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통큰 사나이
'부영 이중근(83)회장'이 이달 초 직원 출산 자녀 1인당 1억원씩, 총 70명에게 파격적인 장려금을 지급하자 환호와 질투가 교차했다. 부영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다른 기업 직원들에게는 부러움을 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가 출산 장려금 1억원에 세금만 4,000만원을 떼일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자, 대통령이 세제 정책 수정을 지시할 만큼 큰 반향이 일었다.
지난해 이 회장은 고향인 전남 순천 서면 운평리 280여 가구에 많게는 1억원씩, 초·중·고교 동창생 180여 명에게도 최대 1억원씩을 전달했다. 모두 전대미문의 기부다. 또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에선 초등학교 600개를 짓고, 디지털 피아노 7만여 대를 기증했다. 사재를 털어 6·25전쟁과 일제강점기 등에 대한 역사책을 집필·출간해 학교·관공서 등에 기부하기도 했다.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학위 수여식. 이중근 회장은 박사모를 쓰고 있었다. 이날 그가 받은 법학박사 학위는 흔히 기업인이나 저명인사에게 수여하는 ‘명예 박사 학위’가 아닌 정식 박사학위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공공 임대주택 관련 법의 위헌성 및 개선 방안에 관한 헌법적 연구’!
헌법학 석학으로 꼽히는 장영수 교수가 지도한 이 논문은 공공 주택 특별법의 일부 조항이 임대 사업자의 계약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실제 임대 주택 분양 사례를 통해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임대주택 사업이 주력인 부영이 1983년 설립 후 지금까지 공급한 임대 주택은 23만가구에 이른다. 이 회장은 “나만큼 임대 주택 사업을 해본 사람은 없으니, 한국에서 내가 제일 많이 알긴 할 거요”라며 웃었다. 거액의 출산 장려금과 기부, 법학박사 학위까지 그는 왜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부영 본사 집무실과 졸업식장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 재판받은 것을 계기로 법 공부
- 배움엔 나이가 없다고 하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법학 공부를 결심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음, 솔직히 말해 (2018년) 재판을 받으면서예요. 나름 법을 잘 지키려고 했는데 법정에 서게 됐으니, 내가 무슨 법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직접 좀 알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던진 첫 질문에 이 회장이 직접 ‘재판’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배임 등의 혐의로 형을 살았다.
- 그런 경우 억울해 화병을 얻는 게 보통입니다만...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려대에 박사 과정 신청을 했는데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다른 지원자들과 똑같이 지원서와 연구 계획서를 다 냈는데, 재판받느라 수업에 출석할 수 없으니 합격할 수가 없었지요.
나중에 입학하고, 2년 넘게 논문에 매달렸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알게 됐어요. 내가 상법이나 행정법은 잘 지켰는데 형사법은 몰랐구나. 형사법을 알려면 결국 헌법을 알아야겠다 싶어서 ‘헌법’을 공부하게 된 거예요.”
- 법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논문이 공공 임대주택 관련 법의 위헌성을 연구하는 것인데, 내가 워낙에 많이 해본 임대 사업을 소재로 한 것이라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공부를 하는 재미가 있었지요. 또 헌법을 공부하면서 국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이번에 ‘출산 장려금 1억원’ 지급을 결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헌법 공부가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울해서 시작한 헌법 공부 덕분에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셈이죠.”
이중근 회장은 이달 초 열린 회사 행사에서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씩, 셋째부터는 임대 주택 공급이라는 출산 장려책을 내놨다. 이때 출산 장려금에 40%나 되는 세금이 붙는 문제점을 지적해 정부에서 “출산 장려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답을 이끌어 냈다.
- 헌법 공부와 출산 장려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헌법은 전문부터 국가 안전과 질서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국가 안전은 군대, 질서 유지는 경찰이 맡지요.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외국인을 데려올 수 있고, 물건이 없으면 수입하면 되지만, 군대와 경찰은 외국에 맡길 수 없고 자국민이 해야 합니다. 징집제든 모병제든 기본 인력이 없으면 무슨 수로 군대나 경찰을 유지하나요? 우리 세대는 이렇게 밥 먹고 살다 가면 되지만, 2050년쯤 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최소한 지금 수준으로 인구를 유지할 수는 있어야죠.”
- 출산 장려금 1억원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
“기부나 장려금 지급은 밑바탕에 선의가 있어야 하지만, 그 속성을 보면 사업 거래와도 공통점이 있지요. 저는 기업하는 사람입니다. 흥정할 땐 파는 쪽과 사는 쪽이 모두 만족해야 거래가 성사됩니다. 기부도 하는 사람의 형편이 어떤지, 받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죠. 낳을 때 500만원, 학교 들어갈 때 또 얼마를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는 받는 사람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합니다. 그래서 1년 정도 직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1억원이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 출산 장려금에 붙는 세금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가 감면하겠다고 한 것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1억원은 돼야 출산 장려 효과가 있다고 봤는데, 세금 떼면 6,000만원밖에 안 되니까요. 이게 과연 타당한지 한 번 생각해 보자고 던진 거예요. 이 세금 문제를 미리 해결하고 싶어서 지난 1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부탁도 하고 그랬는데 잘 안 됐어요. 누구는 ‘여유있는 기업만 줄 수 있는 것 아니냐’ 했고, 누구는 ‘새로 출산한 사람들만 혜택을 본다’고 했지요. 그래서 결국 1억원 지원하면서 세금을 물게 되더라도, 한번 매달려 보자는 생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 회장님의 지적을 정부가 어느 정도 수용해 기뻤겠습니다.
“사실 기뻐할 쪽은 내가 아니고 국가, 그리고 담당 공무원이어야죠. 한 해 정부가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50조원 넘게 씁니다. 지금 1년에 태어나는 아이가 25만명쯤 되고요. 이 아이들에게 1억원씩 주면, 25조원이에요. 출산 장려금이 효과를 내서 한 해에 50만명이 태어난다면, 1억원씩 딱 50조원이 들어요.”
- 이제 부영 직원들의 자녀 출생률이 좀 올라갈까요?
“지금 우리 직원들도 아이를 잘 안 낳죠. 그룹 직원이 2,500명 정도 되는데, 한 해 태어나는 직원들의 아이는 25명 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35명, 후년에는 40명 정도로 오르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회장님 손주들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4남매를 뒀어요. 그 아이들이 결혼해서 3명씩, 지금 손자가 6명, 손녀도 6명입니다. 부부가 아이 셋 정도 낳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쉽지는 않죠. 그래서 우리 직원이 셋째를 낳으면 임대 주택을 무료로 주겠다고 한 겁니다.”
■ 일터 떠나 있는 동안 나눔 결심
이 회장은 어릴 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대학(건국대)을 중퇴할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1983년 설립한 부영그룹은 2023년 현재 계열사 21개, 자산 규모 21조1000억원의 재계 19위(공기업 제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과 부영은 1억원 출산 장려금 이전에도 다양한 기부 활동을 해 왔다. 그 이유도 남달랐다.
6·25 정전 70주년을 맞은 작년 6월에는 순직한 공군 조종사의 유자녀를 돕는 ‘하늘 사랑 장학 재단’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모두가 배고팠던 1960년대 초, 큰 키(186㎝)에 체구가 좋던 이 회장은 공군 부사관으로 5년 6개월 복무하며 군 지휘관의 배려로 밥을 2인분씩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고마움을 갚겠다며 거액을 내놓은 것이다. 또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에 버스 2,000대와 초등학교 600개를 기부하고, 초등학교에 전자 칠판 60여 개와 디지털 피아노 7만여 대를 기증했다. 동남아에서는 초등학교 졸업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졸업식 때 사용할 디지털 피아노를 기증하면서 한국의 ‘졸업식 노래’와 동요를 넣어 보냈다.
이 회장은 “우리가 어린 시절 미국 민요 ‘켄터키 옛집’을 불렀던 것처럼, 그 나라에서 우리나라 노래를 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