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나마스카)
7월말 대구에서 포크페스티벌이 열렸다. 대구하면 TK가 떠올랐다. 이번 포크페스티벌 핑계되고 대구 나들이 가야겠다. 전라도가 고향인 나는 대구라는 곳이 정치적으로도 먼 곳이다. 대구하면 김광석 거리가 떠오른다. 노래는 좋아하나 팬은 아니다. 그분 목소리는 공허하고 쓸쓸하다. 주말마다 집과 텃밭을 착실하게 다녔다. “콧바람을 쐬러 가야지” 동생과 통화하고 대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토요일 일을 마치고 출발했다. 동대구 버스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버스 타기 좋은 시간이다. 남도 끝에서 살 때는 대구나 서울이 멀었다. 완주 쪽으로 이사 오니 멀었던 도시가 가까워 졌다. 숙소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원도심 중앙동 오거리 시내에 모텔 같은 호텔이다.
첫날밤, 동생은 길이 헷갈린다고 시내 주위를 배회하다 휴대폰을 보고 숙소를 찾았다. 시내 중심에 숙소를 정하니 교통은 편리했다.
대구 도착한 다음날. 우리 자매는 아침 식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뜰한 아줌마들이다. 숙박료에 포함된 조식비을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젊은 친구들이 보였다. 도시인들 식사 패턴이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다. 토스트, 계란 후라이를 직접 구워 주었고, 빵과 과일 요거트, 커피, 음료수, 밥과 국, 반찬이 준비되고, 즉석라면과 찐 계란도 있다. 집에서 먹지도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고 계란과 요커트를 싸들고 나왔다. “뭐 이런걸 챙겨” 동생이 구시렁 거린다.
“여름에는 연꽃이지!” 지하철을 타고 대구 안심 연꽃 단지로 향했다. 대구 외곽에 길 다란 연꽃 방죽과 전망대가 보인다. 방죽에는 분홍빛 연꽃이 활짝 우리를 맞이한다. 2층 전망대를 오르니 멀리 시내 아파트가 보인다. 습기찬 열대기후에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여기 연꽃 방죽을 보니 저기 있는 연꽃방죽이 생각난다. 법정 스님이 소개한 곳이다. 일로에 있는 회산 연꽃방죽에 비하면 작고 허술해 보인다. 여하튼 올 여름 연꽃 감상은 이곳에서.
중앙동 시장 골목에서 납작 만두와 비빔국수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납작 만두는 밀가루 반죽을 반 접어서 부추 소를 넣었다는 흉내만 낸 요리였다. 아침에 챙겨갔던 요플레는 터져 하나 먹었다. 먹는다고 싸갔던 간식을 무겁게 모시다가 결국은 숙소에서 먹었다.
대구 포크 페스티벌은 2박3일 코오롱 야외 음악당에서 한다. 공연은 무료이고 선착순이다. 앞자리 좌석을 확보하려 일찍 숙소를 나섰다. 도착하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무대를 정면으로 파란 의자들이 있고 뒤로는 잔디밭이 비스듬히 무대를 향해 펼쳐져 있다. 의자에 앉으면 무대와 가수가 정면으로 보인다. “야 좌석이 많다. 골라서 앉자.” 그런데 스피커 소리가 커서 귀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긴 덥고 시끄럽다.” 그곳을 빠져 나와 잔디 밭으로 이동했다. 상인들이 양손에 치킨과 돗자리를 들고 팔러 다녔다. 돗자리를 사서 우리 영역을 확보했다. 시계를 보니, 공연 시간이 두 시간정도 남았다. 자리를 잡으려는 욕심에 너무 앞서 왔다. 그날 작전은 포크공연을 보고 막창을 먹을 생각이었다. 동생에게 저녁을 먹고 오자고 했다. 돗자리를 들고 택시를 타고 막창골목으로 갔다. 기사님이 안내한 식당은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동생은 육식을 하지 않은데, 관광지 음식은 지역음식이라 먹어본단다. 동생은 막창 중을(3~4인분)을 주문했다. 가격만 보고 소 막창 인줄 알았단다. 대구 막창은 돼지 막창 이었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남겼다.
다시 페스티벌 현장으로 가려고 택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곤란한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뱃속에서 당장 배출해야 한다는 신호가 다급하게 왔다. 당황스러웠다. 어떡해. 공동화장실이 어디있을까? 동생은 나에게 참으라고 하면서 카페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다행히 반대편에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동생은 우아하게 커피를 주문하고 나는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집밥만 먹는 식생활이 바뀌니 몸속이 불편한가 보다.
안정된 몸으로 택시를 타고 공연 시간을 초과하여 도착했다. 왁스는 떠나 버렸고, 김도향과 박강성, 이장희님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대프리카 한 여름 밤, 하늘에는 그믐달과 구름이 비추고 넓은 잔디밭에 포크 음악이 흐르고,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 주었다. 돗자리는 판매하는 아주머니에게 돌려 드렸다.
다음날도 조식비용을 생각하며 아침을 먹으러 갔다. 간식 챙긴다고 타박하던 동생이 바나나와 자두를 챙긴다. 언니가 챙기는 모습을 보며 동생도 따라한다.
이틀째 우리가 향한 곳은 대구 수성구에 있는 수성못과 팔공산이다. 지하철 3호선을 타려고 역으로 갔다. 서울에서 보는 지하철과 다르다.
대구 지하철 3호선 모노레일은 무인자동운전으로 운행된다고 한다. 지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역이다. 3-4층 정도의 높이에 선로와 열차, 플랫폼이 있다. 3량을 가진 지하철 내부는 깨끗하고 시야가 확 트여서 대구 시내를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다. 모노레일로 팔공산 케일블카를 대신 하기로 했다.
사방이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수성 못은 아담하여 가볍게 산책하기 좋았다. 100년 된 인공호수라고 한다. 농구코트와 족구장, 베드 민턴 테니스장이 보였다. 연못 주위로 나무 의자, 카페와 음식점이 있다, 오리배도 보였다. 타는 비용이 비싸고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플라스틱 오리배가 흉물처럼 보였다. 월요일인지라 어른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수성 못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 보였다. 수성못을 한바퀴 돌고 팔공산은 다음 기회에 가기로 한다. 욕심 부리지 말고 느긋하게 한곳에 집중하기로.
숙소에 들러 마지막 짐을 챙겼다. 중고 알라딘 서점에서 “걸리버 여행기”을 사서 동생 가방에 넣고,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약속된 장소에서”은 내 가방에 넣었다.
점심을 먹으러 복합 환승 센터 백화점으로 갔다.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가, 아니면 더워서 이리로 다 몰렸나. 대구와 근교 엄마와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복잡한 곳을 빠져나와 터미널에 있는 한적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동대구 복합 환승 센터는 고속터미널, 시외버스, ktx을 한 곳에서 탈 수 있다. 동생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간다. 동생을 배웅하고 역에서 파는 대구팥빵을 샀다. 결제를 하는데 버스표가 안 보인다. 버스 출발 10분전이다. 당황스럽다. 순간 머릿속에 “표를 잃어버렸어요.”라고 말하면 매표소에서 어떻게 해줄까?를 생각했다. 나왔던 터미널 정문을 놓치고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터미널 정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보였다. 그곳에 버스표 하나가 떨어져 있다. 순간 “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 창밖은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펼쳐져 있다.
빨갱이를 싫어하는 정당이 빨간색 간판으로 정당을 내세우지만 사람들은 빨갱이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도 각박하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 자매는 박씨들(남편들)없이 자유롭고 즐겁게 여행하고 쇼핑하고 걸었다. 간만에 만나 가족들, 친구들, 친지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 없는 우리들은 서로가 엄마와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