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51 기독교철학05 요한복음 3
2013년 윤홍식의 요한복음 강의 3강-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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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오늘은 이제 요한복음 또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요한복음을 공부해서 뭘 얻어야 될 거냐? 양심입니다. 양심과 성령. 양심과 성령은 같아요. 양심이라는 거는 좋은 마음, 우리가 타고난, 우리가 만든 게 아니에요. 만들어낸 좋은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양심은 인간이면 우주에서 받은 그런 성스러운 마음, 타고난 좋은 마음이라는 뜻이에요. 순수한 마음. 그게 성령입니다. 성스러운 영. 내 영 같지가 않은 거예요. 분명히 내 안에 있는 영이지만 이건 하나님이지 이건 내 작은 소견의 내가 아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 그러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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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의 더러운 욕심이 아니고 성스러운 마음 양심이더라는 겁니다. 우리 안에 그런 하나님 마음이 있어요. 하나님 마음을 꺼내서 쓰질 않고 우리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만 꺼내서 쓰니까 인간의 삶이 힘들어지는데 인간의 그런 마음의 특징은 무지랑 아집이거든요. 내가 아는 것만 맞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내 걱정만 해요. 우주가 망하는 건 사실 그렇게 별로 걱정 안 되죠. 내가 죽는 게 걱정인 거지. 무지, 내가 아는 게 어떻게든 진리이길 바라지 다른 상대방 말이 옳으면 더 기분 나빠요. 내 말이 틀렸다고 하면. 진리를 안다는 걸 더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이 맞기를 바라는 거 안에는 무지랑 아집이 다 들어 있어요. 그렇죠? 진리에 대해서 내가 다 아는 게 아닌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거죠. 내가 아는 게 마치 진리인 양 생각하는 게 무지입니다. 또 거기에는 아집이 내 욕심이 같이 들어 있어요. 무지랑 아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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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덩어리로 우리를 끌고 가니까 인간이 힘들어지는데 그럴 때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가 없죠. 무지랑 아집 때문에 선, 양심을 택해야 되는데, 성령의 소리를 듣고 성령이 하라는 대로 우리는 살아야 되는데 무지가 앞서면요 성령의 말도 틀어버려요. “도둑질하지 마” 할 때 “나 이거 안 훔치면 내가 부자가 못 돼”라는 말로 그 무지로 진리를 덮어버리고 그래야 내가 산다 하는 내 욕심만 지금 챙기면요 우리가 인류가 다 지금 그런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게 지금 인류인데 그러고 이 정도 살면 잘 사는 거라는 겁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그런데 여러분 그래도 성령의 힘, 양심의 힘으로 여러분이요 담을 쉽게 넘지 못하시잖아요. 가게에 주인 없다고 쉽게 물건 집지 못하시죠. 양심이 여러분을 보호해줘서. 성령이 보혜사라 그러죠. 보호하고 은혜를 주는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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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돌봐주고 여러분한테 지혜를 주면서 여러분 잘 살게 도와주는 그 스승인 양심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래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CCTV도 없다고 해도 죄를 쉽게 못 저지릅니다. 그리고 저지르고 나면 엄청난 지적을 받아요 그 스승한테. 그래서 양심이 성령입니다. 이 두 개가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은요 지금 좀 양심에 털 난 분들이에요. 이게 어떻게 다릅니까? 욕심은 양심이 아니거든요. 인간의 욕심은요 절대로 그렇게 순수하고 성스럽지 못해요. 양심만이 순수하고 성스럽습니다. 그래서 성령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있어서 여러분이 그래도 지금 이렇게 도깨비가 아주 못되시고 사시는 거예요. 마음에는 하루에 몇 번씩 도깨비가 충동질을 해도 그래도 누르고 사시는 게요. 성령의 힘이지 여러분 이 잘나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에고는 끝없이 무지와 아집 쪽으로 흐르고 있어요. 가만 두면 흘러요. 그래서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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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차가운 쇠공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성령이 뜨거운 불이고요. 뜨거운 불을 만나면 차가운 쇠공도 불덩어리가 돼요. 그래서 그 에고는요 무지랑 아집이 차가운 쪽이라면 따뜻한 쪽 지혜와 자비로 살아가요. 그래서 여러분이 그래도 아주 차가운 쇠공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사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있어서 그러면 그 쇠공이 차갑지 못하게 지금 막고 있을까요? 불이요. 열기가 있어요. 여러분. 양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살고 계시는 겁니다. 누군가는 좀 많이 식은 사람이 있겠죠. 그런 사람들이 사이코패스고 소시오패스라 이런 분들이 이제 사고를 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미지근한 열기라면 그런 분들을 뜨겁게 못 해줘요. 그러니까 같이 차가워집니다. 그 친구들이랑 놀다가 같이 차가워져요. 오히려 이제 오판을 하게 돼요. “차가울수록 더 잘 사는 것 같다”라는 오판까지 하게 돼요. 내가 양심이 이놈의 양심이 있어서 뒤통수를 쳐야 될 때 한 번에 확 못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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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짝 때렸더니 오히려 내가 더 안 좋아지고. 그때 내가 양심만 없었으면 확실히 그쪽 집안이고 가족이고 뭐고 다 그냥 무시하고 한번 뺏어 먹는 건데 내 양심이 날 막았다. 이렇게 양심을 한탄하는 지경까지 왔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래서 또 이 무지가 여러분을 또 가로막아가지고 이런 진리가 안 보이게 해요. 이 힘겨운 시대 아닙니까? 그래서 이 시대에 소시오패스들이 사회 높이 올라가기가 좋은 구조죠. 이런 사회에서는요 남을 잘 잡아먹는 사람들이 힘을 키워가지고 그 힘으로 또 힘을 불리고 또 힘을 불리고 해가지고 이 사회 전체를 차갑게 만들면서 위에 올라가고 있죠. 여기에 대해 또 불만을 갖고요 반대적인 어떤 답을 제시한다고 하지만요 그런 식으로 여러분이 무지랑 아집이 이렇게 우리 사회를 어떻게 좀 먹는지를 모르시면서 또 여러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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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정화시키겠다 이렇게 섣부르게 접근해서는요 정화가 안 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똥물에 물을 많이 부으면 똥물이 늘어나요. 맑은 물을 아무리 부어보세요. 같이 다 똥물이 됩니다. 자정수가 아니면 안 되는데 자정수는 뭐겠어요? 무지와 아집의 반대는 지혜와 자비입니다. 여러분이 지혜와 자비로 움직이지 않는 한은 사회가 정화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쉬운 해결책을 자꾸 찾으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소시오패스들한테 힘을 실어주는 것도 뭔지 아십니까? 그냥 내 욕심에 그 사람을 믿기로 한 거예요. 여러분들은요, 이 에고의 문제점은 금방 빠가 돼버립니다. 누구를 신앙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해요 여러분이 지혜와 자비를 얻으려고 안 하시고요 여러분이 무지와 아집 속에 사시면서 지혜와 자비 있는 사람인 양 누가 코스프레를 하면요 그냥 믿어버리고 끝내려고 해요. 저 사람 믿어버리자. 저 말을 따라버리고 끝내자. 여러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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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심의 소리 여러분 안에서 울려 퍼지는 성령의 소리를 안 들으신다는 게 문제입니다. 들어도 일부만 듣고요. 여러분이 자꾸 여러분이 오판을 하세요. 여러분의 무지와 아집으로 그 답을 자꾸 왜곡시키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 상황 보세요. 아주 부조리하고 부패가 있고 부정이 있어도요 그걸 또 비판하는 사람을 또 믿음으로써 해결하려고 그래요. 해결이 될까요? 역사상 이런 일이 지금 만 년 간 진행돼 오는데 해결이 안 됐어요. 어느 시대나 소시오패스가 또 악을 주도하면서 약육강식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고 또 그 세계를 비판하면서 또 누군가가 나옵니다마는 그 사람을 믿는 식으로 해결이 되질 않아요. 여러분이 양심적이 되기 전에는 절대 이 세상이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겁니다. 어느 한두 사람이, 도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도인인 양 하는 그런 몇 사람으로 인해서 이 세상이 구원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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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겼는지 이 세상이 어떻게 악으로 물들었는지를 모르시잖아요. 그 원리가 보이지 않으면요 못 바꿔요. 어떻게 이 병이 생겼는지, 문제가 생겼는지를 모르는 분한테는요 여러분 몸을 맡기실 수가 없죠. 마찬가지로 그런 분들이 지금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누군가한테 쉽게 제대로 알고 누군가 어떤 의사를, 전문적인 의사를 찾아가지 못하니까 돌팔이인데도 그냥 믿어버리고 끝내려는 거예요.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거든요. 내 눈에 안 보이거든요. 그러니까요 누가 좀 옳은 말하는 것 같으면 그냥 믿고 끝내려고 하세요. 그렇게 안 됩니다. 거기에 또 선동이 들어 있어요. 그걸 이용해서 또 누군가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고 욕심을 부린 게 아니라도 그 사람이 무지로 접근했기 때문에 역시 여러분의 문제를 못 풀어주는 그런 어떤 답안들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올바른 답을 고르시려면 여러분이 공부를 많이 하셔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요한복음 보실 때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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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안목을 얻지 못하시면요 이런 경전을 읽는 것도 여러분한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투철히 이런 각오를 세우시고 나는 이 요한복음을 거울로 삼아서, 이건 거울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비춰 보셔야 돼요. 여러분 양심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안 보이시니까 이런 경전을 거울로 삼는 겁니다. 내가 내 모습 안 보이니까 거울을 보고 보죠. 경전에 쓰여 있는 양심, 예수님의 양심을 거울로 삼아서 우리의 양심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목표는 여러분의 양심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는 게 이 경전 공부의 목표예요. 이 경전을 다 읽었는데 여러분 양심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전히 모르고 “나 이제 오늘부터 예수님 믿기로 했어.” 이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이런 정치적인 사안도 그래요. “나 누구 믿기로 했어. 누굴 믿을까? 누굴 따를까?” 지금 이것부터가 이미 여러분은요 화두로 치면 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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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을 전혀 못 풀고 계신 겁니다. A 믿을래? B 믿을래? 누구 믿을까? 이게 벌써 답이 아니에요. 누구도 믿으시면 안 돼요. 여러분 양심의 소리를 따르셔야지. 누구를 믿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마음이 아직도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인류가 답이 안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아시면 돼요. 절대로 그 길 따라가서 답이 안 나옵니다. 양심이 형형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면요 누군가를 따르는 빠의 집단은 절대 역사를 못 바꿉니다. 바꿔도 더 망쳐놓거나 더 개선되지는 않을 거예요. 고만한 사람들이 계속 이어져 가는 거죠. 지금 매정한 말 같지만 이 원리를 아셔야 돼요. 이게 지금 저를 의사라고 보세요. 여러분이 계속 몸이 아픈 이유를 설명해 드리는 겁니다. 이 원리를 듣고 빨리 몸 건강하게 할 답을 찾으시라고요. 지금 그런 식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개심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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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지도자 누가 안 나오나? 그 사람 나오면 그 사람 찍으면 끝날 텐데.” 이게 지금 해결될 것 같으세요? 또 똑같은 사람 나옵니다. 이쪽 편에서 얘기하나 저쪽 편 얘기하나 똑같아요. 자리 바꿔 놓으면 또 똑같아져요. 신기하죠. 역사상 수없이 당하는데도 뭐가 신기하냐면요 수없이 정치인들은 그러는데도 또 믿고 오늘은 뭘 고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여러분이 신기하다는 겁니다. 혹시나 해서요. 답은 늘 역시나죠. 이 원인이 뭔가 있지 않을까요? 구조적으로.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를 안 들으시기 때문에 그래요. 딱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지금 양심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는 연습을 하셔야 돼요. 우리나라 예전에 어린 친구들이 뭐 배웠죠? 명심보감(明心寶鑑) 배웠죠.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이거든요. 그 책을 보면요 우리 마음 양심을 볼 수가 있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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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전은 다 명심보감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밝혀줘요. 혼자서는 모르니까 거울보고 보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양심이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한번 보세요. 그래서 그 양심을 알아가지고 지금 이 시대에 살아 움직이게 한번 해보세요. 뭔 답이 나오나? 그때 나오는 답이 진짜 답이지 여러분이 어떤 유명한 사람, 정치인, 선동하는 사람 말 듣고 그냥 그걸로 난 정의를 다 했다라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번 보세요.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 그 말씀드리고 제가 지난번에 끝냈었죠? 소크라테스 변론 한번 볼까요.
[* 소크라테스 변론
이것들은 ‘신’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저는 신에 대한 저의 이 ‘봉사’보다 더 크게 좋은 일은 이 나라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돌아다니면서 한 일은, 여러분들께 자신들의 ‘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혼에 대해서 마음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신이 명령하신 겁니다. 저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기를 변론한 얘기입니다. 저는 신에 대한 저의 이 봉사보다 신의 뜻 양심대로 살아라 하고 아고라 광장에서 외친 거 말입니다. 그것보다 여러분의 무지를 자각하라고 외친 그것보다 더 크게 좋은 일이 이 나라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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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게 지금 제가 생각하는 거랑 같다는 거 아시겠어요?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게 뭐냐면요 이 땅에 많은 정치인들이요 이 좋은 세상 만들어주겠다고 외치고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하지만 최고의 봉사는 여러분들의 무지를 깨주는 거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양심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 도와주는 거 이상의 봉사라는 건 지상에서 없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입장이에요. 수많은 정치인들이 아테네를 위해서 일을 했지만 내가 한 것보다 더 위대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뭘 했느냐? 여러분이 무지와 아집에 빠져 있다는 거를 지적해 준 겁니다. 어떠세요? 여러분 제가 늘 이런 말씀드립니다. “제가 월급은 못 드려도 일자리는 창출해 드릴 수 있다.” 소크라테스도 했던 그 일, 이 일을 하세요. 이 지구상에, 이 땅에 양심이 퍼지는 데 일조하세요. 그게 여러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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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인보다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위대한, 이 나라를 위한 봉사고 인류를 위한 봉사입니다. 꼭 어느 조직에 소속돼야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여러분 계신 곳에서 양심의 소리를 대변해 주세요. 양심이요 하지 마라고 하면 하지 마라고 하시고요. 양심이 하라고 하면 하자고 얘기를 한번 해 주실 수 있나요? 그걸 해주시면 여러분은 이 인류를 위한 최고의 봉사를 하신 겁니다. 여러분의 역량껏. 소크라테스는 그걸 얘기한 겁니다. 제가 돌아다니면서 한 일은 여러분들께 자신들의 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혼에 대해서 마음을 쓰라고 말한 것뿐입니다. 여러분의 혼이 절대 욕심에 무지에 당하지 말고 지혜와 양심을 따르라고 얘기한 거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해되시죠? 소크라테스가 이것으로 4대 성인이 되셨어요. 무슨 신통 부려서가 아니고, 오직 이거 하나로 성인 소리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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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인류한테 어디로 가야 할지 얘기를 해줬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이 그런 소크라테스의 마음으로 한 분 한 분이 살아가신다면요 역사가 바로잡히는 거는요 시간문제예요.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에요. 걱정은 이거예요. 수많은 선동 구호가 난무하지만요 양심에서 나온 말이 없고, 여러분이 양심을 알아보는 눈이 없고, 양심의 소리를 못 듣는다는 거. 이게 이 인류의 치명적인 지금 결함입니다. 문제예요. 이때 “당연히 나는 양심의 소리 듣는다” 하고 당당하게 얘기하실 수 있는 분이 돼야 된다는 거죠. 저의 이런 말에 “무슨 소리냐. 나는 지금 선명히 들린다.” 이런 분이 많아지시면요 인류는 희망이 있는 거죠. 예수님은요 이 얘기를 하려고 온 겁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고 싶은 얘기를 이 시대에 한번 제가 대변해서 해드린 거예요. 지금 이거는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오셨을 때 하신 얘기고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무슨 얘기할까요? 뭐 하나도 나아진 게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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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씀드렸지만 “이번 판도 나가리인가?”라고 하실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럼 뭔 얘기를 하실까요? 왜 지금 이번 판이 나가리다 이럴까요? 그 당시에 왜 이거 참 이거 다들 독사의 자식들이다 뭐다 이런 험한 얘기를 하셨을까요? 양심을 못 알아들으니까 나온 얘기 아닙니까? 그래서 양심만 얘기를 하다 가시겠죠 다시 오셔도. 어떻게든 양심 살리라고 하시겠죠. 그래서 저도 그 예수님 말씀을 지금 대변인 자격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누가 자격을 준 건 아닌데 제가 공부하다 보니까 “누가 왜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대변해 주지 않지?” 해서 제 나름대로 공부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6장 보죠.
[6. (6:38)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늘에서 내려왔다. (생각ㆍ감정ㆍ육체와 이 세상 속에서 양심을 실천하시려 함.)]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늘에서 내려왔다. 예. 나는 내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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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예수님의 에고도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뭘 아셔야 되냐면요 인간은, 인간의 마음이 영과 혼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을 때요 혼은 지금 생각 감정 오감이 다 혼이죠. 이런 건 물질이지만 결국 이 물질, 이런 오감, 물질의 작용들이 결국 여러분 혼에 어떻게 비칩니까? 오감으로요. 오감으로 여러분 마음에 들어옵니다. 오감 정보를 가지고 생각도 하고 그거에 대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죠. 여러분의 마음은 이게 다예요. 밖에서 오감 정보가 들어와서 그걸 가지고 좋다 싫다 하면서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혼을 쓰는데 영은요 성령과 통해 있는 자리죠. 영은요 성령과 하나로 공명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여기 이 자리가 지금 양심의 자리예요. 지금 양심이 뭐라고 명령을 자꾸 합니다. 이 명령의 신호는은요 두 가지로 옵니다. 자명 찜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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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하다는 건 불편하다는 거고 자명은 편하다. 편하다 불편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지금 여러분이 뭔 일을 하시려고 할 때 자명하고 당당하고 편한지? 불편하고 뭔가 위축되고 에너지가 쪼그라드는지? 보세요. 뭔가 에너지가 위축되는 게 와요. 그래서 맹자가 뭐라고 했냐면?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자명한 일만 계속하면요 호연지기가 생긴다.” 이게 예수님이 말하는 생명의 어떤 물이죠. 샘솟는 물, 샘솟는 물의 샘을 여러분이 갖게 되신다면 그거는 여러분이 계속 양심을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이런 우주적인 에너지가 여러분 안에서 약동하는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왜냐? 여러분이 죄 하나 짓고도 마음이 얼마나 쪼그라드는데요. 그렇죠.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요 여러분이 도둑질 한번, 꼭 해본 사람처럼 제가 얘기하지만 “누가 나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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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여러분이요 속으로 이상한 생각 하나 하셔도요 남 눈치 보게 돼 있어요. 위축돼요 신기하죠. 당당한 일 했을 때는요 막 누가 나를 보는 것 같고 막 알아주는 것 같고 이렇게 확 확장이 되는데요 에너지가. 그렇죠. 우주가 다 아름다운 것 같고, 그런데 뭔가 뭐 하나 마음에 딱 걸리는 거, 작은 거 하나를 죄를 지으시면 확 쪼그라듭니다. 이게 음양의 에너지가 있어요. 그러면 양심만 계속 실천하는 분은 어떨까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확장돼 있겠죠. 강대하겠죠. 샘솟겠죠. 그 힘이 이거는 산속에 앉아서 단전호흡을 많이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요. 그러면서 속으로 계속 여자 생각만 하면 그 에너지가 다 이상하겠죠. 야리꾸리한 에너지를 갖게 되겠죠. 그래서 이게 당당한 생각만 계속하신 분이 갖고 있는 에너지입니다. 거기에 그러면서 이런 단전호흡까지 하면 더 강대할 수는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양심적이어야만 가질 수 있는 에너지예요. 이런 포스가 자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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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늘 양심의 영의 명령을 따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거고 저런 분만이 영생한다는 게 예수님의 이론이죠. 보십시오. 이런 분이 생각은 지혜롭고, 늘 진리를 안다는 겁니다. 지혜라는 건 별게 아니라 진리를 늘 본다는 겁니다. 어느 시점에서도 어느 상황에서도 진리가 뭔지 금방 알아요. “이건 하면 되고 이건 하면 안 돼.” 이걸 파악이 빨리빨리 끝난다는 겁니다 진리는. “양심의 소리가 이거는 하래. 요건 하지 마래.” 이런 게 금방금방 판단이 되셔야 되고 감정은 늘 사랑으로 충만하셔서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역지사지를 늘 잘하시겠죠. 이 오감으로는 늘 실천을 하겠죠. 늘 몸과 팔다리로 뭐 하겠어요? 이거 놀리겠습니까? 팔다리가 필요한 데다가 쓰겠죠. 예 지혜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쓰겠죠. 이런 분이 영생해야 맞지 않나요? 이런 분이 천국 가야죠. 남 괴롭히고 자기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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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가지고 남한테 강요하고 남 괴롭히고 하는 분이 천국 가는 게 아니고, 남 저주하고 “나 천국 갈 테니 너는 한번 지상에 남아서 험한 꼴 당해봐라.” 막 이렇게 저주하고 이런 분이 천국 가면요 그런 천국은요 큰일 날 천국이죠. 그래서 그게 천국일 수가 없잖아요. 여러분들이 왜 그런 잘못된 그런 신앙을 봤을 때 여러분이요 어느 기분 드시든가요? 여러분이 자동으로 이 기분이 들어요. “저건 아닐 텐데”라는 “내가 잘은 모르지만 저런 사람들이 이 천국 가면 그건 아닌데 난 차라리 지옥을 가든지 해야지 저기는 아닌 것 같다” 하는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상대방한테 찜찜하게 하는 그게 악이에요. 우주는요 칼같이 인간 모두 안에 성령이, 보혜사가 있기 때문에요 보호해 주시고 여러분 안에서 이 은혜를 주시는 스승님이 계세요. 그분 덕에 지금 여러분 이렇게 죄 안 짓고 사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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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금 강의도 앉아서 들으시는 거예요. 누워서 들으실 수도 있잖아요. “아우 허리 아프다” 하면서 누워서 이렇게. 그랬을 때 사람들이 놀래죠. 사람들은요 다 알아요. “어 이상하다 저 사람.” 그렇죠. 갑자기 얘기하다 막 욕을 한다. 그러면 이상하다고 누구나 느끼죠. “또라이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저 사람 안에 뭔가 잡아주는 게 없는 것 같다”라는 걸 느끼는 거죠. “저 사람 마음 안에는 뭔가 성령이 없는 것 같다. 양심이 없는 것 같다.” 이게요 기본적으로 공기처럼 다 있기 때문에 여러분도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없는 사람 만나면 깜짝 놀래요. 있는 사람들끼리, 공기라는 게 그런 거 아닙니까? 공기가 이게 있을 때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요. 공기가 희박한 데 가면 깜짝 놀래죠. 숨이 잘 안 쉬어지니까. 양심은 이런 거랑 같아요. 성령은 여러분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늘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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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분한테 상대방이요 상대방 마음 안에도 성령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사기를 안 치고 있는데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가 양심 없는 사람 만났을 때 깜짝 놀라면서 아는 거죠. “저 사람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짐승이다.” 이런 말을 쓰는 이유가요 사실은 짐승도 다 성령이 있는데 인간더러 짐승인 것 같다. 짐승 이하다라고 판단할 때는요 깜짝 놀란 겁니다. 그 사람 안에서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걸 보고. 근데 그분 안에 양심이 없을까요? 사실은 혼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거죠. 여기 아마 이 기계가 고장 났을 수도 있어요. 자명찜찜이 반대로 들린다든가. 심각한 혼의 왜곡 현상, 무지와 아집이 너무 깊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죠. 이 원리만 아시면요, 이 원리를 안다면요 우리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성인들은 이 얘기하려고 오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얘기하신 게 뭡니까? “나는 내 뜻대로 안 한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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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혼은, 인간의 혼은 늘 차가운 쇠공 같아서 무지랑 아집 쪽으로 흐르게 돼 있어요. 가만두면 식어요. 이 영이라는 열기로, 영이라는 불로 늘 태우지 않으면, 안에서 달구지 않으면 식어버려요. 아주 식어버린 사람 만나면 여러분이 놀래는 겁니다. “이분은, 저 사람은 무슨 짓이 무슨 짓도 하겠다”라는 공포감을 주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리더들이요 착각을 일으켜요. 난세에는 특히 뭐로 보이냐면요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보여요. 결단력 있고. 공감을 못하니까요 결단력이 좋아요. 자기만 좋으면 그냥 뭐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빨리빨리 결정을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남 하나 만약에 군대 하나 보낼 때도 막 잠이 안 오고 막 이렇게 가면은 병사가 여럿이 죽을 텐데 그러면 어떡하나 그 가족 생각나고 이게 정상인데 카리스마에 있는 리더는요 “보내. 대아를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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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가 희생해야지.” 자기는 희생을 안 하는데 말은 되게 세면서. 이런 분들이요 몇 천 만씩 죽여도 눈도 깜짝 안 해요. 그런 분들은 극강의 사이코패스들. 스탈린 뭐 몇 천만씩 죽이지 않았나요. 중국이나 소련,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죽었죠. 저기 독일, 그런 분들 속이 이런 구조였기 때문에, 엄청 식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정반대죠. “나는 내 혼대로 말을 못한다. 영이 시키는 대로만 말을 한다.” 이 얘기를 지금 한 겁니다. 그 당시 분들이 알아들으셨어야 되는데.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낸 분 뜻을 실천하고자 하늘에서 왔다.” 그래서 “이 세상 속에 나는 양심을 실천하려고 이런 모습을, 생각 감정 이 오감, 이런 혼을 갖고 왔다. 이런 몸뚱이를 갖고 왔다” 이 얘기죠. 왜 그러겠습니까?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생각 감정 오감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여주려고 오신 거예요. 여러분이 못 쓰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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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영은 순수하고 양심은 바르다지만 혼이 무지와 아집에 휩싸여 있으니까 혼을 쓰는 법을 모르는 겁니다. “마음 사용 설명서”가 없잖아요. 그 당시에도 없었고. 인류가 태어날 때 마음 사용 설명서 매뉴얼이 하나 같이 와주면, 동봉돼서 이렇게 오면, 애 낳을 때 같이 딸려오면 좋은데요. “이대로 키우면 되는구나. 이대로 자라면 되는구나” 할 텐데 이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매뉴얼이 없는 기계는 어떡합니까? 그 블로그 뒤져야죠. 제일 이 중에 제일 유명하다는 사람 거 써야죠. 그 블로그 찾아가면 블로거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요. 뭐 깔으라고 하면 깔고. 레전드 블로거가 이제 성인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경전 지금 여러분이 지금 블로그 찾아오신 거랑 똑같아요. 마음이라는 물건은 받았는데 지금 여러분이 사용법을 모르니까 성인들 경전 보는 겁니다. 어떻게 써야 되는지 연구하시려고.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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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수님은 어떻게 쓰라고 했습니까? “영의 뜻대로 따라라. 혼 뜻대로 하면 안 된다.” 성령의 뜻대로 나를 보내준 분, 성부죠. 성부 하나님 성부가 성령이잖아요. 어떻게 성부가 성령입니까? 이 영이 내 안에서 작동할 때는 성령이라고 하는 거고 이 영 자체는 우주적이죠. 나라는 제약 조건이 없는 이 영 자체는 성부라고 하는 겁니다. 우주적인 성령을 성부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 사람 마음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직접적으로 우리의 에고를 인도해 주는 보혜사로 작용할 때를 우리가 성령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성령 뜻 영 뜻 그대로 사는 혼을 뭐라고 합니까? 그 혼 전체가 타오를 거 아닙니까. 이분은 혼 자체가 불덩어리예요. 이런 분을 성인이라고 성자라고 하는 겁니다. 성인, 성자. 성자가 되셔야 돼요. 예수님처럼 누구나 성자가 돼야 됩니다. “예수님은 되고 우리는 못 된다” 하시면 안 돼요. 그거는 예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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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왜 지상에 이렇게 목숨 걸고 왔는데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 뜻을 보여주려고. 그럼 그 보여주는 아버지 뜻이 뭡니까? 나는 이렇게 산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자녀가 되는 법이에요. 내 안에 지금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모르고 사는 사람들한테 알고 살아서 아버지랑 같이 사는 거.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합니까? “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이 되라고 지금 왔지 “구경이나 해라. 너희들은 안 될 거다. 나나 되는 거다” 하고 가셨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보면 내가 지금 가는 그 하늘나라, 저런 분들이, 성자들이 사는 세계죠. 하느님의 왕국. “나는 지금 가는데 너희들 당장은 못 오지만 나중에 올 거다”라고 했거든요. “너희를 위한 자리가 많다. 너희도 나처럼만 살면 간다.” 그거 지금 보여주려고 오신 거예요. 이 지상의 사람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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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하는 법, 하느님 왕국 들어가는 법, 성자가 되는 법을 결론적으로는 보여주려고, 보면서 얘기해주려고, 보면서 공부할 수 있게 보여주면서 이야기해 주려고 오신 거죠. 이렇게 이해하시면 지금 아주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지금 깊은 겁니다. 도마복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도마복음은 예수님의 어록으로만 만들어져 있는 경전입니다.
[* 도마복음(28절)
28. 나는 세상 가운데 내 자리를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거기에 나는 세상 가운데 내 자리를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육신을 가지고 직접 하느님의 왕국에, 천국에 계시다가 이 지상 사람들한테 직접 모범을 보여주려고 육신을 갖고 오신 겁니다. 7장 7절에요.
[7. 7:7
7. 세상이 그대들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실천)]
세상이 그대들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지금 세상은 내가 미울 것이다. 왜 그렇게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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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셨나요?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악하다”라고 지금 얘기를 했기 때문에 세상은 나를 증오할 거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뜻대로 지금 사시는 거죠. 내가 악하다고 임의로 판단한 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에고가 임의로 판단한 게 아니고요. 예수님 안에 있는 양심의 소리가, 성령의 소리가 이 세상은 지금 양심대로 살고 있지 않다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본인의 입을 통해서 생각과 감정과 오감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그걸 전달해 준 거죠. 나는 그냥 전달했을 뿐인데, 아버지의 말을 전달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싫어한다. 왜냐? 악하다고 했기 때문에. 다 자기들이 선인 줄 알아요. 지금 이 세상도요 다 본인들이 하는 게 옳은 줄 압니다. 선인 줄 알아요. 상대방이 악하다 그래요. 이렇게 선악을 자기가 임의로 정해서 그걸 가지고 남을 악하다고 하고 나는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도요 자기가 선하다고 자꾸 생각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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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어떻게든 합리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 내 처지에서는 이 일이 제일 옳은 일이다. 그럼 나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같은 말이죠. “그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최선의 판단을 한 거다.” 이런 식으로 자꾸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정치인도 그렇고 경제인도 그렇고. 뭔가 죄를 지으면서도 우리가 자꾸 합리화하려고 그래요. 과연 그게 최선이었는지 양심의 소리를 따른 행위였는지 그거는 이제 다시 판단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사람 말만 듣고는 모르는 거죠. 다 나는 최선이었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예수님이 와서 한마디 한 거죠. “너 사실 악이야”라고 하니까 충격 받아서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했나요? “예수님을 따르자”라고 판단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을 죽이자. 쟤만 없어지면 아무도 우리를 악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다는 겁니다. 사람은 무지와 아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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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 살기 때문에 그래요. 그분이 만약에 진리를 추구했고 사랑을 추구했다면 이런 진리의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러십니까? 제가 혹시 어디 문제 있나요?”라고 물어야 맞는데 넌 건강하지 않다고 하는 그 의사를 없애려고 한다는 거죠. 자기 체면이 상하고 자기 욕망에 뭔가 저해되는 게 생기니까 없애려고 한다는 겁니다. 근데 이게 무서운 게요 지금 예수님이 와서 만약에 이 세상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악하다”라고 하시기가 쉽겠죠. 그러면 지금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따를까요? “저건 또 뭐야”라고 또 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지금 힘든데 저건 또 뭐야.” 그게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지 더 힘들게 하려고 하는 말인지 이게 판단이 빨리 서야 되는데. 이게 걱정이라는 겁니다. 이러려고 우리가 공부를 해야 돼요. 혹시 오셨는데 여러분 우리가 또 무시해가지고. 그렇죠. 또 시즌2 찍을 필요는 없잖아요. 성경을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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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직은 아니다” 하고 “그들은 아직도 진리를 따를 준비가 안 돼 있더라.” 이런 판단이 되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성자한테 성인한테. 뭐가 필요한지도 제가 지금 말씀드립니다. 뭐가 필요한지도 바로 아시겠죠. 우리가 이 성령을 각성해서 성령의 뜻을 따라야 됩니다. 소크라테스도 똑같아요. 보세요. * 소크라테스의 변론 보면요. 소크라테스도 똑같이 예수님은 십자가형 당하셨으면 소크라테스는 독약 드셨죠. 보세요.
[* 소크라테스의 변론
여러분 저는 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입니다. 숨을 쉬는 한, 역량이 닿는 한, 저는 지혜를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선을 권고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입니다. 나는 신의 명령만 따를 겁니다. 여러분의 명령 안 따릅니다. 보세요. 예수님한테는 이 영이 신입니다. 예수님은 이 신을.. 아니 소크라테스한테는 이 영이 신인데 소크라테스는 우리 안에 있는 이 양심, 이 영을 다이몬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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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안에 있는 신성. 그래서 지난번에 강의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도 다이몬을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이라고 얘기하죠.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다이몬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 이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이었죠. 이게 소크라테스부터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있습니까? 내 안에는 다이몬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소크라테스 변론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하라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하지 마라고 내면에서 강력하게 뭔가 잘못을 저지를 때는 하지 마라고 했다. 이게 뭡니까? 찜찜의 신호를 강력하게 보낸 거죠. 소크라테스는 어려서부터 이 양심의 소리가 잘 들렸던 겁니다. 이게 요즘 우리, 요즘 말로 하면 뭐냐면요 “영성 지능이 높다”라는 뜻입니다. 영성 지능이 높은 사람은요 양심의 소리가 잘 들려요. 그래서 양심의 소리를 잘 이해하고 잘 실천합니다. 그게 영성 지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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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여러분 양심의 소리가 잘 안 들리시면 그게 여러분 지금 영성 지능의 수준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의 마음이 잘 배려가 되고, 예 남한테 해를 끼치는 게 힘들었고, 그렇죠. 늘 자명한 진리를 갈구했고, 찜찜한 말을 듣기 힘들어했고, 남한테 겸손하게 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사는 걸 추구했다고 한다면 영성 지능이 높으신 거고요. 그 반대로 사신 분들은 영성 지능이 낮으신 겁니다. 그래서 영성 지능은 낮은데 머리만 좋은 경우에 우리가 심각한 소시오패스가 되는 겁니다. 능력은 너무 좋고 덕은 없고요. 영성 지능은 덕 쪽이면 우리가 요즘 말한 다중 지능의 여러 지능들은, IQ나 이런 지능들은 재능이거든요. 재능은 좋은데 덕이 없으면요, 인간 친화 지능은 너무 좋은데, 그냥 만나면 금방 사람 속을 알겠고 상대방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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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아는데 영성 지능은 낮으면 뭐 하겠습니까? 사기 치죠. 사기를 치게 돼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큐 좋은 사람들이 다 감방 가 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너무 보여서 안 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막 돈이 보여요. 이렇게 하면 돈이 들어오고 이렇게. 다 보이는데 그거를 참고 있으려니까 이거 죽겠는 거죠. 그렇죠. 그거는 고양이가 생선 지키는 것처럼 죽겠는 거예요. 이렇게만 하면 돈이 막 떨어질 게 보이는데, 상대방은 지금 거의 장님 수준인데, 이렇게 하면 내가 그냥 돈 털 수 있는데. 그래서 인간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상대방은 뭐라고 또 그 사람은 뭐라고 자기를 변호합니까? “너도 그 처지에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거는 그 시점에서 선이었다”라고 또 스스로 합리화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자꾸 이상해져 가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쌓여가고 사회 전체가 이런 게 만연해 가면은 그 사회는 이제 거의 이제 저주받은 상태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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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창궐하고 선은 사라진 사회. 지금 우리 인류도요 자꾸 그쪽으로 못 가서 안달이에요. 그래도 뭐 때문에 우리가 다시 자꾸 반성하고 돌아보고 정의가 뭔지 찾습니까? 양심 때문에. 우리 안에 영이 아직 죽지 않았어요. 이 영은 죽을 수가 없는 존재거든요.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이 성령을 알고 살다 보면 영생을 얻는다는 이론이 뭔지 아십니까? 영은 생명 그 자체예요. 죽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성령을 알고 성령 뜻대로 사신다면 여러분 혼까지도, 그리고 여러분의 그 오감, 육신까지도 영원해진다는 겁니다. 영원한 생명 쪽으로 간다는 거예요. 이거는 동서양 모든 철학에 나오는 겁니다. 장자에도 뭐라고 나오냐면요, 황제내경에도 나오고 장자에도 나오는데, “도를 얻은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꾸 하거든요. 그게 뭐냐면요 “진리는 영원한 거기 때문에 진리대로 사는 그 사람도 영원한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황제내경에 보면 장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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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도인에 대해서 얘기를 해요. 의학서적인데. 그다음에 왜 그러냐고 하면 “이 양반은 도로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진리로서 살기 때문이다. 이게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에 이런 말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영생 얘기하시는 게요. 예수님이 동서양의 모든 성인들이 했던 얘기들입니다. “진리와 함께 산 사람은 진리가 영원하고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사람도 죽지 않는다. 영원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소크라테스도 그 얘기를 해요 파이돈에서. “생명은 죽음의 반대 아니냐. 생명은 죽을 수가 없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은 죽을 수가 없다.” 그런데 위대한 그런데 일반인들은 그 혼이 더럽기 때문에 다시 동물로 태어나고 인간으로 오기도 하고 하는데 철학자의 영혼은 하늘나라 간다. 신들의 세계로 더 영원한 세계로 나아간다. 기본적으로 영혼은 영원하다고 보는데요. 그 영혼이 더러운 사람들은 이 뭐죠? 윤회를 거듭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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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영혼들은 더 영생을 얻어서, 그게 진짜 영생이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는 내용들. 그래서 단순히 우리 혼은 영원히 산다는 거 가지고 영생이면요 여러분 그거 이미 영생 아닙니까? 기독교 이론에서. 지옥 가서도 영원히 지옥 불을 받죠? 영생이죠? 살아있다는 측면에서 영생 아닌가요? 지옥 불을 계속 받으려면 살아있어야 되거든요. 그런 영생이 아니고요. 온전한 영생 즉 영혼 육이 온전한 영생을 얻으시려면 성인이어야 된다. 진리를 알아야 된다. 이런 게 동서양의 기본 이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인간이 그렇게 영생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인데 이렇게 산다는 게 너무 안타까우니까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나는 숨을 쉬는 한 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그리고 역량이 닿는 한. 여러분의 이건 입장도 이렇게 되셔야 돼요. 저는 지혜를 사랑하고 여러분께 선을 권고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위에서는 어떻게 판단했겠습니까? “죽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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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이 지도부들은 “저거 살려두면 안 되겠다. 아테네에 해가 되겠다”라고 판단을 지혜와 사랑을 얘기했다고 지금 죽여야겠다라고 판단한 게 예수님 때나 소크라테스 때나 똑같다는 겁니다. 그럼 이 시대에 또 오면 또 인류가 이런 잘못을 반복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연구를 해야 됩니다. 지구에 성인들을 유치해야 되는데 지금 오는 성인들도 끊기게 생겨서는 안 되죠. “지구 가면 그냥 거기 가면 무조건 죽어.” 막 이러면 성인들 오시겠어요? 여기 환대받는, 여기는 되게 성인을 환대하는 곳입니다라고 해야 자꾸 태어나겠죠. 성인 유치 이런 프로젝트를 세워서 해야 돼요. 성인들을 기려주고 성인들의 뜻을 제대로 이해해 주고. 교회만 크다고 예수님이 올까요? 교회만 큰데 사람들이 다 눈이 시커머면요 예수님한테는 근심만 더 느는 거예요. “아무래도 이번에 가면 또 잡히겠는데”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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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입장에서 한번 헤아려 보세요. 눈이 맑고, 교회가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양심이 밝은 거기가 천국이죠. 그래서 그러면 이제 성인들이 더 오시겠죠. 아무래도 여러분도 공부 잘하는 사람 더 가르쳐주고 싶지.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좀 지칩니다. 교사도 지쳐요. 그래서 가르쳐주고 싶게 막 만드는 거죠. 성인들이 와서 가르쳐주고 싶게 우리가 역량이 닿는 한 이렇게 선을 따르려고 노력하기만 하면요 좋은 일은 계속 생기게 돼 있어요. 왜냐? 우주에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 혼들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면 우주는 도와주게 돼 있습니다. 성인이 태어나게 돼 있어요. 그래서 그런 말 하지 않습니까?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우주가 더 도와주고 싶어서 나타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스승을 신이 파견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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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카르마 법칙이에요. “뿌린 대로 거두리라.” 좋은 걸 자꾸 뿌리면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게 하늘이 도와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내면에 울려 퍼지는 이 자명과 찜찜의 소리를 선명히 못 들으면요 어중간하게 듣고 움직이면 또 실수가 나요. 또 실수가 나고. 그 실수로 또 발목이 잡혀가지고 또다시 역사가 후퇴하고. 이런 걸 반복하고 싶지 않으시면 자명 찜찜에 대한 분석을 예리하게 해보세요 소크라테스나 이런 예수님처럼. 소크라테스는 또 뭐라고 했습니까?
[* 소크라테스의 변론
신은 저를 마치 등에처럼 이 아테네에 달라붙어 있게 하여, 여러분을 깨어나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곁에 붙어서 설득하고 지적하기를 그치지 않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저를 마치 등에처럼 이 아테네에 달라붙어 있게 하여, 여러분을 깨어나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곁에 붙어서 설득하고 지적하기를 그치지 않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명령이 뭡니까? 신은요 이 우주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보혜사 아닙니까. 어떻게든 인류를 포기하는 법이 없어요. 또 스승을 보내주고 또 스승을.. 보세요.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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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되죠. 무형의 스승입니다, 성령은. 그런데 유형의 스승이 필요하거든요, 사람한테는 성자를 통해서. 또 성자를 보내가지고 안팎으로 여러분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성령으로 여러분을 인도하고, 성자로 여러분을 밖에서 또 인도하는 겁니다. “이래도 못 알아들을래?” 하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안팎으로 공격해 가는데 여러분이 완강히 버티시면서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따르기 시작하면 “이거 영 찜찜한데 아무래도 이게 하늘의 뜻이 아닐까?”라는 걸 이제 읽어내기 시작하면 인류는 변해버릴 겁니다. 무섭게 변할 거예요. 왜냐면요 여러분 안에는 성령이 있기 때문에 변하겠다고 작정해버리면요 무섭게 변하실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이제 무슨 뭐죠? 술맛 뭐 이렇게 도박 맛 알면 밤샌다고 하잖아요. 맛을 몰랐으니까 그렇지 맛을 한번 제대로 알아버리면요 누가 말려도 그걸 하실 거라는 겁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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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성령이 있기 때문에 똑같아요. 이 성령의 맛을 한번 알아버리면 말려도 하게 돼 있다고요. 그리고 성령 없이 살았던 시절을요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이게 간단해요. 이런 걸 알고 무슨 전도를 해야지 가가지고 오히려 사람들 괜히 협박하고 예수님 안티 만들고 이러면 되나요? 그래서 진짜 팬이라면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게 다 이 영에서 나온 소리 아닙니까. 나는 길이요. 그런데 이 영이 길이면 타오르는 불덩이도 길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당당하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도 말하실 수 있어야 돼요. 여러분이 성령 그대로 사실 때 여러분은 그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내가 하는 말, 내 생각 내 감정 내 오감 모두 성령 그대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전체가 불덩이가 돼서, 성령이 돼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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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한 게 있으시면 말이 그렇게 안 나오겠죠. 여러분 혼이 아직 성령을 다 못 따르는 존재라면, 혼이 좀 식어 있다면 내가 길이요 할 때 찜찜하겠죠. “내가 진리요 살짝은 어느 정도는.” 뭐 이런 말이 자꾸 붙겠죠. 찜찜하니까. 이렇게 해서 붙게 돼 있어요. 당당히 이 말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아니면 사이코패스죠. 사이비들도 해요. 또 그러니까 여러분이 속아요. “저렇게 나는 그런 말 못하게 했는데 저 교주는 그렇게 하네. 뭔가 있겠지.” 하면 이제 당하는 거죠. 그 사이코패스도 해요. 왜냐하면 이 양반들은 찜찜의 신호가 잘 안 들리거든요. 좀 고장 나 있어요. 그러니까 부끄러운 게 없어요. “이렇게 하면 돈이 많이 들어오겠구나” 하면은 그냥 해요. 연기하듯이 그냥 해요. 그러니까 그것만 가려보셔야 돼요. 이 사이비랑 진짜랑. 소크라테스 같은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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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이제 검증된 성인들 성자들 아닙니까. 8장이요. 8장이 아니죠. 8번이고 7장 이제 14절에서 18절까지죠.
[8. 7:14~18
14. 축제가 중반을 지날 무렵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축제가 중반을 지날 무렵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도 이렇게 가르치려고 오신 거니까 늘 가르치시겠죠. 자리만 열리면 설법을 하시겠죠. 이 설법이 재미없으면 이제 사람들이 근처에 잘 안 올 거고 이 설법이 재미있으면 자꾸 모여서 듣겠죠. 예수님은 성령의 뜻대로 얘기하시니까 사람들한테 뭔가 늘 영감을 주시는 말씀을 하셨겠죠. 단순히 재미를 주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고 영감을 주려고 이제 말씀을 하셨겠죠. 사람들이 이제 듣기 좋게 비유나 어떤 재미를 섞어서 하셨겠지만. 그래서 성인들은요 주로 말로 합니다. 왜냐하면 몸으로 당연히 몸으로 하는데 몸으로 하는 거는 못 알아봐요. 뭐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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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목을 못 갖추면 그게 보이질 않으니까 몸으로 이 성령의 뜻을 구현하시면서 당연히 말로 자꾸 해 주시게 돼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한 거 봤어. 나 어떻게 하디? 왜 이렇게 했을까?” 이렇게 해서 말로 가르쳐줘야 되거든요. 그래야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니까. 행동으로만 보여주고 가버리면요 아무도 이해 못합니다. 그렇죠. 그 수준이 아니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수준을 올려야 되니까 말씀을 무조건 하시게 돼 있어요. 소크라테스도 그래서 아고라광장 가서 계속 얘기를 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이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지금 생각이, 이 중에 제일 중요한 게 생각이에요. 지금 생각이 지혜, 길이 보이지 않으면 못 가요. 여러분 자동차 길을 모르는 길을 내비가 고장 났으면 갈 수가 있나요? 차는 기름 꽉 차 있고 차는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길이 어딘지 모르면 못 갑니다. 그래서 생각이 그렇게 중요해요. 여러분 생각이 한 번 삐뚤어져버리면요 한참 멀리 달려가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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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로 열심히 달리시면요 돌아오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포기해야 될 정도까지 상황이 치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 생각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혼 중에 특히 이 생각이 중요해요. 생각이 왜 중요하냐? “실제로 실천하는 게 중요하지 왜 아는 게 중요하다고 하느냐?”라고 하실 수 있지만 당연히 다 중요한데 생각이 뭐가 옳다라고 말을 해줘야 옳은 걸 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중요하다는 겁니다. 구조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 삶이 답답하신 건요 옳은 거 그른 게 분간이 빨리 안 되시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이 실천력이 부족하셔서 의지력이 부족하셔서 힘드신 게 아니고 저거를 욕을 해야 돼 칭찬을 해야 돼. 이게 빨리빨리 판단이 안 서시기 때문에 그래요. “저걸 껴안아줘야 돼 밀어내야 돼?” 이게 판단이 안 섭니다. 그렇죠? 이 남녀 간에도 이게 지금 기다려야 되는 건지 질러야 되는 건지 그걸로 밤새 밤을 새우고 연구하고 자기 일은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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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선과 악 문제에서도 그렇게 여러분이 고민해가지고 진지하게 목숨을 걸고 이거 터럭 하나만 차이가 나도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그런 각오로 고심하면서 연구를 해보신다면, 욕심도 그렇게 하는데 양심에 있어서 그렇게 하신다면요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경험들이 필요하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명상만 하고 있으면 안 돼요. 모든 거 잊고 명상만 편하게 하고 계시다 보면요 고민을 안 하시게 되죠. 선악이 여전히 판단이 안 돼요. 그러니까 선악이 판단 안 되니까 명상에 더 깊이 들어가세요. 어차피 세상에 나가면 모르겠으니까 깊이 들어가시다가 뭔 엉뚱한 결론을 또 내리시냐면요? 이것도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막 도는데 이원성을 거부하는 이런 가르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거 따르시면 안 돼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아니에요. 이원성을 거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원성은, 예수님은 이원성을 잘 쓰시는 분이지. 생각 감정 오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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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원성의 세계인데 저걸 어떻게 멋지게 쓰느냐가 성자의 관건이지 이원성을 거부하면 성자가 필요가 없죠. 성부 성령이면 충분하지. 이걸 잘 이해를 못하셔서 그러는데 이원성을 거부하신다는 건요 선악 판정이 힘들다는 얘기예요. 선악 판정이 힘드니까 판정을 안 하고 자꾸 선악이 없는 세계로만 도망을 가시기 때문에 그런 반쪽짜리 명상으로는 절대 인류가 구원될 수가 없습니다. 아까 예수님이 뭐라고 했나요? 난 세상이 악하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핍박받는다. 핍박을 받더라도 나는 악은 악이라고 하겠다라는 단호한 의지가 예수님의 뜻인데 왜곡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 세상을 거부한다거나. 그렇죠. 어디 동굴에 가서 깊이 들어가서 수도해야 진짜라고 생각한다 거나요. 지금 이런 거 잘못된 사상이 만연해 있습니다. 하느님 찬미가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류에 대한 봉사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오판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느님 사랑을 구현하려면 인류를 사랑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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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지금 반쪽짜리를 자꾸 하세요. 뭡니까? 자기 편한 거 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앉아 있는 건 자신 있다. 근데 선악 판정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계속 앉아 계시는 거예요. “아버지” 하고 또 들어가 버리고 “아버지” 하고 또 들어가 버리고. 본인은 편하신지 모르지만요 그 부모님 속은 썩어가요 그럴 때. 그럼 또 이렇게 자꾸 둘러댑니다. “이게 아버지를 위하는 게 우주를 위하는 거고” 자꾸 이렇게. 예수님이 그렇게 계셨으면요 우리는 지금 성경 구경도 못했어요. 어디 굴에서 혼자 앉아 계시면서 아버지 찬미만 하다 가셨다면 여러분은요 성경이라는 거 알지도 못한다고요. 예수님이 핍박받는 한이 있더라도 얘기를 했기 때문에 세상한테 선포하고 악은 악이라고 하고 독사는 독사라고 하고 말을 하셨기 때문에 인류가 그 도움을 받아서 지금까지 경전을 보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후예가 되시려면요 악은 악이라고 하셔야 되고 선은 선이라고 하셔야 돼요. 골방에 그냥 앉아서 기도만 하고 계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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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요. 예수님은 언제 기도하셨나요? 이런 일 다 마치시고 밤에. “홀로 기도하셨다.” 이런 게 나옵니다 한 번씩. 그러니까 남들 잘 때 기도해서 아버지랑 또 만남을 갖고 충전하고 낮에는 뭐 하셨나요? 쓰셨어요 계속 사람들한테. 설교하고 계속 가르치고. 왜 이걸 자꾸 왜곡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에고예요. 나 잘하는 것만 하려는 에고. 양심의 소리보다는 내 소리를 더 듣고 계신 겁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가르치셨나요? 뭐라고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제 놀랬죠.
[15. 그러자 유대인들이 놀라며,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것들을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정식 이 랍비 코스를 밟은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저런 걸 알고 있지? 왜 랍비들처럼 다 권위 있는 말을 하지?” 성령의 소리대로 했겠죠. 예수님이 성령의 말씀 그대로 가르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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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겁니다. 그래서
[16.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나의 가르침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17.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자신의 영을 통해 성령과 진리를 각성하면, 예수님이 성령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나의 가르침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센 말을 하십니다. 여기까지 하고 쉬고 하죠. 보세요. 내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다. 이제 잘 아시겠죠? 내 혼이 임의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는 성령의 가르침대로 얘기하고 있다. 나를 보낸 그분의 뜻이다. 자 그런데 예수님이 나만 이렇게 된다가 아니에요. 당신들도 양심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지금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신들도 알 거다. 똑같다는 겁니다. 자 뭡니까? 예수님은 지금 혼대로 사는 게 아니라 영의 뜻대로 혼을 쓰고 있다. 즉 그런데 당신들도 똑같기 때문에 마음의 구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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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도 당신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기만 한다면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걸 그대들도 알 것이다. 양심이 뭔지만 안다면 나는 늘 양심만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들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에고가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요 늘 자신의 에고를 전제합니다. 그러니까 자 보세요. 예수님은 이 에고, 혼과 영을 분리해서 말할 때는 나의 혼도 인간의 혼하고 똑같죠. 예수님이 이 지상에 내려오신 건요 인간의 혼과 육신을 그대로 갖고 성자의 길을 보여주려고 오신 거기 때문에 똑같아요 우리랑. 그래서 나의 혼으로 말하면 성부랑은 천지 차이다. 하지만 성령과 함께 움직일 때의 나의 혼은 아버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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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니다. 이 감각으로 얘기하시기 때문에 어떨 때는 “어디 나를 아버지한테 대느냐”라고 얘기하시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가 길이요 진리다”라고 얘기하시기도 하는 겁니다. 이 두 가지를 이해 못하실 정도의 안목이라면요 절대로 어디 가서 예수님 믿는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되고, 특히 전도를 하면 안 됩니다. 이 감각을 모르는 분이 예수님에 대해 떠든다는 건요 모르고 떠드는 게 제일 악이에요. 무지가 악이에요 지혜가 없는데 떠드는 건요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해도 안 돼요. 그래도 안 돼요. 하지 마셔야 돼요. “어떡해. 내가 도와줘야 돼.” 하지 마세요. 같이 죽어요. 물에 빠진 사람 도와준다고 뛰어들었다 같이 죽어요. 알고 움직이세요. 좋은 의도로 하더라도 결과가 나쁠 수 있기 때문에 알고 움직이셔야 돼요. 예수님이 뭔 말을 하셨는지 성경부터 철저히 연구하세요. 예수님은 늘 이렇게 시시각각 상황에 맞게 진리를 표현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걸 정확히 읽어내시려면요 예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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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대로 해야 돼요. 예수님이 살으라는 삶을 살면서 연구해야지. 먼저 첫째 황금률 실천하셔야 돼요. 상대방 입장에서 듣기 싫어하는 거 원하지 않는 건 하지 말아야 돼요. 요 기본적인 룰도 못 지키는 사람들이 천국을 노래한다. 이게 세상이 망조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이 입에 올릴 세상이 아닙니다, 천국은. 아버지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지 아버지 뜻이 뭔지도 모르면서 자기 욕망대로 떠드는 사람들이 입에 올릴 그런 세상이 아니에요. 천국을 더럽히지 마세요. 빙의 됐었나 봐요 방금. 제 뜻이 아닙니다. 말을 너무 험하게 한 것 같은데. 아버지 뜻이 잠시 지금 임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을 통해 성령과 진리를 각성하면요 예수님이 성령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겁니다. 간단하죠? 이 원리 간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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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얘기를 계속하고 계세요. 지루할 정도로 간단한 얘기입니다 알고 들으면. 여기까지만 하고요 5분 쉬고, 이제 예수님의 이 말씀을 화엄경으로 한번 풀어드릴게요. 화엄경을 가지고 불경도 이해하시면서 예수님도 한번 이해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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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51 기독교철학05 요한복음 3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