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정맥 31구간 광양 똬리봉(1153.2) 소개
1. 산행 코스
심원마을, 미사치(황전터널 435 0.9K), 여수지맥분기점(810), 청소골깃대봉(858 2.5K), 833봉
월출재(695 2.1K), 월출봉(768 0.3K Back), 임도(760), 형제봉(861.3 3.1K), 새재(800 0.3K)
등주리봉(896.8 0.6K), 도솔봉(1123.4 2.2K), 989봉, 참새미재(참샘이재 955 1.2K)
똬리봉(따리봉 또아리봉 1153.2 0.9K), 한재(임도 1.2K), 논실(2.4K) -- 17.7Km (7:00)
* 미사치-깃대봉-월출봉-형제봉-등주리봉-도솔봉-따리봉-한재
2. 소개
미사치(美莎峙 황전터널)는 전남 순천시 서면 청소리와 황전면 덕림리 사이의 고개로 865도로가 지나는 황전터널 지점이다. 고갯마루에 운동기구와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여수지맥(麗水枝脈)은 호남정맥의 미사치(황전터널)을 지나 깃대봉(868) 0.3K 전 지점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계족산(729), 용계산(627), 봉화산(310), 웅방산(311), 왕의산, 앵무산(343), 암산, 비봉산(256), 무선산(217), 안심산(348), 사방산, 비봉산(310), 안양산, 고봉산(362), 봉화산(371)을 지나 전남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백야대교까지 약 81.1Km의 산줄기이다.
전남 순천시 서면 청소리, 황전면 덕림리,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경계의 깃대봉(858.2m)은 일제시대에 깃대를 꽂아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출재(月出峙)는 전남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와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사이의 고개이다.
전남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와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경계의 월출봉(月出峰 768)은 달을 맞이한다는 의미 이지만 정상부에는 삼각점만 있을뿐이다. 주변으로 임도가 많은데 고 박정희 대통령의 명으로 자방산업 발전과 군의 작전수행을 위해 1970년 공병부대를 투입하여 개설하였다고 한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경계의 형제봉(兄弟峯 861.3)은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봉(861)과 아우봉(844)로 두개의 봉우리가 있다.
새재는 전남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용지골과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물골 사이의 고개이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성불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지점이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경계의 등주리봉(840)은 둥주리봉, 동주리봉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것 같고 산의 모양이 짚으로 크고 두껍게 엮은 둥지리처럼 생겨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둥지리봉을 한자화하여 서롱봉(棲籠峯, 서롱산)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옥룡면 동곡리, 구례군 간전면 효곡리 경계의 도솔봉(兜率峰 1123.4)은 불교에서 말하는 도솔천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도솔천은 내원궁과 외원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올 때를 기다리는 곳이고 외원궁은 천인들이 모여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다. 백운산 줄기의 북서쪽 봉우리로 서쪽의 형제봉으로 산맥이 이어져 시의 북부 고지대를 형성한다. 광양서천에 합류하는 봉강천과 광양동천이 발원해 시의 남쪽으로 흐른다.
참새이재(참샘이재)는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청기암골/최점지골과 구례군 간전면 효곡리 세면동골 사이의 고개이다. 동곡리의 답곡(畓谷)은 논실이라고도 불리며, 근처에서 가장 먼저 논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이름이다. 논실/논답 마을 아래쪽의 묵방(墨方)은 먹방이라고도 하며,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 한낮에도 먹칠을 한 것처럼 컴컴한 마을이라 하여 이름붙여졌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다압면 하천리, 구례군 간전면 효곡리 경계의 똬리봉(따리봉, 또아리봉 1127)은 선박의 물속에 잠겨있는 넓적한 방향타를 따리라고 하는데 봉우리의 형국이 뱃길을 조정하는 따리의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재는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한쟁이골과 다압면 하천리 잿골 사이의 고개이다. 한치(寒峙), 대치(大峙)라고도 하며 모두 큰 고개라는 뜻이다. 겨울 북서풍이 골을타고 불면 너무 추워 한치(寒峙)라 불리기도 하였다. 광양시는 백제에 편입된 뒤로는 마로현(馬老縣)이라 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는 희양현(曦陽縣)으로 개칭하고 순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광양현으로 개칭되었는데 마로는 우두머리를 희양, 광양은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