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화꽃 이야기
-산다화 꽃잎처럼 떨어져 하늘나라로 사라져간 친구 김진택 교장을 애도하며-
지난 11월28일 토요일 오후 3시경에 아내와 함께 동천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 동안 동천엔 하얀 두루미만 몇 마리씩 걸어다니곤 했었는데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싸늘해지니 동천에는 오리, 갈매기,두루미 등이 함께 뒤섞여 요란을 떨고 있었습니다. 여름동안 보이지않던 오리들은 어디서 왔는지 50여마리나 보였으며 두루미도 10여마리 갈매기들도 30여마리나 섞여서 시끌덤벅하면서 물속에서 먹이를 찾고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동천에 먹이감이 많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너면서 무심코 냇물을 바라보았더니 거기에는 피리새끼들이 시커멓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흔히 물고기가 많을 때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건 얼른 보아도 고기가 물보다 더 많아 보였습니다. 순천시에서 수질관리를 잘하니 피리,붕어 등의 물고기들이 불어나고 물고기들 뿐만 아니라 바위위에 올라와 몸을 말리고 있는 자라들도 몇 번 보았고 물결을 헤엄치고 다니는 수달도 보았습니다. 물고기들이 많아지니 이를 먹으려는 오리, 갈매기 두루미 등도 자연스럽게 많아진 것 같습니다. 살아 숨쉬는 동천과 살아나는 물고기들을 생각하니 웬지 나도 덩다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리들의 운동 장소인 장대공원에 이르니 은목서꽃이 푸른 잎에 눈이내린 듯 좁쌀같은 꽃송이들이 햐얗게 달린채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산다화꽃이 눈부시게 붉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몸이 불편하여 여름 이후 나의 농원에를 가지 못했기 때문에 금목서 은목서 산다화등의 가을 꽃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산책길에 화사하게 핀 산다화를 만나니 기분이 무척 상쾌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산다화는 어느새 시들고 있었고 나무아래는 벌써 꽃이 몇송이 떨어져 있어 ‘이제 겨울이 오니 너희들도 사라져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좀 쓸쓸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름꽃이 사라지는 10월 말경부터서 지금까지 가을 동산을 화사하게 빛내주고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꽃인가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고맙기만 한 꽃입니다.
산다화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잎이 늘 푸른 상록 교목으로 우리 나라 중남부 해안가에 분포하고 있으며 붉은색 꽃이 11월에서 이듬해 3월에 걸쳐 피며 초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혹한을 견디면서 정렬의 붉은 꽃잎과 윤기를 자랑하는 푸른 잎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겨울꽃입니다. 또 곤충이 없는 겨울에 동박새라는 조류에 의해 수정되는 조매화입니다. 꽃이 시들지않고 통째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 땅바닥은 온통 붉은색 비단을 깔아놓은 듯 하며 질 때의 깨끗함으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온 꽃입니다.
열매로 짠 기름은 식용과 화장품 제조에 사용되며 동백꽃과 비슷하나 꽃말은 ‘신뢰,겸손한 아름다움’ 등입니다. 꽃이 동백꽃 보다 앞서 11월에 피기 때문에 ‘애기동백’,으로 불리기도 하고 서리 올 때 핀다고 해서 ’서리동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에 활짝 핀 모습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원에 가득했던 꽃들이 사라진 겨울정원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고마운꽃입니다. 또 인간사회는 부모와 자식간 형제간 친구간에도 신뢰가 기본이니 산다화를 통해 신뢰와 겸손한 아름다움도 느끼게 되니 참으로 고마운 겨울꽃입니다. 오리 두루미 갈매기등과 산다화꽃이 아름다운 동천을 산책하고 집에돌아왔는데 저녁 7시경 서울에 사는 친구 L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평소에 내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친구인 K(김진택 교장)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지난해에 무슨 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내가 몸이 불편한 관계로 병문안도 못가봤습니다. 그동안 카톡을 하면서 병의 진행상태도 알고 있었는데 병이 완치되어 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에서 조리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아파트의 정원에 있는 꽃이라고 꽃사진도 가끔 보내주고 했기 때문에 병이 재발했음을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0월에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J가 순천에 와서 몇몇 친구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K의 병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으며 우리는 금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총동창회도 생략되었으니 서울과 순천에 사는 우리 동기들끼리 중간에서 한번 만나서 회포를 풀자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k에게 특별히 당부하여 옛날처럼 친구들 많이 수배하여 오도록 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인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앉았으니 낮에 장대공원에서 땅에 떨어져있던 산다화 꽃봉오리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 꽃봉오리와 다른점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어느 순간에 저렇게 낙엽처럼 낙화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을’ 하고 생각하니 참으로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겨울쯤 만나서 소주도 한잔하고 그동안 맺혔던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가버리다니 인생이란 ’나중에‘‘다음에’는 없는 것이니 전화하고 싶으면 지금하고 보고싶으면 지금 만나야 한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K를 처음 만난 것은 순천사범학교에 입학해서 1학년 때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 어느 선생님이 첫수업에 들어오셔서 출석을 부르면서 특별히 시골에서나 혹은 타시도에서 온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것 저것 물어보았는데 K차례가 되자 ‘너는 어디 중학교 출신이냐?’하고 물었습니다. K의 말투가 경상도 억양이 들어있어서 물어본듯 했습니다.“광양동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사실 고향이 광양인 나도 광양읍권인 옥룡면 출신이라 광양중학교를 졸업했기에 광양동중이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광양동중이 어디에 있는 하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K는 경상도 말투로 "광양 저어어쪽에 있는 학교입니다.“ 하고 말해서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K는 촌놈답지않게 당당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같은 고향이라는 동향의식이 있어 이친구에게 관심이 많았고 친밀감이 생겼는데 K는 성격도 활발하고 공부도 잘했는데 특히 수학을 잘해서 수학에 대해서는 공포증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는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동향인으로 친밀감은 있었지만 특별히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초.중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앉은 자리가 옆에 있으면 친해졌고 고등학교 때는 앉은 자리는 물론 취미가 같아서 클럽활동을 함께 하면서 친해지곤 하는데 우리는 그런 기회가 없어서 특별히 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학년에 올라가서 부속초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받게 되었는데 K가 나에게 교생실습기간동안 함께 자취를 하자고 했습니다. K는 그때 집안이 자기고향인 진상을 떠나서 광양읍 용강리로 이사를 해서 지금까지는 읍에서 순천까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었는데 실습기간에는 순천에서 자취를 해야겠다고 나에게 함께 자취를 했으면 하고 사정을 이야기 해왔습니다. 나는 그때 덕암동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3학년때는 반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실습을 하지않고 K가 실습을 할 때는 내가 학교를 다녔고 내가 실습을 할 때는 K가 학교를 다녔지만 우리는 저녁이면 한방에 자면서 자취를 했는데 ”김마담이 밥을 하니 밥맛니 더 좋구먼“”아니 서마담의 된장국 끓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하면서 서로 배려하면서 한달동안 재미있게 지냈고 교생실습이 끝나자 K는 다시 자기집에서 통학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동거는 한달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는 평소에 친밀감도 있었기에 금방 친해졌습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K의 고향이고 모교인 광양진상초등학교로 첫발령을 받았고 K는 나보다 호적나이가 한 살쯤 더먹었던지 졸업하자마자 가발령을 받고 군에 바로 입대를 하였습니다. 군에 입대한줄도 몰랐는데 어느 여름날 K가 일등병을 달고 휴가차 나와서 자기 고향에 성묘차 들렷다고 나를 찾아왔기에 그를 붙잡아 나의 하숙집에서 하룻밥 함께 자면서 그 동안 회포를 풀었습니다. K는 사범학교때 은사님이신 N, K 선생님 등과 훈련소에서 함께 훈련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가발령을 받고 군에 입대를 했기에 이들은 교사보충병 발령을 받고 1년만에 제대를 했지만 1년후에 우리가 입대를 했을 때는 교보제도가 없어져 우리는 3년간이나 복무를 했어야만 했으니 함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짜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입대한 우리는 단축혜택을 못받고 가발령을 받고 교단에 서보지도 않고 바로입대한 사람들은 교보혜택을 받아 1년만에 제대를 했으니 세상은 참 재미있고 요상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이후 나는 제대로 입대하여 3년간 군생활을 하고 복직하여 고향에서 근무하다가 백운산 산골짜기에 있는 분교장에 근무하였고 K는 서울로 진출하여 중등계로 나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을뿐 K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후 나는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였고 전문직으로 나가서 장학사를 할 때에 90년대초에 전문직 연수가있어 삼청동 교육연수원에 입소하였는데 거기서 학교졸업후 30여년만에 K를 처음만났습니다. k는 중등계로 진출하여 서울시 교육연구원 연구사로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우리는 전국에 있는 사범학교동기들이 일년에 한차례씩 모임을 갖은 것이 벌써 4번째였는데 그동안 K는 한번도 안나왔기에 앞으로는 꼭 나와서 일년에 한두차례씩이라도 만나야 할 게 아니냐고 이야기 했더니 다음번에는 꼭 나오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이후부터는 빠지지않고 잘 나왔을뿐만 아니라 서울친구들의 중심이 되어 동창들의 단합을 위해 앞장서왔습니다. 내가 구례교육청에 발령을 받았을 때는 서울의 남녀친구들이 장성교육장으로 발령받은 K교육장을 방문하여 하루밤을 보내고 구례에 와서 또 하루밤을 자면서 회포를 풀다가 갔는데 이때도 K가 주동이 되어 앞장섰습니다.
이후부터는 K의 주동으로 총동문회 참석은 물론 14회 동기들의 모임에도 매년 앞장서서 참석하는 등 동창회의 발전과 친구들의 우의를 다지는데 언제나 앞장서 왔습니다.
내가 퇴임해서 고향에서 조그만 농원을 하고 있는데 2004년 겨울 K에게서 집안에 제사가 있어 광양에 내려왔다고 전화가 와서 광양읍에 있는 생선회집에서 소주를 한잔하는데 K가 느닷없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사업이냐고 했더니 ‘다단계 판매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가지 이유를 들며 하지마라고 단호하게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이제 우리는 돈을 벌때가 아닌 돈을 쓸때이니 사업은 하지마라.
둘째는 다단계사업이란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팔 수는 없고 아는 사람에게 팔아야 하는데 우리가 아는 사람은 과거 동료들이나 학부형들이나 친구들 뿐이다. 자칫 잘못하면 일생동안 쌓아온 명예만 더렆이고 후배교사들이나 학부형들에게 나쁜 인상만 줄 수 있으니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완강하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니 나는 친구를 위해서 진심으로 단호하게 반대의견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내가 완강하게 반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친구로써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만나지 못해서 다단계사업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풍문에 의하면 고향의 어느친구의 이야기를 거절 못해서 시작을 하려했는데 하지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습니다.
그후 총동창회에 내려온 서울 동문들이 광양백운산에 있는 수목원 야영장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고 유리 농원 앞을 지나면서 14회 동기들만 우리 농원에 들렸기에 내가 소주를 한잔 대접한 일이 있는데 이후로는 K와는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사범하교다니던 어린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오던 정다운 친구가 타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며칠전까지 카톡을 주고 받았는데 “ 친구야 나 지금 많이 아프다.....” 이런말 한마디 할 수 없었을까? 생각하니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신뢰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生老病死’는 인간의 철칙이라고 하니 죽고사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글을 읽으니 나이 든 사람들은 친구들의 죽음에 너무 슬퍼하거나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건강에 좋지 않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친구의 명복을 빌면서 “불쌍하다”“참으로 안됐다”하고 전화로 하소연 하는 서울 친구들을 오히려 위로해야만 했습니다.
존경하는 니의 그리운님들! 나의 친구에관한 일로 괜히 마음을 언짢게 해드렸다면 이해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혼자 안타까와하고 가슴아파할 때 산다화 꽃잎은 하나 둘 지고 계절은 어느새 12월로 힘차게 달리고 있습니다. 더욱 새롭고 아름다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묵은해의 마무리를 잘 하시고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12월 4일 석 송 정 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