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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문화재답사 스크랩 ?불국사 다보탑 ‘돌사자’ 제자리 찾는다
청목/金永柱 추천 0 조회 571 12.03.22 23: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불국사 다보탑 ‘돌사자’ 제자리 찾는다

중앙에서 기단으로

 

 

 

 

일제 수탈 과정에서 엉뚱한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20호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다보탑 서쪽 기단 중앙부에 있는 돌사자를 원래 위치인 기단 모서리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이 돌사자 위치에 오류가 있다며 지난 1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다보탑 돌사자 이전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혜문 스님은 국민신문고에서 "다보탑 돌사자 자리가 원래의 위치에서 변경돼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돌사자 4개 중 3개를 훔쳐가는 과정 혹은 해방 이후 다보탑 보수 과정(1960년대 초반) 중에 옮겨지거나 변형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과거 기록이나 사진을 통해 기단 네 모서리에 돌사자가 배치돼 있었으며 1969년 추진된 불국사 복원 공사 현황 조사 때 돌사자가 지금의 서쪽 기단 중앙부에 자리 잡은 것을 확인했다"고 오류를 시인하며 "구체적인 자료가 확보되면 전문가 등의 심층적인 검토를 거쳐 돌사자를 원위치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상태

 

모서리로 이동을 가상하여 놓은 모습


다보탑 돌사자 이전이 확정되면 다보탑이 들어가 있는 현행 10원 주화를 비롯해 역사 교과서, 국가 기증품 등의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계일보/박태해 기자 2012.3.19>

 

 

 

 

국립경주박물관의 다보탑-네 마리의 사자

 

 

돌사자 4마리… 나머지 3마리 어디갔나

 

 

불국사의 국보 20호 다보탑 돌사자의 기구한 운명은 일제 침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문화재청이 2011년 낸 '불국사 다보탑 수리 보고서'에 따르면 도쿄대 교수를 지낸 세카노 다다시가 1904년에 간행한 '한국건축조사보고'에 따르면 "다보탑 기단 모서리 4곳에 돌사자가 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일제 병탄 직전까지는 돌사자 4마리가 온전히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돌사자의 위치는 세키노가 1916년부터 1935년까지 펴낸 15책의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린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키노는 1909년부터 1912년 사이에 조선의 문화유적을 한 차례 더 조사한 뒤 '조선의 건축과 예술'을 내는데 거기에 "다보탑의 돌사자 1쌍이 없어졌다."고 기록했다.

나머지 2마리 중 1마리에 대해선 작가 현진건이 1929년 동아일보에 쓴 '고도순례 경주'란 칼럼에서 밝히고 있다. 현진건은 "두 마리는 동경 모 요리점의 손에 들어갔다 하나 숨기고 내어놓지 않아 사실 진상을 알 길이 없고, 한 마리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데 다시 찾아오려면 500만원을 주어야 내놓겠다고 하던가?"라고 적고 있다. 즉 1925년 이전까지 돌사자 4마리 가운데 3마리가 수탈돼 해외로 반출된 것이다.

 

 

일제시대. 자하문쪽에서 찍은 다보탑

두 마리의 사지가 보인다

(1912년 이전)

 

일제시대.  지금의 회랑쪽에서 찍은 사진

위 사진에서 보았던 사자의 흔적이 없다

 (1936년-1944년 사이)

 


그렇다면 1마리는 어떻게 이 땅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가. 수리 보고서는 "사자상의 경우 정수리, 꼬리, 입, 가슴 부위, 남측 다리와 발가락 등이 파손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금 다보탑에 남아 있는 돌사자는 얼굴에 난 상처 덕분에 제자리를 지키게 됐다."고 설명했다.

훼손됐다는 이유로 다행히 수탈을 면한 1마리는 1936~1944년 사이의 기록을 보면 불국사 극락전 앞에 있었다. 수탈을 위해 다보탑 기단에서 끌어내렸으나 훼손된 것을 알고는 극락전 앞에 방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돌사자는 광복 이후 원위치인 기단의 모서리에 배치된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의 다보탑 복원 공사 때 1마리만 모서리에 있는 모양이 어색하다고 판단한 불국사 측이 공사팀과 상의해 지금의 기단 서쪽 중앙부로 옮겨놓았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국립경주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복제품 다보탑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 이전의 다보탑을 그대로 살려놓은 모습이다. 경주박물관은 안내문에서 "분황사 석탑이나 화엄사 사사자석탑, 흥덕왕릉에 있는 사자 네 마리가 모두 네 귀퉁이에 있는 것으로 보아 다보탑도 네 귀퉁이에 불법을 수호하라는 의미로 사자를 배치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보탑 돌사자 이동이 확정되면 다보탑이 들어가 있는 현행 10원 주화를 비롯해 역사 교과서, 국가 기증품 등의 수정, 이동이 불가피하다.

 

 

1966년-돌사자 없음

 

1970년-돌사자 없음

 

 

 

1983년-돌사자가 가운데 있음

2006년-돌사자 있음


 

10원 주화는 다보탑을 기본 문양으로 1966년 8월 처음 발행한 데 이어 1970년, 1983년, 2006년 등 4차례 도안을 바꿔 가며 45년간 총 72억개를 발행했다. 1966년과 1970년에 발행한 주화는 다보탑을 정면에서 바라본 도안을 채택했는데 이 도안에는 돌사자가 없다가 1983년 발행분부터 지금의 다보탑처럼 기단의 중앙부에 돌사자가 들어갔다. 한국은행은 천원권 지폐의 뒷면 도안에 있던 도산서원의 금송(錦松)이 일본풍이라는 논란에 휩싸이자 2007년 1월 신권 발행 때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로 대체한 바 있다.

10원 주화 외에도 우리 정부가 칠레 독립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 리베라수르공원에 기증한 다보탑에도 돌사자의 위치가 잘못돼 있다. 또한 올해 2쇄를 낸 비상교육의 검정교과서 '중학교 역사(상)'의 101쪽에도 지금의 다보탑 사진이 실려 있다.


 


*******************************************************<서울신문/김문·황성기기자 2012.3.19>

 

 

 

※ 본문 중의 사진 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블로그 주인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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