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암시집(及菴詩集)
- 민사평(閔思平)의 삶과 작품세계 -
유호진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3) 민사평의 교유 관계
급암의 교유 관계를 진술할 때 먼저 거론할 수 있는 인물은 이제현과 정자후(鄭子厚)이다. 원래 익재 이제현, 우곡(愚谷) 정자후, 죽헌(竹軒) 김륜은 한마을에 살면서 철동삼암(鐵洞三菴)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죽헌 김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사위인 급암이 김륜의 집에 와서 살게 되면서, 세 사람이 다시 철동삼암이라 불리며 한 시대의 종장(宗匠)이 되었다. 급암의 시에 정자후의 나이가 팔순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자후가 세 사람 중에 가장 연로했고, 이제현이 그다음이고 급암이 가장 나이가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현과의 교유는 젊은 시절부터 평생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제현의 부친 이진(李瑱)이 바로 21세의 급암을 급제시킨 좌주(座主)이기 때문이다. 죽헌 김륜은 자기의 딸을 급암의 아내로, 자신의 아들 김희조(金希祖)를 익재 이제현의 사위로 삼도록 하였기에 이들은 언양 김씨 가문을 통해서도 연결되어 있었다. 급암의 문집에는 익재와 교유하며 지은 많은 시문이 실려 있고, 익재는 급암을 위해 〈급암시집 서문〔及菴詩集序〕〉과 〈급암만사(及菴挽詞)〉를 지었다. 정자후는 “서쪽 집 남쪽 이웃으로 함께한 이십 년 세월, 몇 번이나 시구를 서로 평론했던가.〔西舍南隣二十霜 幾將詩句互雌黃〕”라는 급암의 시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가까운 곳에 살면서 급암과 친밀하게 지내던 대선배였다. 정자후는 급암보다 최소 열다섯 살 이상 나이가 많았는데, 급암의 시집에는 그에게 바치거나 그의 시에 차운한 시가 거의 30수에 달한다. 또 평장사 황석기(黃石奇)는 정자후의 생질이라서 급암은 그와도 친밀하게 지냈다.
급암의 교유 관계에서 또 주목되는 인물은 최해(崔瀣)와 이색(李穡)이다. 익재 이제현의 증언에 의하면 ‘최해는 성격이 호방하고 활달하되 남을 인정하는 경우가 적었지만 유독 급암만은 몹시 사랑하여 외출하면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잘 때면 침상을 마주하였다. 집안사람에게 재물이 있는 것을 묻지 않고 급암과 술을 즐기고 또 즐거움을 같이했다’고 한다. 최해의 시문을 좋아했던 급암은 뒷날 최해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을 간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목은 이색은 급암 만년에 그의 문하에 왕래하였다. 목은은 급암의 온화하고 한아한 풍모와 후진을 이끌어 주는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루는 급암 어른이 누추한 내 집에 와서 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가 해가 진 뒤에 갔다. 나는 지금까지도 감히 이를 잊지 못한다’는 목은의 진술은 급암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또한 급암의 시를 매우 좋아해서 난리 중에도 급암의 유고를 구해 읽었고 급암의 시구 한 구절을 수집하는 데도 열성을 다했다. 목은의 아버지 이곡(李穀) 역시 급암의 시를 높이 평가하고 그와 시를 주고받은 것을 보면 부자가 모두 급암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급암이 절친하게 지냈던 벗으로는 단계(丹溪) 허옹(許邕)을 들 수 있다. 그는 청렴하고 강직하며, 문장과 덕행이 탁월했던 관료로 만년에 단계에 은거해 산수(山水)와 어조(漁釣)로 낙을 삼았다. 급암의 시집에는 허옹에게 주는 시가 10여 수에 달한다. 급암은 은거하는 허옹에게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절절한 그리움을 허심탄회하게 말하곤 하였다. 〈급암시집 서문〔及菴詩集序〕〉을 쓴 백문보(白文寶)는 급암과 함께 시와 술을 즐겼던 벗이고, 〈급암시집 발문〔及菴詩集跋〕〉을 지은 이인복(李仁復)은 급암과 친하게 지냈던 후배이며, 급암의 묘지명을 지은 이달충(李達衷)은 인척이자 후배로 급암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인물이다. 강직한 관료인 유숙(柳淑), 여말의 대유로 알려진 탁광무(卓光茂), 그리고 성리학을 공부했던 박충좌(朴忠佐) 역시 급암과 교제했던 명사들이다. 급암은 자신의 시에 정당문학을 지낸 한중례(韓仲禮)와 중서령을 지낸 이배중(李培中)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지기라 하였다. 급암은 승려들과도 널리 교유를 하였는데, 식영암(息影菴), 순암(順菴), 해봉(海峯), 총 법사(聰法師)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급암의 좌주(座主)는 이진(李瑱)과 윤혁(尹奕)이며, 그의 제자 및 문생으로는 하을지(河乙沚), 김인관(金仁琯), 이이(李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