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길
총신대학교 신학과 문현화
막6:17~29
헤롯왕은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해서 자기부인으로 만들었다. 세례요한은 이들을 책망한다. 성경은 책망을 받는 사람들의 4가지 부류를 말한다. 악인들은 이를 간다. 이 세상사람(자연인)들은 죄악가운데서 머물러 사는데 이 죄를 들추어내니 이를 갈며 복수를 한다. 둘째는 양심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다. 간음하다 잡혀온 사람들 앞에서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들은 이 여자를 치라고 말씀하시자 슬금슬금 도망간다.
셋째부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헤롯왕도 이 부류에 속한다. 또한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두었던 벨릭스도 복음을 두었지만 믿는 것도 아니고 바울을 놓아주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넷째는 양심에 찔림을 받으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사도행전에 베드로의 선포를 듣고 찔림을 받고 어찌 할고라고 한탄하는 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자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세 가지의 역설적인 비밀이 들어있다. 헤롯은 딸의 요구로 (음란한 여자의 춤값)으로 죽게 된다. 헤롯은 이 나라의 절반이라고 달라고 하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다시생각 해보면 세례요한의 값이 나라의 반값을 치룬 것이다. 의인들(하나님의사람들)의 값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둘째는 세례요한은 죽었다. 자기를 이을 뒤를 염려하지 않고 죽은 것이다. 그러나 광야에서 웨치는 소리는 계속된다. 구약성경의 히스기야는 죽을병이 들었으나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15년을 더 연장하여 산다. 이것은 복인가 저주인가? 히스기야가 죽을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주변국들에 퍼졌을 것이다. 멀리 바벨론에서 사신을 보내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을 축하한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들에게 나라의 보물들을 다 보여준다. 사실상 이 사신이라고 하는 것은 이 나라를 정탐하려고 왔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나라 왕에게 가서 다 알려주었을것이며, 결국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12세에 나라를 물려받는다. 이 아들은 죽을병에서 살아난 후 3년 후에 낳은 아들이다. 그런데 이 므낫세는 유대나라의 왕들중에 가장 악한 왕 이였다고 기록한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기 날을 연장했지만 그 결국이 좋지 않았다.
세례요한은 그때 죽어야지만 했다. 구약성경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지만 빨리 죽었다. 요나단이 일찍 죽으므로 다윗의 왕권은 튼튼해진다. 요한이 살아있었으면 예수님과 두 파로 갈라지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으므로 예수님 안에 하나로 통합된다.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거룩한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느낀점: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로써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네라고 답하며 갈 마음이 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결국 죽음 끝에 크신 하나님 품에 들어간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발견한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움과 두려움이 가득할 것이다.
또한 히스기야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대부분 들어보았는데, 또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성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람아 잔잔해져라
마8:23~27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 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거늘
예수님이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분을 만나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분이 계시는데 아무런 교류가 없이 살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계속해서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을 느끼며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전혀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은 우리 집에 주인으로 계신다. 이런 주인에게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공적예배시간에도 같다. 주여 나의 찬양을 받아주옵소서. 주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주여 나에게 말씀을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며 예배를 드려야 한다.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배를 타고 지나가다가 풍랑을 만난다.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죽게 생겼음을 고백한다. 우리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거센 풍랑을 만난다.
자녀들의 많은 집이나,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바람 잦을 날이 없다. 이 마지막 때 물난리가 나는 시기이다. 중국은 큰 우박피해, 다른 나라는 대홍수, 러시야는 전쟁으로, 중국은 대만을 치려고 하고, 대한민국도 풍랑을 피해갈 수 없다. 서북미지역은 재앙들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평안하고 좋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해야 한다.
가정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깨워야 한다. 가만히 계시지 말고 도와주실 것을 요청해야 한다. 모든 것을 내가 주인으로 생각하고 하고 진짜 주인 되신 예수님을 쉬게 하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다. 예수님이 참 주인이심을 알면 그 분께 자꾸 부탁을 해야 한다.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을 내가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잔잔해지고 평화가 온다.
세상은 끊임없이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전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평안한줄 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리석은 자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 죽음은 우리 앞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는 평소에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은 큰 환난의 날에 넉넉히 이기지만 평소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환난을 견뎌내지 못한다. 세상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풍랑들도 주님의지 하고 기도하며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느낀점:
왕 보다 앞서서 달려가자
왕상18:41~46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끓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황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이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라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 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찰ㄹ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이 본문의 상황은 아합왕은 마차를 타고 엘리야는 달려가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사람들보다 앞서서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세상이 더 앞서 가는 것이다. 세상기업들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많은 연구를 한다. 교회가 많은 부분을 세상에서 배우지만 무작정 세상의 것을 따라가면 안된다.(배울 것은 배워야한다.)
대한민국에 리조말엽에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쇄도정치를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우겼지만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받아들였으면 더 좋은 결과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세상을 주도해 나가는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들이다. 기독교 국가들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공산국가에서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결국기독교복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사탄(공산주의)의 선동에 다 넘어간다.
스탈린의 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칼맑스, 레닌도 마찬가지이다. 현재는 중국의 시진핑이 비슷한 슬로건을 걸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사는 세상은 천국에 가야 가능한 일이다. 이 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귀는 선동하는데 넘버 원이다. 북한의 김일성이 공산주의를 한다면서 지주의 땅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준다고 했지만 그 땅에서 나온 수학을 다 수탈해간다. 공산주의 현실이다. 러시아도 중국도 공산주의로 인해 가난해지자 공산주의를 버린다.
본문 앞에서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는 것이다. 갈멜산 제단에서 내기를 한다. 바알선지자 아세라 선지자대 엘리야이다. 서로 자신이 믿는 신들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교회에는 성령의 불이 내려야 한다. 성경에서는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말한다. 설교를 할 때 불을 내려주시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증거이다. 그 반대로 아무런 감동이 없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 불이 내려서 재물을 태운 이야기가 3번 나타난다. 첫 번째는 아론이 처음 제사장이 되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제물을 태워버린다. 둘째는 사울 왕이 죄 없는 기브온 사람을 죽임으로 다윗시대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벌(기근)을 내리셨는데 이에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릴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태운다. 세 번째가 바로 엘리야의 제사 때 내리신 불이다.
세상은 멸망의 불이 계속 일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 안에 성령의 불을 내려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성령의 불은 보물이다. 이러한 복을 우리가 받아야 한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다 잡는다. 현대시대에서는 영적으로 내 속에 있는 바알의 선자자를 죽이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지만 죄의 법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긴다고 말한다. 사도바울도 그런데 우리는 오죽 하겠는가? 이러한 우리의 악한 죄의 법을 죽어야 한다.
엘리야가 그의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 기도할 때 처음에는 아무런 징조도 안보였지만 일곱 번째에는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인다. 첫 째 간절한 기도와 확신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확신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하자 손바닥만한 구름이 와서 큰 먹구름이 된다. 비가 내리기 전에 먹구름이 생기듯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전에 이러한 먹구름이 끼는 듯 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반드시 믿고 기도해야 한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령의 불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성도들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그러할 때 자동차는 자리를 알아서 굴러가게 되는 법칙과 똑 같다. 이러한 불이 없이 자기 힘으로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느낀점: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다.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서 3년6개월 동안 이어졌던 가뭄을 해결하신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여섯 번이나 비의 징조가 보이는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엘리야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하는 그의 마음을 조금 느껴볼 수 있었다. 현재 나도 많은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우선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들과 북한 땅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매일과 같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들이 엘리야가 했듯이 간절히 응답이 될 때 까지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설교를 통해서 갖게 된다.
또한 성령의 불에 대한 것이다. 성령의 불이 마음에 떨어지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일들을 이룬다는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죄를 죽이는 일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모든 것이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함을 느낀다.
이미 내 안에 성령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셨지만, 그 분이 내 안에서 충만해 지도록 구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교회공동체 안에도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힘이 각 사람을 주관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해야함을 마음에 새기게 되는 말씀 이였다.
라마나욧 같은 교회
사무엘상19:19~24
구약성경에서 제일 위대한 인물은 첫째는 모세이고 둘째는 사무엘이라고 예레미야는 말한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세운다. 이 세상 나라들이 어떻게 지나왔을까? 옛날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 때 에는 가족 중에 우두머리기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부족들 간에 싸움을 하면서 나라가 세워졌다. 이러한 과정가운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다.
미국은 왕이 아닌 대통령을 세웠다. 이 대통령은 사시기의 사사와 같은 제도이다. 모든 나라들이 미국을 따라 한다. 대통령의 실권이 많은 제도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권위를 짓밟으니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대통령은 백성들의 눈치만 보느라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어렵다. 이 세상이 극심한 부패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왕이 생긴다. 이제 새로운 왕이 다스리는 시대가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 왕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 사무엘을 세워서 사사시대에서 왕이 다스리는 시대로 넘어가는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이 마지막 시대에도 사무엘과 같은 사람을 사용하신다. 과연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사무엘 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고난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태어났다. 이러한 사무엘 같은 사람이 한국사람 가운데서 나타날 것을 믿는다. 학생부수련회 선교여행을 떠나는 일들이 있다. 방학이라고 해서 놀고 쉬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 가운데서 사물엘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모세와 같은 아이들이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사람들은 자녀교육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 끝날것이 아니라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사물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였다.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면 안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녀들이 속을 썩인다. 부모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속을 썩이는 것은 자신에 대해 기도해달라는 싸인이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기 싫으니까 아예 자녀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저주이다. 자녀들을 많이 낳아야 한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가?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나 목사님 나이가 80세^^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간다. 주님 앞에 설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
첫째 우리 자녀들이 훌륭하게 되기를 기도해야한다. 우리하나님은 네가 기도 하는 대로 이루어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응답하지 못한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아우가 어디 있는가 물으신다. 이렇게 하나님은 너희 자녀가 어디 있는가 물으신다. 주님 앞에서 물으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실 때 얼만 행복하겠는가?
부모가 세상에만 빠져가지고 돈을 버느라 정신이 없으면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실까? 첫째가 기도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죄를 범치 않겠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겠다는 마음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즘 기도하는 사람들은 좀 있지만 성경을 읽은 사람들이 없다. 마귀는 이러한 것을 노린다. 세상에 쉽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엄청난 훈련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우리가 성경 읽는 것이 싫더라도 그 것을 이겨야 한다. 때가 되면 확 열리는 시기가 있다. 하나님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래야 진리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는 사람,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을 다윗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니고 다윗은 사무엘이 있는 라마에 있는 나욧이란 동네에 간다. 사울은 다윗이 그것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간다. 그런데 다윗을 잡으러 갔다가 갑자기 성령이 임한다. 이들은 예언을 한다. 장차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윗을 잡으러 왔는데 다윗이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윗을 잡아 갈수가 있겠는가? 다윗을 잡아간다고 해도 역적이 될 것이다.
사울왕이 세 번 사람들을 보내지만 계속 그들은 예언을 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왔는데 사무엘이 있는 곳에 오니 성령의 불이 임한다. 불을 받으니 견딜수가 없어서 겉옷을 벗는다. 그리고 종일 밤까지 이렇게 예언을 한다. 그들에게도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 것이다. 그러하다보니 다윗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성령을 받으면 변한다. 때문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성령께서 사울에게도 임하니 자신의 입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을 예언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는 일이 병자를 고쳐주신다. 얼마나 엄청난 기적인가? 주님은 이러한 기적을 나타내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귀로만 듣지 말고 몸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전능함을 알 수 있다. 예수님 앞에 내 병만 고쳐주세요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베드로에게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다. 베드로 생각에 그것은 말도 안 된다. 어부도 아닌 사람이 그물을 던지라고 하는데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물을 던지는데 너무 무거워서 혼자서는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이러한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분이 누구기에 이런 어마 어마한 기적이 일어나는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이분 앞에선 감히 서 있을 수 없는 자임을 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너는 나를 따라오라 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나 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적을 체험해야 따라간다.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무능하고 죄악덩어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를 만나주시려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꼭 만나야 한다. 그 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우리자녀들을 책임지시고 사무엘과 같은 자녀가 되게 하신다. 오 주님 우리자녀가 사물엘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미국을 살리고 세계를 세우는 인물을 우리 가운데서 세우신다.
느낀점: 세상의 발전과 함께 할 것이 많아지면서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도 구별하는 마음과 시간을 들여서 해야 되는 시대이다. 물론 이전 세대 어른들도 마음과 시간을 구별하여 자녀들을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부모들에게는 이전보다 더 큰 결단과 구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을 살다보면 자녀들의 신앙까지 신경 쓰지 못하고 그냥 지쳐서 하루를 마치는 그런 경우들이 많다. 결국 부모가 자녀들을 위한 구별된 기도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어렵다는 것은 느낀다. 정말 하나님 앞에 부모인 내가 먼저 기도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함을 설교를 통해 느낀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자녀의 앞날을 책임져 주시고 그의 인생에 임마누엘로 함께 하실 것이며 사무엘과 모세와 같은 영적인 능력을 부어주셔서 사용하심을 믿고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주께서 도우시길 간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