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믿었던 이야기
17시간 공부법. 책 <꿈!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에서 고승덕 변호사가 하루 24시간 중 7시간을 제외한 17시간을 오롯이 고시 공부에만 몰두했다는 에피소드로 인해 붙여진 수험생용 공부법이다. 그는 17시간의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먹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비빔밥을 먹고, 불을 끄기 위한 전등에도 끈을 걸어놓았다고 고백한다. 학창시절의 나에게 고승덕씨의 이야기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노력'만으로 최고 학벌, 최고 직업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노력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각인시켰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빨간 딱지. 잦은 이사와 전학. 학교와 학원에 화장품을 팔러 다니던 엄마. 엄마의 외도와 아빠의 폭력. 편의점에서 사먹을 돈도 없어서 자주 얻어먹기만 한다는 이유로 따돌렸던 친구들. 따돌림 당하는 애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던 선생님.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나를 둘러싼 이 세계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 당시 내가 찾은 유일한 탈출 방법은 공부였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너는 죽도록 공부해야 해. 사회가 나에게, 내가 나에게 걸었던 주문이었다.
복잡한 가정에서 벗어나 오롯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고2 여름방학 때부터 월 30만원 고시원에 나와 살았다. 3평짜리 자유였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더 멀리 도망치게 해줄 공부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러나 고승덕처럼 살아보겠다는 꿈은 녹록치만은 않았다. 한 끼는 고시원밥, 한 끼는 라면을 먹으며 공부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 시간을 11시간 넘기기 어려웠다. 모든 관계들을 차단하고 공부에만 몰입했지만 여전히 공부의 양과 질 모두 부족했고, 부족함을 자각할 때마다 나는 불안해졌다. 그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고승덕과 같은 롤모델을 찾으러 인터넷의 입시 성공 수기를 뒤져 반복해서 읽었다. 수기의 필자들은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끝에 가서는 자신처럼 입시라는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언제나 희망을 말했다. 물론 그 희망은 조건부였다. 치열한 노력이 수반될 때 그 희망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수기를 읽을수록 부풀어오르는 꿈의 크기만큼이나 나를 바라보는 기준도 높아졌다. 내가 성공신화에 편입되고 싶어할수록, 수기 속의 주인공들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나의 부족함을 조명하며 나를 강렬하게 몰아붙였다.
수기 속의 드라마틱한 성적 상승에 비해 내가 받았던 모의고사 성적표는 초라했다. 그 때마다 나는 더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성공한 삶의 서사였으니까. 나는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기 위해 종종 극단적인 상황까지 상상해곤 했다. '엄마, 아빠 중 누구 한 명이 돌아가시면 내가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나의 간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폐륜적인 생각에까지 도달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수기의 주인공이 되길 바랬다. 그럼에도 내 노력도, 내 성적도 수기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2년간의 고시원 생활의 결과 앞에서 여전히 나를 탓하는 방법밖에는 알지 못했다. 죽도록 공부하지 않았기 떄문에.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에. 결국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입시 성공 신화가 장악한 나의 학창 시절이 남긴 것은 비현실적인 완벽주의와 자기 혐오의 수렁이었다.
학창시절의 나는 나 말고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나를 구하는 방법은 최고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묻는다. 내가 믿고 동경했던 그 삶의 이야기는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은폐하는 이야기인가. 극한의 노력으로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가. 열악한 사회적 지지체계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무엇을 희망삼아 살아가야 하는가. 생존의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내가 마땅히 써내려갔어야 할 내 삶의 고유한 이야기는 무엇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