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장
수백 줄기의 검기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붉은 그물을 형성하고 다가오는 푸른색의 검기를 막아냈다.
콰앙!
두 개의 기운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한 걸음씩 물러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감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석두는 창궁무애검법을 완벽하게 펼치는 남궁미령의 자질에 놀란 것이다. 자신은 남궁세우의 세세한 지도를 받아서 이만큼 익힌 것이 아니던가.
남궁미령 또한 석두의 검법에 감탄했다. 가문의 최고 검법인 창궁무애검법을 너무나 쉽게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첫 격돌에서 절기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서로의 능력을 시험해 본 것에 불과했다.
"이제 제가 갑니다."
무서운 속도로 남궁미령에게 다가간 석두가 그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찌르고, 베고, 휘두르고 검을 들고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이용해서 남궁미령을 공격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검을 거두며 물러서고 있었다.
가르치는 것이다. 비무 경험이 전혀 없이 초식으로만 검을 익힌 남궁미령에게 실전 검무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덧 한 시진이 훌쩍 지나갔다. 공격을 당하던 남궁미령의 옷이 몇 번이고 땀에 젖었다 다시 말랐는지 모른다.
비록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멈추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까지 검에서 뿜어대는 살기는 그녀를 몇 번이고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비무를 포기하고자 했을 때 그녀의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
"검이란 사람을 베기 위한 도구일 뿐이네. 팔이 길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그뿐인 것을… 초식이 무엇이더냐.
길어진 팔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이라.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초식을 구사하기 위해서 동작을 끊는 것은 흐르는 물을 거스르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움직여라.
끊임없이 움직여라. 휘둘러라, 보려하지 말고 보이는 곳을 향해서 길어진 팔을 휘둘러라. 움직여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여라. 몸의 움직임에 진기도 같이하게 하라."
백산의 입에서 느닷없이 무학의 요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히 누구에게 들으라는 소리인지 혼잣말로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신검합일과 초식을 버리는 망초식의 경지를 말함이다. 신검합일이나 초식을 버리는 망초식의 경지는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끝없이 비무를 하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기를 잊어버리는 상태, 병장기인지 팔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상태가 신검합일이라면,
그 팔이라 생각하고 있는 검이 자연스럽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가는 것이 망초식의 경지다.
손이 저절로 상대의 허점을 찾아가는데 초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 신체는 거대한 강이니 진기는 강을 따라 흐르는 강물이라.
강물은 억지로 길을 만들지 않는다. 길이 있으면 흐를 뿐이다. 일부러 길을 만들려 하지 마라. 흐르는 강물을 막으려 하지도 말아라.
조그마한 세류라 할지라도 그것이 흐르는 곳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니. 흐름을 막지 마라.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그대로 두어라."
백산의 말이 흥에 겨웠는지 아니면 두 사람의 비무에 흥이 겨웠는지 갈태독의 입에서도 무공의 심득이 흘러나왔다.
백산이 꺼낸 적이 있었던 '물을 잡을 수 있느냐.'라는 화두에 대한 대답이었다.
초식을 펼치기 위해서 몸속에 있는 내공을 속박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조그마한 진기라도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신체는 작은 소우주다. 우주의 질서는 스스로 맞추어 나가는 것이지 외부에서 모종의 힘이 가해진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상승으로 들어가는 요결이 남궁세가의 연무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궁세가 내에서 그래도 고수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목마르게 갈구했던 상승으로 들어가는 요결,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오직 깨달아야만 한다던 그 경지를 간단한 말로써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놀람 속에 남궁미령의 움직임도 변하고 있었다. 지금껏 석두의 검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그녀의 검이 점점 일정한 틀을 벗어나더니 석두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조금씩 보이는 틈을 이용하여 공격을 하는 여유마저도 보여주고 있었다.
백산과 갈태독의 말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찾아내어 곧바로 실전에 적응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천재이고 기재였다.
지금껏 남궁세가 사람들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천고의 기재를 모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지도해 주지 않았고 혼자서 익힌 검법이 이미 가주의 무공에 육박하고 있었다.
어디 이런 곳이 남궁세가뿐이랴. 여자라고 해서 무시하고 하인이라 해서 무시하여 그냥 묻혀버린 기재들이
강호 무림의 모든 문파 및 가문에 존재하고 있으나 혈통이나 신분을 중요시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결코 발견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용비봉무(龍比鳳武).
두 사람의 비무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용과 봉황이 서로 어우러지듯 서로의 검에서 솟아난 청색과 적색의 검강은 연무장 공간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수천 번의 부딪침이 있었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정말 고마워요, 석 대협! 마지막 초식이란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제 일초만 남았습니다."
순간 남궁미령 주변의 대기가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현상은 석두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창궁무(蒼穹無)!"
"창궁혈해천(蒼穹血海天)!"
창궁무애검법의 삼초식인 창궁무와 그 검법을 더욱더 강하게 발전시킨 혈우창궁검법의 이초 창궁혈해천, 두 개의 검이 허공을 날며 거세게 부딪쳐갔다.
두 이기어검 경지의 격돌이었다.
콰앙!
가루로 부서져 내린다. 두 개의 검이 부딪치며 검끝부터 시작해서 모래처럼 흩날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으음!"
"미령아!"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나는 남궁미령을 부축하고 있는 남궁지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검술까지 구사하는 딸에 대한 감탄의 눈물이 아니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어렵다는 비전검법을 극성까지 익혔단 말인가.
자신도 검을 익혔기에 잘 알고 있다. 검법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딸인 남궁미령은 검을 익히고자 해서 익힌 것이 아니다.
아버지인 자신의 외면 속에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고자 검법에만 매달렸을 것이다,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그런 두 부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백산 일행이었다.
소운과 광견조, 부모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던 이들에게는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야, 너희들은 다 어른이야 새끼들아, 돈이나 내놔!"
"언제 우리가 애랬소? 더럽다, 더러워. 여기 있소."
모두들 알고 있다, 저런 광경에 익숙하지 못한 자신들이었기에 그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소살우가 한 말이란 것을. 그러나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석두야, 아직 한번 정도 힘쓸 여력 있지?"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잠시 동안 정신이 나간 채 두 사람을 쳐다보는 석두를 툭 치며 하는 말이다.
"저기 보이는 검은 색 건물 있잖냐, 날려버려 그리고 잊는 거다. 모두, 우리는 뇌룡현을 떠나올 때 모두 버리고 왔다."
'그래 모두 잊었지 않느냐, 석두야.'
백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념 속에 있던 석두가 내심으로 지르는 말이었다.
자신의 수중에는 검도 없다. 그런데 저기 있는 검은 색 건물을 날려버리란다. 백산이 또 한번의 심검의 경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귀혼곡에서 무의식중에 한번 펼쳤던 심검을, 이유는 묻지 않았다.
형님이 이곳에 들린 이유가 저 건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
마음속으로 백산이 자주 쓰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석두였다.
'이 한번으로 모든 것을 잊는 거다. 모두 잊는 거다. 사마기가 아닌 석두일 뿐이다.'
"이얍! 창궁혈애무(蒼穹血哀無)!"
석두의 입에서 모든 한스러움을 토해내듯 서러운 외침이 안휘성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미련도, 원한도, 복수도 모든 감정의 잔재들을 이 한 수에 날려버릴 듯한 외침이었다.
자신의 딸인 남궁미령을 안고 있던 남궁지우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그도 느끼고 보았다. 거대한 기운이 연무장에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그 기운의 목적지가 바로 남궁세가의 금역인 만금뢰(萬禁牢)임을….
그리고 저 석두라는 청년이 펼쳤던 검법, 너무나 눈에 익었다.
이미 초식 자체가 없어진 채로 펼쳐지고는 있었으나 그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딸이 펼치던 검법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모든 남궁세가의 가솔들이 자신들의 검을 뽑아들며 살기어린 눈동자로 백산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귓가에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창궁혈애무'란 한마디. 피 어린 가슴으로 창궁무를 부른다고 명명된 '창궁혈애무' 그 한마디가 그들의 가슴속에 박힌 것이다.
"남궁세우 백부님이 만드신 검법이에요."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석두와 비무를 했던 남궁미령이었다. 자신이 익히고 있던 검법인데 아무리 변했다고는 하지만 왜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남궁세가의 연무장에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가문의 배덕자라고 낙인찍힌 채 잊혀졌던 신수천룡 남궁세우의 검법이 돌아왔다.
오십 년 만에 형이고 숙부였던 그의 검법이 더욱 강해져서 세가의 대문을 넘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안 나온다 이거지?"
쓰러지는 석두를 한쪽 팔로 부축하던 백산의 입매가 비틀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날아가는 검은 쇠 구슬 하나. 비무 전에 석두가 맡겨두었던 광천뢰가 다시 만금뢰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콰앙!
남궁세가의 지반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그 곳으로부터 육인의 인영들이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온몸을 쇠사슬로 칭칭 동여맨 채 산발하고 있는 머리며, 가슴까지 내려온 수염들은 유형지의 죄수를 연상시키는 그런 몰골들이었다.
"아버님!"
"태상 가주님!"
백여 명의 남궁세가 인물들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전대 가주인 무적제왕검(無敵帝王劍) 남궁일몽(南宮一夢)과 오대가신들이었다.
바로 오십 년 전에 강호 무림을 지배했던 인물들. 그들이 낭패한 몰골로 나타났다.
엄청난 기운이 자신들이 있던 만금뢰를 사라지게 했을 때도 그대로 참고 있었다.
그런데 광천뢰까지 던질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여기저기 타버린 옷하며 수염들, 온몸에 그을음 자국이 가득했다.
"자네가 세우의 제자인가?"
남궁일몽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려 나왔다. 배덕한 자식이 아니라, 자식 하나도 지켜주지 못한 부덕한 아버지였고 자식의 가슴에 검을 박아 천륜마저 저버린 아비였다.
그래서 만금뢰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자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랬던 자식의 소식이 왔다. 오십 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돌아온 것이다.
큰아들을 배덕자라고 말하고 있는 후손들을 보고도 침묵했다.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의 아픔을 잊고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다시는 자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제자였으면 남궁세가는 오늘 끝났소, 영감! 그 따위 쇠사슬로, 저따위 건물로 자식을 구하지 못한 죄가 사해질 줄 알았소이까.
가문의 윗사람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배덕자라고 칭해지고 있는 이따위를 위해서…."
감정이 격해졌다. 정말 이런 대접을 받기 위해 중원의 오지에 숨어서 평생 쇠를 두드렸던가. 이따위 가문을 위해서 검법을 만들어 보냈던가.
"그 양반은 말이요, 당신들 모두 쓰고 있는 성마저 쓰지 못하고 살았소. 평생 동안 대장장이로 살아가면서도 가문에 대한 죄스러움에, 가문을 몰락시켰다는 책임 때문에 괴로워했소.
그런데 당신들은 뭐요. 번지르르한 얼굴에 근심 걱정 하나 없는 표정들, 이것이 절치부심하는 가문의 모습이오? 오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요?"
그나마 백산에게 위안이 되었다면 장 노인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해서 익혔든 모르고 익혔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문에 죄를 짓고 축출당하게 되면 보통은 그 사람의 무공도 사장되기 마련이다. 다른 무공이 없다면 몰라도 누가 배덕자라고 낙인찍힌 사람의 무공을 익히려 하겠는가.
썩었다고 생각한 가문에서도 장 노인을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는 그것이 고마웠다. 그래서 무공 요해를 설명했다.
"닥치거라, 이놈! 우리 세가가 얼마나 절망 속에 살아왔는지 아느냐? 숨죽인 오십 년의 세월이었다.
단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가 전체가 기침소리 한번 내지 못했단 말이다. 그런 우리의 심정을 네놈이 어떻게 안단 말이냐."
둘째인 남궁천우의 한 서린 외침이었다. 강호를 웅비하고자 했던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검천신룡이란 자신의 별호가 휘날리려는 그 순간에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버지와 세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형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자신이 주장하여 형을 축출했다. 그런데 형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남궁천우의 절규에 찬 외침에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은 백산이 마차로 다가가서 그 속에 있던 검 한 자루와 책 한 권을 꺼내들고는 남궁일몽 앞으로 던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당신들 가문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이 검은 장 노인의 가슴에 박혀있던 검이요, 책자는 보면 알 것이고.
전에 당신들 가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문의 후예를 만난 적이 있었지.
그 가문의 몰락을 가져오게 했던,
당신들의 말대로라면 배덕자라 칭했던 그 사람에 대해서 마두라고 하자 일초 지적도 안 되는 녀석이 도를 빼들고 덤비더군, 불쌍한 그분을 모욕하지 말라며.
그런데 너희들은 뭔가, 그 분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정말이지 구역질나는 집안이야, 너희들은. 이런 곳에서 숨쉬는 것도 더러워."
거칠게 침을 뱉어낸 백산이 몸을 돌렸다.
"살우야, 가자!"
가문이란 말조차 생소한 백산은 알 수 없었다.
피를 나눈 형제를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가문이라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마음대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더냐. 우리 남궁세가가 그렇게 우습더냐?"
검천신룡 남궁천우, 그가 백산 일행을 가로막고 나섰다.
"착각하고 있군, 늙은이. 장 노인을 생각해서 봐주는 거야.
저 영감에게 말했듯이 만일 너희들이 배덕자라고 했던 그분이 내 사부였다면, 그분의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 죽여버렸을 거야.
알아들어, 늙은이? 이따위 쓰레기 같은 가문으로 나를 겁주려 하는가?"
백산의 몸에서 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모두 부숴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그였다. 정말 엿 같은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막으면 다 죽는다. 장 노인의 부탁이고 뭐고 전부 죽여버릴 테니까 한번 막아봐라."
살기를 풀풀 날리며 말을 마친 백산이 마차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 죽인다!"
"천우야!"
"형님!"
남궁천우의 몸이 검과 일체가 되어 빛살 같은 속도로 백산을 덮쳐 갔다. 손자인 남궁무가 보여주었던 제왕무적검강이 펼쳐진 것이다.
화가 난 것이다. 형까지 버려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가문을 쓰레기라 했다. 검에서 나온 검강이 정확하게 놈의 목을 쳐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실력도 없는 놈이 입만 살아서 가문을 욕되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동생의 부름은 들리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가문을 우롱한 놈을 죽이고 싶었다.
잘 살고 있던 가문에 남궁세우라는 돌을 던진 놈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카앙!
"헉! 금강불괴!"
남궁천우의 놀람에 찬 외침이었다. 목에 부딪친 검이 튕긴 것도 아닌 검강이 튕겨져 나온 것이다.
"커억!"
어느새 다가온 백산이 남궁천우의 목을 틀어쥐었다. 정말 죽이기로 작정을 했는지 백산이 뿜어내는 살기에 남궁천우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살기 어린 목소리로 조용하게 속삭였다.
"늙은이, 당신이 형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당신은 그분의 일초도 감당 못해. 알고나 죽어!"
"젊은이! 이 늙은이가 부탁하겠네, 살려주게."
백산의 손에 힘이 가해지려는 순간 남궁일몽이 무릎을 꿇었다.
절대적인 무위를 지녔고, 천하를 지배한 남궁세가의 가주였던 백이십의 노인이 평생 동안 단 한번도 굽힌 적이 없었던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둘째 아들의 한을.
제대로 된 가문을 세우기 위해 모든 관심과 사랑이 첫째에게만 쏟아지고 그 속에서 언제나 소외되어야 했던 둘째가 아니었던가.
능력이 없으면 모르되 형과 버금가는 기재로 평판이 나 있었다.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했지만 언제나 가문 내에서 이 인자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주 자리를 주려했을 때도 죽어버린 가문의 가주는 싫다며 셋째에게 줘버릴 정도로 호승심도 강했다.
남궁일몽을 가만히 쳐다보던 백산이 손에 쥐고 있던 남궁천우를 거칠게 던져버렸다.
"좋겠군, 나이 팔십이 넘었는데도 응석을 받아줄 부모도 있고… 가자!"
"떠날 테냐?"
가주인 남궁지우가 떠나는 백산 일행을 막연히 쳐다보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리 무관심하게 살았지만 딸의 마음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딸이 저들을 따라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단 한번도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던 그녀가 비상하려 하고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미령에게 자신의 검을 끌러주었다.
가주의 신물인 제왕검(帝王劍)이 돌아왔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청풍검(淸風劍)은 더 이상 가주지검(家主之劍)이 아니다.
"그 검은 그대로 가지고 있거라, 이 검을 가져가거라."
백산이 던져주고 갔던 제왕검을 들고서 남궁일몽이 다가오며 하는 말이었다.
"한 가지만 명심해라, 그 검이 바로 세우의 가슴에 박혀있던 검이라는 것을. 자식의 가슴에 검을 날려야만 했던 아비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회한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남은 두 자식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비록 심장이 반대편에 있었지만 살아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놈의 소식을 가져온 이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형님을 그렇게 했다고, 왜요…."
오열을 터뜨리고 있었다. 자신도 기억하고 있다. 형님을 찾겠다고 나가셨던 아버지가 빈 검집만 가지고 돌아왔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주직만 넘기고 만금뢰를 만들었다.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나오시지 않았다.
손자들이 태어나고 증손자가 태어나도, 며느리가 죽었을 때도, 형님을 배덕자로 가문에서 축출했을 때도, 봉문(封門)이 풀렸을 때도, 만금뢰에 몸을 묻고 있었다.
그랬던 양반이 이제 와서 형님의 가슴에 제왕검을 던졌노라고, 그래서 만금뢰에 들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형님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곳에서 죽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세가가 울고 있었다. 회한의 눈물이었다.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던 남궁천우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풍검을 다오!"
"형님!"
남궁지우는 그 말의 의미를 즉각 알아차렸다. 열다섯 밖에 안 된 자신에게 버리듯 주었던 가주 직위를 다시 가져간다는 소리다.
자신에게는 버거운 자리였다. 모자라는 능력으로 이만큼 꾸려온 것도 무관심한 척 옆에서 조언했던 형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언제나 가주직을 맡으라고 종용했으나 쓸쓸한 웃음으로 얼버무린 형님이었다.
이십 대의 나이에도 하지 않았던 세가의 가주를 팔십이 다된 나이에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욕심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재빨리 청풍검을 빼어든 남궁지우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가주인 남궁지우다. 지금부터 가주 이양식을 거행하겠다."
정상적인 절차는 아니었지만 남궁세가 전 가솔들이 듣고 있는 가운데 검천신룡 남궁천우가 가주직을 승계했다.
"본인은 이십삼 대 가주인 남궁천우다!"
남궁천우의 말을 들은 가솔들이 이상한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이십삼 대가 아니라 이십이 대 가주인 것이다. 그런데 가주 취임 첫 연설에서부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남궁세가 가솔들이 웅성거리건 말건 남궁천우의 취임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이십삼 대 가주라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줄 알고 있다. 나는 가주 직권으로 이십일 대 가주로 한 분을 모시고자 한다.
바로 신수신룡 남궁세우 님이시다. 신수신룡 남궁세우를 이십일 대 가주로 모심과 동시에 제 삼대 가종(家宗)으로 선포한다."
엄청난 발언이었다. 가문의 배덕자로 축출했던 남궁세우에게 가주직을 수여함을 물론이고 가종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가종(家宗).
남궁세가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가주에게 수여하는 영광의 호칭, 지난 오백 년 역사 속에 단 두 명밖에 없었던 호칭이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가솔들을 향해서 또다시 청천벽력 같은 일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 부로 남궁세가의 모든 신분을 명년 이 시간까지 철폐한다! 가주 직위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남궁세가의 모든 무공도 전 가솔에게 개방하노라."
충격이었다. 남궁세가 가솔들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특권이 사라지고 있음이다.
그러나 남궁 성씨를 가진 이들의 얼굴색이 변하든 말든 남궁천우의 일성은 계속되었다.
"배워라! 그리고 익혀라! 남궁이란 성씨마저 버려라!
앞으로 정확하게 일 년 후 이 자리에서 가솔 전체의 비무를 실시하겠다. 그때의 승자가 가주직을 비롯한 세가의 가신이 될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니 개혁이고 혁신이었다. 남궁세가라고 해서 남궁씨만 있던가. 오히려 남궁씨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 세가이다.
수없이 많은 무공 중에서도 직계만 익히는 무공이 있고, 방계만 익히는 무공이 있고, 다른 성씨의 무사들이 익히는 무공이 따로 있다.
그러한 연유 때문에 최고의 검객은 언제나 남궁씨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직계에서만.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모든 가솔들에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어떤 것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어쩌면 남궁씨로만 이루어낸 가문의 존폐가 달린 일일 진대도 남궁천우의 표정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일 년이란 세월 동안 무공을 익히면 얼마나 익히겠는가. 그러나 그동안 소외되었던 많은 세가인들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형님! 단 한번도 형님을 이겨보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이길 것입니다. 가문을 오십 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을 두고 형님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세가는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특권의식에 젖어있던 저들이 분발하게 될 테니까요.'
남궁천우의 생각은 정확했다. 신분 세습이란 관습 때문에 남궁씨를 가진 이들은 너무 나태한 생활을 해왔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떨어지는 자리들, 자연히 태만해질 수밖에 없고 남궁세가는 퇴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껏 위에서 호령하는 위치에 있다가 남 밑에서 생활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남궁씨가 아닌 다른 성씨가 상관이라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무공연마를 열심히 할 사람들이 지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저들일 것이다.
남궁세가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잃었던 이빨과 발톱을 찾기 위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갈 테냐?"
"형님 때문에 지금껏 주지 못했던 사랑이나 듬뿍 줘야죠."
"그럼 이 검도 가지고 가거라. 아까 그 형님의 제자라는 녀석에게 주어라."
자신 스스로 지룡검(地龍劍)이라 이름을 지었다. 더 이상 비상할 곳을 잃어버린 실망감에 지었던 이름이었다.
무천신룡 남궁지우와 그의 딸 남궁미령, 그리고 남궁천우의 애검인 지룡검, 이인 일검(二人一劍)이 남궁세가를 떠났다.
"문을 닫아라! 다시 일 년간 봉문이다."
타의에 의한 봉문이 아닌 자의에 의한 봉문이다. 숨기 위한 봉문이 아닌 비상하기 위한 봉문인 것이다.
남궁세가에서 금 십억 냥이 들어있는 전낭이 발견된 것은 다음날이었다. 세우라는 이름과 함께….
* * *
"다 죽일 것같이 하더니 돈은 왜 놓고 왔소?"
남궁세가에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한적한 야산, 백산 일행이 빙 둘러앉아서 커다란 돼지 두 마리를 굽고 있었다.
"장 노인의 본가인데 어쩌냐?"
씁쓸했다. 환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세가란 원래 그런 곳이다.
오백 년의 세월 동안 한 가문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 때로는 혈육도 단죄하고 자신마저도 단죄하면서 지켜가는 곳이 세가다."
백산의 서운해하는 표정이 안 되어 보였던지 옆에 있던 갈태독이 입을 열었다.
가문의 성씨를 내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그도 익히 경험했던 사실이다.
자신의 가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세가가 생겨나고 또 그만큼의 수가 사라진다.
무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상사인 것이다.
"너도 할 만큼 했으니 되었다. 전대가주라는 사람도 이제 더 이상 숨을 곳도 없지 않느냐."
만금뢰란 건물을 없애버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제는 그도 어쩔 수 없이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백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 노인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살우야, 애들과 이쪽으로 와 봐라."
"네, 형님!"
광견조 열두 명이 백산 앞에 일렬로 섰다.
"살우, 앞으로 네 이름은 소살우다. 뱁새 너는 목인영이다. 섯다, 너는 장대근이다. 모사, 너는 전영이다. 송곳, 너는 추기영이다… 찍새, 너는 해자인이다."
광견조원들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누어주면서 백산이 하는 소리였다. 양자강에서 조천영과 했던 말, 광견조원들의 이름을 지어왔던 것이다.
"형님! 이게 뭐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이름이 쓰인 종이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소살우가 백산을 쳐다보았고,
다른 광견조원들의 표정도 마찬가지로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멀뚱하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희들 이름이다. 앞으로 찍새니, 송곳이니, 걸레니 하는 것은 별명이고 지금 들고 있는 것이 진짜 이름이다."
일순 광견조원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름이라니, 너무 생소했던 것이다. 뱁새, 섯다, 모사가 아닌 석자 이름인 것이다.
"하! 이름이래… 우리 이름… 너 제대로 들었냐? 너는 뭐래?"
종이 한 장씩 주면서 그냥 불러준 것을 기억할 리가 없다. 그러나 글을 모르니 읽을 수도 없다. 자신들의 손에 들고 있는 종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병신들 너들은 모르지? 나는 안다. 자식들아 봐라 소, 살, 우."
소살우 자신이야 같은 이름이었으므로 기억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자랑스럽게 한자 한자 짚어가며 소살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거꾸로 읽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돈 들어가게 이런 것은 왜 했소? 술이나 한 병 더 사오지…."
볼멘소리로 지껄이고 있으나 목소리에 묻어나온 물기는 어쩔 수 없었는가, 말투가 떨리고 있었다.
"다시 빼! 이름은 알고 넣어야 될 것 아냐?"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아랫도리 깊숙한 곳으로 찔러 넣고 있는 광견조를 향해서 백산이 소리쳤다.
"석두! 다시 한번씩 가르쳐 줘. 내일 아침까지 자기 이름 못 쓰는 놈 있으면 광천뢰 하나씩 추가다."
석두에게 나머지 일을 일임한 백산이 이번에는 자신의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의 품속에서 수십 장의 종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철혈전신 철목승이 적힌 이름하며 천선비도를 모조한 것까지. 그 중에서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환해진 얼굴로 두 장의 종이를 집어 든 것이었다.
"이게 다 뭐냐?"
백산이 꺼내놓은 종이 뭉치를 보며 갈태독이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돈버는 도구였소, 이것은 주루에 팔아먹던 것이고 이건 그 천선비도고. 물때가 지나서 이제는 못 파니 버려야지 뭐."
고금오천무가 있다던 천선비동의 위치가 그려진 천선비도 다섯 장과 철목승의 친필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철목승의 친필은 몇 번이고 팔려고 했으나 믿을 수 없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더 이상 필요가 없었고,
이미 항산에서 비동이 발견되었다고 소문이 돌고 있으니 비도 모사한 것도 더 이상 팔 수가 없었다.
"허!"
갈태독과 석숭이 내지른 탄성 소리였다. 이 정도면 완전히 괴물이다. 철목승에게 부탁해서 글씨를 써달라고 했던 저의가 밝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선비도를 팔아먹기 위해서 모사를 하다니. 아마도 벌써 팔아먹었을 거라는 것이 석숭과 갈태독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누님! 어머니하고 누님하고 같은 성씨로 해도 괜찮은 거야? 둘이 친척이 되면 곤란하잖아."
"괜찮네요, 오라버니. 조씨도 여러 개가 있네요. 아버님 어머님 이름은 더 좋은 걸로 지었다니까요?"
이름 지을 때 같이 다녀온 모양이었다. 백산의 아버지 이름은 백건(白乾), 어머님 이름은 조자령(曺慈玲)으로 지어왔던 것이다.
"낄낄낄!"
그런 백산을 쳐다보며 광견조원들이 웃고 있었다. 아마 자신들과 똑 같은 놈이라는 동료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희들도 장가가거든 부인더러 결혼 예물로 지어오라고 해라, 지금 욕심 내지 말고. 이게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간 것인데…."
"알았수다."
광견조원들은 신이 났다. 짐승이나 물건의 이름이 인간의 이름으로 바뀌자 그것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돼지가 다 타서 재가 되고 있는데도 이름 석자 쓰기 위해서 누구 하나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 백산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남궁세가를 떠나온 남궁지우와 남궁미령 두 부녀였다. 세가에서의 일도 있고 해서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저들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름자 하나 없이 커온 사람들의 한이 오죽했으랴.
그 힘이 무공을 익히고자 하는 집념으로 승화된 것 같았다. 저곳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들보다 약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오십 년 봉문은 이들이 보기에는 한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문을 닫고 쉬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자신들이 우습게 보일 만도 했다.
"그러다 날 새겠소, 이쪽으로 오시오."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모두들 알고 있었는지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가주도 같이 나오셨소?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닌 것 같소만…."
백염의 노인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난 기도였다. 자신의 아버지인 남궁일몽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세가에서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젊은이와 같이 심득을 알려주기에 조금 강한 고수로만 알았다. 그랬던 것이 바로 옆에서 보니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앉으시오, 어차피 일행이 될 것 같으니 내가 소개를 해주리다."
갈태독이 백산을 비롯해서 석숭, 냉추렴 등 일행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남궁지우의 얼굴은 갈수록 놀라운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 있었던 것이다. 개방의 인물도 천마맹의 인물도 빙혼마녀, 그리고 대부호인 석숭까지. 기묘한 일행이었다.
어찌 되었던 자신들도 일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제는 세가까지 포함된 집단이 된 것이다.
잠시 한숨을 돌린 후 남궁세가에서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백산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그리고 석두에게 지룡검을 주면서 승천하는 용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했다.
'장 할아버지 일이 제대로 풀린 것 같군요. 잘되었어요.'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부와 장 노인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영감, 그나저나 내일부터는 바빠질 것 같은데요?"
"그러기에 사고 좀 작작 치지 이놈아."
"내가 무슨 사고를 쳤다고 그러우. 혹시 백년 전에 영감의 원수가 복수한다고 나타난 것 같은데 맞소?"
"나에게 복수해야 될 놈은 다 죽었어, 이놈아!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
"글쎄요, 꽤 많은데?"
두 사람의 전음 속에 밤은 계속 깊어가고, 다음날까지 자신의 이름을 다 써야하는 광견조원들은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석두 또한 그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했기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덕분에 광견조원의 얼굴과 이름을 가장 먼저 기억한 사람은 석두가 되었다
첫댓글 즐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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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늘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즐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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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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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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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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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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