론 지권백의 두 주 먹 중 어느 하나도 나를 맞출 수는 없었다. 내 양장은 그의 첫 주먹을 감싸 안았고, 순식간에 움직임을 막아냈다. 그의 두 번째 주먹이 날아들기 직전에 손에 담고 있던 내력을 조금 펼치자, 지권백은 내가 얼마 전에 동영호리에게 당했을 때와 같이 강력한 탄력을 받아 왔던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이것이 바로 무당파 사이비 장법인 성씨태극권화경의 11성 경지였다.
"허걱......이...이...이런 제기......랄......"
나는 한 순간에 10여장 밖으로 주욱 밀려나가는 지권백을 보며 두 손을 모아 포권을 해보였다.
"노인장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뒤로 스케이트 타는 솜씨는 정말 대단하군요."
지권백은 간신히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멈춰 섰지만 과다하게 내공은 운행한 탓인지 이내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사람들은 내가 지권백을 조롱한 건지 어쩐 건지 알 도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내가 지권백을 쫓아가서 때리려 하지 않는 것에 안심하는 듯 했다.
강무태의 손에 구원을 받았던 청수진당과 정기당의 몇몇 형제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누군가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하하, 이 정말 젊은 영웅이구료......하하하"
다름 아닌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시험하려 들면 짜증인데...... 반골장이나 천외경의 무학이 아니라면 오래 견디지 못할 텐데......'
할아버지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둘째 공자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었는데 강영웅을 직접 보게 되니 정말 대단 하다는 생각이 드오. 이 설중파 또한 젊은 시절에 결코 강영웅의 진보에 미치지 못했소이다."
할아버지는 내 앞 석장 거리에 이르자 걸음을 멈춰 섰다. 얼핏 보면 중년 아저씨로 보이는 외모, 내 말이라면 어지간한 건 다 들어주는 착한 할아버지, 누구에게나 좋은 성격, 그러나 다소의 긴장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마주하자 그야말로 왜 이 사람과 은성노모를 무림의 양대 태산으로 꼽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쩐지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거대 한 위엄이 할아버지 설중파를 감싸고 있었다.
"소인 강무태라 하옵니다."
허리를 깊이 숙여서 아닌 한국식 인사를 했다. 짧은 시간 인사를 올리고 허리를 다시 펴자 놀랍게도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이 할아버지의 좌측에 나란히 서 있었다. 은성노모에게는 몇 차례 당했지만 같은 일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당하고 나니 새롭고도 두려워졌다. 할아버지 설중파는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고 있었다.
"정말 예의 바른 젊은이구료. 늙은이는 설중파, 이 천산의 전임 연맹주이자 지금은 퇴물 늙은이이며 이 분이 바로 천산의 연맹주이신 유기영 대협, 옆은 천산의 대부인이자 늙은이의 따님이신 설숙영 여협이올시다."
"소인 조선에서 온 강무태라 하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절을 했고 두 부부는 포권으로 내 절을 받았다.
"처음 뵙겠소이다. 강소협. 본인은 천산연맹의 연맹주 유기영이라 하오."
"천산대부인인 설숙영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