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부 여행기
조 무 환 명예교수(공과대학 화학공학부)
2014년 2월 초에 인도국립공과대학(IIT) 카라그푸르(Kharagpur)의 초청을 받아 우리 실험실 연구원들과 함께 재료관련 심포지움 참석 차 콜카타(Kolkata) 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콜카타는 한 때 캘커타로 불리운 인도 제일 동쪽 끝 서뱅골 주의 주도로서 한 때 영국령 인도의 수도였고 현재 광역인구 1400만으로 인도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다. IIT카라그푸르는 인도 독립 직후 네루 수상이 설립을 주도한 IIT 7개 분교 중 하나로서 콜카타의 서쪽 100 km 근교에 있는 산업도시 카라그푸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IIT의 분교가 15개로 늘어났으며 가장 유명한 분교는 IIT델리와 IIT봄베이라고 한다. 오랜 비행 끝에 콜카타 공항에 도착하니 심포지움 주최 측에서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콜카타 시내에 있는 IIT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콜카타 시내를 통과하여 IIT로 가는 길에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콜카타 빈민사역을 하면서 지냈던 수녀원을 방문하였지만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 아쉽게도 정문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콜카타 시내에서 릭샤 (자전거 인력거)와 툭툭 (삼륜 오토바이 릭샤) 그리고 일반 차량과 보행자들이 뒤엉켜 혼잡 그 자체이다. 이제 세월이 10년 가까이 지났으니 인도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한국의 60년대 초반을 보는 것 같았다.
< 콜카타 시내를 주행하는 툭툭 택시>
<골목길을 누비는 소>
다음 날 IIT카라그푸르에서 열리는 심포지움의 풍경도 다소 이채로웠다. 참석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였는데 캠퍼스 건물 옆 공터에 천막을 치고 직접 닭튀김과 카레요리를 하여 대접하였다.
심포지움 일정을 마친 후 본격적인 인도 북부여행을 시작하였는데 먼저 콜카타에서 서쪽으로 약 626km 거리의 바라나시(Varanasi) 까지 항공편으로 이동을 하였다. 바라나시는 옛날 카시 왕국의 수도이자 동시에 힌두교의 최대 성지이다. 인근에 불교의 성지 사르나트가 있는 데 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이곳에서 그의 첫 강론을 하였다. 당시 우리 연구실의 인도 연구원 한 분이 IIT바라나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여 아는 대학 후배들이 거기 있었고 이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무려 네 명이 마중을 나왔는데 보통 크기 승용차에 짐을 싣고 우리 일행 세 명까지 합하여 일곱 명이 빼곡히 타게 되었다. 바라나시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라 우리 차량 앞으로 먼지가 자욱한 데 다른 차량들과 릭샤,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들이 차선을 지키지 않고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사고가 날까봐 노심초사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데 운전자는 용케 헤집고 빠져 나갔다. 콜카타 시내의 혼잡함에 한번 놀라고 바라나시 외곽 도로에서는 사고의 위협을 느끼는 충격을 받았다. 다행이 아무 사고 없이 바라나시 시내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한 강가 (Ganga, 갠지스 강) 어느 호텔로 이동을 하는 데 이 호텔은 주차장이 따로 없어 먼 곳에 주차를 하고 수 백 미터를 도보로 이동하는 데 혼잡한 비포장 길을 가야하고 골목길을 통과하는 데 곳곳에 물이 고여 있고 소들이 앉아 있어 트렁크를 끌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마중 나온 청년들이 우리 짐을 하나 씩 어깨에 짊어지고 갔다. 그 때야 비로소 마중 나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묵은 작은 호텔은 갠지스 강변에 위치하여 강을 조망하기 좋았고 강을 따라 산책하며 오랜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유람 보트를 타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서 뭔가를 태우는 광경이 보였다. 보트가 가까이 접근하니 반대쪽에서 오지 말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 자세히 보니 이곳은 그 유명한 갠지스 강 마니카르니카 노천 화장터였다. 사람들이 시신을 운반하여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핀다. 타고남은 유해를 신성한 갠지스 강에 뿌리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갠지스 강은 인도 북쪽을 동서로 가로 질러 흐르는 힌두교의 가장 신성시 되는 강이다.
인도 인구 13억 8천만 명 중 약 80%는 힌두교도인 데 힌두교도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강에서 신앙의 뿌리를 찾았고 그 중 갠지스 강을 가장 신성한 곳으로 숭배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도 땅덩어리를 하나의 여신으로 간주하여 ‘어머니 바라트 (Bharat Mata)’라고 부르고 그 어머니의 젖줄이 갠지스 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갠지스 강은 그들의 삶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그들은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금으로써 모든 죄와 오염, 불길한 징조, 질병 등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마지막으로 갠지스에서 화장됨으로서 궁극적으로 해탈한다고 믿어 왔다. 즉 갠지스 강이 삶은 물론 죽음 이후의 세계로 연결되는 관문이자 성지로 여긴다고 한다. ‘바라트’는 인도의 고유 국가 명칭인 데 산스크리트어로 ‘빛을 찾는 사람(선지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인도의 현명한 군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도 국민들은 바라트라는 국명을 즐겨 사용하여 바라트는 스포츠 경기장이나 인도 팝송이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며 인도 헌법 1조에는 “인도(India) 즉 바라트(Bharat)는 연방국가”라고 명시되어 있다. 최근 인도의 국명을 바라트로 변경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강가의 고대 유적지>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강가>
<강가의 마니카르니카 노천 화장터>
우리는 바라나시 일대를 둘러본 후 항공편으로 서쪽 약 844km 거리의 인도 수도 뉴델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부터는 가이드 없이 여행을 하였다. 미리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하여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뉴델리 메트로 역에 도착하였다. 호텔이 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깜깜한 데다 방향 감각도 없고 하여 택시를 탔다. 한참 후에 컴컴한 골목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였는데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새까맣고 눈빛이 반들거려 다소 공포감을 느껴 외출하기가 겁이 났다. 다음날 자이푸르(Jaipur)로 여행을 가기 위하여 아침 일찍 뉴델리 역으로 걸어가는데 길거리에 여러 명의 흰옷을 두른 노숙자들이 길 구석진 곳에 마치 시신을 눕혀 놓은 것처럼 자고 있어 또 충격을 받았다. 걸어가니 기차역이 금방인데 어제 밤엔 택시로 한참 걸렸으니 바가지를 쓴 것이 분명하였다.
자이푸르는 뉴델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39km 거리로 익스프레스 기차를 타면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기차역에 가니 기차 등급별로 대합실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앉을 의자가 부족하여 바닥에 앉아 기다린다. 해가 뜰 무렵 기차가 출발하니 한참 후 감사하게도 무료 아침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것이 아닌가! 식빵에 햄과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를 먹은 후 다소 허전하여 뜨거운 물을 부탁하여 한국에서 가지고 간 컵라면을 먹었다. 그 때의 컵라면이 얼마나 감칠맛이 나던지 국물을 다 마신 후 남은 향기마저 다 빨아들였다. 해외여행을 다닐 때는 컵라면과 고추장을 들고 다니면 느끼한 외국음식 맛을 중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자이푸르는 인구 약 300만의 계획도시로서 거리 전체가 핑크색이라 ‘핑크도시’로 불린다. 도시 건물의 외벽 재료가 이 지역에서 흔한 핑크색의 사암으로 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 하와 마할(Hawa Mahal), ‘바람의 궁전’인 데 아름다운 핑크색을 띤 인도 전통양식의 5층 궁전이다. 그리고 호수 가운데 신비로운 모습을 한 잘 마할(Jal Mahal) 궁전과 시 외곽에 위치한 웅장한 앰버 포트(Amber Fort) 성곽 등이 볼 만하였다. 이곳에서 여행은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하루 대절을 하였는데 당시 오만원이면 되었으니 물가가 아주 싼 편이었다.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 ‘바람의 궁전’>
자이푸르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238km 떨어진 야무나 강변 무굴제국의 고대 수도 아그라(Agra)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건축물 타지마할(Taj Mahal)과 아그라 요새(Fort) 등이 있다. 또한 아그라는 델리, 자이푸르와 함께 북인도 관광의 골든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1592~1666)이 지극히 사랑한 부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 건축물이다. 샤 자한 황제는 1631년 뭄타즈가 죽은 뒤 약 2만 여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타지마할을 건설하였고 완공에 22년이 걸렸다. 그는 여기에 너무 많은 국고를 탕진하여 정작 본인은 막내아들 아우랑제브가 일으킨 쿠데타로 폐위되어 아그라 요새 내의 무삼만 버즈(Masamman Burj), 즉 ‘포로의 탑’에 8년간 유폐되었고 그곳에서 야무나 강 건너 아련히 보이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어갔다. 전설에 의하면 샤 자한은 더 이상 타지마할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건축 설계자와 기술자들을 처형하고 많은 노동자들의 오른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아그라의 타지마할 건축물>
아그라에서 뉴델리로 돌아가기 전 시간 여유가 있어 기차역 뒷골목을 산책하였다. 우리 세대가 60년대에 가지고 놀던 구슬과 자치기를 골목 가게에서 팔고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여행은 공간이동을 통하여 시간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타임머신은 아니지만 항공편으로 몇 시간을 이동하면 그 비슷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을 따라 버스 여행을 할 때 강 건너 북한 지역을 바라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북한의 혜산 근처 어느 강변 마을이 바로 눈앞에 보였는데 마을 모습이 어릴 적 시골 마을 같고 강변에는 아낙들이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아그라에서 뉴델리로 돌아와 대통령궁과 인도문 등을 구경하고 간디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이곳은 간디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으로 그의 검소한 생활의 모습과 마지막 암살을 당한 장소 등을 볼 수 있다. 델리는 인도의 수도권으로 인구 약 1400만이고 뉴델리와 올드델리로 나눌 수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 때 새로운 수도로 뉴델리가 건설되었고 예부터 있는 도시를 올드델리라고 부른다. 뉴델리 안에는 행정구가 있어 정부부처의 관공서들이 밀집해 있고 지하철을 통하여 시내 중심부로 이동이 원활하다.
<간디 박물관 내의 간디 사진>
인도 북부 여행기를 마무리 하면서 인도의 무궁한 잠재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인도는 한반도의 약 15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인구는 현재 약 14억 3000만 명으로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 국가가 되었다. 인구의 47%가 25세 미만이고 청년층은 영어를 구사하며 IT 기술 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 앞으로 경제성장이 매우 빠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작년에 인도의 GDP가 세계 5위이고 2029년에는 GDP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잠재력이 매우 큰 국가이다. 그리고 과학 기술력이 매우 우수하여 기초과학, IT, 국방 등 주요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강국으로 꼽히는 데 이미 원자력 등 핵기술과 위성개발 등 우주 분야 등에서 우리를 앞서 가고 있다. 관광할 명소도 많아서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를 많이 여행하고 민간 교류가 활발해져 양국이 함께 발전해나간다면 좋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