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사회과학의 특징과 지향점
1. 한국의 ‘사회과학’ 역사는 대단히 짧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해방 이후 사회과학은 대부분 미국에서 유학한 학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짐으로써 몰역사적이며 반민중적 성격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60-70년대 사회과학의 핵심적 주제는 ‘근대화론’이었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근대성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모형인 서구의 산업사회로의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근대화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후진성의 원인은 한국사회의 전통적 구조에 내재하고 있다. 내재해 있는 전통적 요소는 근대화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빨리 버려야 하고, 근대화하자면 구미 선진산업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추상화한 모델(산업사회)에 따라가야 한다. 따라서 이 합리성에의 적응이 곧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2. 근대화론을 중시한 주류적 사회과학은 권력과 체제를 옹호하는 인식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사회과학의 성격을 규정지었던 것은 맹목적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한 제약, 미국적 이론의 무비판적 수용, 과거의 실상을 은폐하려는 반역사적 세력의 존재라는 조건이었다. 사회과학은 단순히 이론적 정교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사회과학에서 이론은 실천을 위한 도구적 성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회를 이끄는 변혁 세력에 대한 실천적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권력자와 권력구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역할에 충실했으며 권력의 구조적 현실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은폐로 활용되었다.
3. 대표적인 사례가 베버의 관료제 및 합리성의 개념과 파슨스의 ‘사회체계이론’이었다. 80년대 사회과학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합리론을 배경으로 한 주류 사회학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비판자들은 관료제에 대한 시각을 “(관료제을) ‘기술적 합리성’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그 기술적 수준 이상이 내포되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제외하거나 은폐하는 것(....), 관료제를 ‘합법적 권위’로 개념화하는 것은 사유재산의 법체계를 합리적 직무수행의 규칙체계로 전환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공격하였다. 또한 구조기능주의에 입각한 파슨스의 ‘사회체계이론’에 대해서는 “테일러리즘으로 대표되는 노동에 대한 기술적 규제의 한계성에서 비롯하여 사회적 규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노동과정에 대한 전체적인 통제 개념구도를 이론의 일반화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4. 기존의 사회과학에 대한 반성은 이론적 차원에서만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학문적 변화는 구체적인 정치사회경제적 변화의 결과에서 추동되는 경우가 더 많다. 70년대 중화학 공업이 발전되고 여성노동자에서 남성노동자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계급적 갈등 구조가 명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세계교역체제의 확산 및 미국의 해외정책에서도 자유화와 민간정부로의 권력이전과 같은 유화적 조치가 중시되는 정세가 변화의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한국의 분단현실에 대한 자각이 급속하게 나타났다. 남한만을 한국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보는 시각에서 분단현실에 대한 종합적이고 냉정한 판단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계급적 모순과 민족적 모순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회과학의 비판적 기능이 강화된 것이다.
5. 80년대 사회과학은 변모된 사회경제적 조건에 더해 80년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가져온 압도적인 파장의 영향으로 급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마크르스의 변증법적 관점과 정치경제학적 사고 그리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급속한 고양을 특징으로 한다. 과거 사회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은폐기능을 반성하고 변혁을 위한 이론적 방향을 제시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구성과 계급구조에 대한 분석이 확산되었다. 이론적 반성과 사회적 변화에서 전개된 80년대 사회과학의 성격의 특징을 박현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한 사회의 기본적 성격과 발전단계를 밝힌다는 것은 일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그 사회내 인간간의 사회적 관계를 기초로 기본적인 내적모순과 외적모순을 가려내고, 이것의 상호관련과 주요 모순과의 전화를 밝힘으로써 안으로는 인간들의 상호관계를 보다 진보적인 것으로 만들고 밖으로는 민족간의 불평등 관계를 청산하려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6. 80년대 사회과학의 연구 주제는 ‘계급구성에 의한 자본주의적 인식’, ‘민중의 개념 정립’, ‘계급구조(자본가, 중간층, 노동자) 연구’, ‘농촌-농민문제’, ‘도시빈민문제’, ‘국가기구의 성격’ 등과 같은 것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는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문제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견해도 폭발하였다. 하지만 특정한 이론이나 견해에 따른 이론 전개는 편협한 결과를 도출하기 쉽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된다. 한 사회학자의 권고는 그런 점에서 경청할 만하다. “사회과학자는 그가 채택하는 방법론에 구애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사실판단에 유용하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이론적 시각을 주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주체적 능력을 고양시켜야 할 것이며, 사실판단을 지배하는 모든 가치판단의 권위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7. 80년대 사회과학의 또 다른 특징은 ‘민중 사회학’의 활성화였다.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과거의 사회이론이 엘리트 주도의 이론을 전개하였다면, 민중의 의식과 역량의 성장에 따른 변혁 주체로서 민중이 강조된 것이다. 변혁적 실천을 위한 민중사회학의 역할을 위해서 필요한 이론적 전략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①사회구성 내지 사회구조를 민중의 계급구성에 기초해서 파악하는 방법이 요청된다. ②각계급 내지 각계급내의 구성집단을 생산수단의 소유 및 생산과정에 노동을 투입하거나 통제하는 관계에 대한 직접 내지 간접적인 사회적 거리에 따라 구체적으로 객관적인 방법으로 규명한다. ③민중을 계급연대 및 계급동맹의 맥락에 따라 개념규정을 할 수 있다. ④각 계급에 대한 분석에는 그 계급의 주관적 측면도 객관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⑤제국주의 세력과 그 매개 지배세력의 성격, 지배역량 및 기능작용도 모두 객관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⑥이론화 전략은 궁극적으로 민중에 기초하여 사회를 재구성하는 전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8. 80년대를 ‘사회과학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만큼 사회과학적 인식과 방법론이 그 시대에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80년대 이전까지 사회과학은 권력과 지배구조의 정당화와 필요성을 옹호하고 ‘근대화론’을 강조하면서 민중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였다. 80년대 사회과학은 과거의 잘못된 방향을 극복하기 위한 전면적인 시도였다. 그런 성격으로 인해 대단히 급진적이고 공격적이며 특정 이론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80년대 사회과학은 어느 순간 현실의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보이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사회구성이나 계급구조와 같은 거대 담론의 분석을 통해서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사회의 성격을 설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80년대 사회과학의 등장을 살펴본다면 학문과 이론이 권력을 추종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한 냉정한 반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학문은 이론적 정교화가 아니다. 학문은 이론을 통해 실천을 끌어내기 위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한 곳이다. 80년대 사회과학을 단순히 내용에 대한 분석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등장한 배경 및 그것이 지향했던 방향 그리고 치열했던 논쟁과 실천을 위한 투쟁을 억압적인 정치적 배경 속에서 파악해야 하며, 비록 수많은 한계 속에서 많은 약점을 보여주었지만 그 속에서도 추구했던 진정한 학문적 실천의 용기를 다시금 도출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 '사회과학'이라는 말만으로도 좌익으로 바라보이던 때, 다시 그 시간의 흐름이 퇴행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