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의 오디세이아, 진천 두타산
1. 일자: 2022. 9. 11 (일)
2. 산: 두타산(598m), 증심봉(540m)
3. 행로와 시간
[동잠교(08:25) ~ (팔각정) ~ 전망대(10:00) ~ 두타산(10:19) ~ 식사(11:00~20) ~ MBC통신탑(12:01) ~ 공병대 갈림(12:44, 붕어마을 4.9km) ~ 사격장 갈림/바위전망대(13:02, 붕어마을 4.3km/삼형제봉 1.74km) ~ 중심봉(13:16) ~ 삼형제봉(13:49) ~ (도로) ~ 붕어마을(14:26) / 15.83km]
< 진천 두타산 산행을 준비하며 >
진천에도 두타산이 있다. 삼척 두타산은 100대 명산이지만 이곳은 200대 명산이다. 7월에도 신청을 했다 인연이 닿지 않은 곳인데, 알수록 매력이 늘어나는 산이다. 우선 이동거리가 짧고, 코스 선택이 가능하며, 삼형제봉에서 내려다 보는 초평저수지 풍광이 무척 좋아 보인다. 게다가 귀경 길에 덤으로 농다리 관광도 한다. 친구들도 좋다하여 추석 연휴를 맞아 함께 신청을 했다.
한국의 산하를 들른다.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으로 고찰 영수암을 산자락에 품고 있는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산이다. 정상에는 삼국시대의 석성이 자리하고 있다. 절과 산성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가야할 길을 살핀다. 동잠교를 출발하여 팔각정을 거쳐 정상까지는 4.6km로 2시간을 예상한다. 고도차 500m로 전체 코스 중 가장 많은 에너지 소모가 예상된다.정상에서 미암재, 사숙재 지나 사격장삼거리/통신대까지는 4.9km로 약 2시간의 긴 능선길이 이어진다. 평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높낮이의 연속이다. 컨디션과 속도 조절을 요하는 곳이다. 이후 증심봉과 삼형제봉을 지나 붕어마을까지는 4.3km 90분을 예상한다. 풍광이 좋은 구간으로 내려다보는 초평호가 근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도마다 거리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14km 내외 거리에 5시간 반 산행을 예상한다. 이는 혼자 갈 때 기준이다. 친구들의 걸음이 빠르지 않으니 주어진 6시간 20분을 꽉 채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혹시나 하여 트랭글에서 트랙 하나를 다운로드 받아 둔다. 어찌되었건 벗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산행이 될 것 임에는 틀림 없다.
< 희망사항 >
처음 이름을 들을 땐, 마음이 동하지 않고 이런 곳도 있었나 싶다가, 알수록 매력적인 산이 있다. 알아갈수록 매력을 느끼고, 급기야는 그간 왜 몰랐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그런 곳 말이다. 두타산이 그런 곳이다. 산 중에 성곽이 있고 산정에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은 풍광이 아니 좋을 수 없을 게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니 기대가 더 크다.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200대 명산 중 40개 정도를 오른 것 같다. 100대 명산도 이러다 마음을 주고 빠지게 되었다. 산을 오름에 있어 집착은 금물이다. 조바심이 도지면 병이 되고 결국 정상 만을 목표로 한 형식적인 산행이 되고 만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명성보다, 산 자체를 즐겨야 한다. 두타산도 그런 마음으로 친구들과 즐기다 오고 싶다. 길을 오가며 태풍을 이겨낸 들녘을 바라보는 여유도 가져 보고 싶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실제 산행은 다르리라.)
< 진천 가는 길에 >
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수학여행 이후론 처음 함께 버스여행을 가는 것 같다. 살짝 들뜬 마음이 설렌다. 들녘에 벼가 익어가고 있다. 지난 주 벌초 끝나고 죽주산성을 찾아나서며 본 풍경과는 또 다르다. 가을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8시 20분 커다란 주차장이 있는 들머리 동잠교에 도착한다. 이른 행보다.
< 동잠교 ~ 두타산 >
행장을 갖추고 두타산으로 향한다. 오르막과 평지가 번갈아 나타나며 고도를 올린다. 정자를 지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적당히 섞인 숲은 녹음이 짙다.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나아간다. 숲그늘에 선선한 바람, 걷기에 그만이다. 500미터에 육박하는 초반 오르막이 걱정되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전망대에 도착했다. 내려다 보는 진천 읍내 풍경이 시원하다. 정상에서 쉴 요량으로 이내 자리를 뜬다. 가다 보니 영수암으로 가는 갈림이 보인다. 20여분을 더 오르자 두타산 정상이다. 정상석이 3개나 있다.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산성은 그 흔적이 희미하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 존재마저 알지 못할 것 같다.
초반 페이스는 나쁘지 않다. 작은 성취감에 젖는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우리가 다녀 갔음을 사진에 남긴다.
< 두타산 ~ 증심봉 >
내려선다. 이정표가 어지럽다. 미암재는 어디 인지도 모르게 지나친 것 같다. 11시 무렵, 삼거리 작은 공터에 자리를 편다. 떡과 과일, 맥주가 어우러진 소박한 점심상이 차려진다. 맥주 한 모금에 목이 탁 트이는 청량감을 준다.
먹고 나니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워진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그래도 평균 속도가 2.6km 수준이니 아직까지는 걸음에 여유가 있다. 12시 무렵 MBC 송신탑을 지난다. 잠시 순해진 길은 군부대 통신탑을 지나며 거칠어진다. 폭도 좁아지고 돌도 많다. 무엇보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고 풍경은 없다. 지쳐간다.
이정목과 만난다. 안내 표식으 여전히 어지럽다. 공병대/사격장/통신대 등 군과 관련된 표식이 유독 많다. 두타산 정상에서 5.3km를 왔고, 붕어마을은 4.9km를 더 가야 한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좀 빠르게 걸어야 겠다.
속도를 낸다. 제법 긴 오름을 올랐다. 증심봉이 멀지 않았겠지 하며 봉우리에 오른다. 사격장 갈림이다. 바위 전망대에 서니 처음으로 초평호수가 조망된다. 단조로운 숲길에 물길이 보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증심봉은 봉우리 하나를 더 올라야 한다. 친구들을 기다린다. 빤히 보이는 봉우리를 오르는데도 힘에 겹다. 잔 주먹에 지쳐가는 복서처럼 계속되는 오르내림에는 장사가 없다.
진득한 오르막을 올라 마침내 증심봉에 선다. 두타산에서 증심봉은 대세 내리막에 고도 차가 그리 크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등고선을 보니 변화가 꽤 있다. 산에서 지도와 길을 읽는 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머리가 아둔하면 몸이 고생한다. 정상은 돌탑이 있는 작은 공터. 증평 일대의 평원이 넓게 펼쳐진다. 지나온 능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서 있다. 그래도 능선의 울렁임이 근사하다.
인증 샷을 찍는다. 지금부터 삼형재봉까지가 두타산 산행이 백미다.
< 증심봉 ~ 붕어마을 >
잘못하면 버스 출발 시간을 못 맞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식을 뒤에 남겨두고 기영과 속도를 낸다. 여차하면 먼저 내려가 사장을 살필 작정이다. 오르내림은 게속 이어진다. 삼형제봉 가는 길에는 돌탑이 꽤 많았다. 그것도 3개가 연이어 나타나, 이곳이 삼형제봉이 아닌가 하는 혼란이 왔다. 산길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걷는 행위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증심봉에서 삼형제봉은 빠른 걸음으로 30분 거리였다. 정상 바위 난간에 서니 초평저수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 최고의 풍광이다. 한반도를 닮은 지형도 보이고, 한가로이 호수에 떠있는 배들도 목격된다. 기대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눈맛은 충분히 시원하다.
시간 압박에 이내 자리를 뜬다. 3km 거리에 남은 시간은 50분, 다시 속도를 낸다. 트랭글에서 13km 지점을 통과했다는 멘트가 안내된다. 당초 거리 계산을 잘못했다. 아니 여러 지도 중 가장 먼 곳을 기준 삼았어야 했다. 예상보다 최소 2.5km 거리를 더 걸었다. 시간 압박의 주원인은 역시 준비 부족이다. 그 탓에 친구들을 고생시킨다.
다행히 내리막 길은 얼마 가지 않아 도로와 만난다. 전망대까지 도로가 연결되어 있나 보다. 속도가 붙자 시간 걱정은 사라진다. 뒤에 오는 대식도 잘 오고 있다 한다. 한 시름 놓았다. 다행이다.
버스 출발시간 15분 전에 날머리에 도착한다. 산에서의 긴장은 이내 사라지고, 먼 길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붕어마을 카페에서 냉커피와 레몬 주스를 주문한다. 차가운 음료의 시원함에 좀 전 산에서의 일들은 기억에서 멀어진다.
< 농다리 투어 >
시원한 버스 에어컨 바람에 옷이 말라갈 즈음 농다리에 도착했다. 주변은 커다란 유원지다. 작은 다리 하나에 ‘웬 요란’하며 물가로 내려간다. 농다리는 돌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중간에 물길을 낸 돌다리였다. 물에 닿는 돌은 아주 오랜 시간을 견뎌온 세월에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물이끼와 시간을 품은 돌을 보며 한눈에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직감한다. 돌 위 각기 색과 모양이 다른 돌들이 얼기설기 그러나 균형을 잃지 않으며 함께 농다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 균형과 조화가 놀랍도록 멋지다.
농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다이나믹하고 긴 하루였다.
< 에필로그 >
여행은 집을 떠나 예상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원초적 행위이다. 어쩌면 숫컷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먼 옛날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생각보다 훨씬 긴 산행이었다. 13km~14km 내외의 거리를 예상했는데 15.8km를 걸었다. 지도마다 거리 표기가 달랐고, 현장 이정목의 표식은 또 달랐다.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처음으로 안내산악회 따라 나선 친구들을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했다. 다신 버스를 타지 않으려 할 것 같다.
버스가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졸음이 밀려온다.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6시간이 넘는 산행에 농다리 관광까지 했고, 새로운 많은 일들을 경험했으니 당연하다. 평범한 일상에서 그리고 산행에서도 가끔 ‘점프’해야 성장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오늘의 산행이 그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서울에 도착하여 연탄 돼지갈비를 먹으며 뒤풀이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의식이 된 마무리 커피를 마시며 다음을 기약했다. 산에서의 힘겨운 일들은 희미해지고, 즐거운 기억들만 남는다. 행복한 하루였다.
두타산은, 몰랐었고 그 알아 가는 과정에 큰 기대를 했으나, 정작 산헹을 하고 나니 다시 평범한 산으로 여겨진다. 산행보다 친구들과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의미를 둔다.
첫댓글 사진에 있는 표정만 보면 누가봐도 즐거운 산행이었을 것 같은데, 여정은 험로 였을것 같아 ㅋㅋㅋ 대단한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