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숙의 하루는 가게에서 시달림을 당하면서 아들을 보호하는 일로 시작이 되고 마무리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초저녁이 되기 전부터 이미 지쳐있을 때가 많았다.
큰 손자인 상원이는 이제 고삼이다.
언제부터인지 상원이는 마음을 잡은 듯이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서 귀가시간이 늦는다.
윤병숙은 그것이 신통하고 대견스럽다.
그러나 상원이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이미 포기하고 페스트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를 실망 시키지 않으려고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한다고 속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집안의 사정으로 대학을 합격을 한다고 해도 대학에 입학할 돈이 없다는 것을 상원이는 잘 알고 있었다.
상원이는 학교보다도 돈을 벌고 싶었다.
철이 들기 전 부터 엄마는 공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상원이는 가슴이 아프다.
없는 돈에 대학 입시공부를 하기보다는 그런 시간에 한 푼의 돈이라도 벌어서 엄마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늦은 밤에 집에 귀가를 하면 할머니가 없는 살림에도 자신의 야식을 준비해 주시곤 하시는 것을 보면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고 싶었으나 지금 자신이 공부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즐거워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할머니와 엄마를 실망을 시켜 드릴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서 할머니가 너무나 힘겨워하시는 것만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픈 상원이다.
그런 상원이를 알지 못하는 윤 병숙은 그날도 상원이의 야식을 위해서 만두를 좋아하는 손자들을 위해서 만두를 하려고 가게를 잠시 비우고 집으로 들어간다.
고기를 넣지 않고 잘 익은 김치를 곱게 다져서 갖은 양념을 해서 만든 만두를 손자들은 유난히도 좋아한다.
그날은 아무도 찾아와서 괴롭히는 사람들도 없었다.
모처럼 마음이 한가한 날이기도 했기에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재료를 사서 들고는 집으로 들어간 윤병숙은 뜻하지 않게 집에 있는 며느리를 본다.
“아니? 어멈아! 이 시간에 웬일로 집엘 있니?“
그리고 며느리의 얼굴 표정을 보자 그만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다.
새하얗게 질린 며느리의 표정이다.
“어멈아! 너 어디 아픈 것이냐?“
“어머님!............”
주영은 시어머니를 보자 그대로 주저앉는다.
주영은 일을 하면서 너무나 몸이 아파서 일찍 조퇴를 하고 병원엘 들려서 집에 돌아온 것이다.
감기 몸살이 난 것을 그대로 방치를 했더니 몸은 더 악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을 하자 은행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대출 상환 기한도 넘고 밀린 이자도 내지를 않아서 집을 경매에 처분한다는 통고였다.
주영은 잠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이 받은 전화의 내용을 시어머니께 말씀을 드린다.
“뭐......뭐라고 했니?”
“이제 정말 우린 어떻게 살아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말이냐?”
“네! 그것도 상환기일이 한참을 지났고 이자도 한 푼도 내지를 않아서 더 이상 사정을 봐 줄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머님! 도대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
윤병숙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넋이 나간다.
“아니다! 이건 뭔가 착오가 있는 것 일게다. 아범이 또 다시 이 집을 은해에 넣지 않았을 거다.“
윤병숙은 그래도 아들을 믿고 싶었다.
아니, 아들을 믿는 다는 말투였다.
“어머님! 아직도 아범을 믿으세요?“
“그래! 난 내 아들을 믿는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은행에서 착오가 있을 거다.“
그런 윤병숙의 말에 주영은 시계를 본다.
아직 공무원들이 퇴근을 하려면 한 시간 가까이 남아 있는 시간이다.
주영은 급하게 집을 나서서 등기소로 향한다.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기 전에는 절대로 시어머니는 아들을 믿을 것이다.
주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등기소로 향한다.
그리고 등기부 등본을 떼어서 집으로 가지고 온다.
“어머님! 이 등기부 등본을 보세요. 벌서 이 년 전에 은행에 근저당 설정이 되어 있어요.“
팔천만원에 집이 은행에 근저당 설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 이구!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다는 말이냐?“
그제 서야 윤병숙은 통곡을 한다.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가족들이 모두 어디로 나 앉아야만 할지 눈앞이 캄캄해져 온다.
아직 갚아야할 빚이 일억이 넘는데 또 다시 집마저 은행에 들어간 상태였다.
주영은 차라리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젠 더 이상 참고 기다린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윤병숙은 밤새 한 잠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날이 미처 밝기도 전에 윤병숙은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선다.
이젠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윤병숙이 간 곳은 정남이다.
정남은 미처 잠이 깨기도 전에 초인종 소리에 눈을 뜨고 나온다.
“아니? 어머니! 지금이 몇시인데.....“
그러나 윤병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어요?“
윤병숙은 막내 딸 정남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정남아! 이 엄마가 네게 이렇게 사정을 하고 애원을 한다. 한번만......... 이번 한 번만 성열이를..... 아니, 이 에미하고 네 조카들을 봐서라도 우리를 좀 도와 다오.“
“무슨 일인지 이러지 마시고 앉으셔서 말씀을 하세요!”
정남은 이미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왜요? 자꾸만 빚쟁이들이 성열이를 괴롭히고 그래요?“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이 에미가 이렇게 이른 새벽에 자는 너를 깨워서 무릎을 꿇으면서 애원을 하겠니? 우리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
“뭐라고요? 도대체 왜?...........“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벌써 이 년 전에 우리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은 모양이다. 그동안 이자도 한 푼도 내지 못하고.......“
“그만 하세요! 도대체 성열이는 어디까지 가족들을 괴롭힌다고 합니까? 아들이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 온 집안을 거덜을 내야 속이 시원하다고 합니까?“
“정남아! 네가 어떤 말을 해도 이 어미는 달게 받겠다. 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모른 척 하지만 말아다오.“
“어머니! 내가 어디 돈이 그렇게 많은 줄 아십니까? 그리고 설사 그런 돈이 있다고 해도 단 한 푼도 내 놓을 생각도 없습니다.“
정남의 말은 매몰차다.
윤병숙은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정남의 성격이 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준 어미에게 이렇게 모질게 나오지는 않으리라 생각을 하고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 것이다.
“정남아! 에미가 이렇게 사정을 해도 안 되겠니?“
“어머니! 아무리 어머니가 어떠한 말씀을 하신다고 해도 없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자꾸 그렇게 성열이를 감싸고도신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성열이는 사람 노릇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하고 말 것이에요. 자신이 저지를 일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를 하라고 하세요.“
”그래! 이제 이 어미에게는 자식들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언제 어머니께서 우리 딸들을 자식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어요? 어머니의 마음에는 오직 성열이만 어머니 자식이 아니었던가요? 어린 내가 아무리 아파도 밤새 열이 나서 끙끙 앓아도 언제 한번 제 이마조차 짚어 주시면서 관심을 가져 주신 적이 있었던가요?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마음에는 오직 아들뿐이 없어요.“
“...............”
윤병숙은 정남의 말에 대꾸할 아무런 말도 없다.
정남이의 말대로 윤병숙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뿐인 아들 성열이 뿐이었다.
윤병숙은 다시 한 번 정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사정을 한다.
“정남아! 이번 한 번만....... 지금 상원이 어멈이 안 살겠다고 하니 어쩌니?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성열이는 이제 완전한 폐인이 되는 길 밖에는 더 있겠니?“
“내가 올케라 하더라도 살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는 왜 성열이 하나만 눈에 보이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보시지를 않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어머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아무리 그래도 난 내 아들이 우선이다. 우리 성열이만 살아 갈 수만 있다면 어떠한 악마에게라도 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 내가 내 아들을 위해서 못할 일이 어디 있겠니?“
“어머니가 그러시기 때문에 성열이가 지금까지도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세요?”
“세상에 어느 어미가 자식의 고통을 그대로 앉아서 바라볼 수가 있겠니? 너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서 어미의 마음을 모를 것이다.“
“아니요! 어머닌 그래서 올케의 심정을 그렇게 잘 이해를 해 주셨나요? 그래서 조카들의 학업에 쓰려던 돈들을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그렇게 어머니 마음대로 성열이에게 다 내어 주셨나요? 올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이나 해 보셨어요?“
“그 일이야 어쩔 수 없었다.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 서방의 일이니 전들 다른 마음이 있을 것이 무엇이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자식도 소중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일이 먼저 아니겠니?“
“그럼, 어머니도 성열이 보다는 아버지가 먼저였습니까? 아니지 않았습니까? 제 어린 기억속에서도 언제나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어머닌 아들인 성열이가 우선이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보다도 제일 우선이 아들인 성열이었어요. 그러셨던 어머니가 어떻게 올케에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어요? 그러니 어떤 여자가 그런 남편과 그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
정남은 아주 냉정하게 어머니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었다.
“지금 난 네게 그러한 말들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우선 경매에 넘어가게 된 집을 좀 막아 주었으면 하고 사정을 하러 온 것이다. 정남아! 이 어미가 다시 한 번 더 이렇게 사정을 해도 정말 안 되겠니?“
“네! 그럴만한 여유도 없거니와 그런 마음도 없습니다.“
정남의 대답은 냉정하다.
“알았다!”
윤병숙은 그대로 정남의 아파트를 나선다.
정남은 혼자서 살면서도 서른다섯 평의 넓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시인으로 책을 출판을 해서 번 돈과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남의 수입은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러나 정남은 무척이나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른다섯 평의 아파트는 정남이 유일하게 누리는 사치였다.
정남은 다른 곳보다도 자신의 안식처인 아파트를 검소하지만 품위 있게 꾸미면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긴다.
여자로서 살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살기를 원하는 정남이다.
이제 인간으로서 이 정남이라는 이름을 달고 떳떳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면서 지난날들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정남이다.
자신이 살아왔던 그 모든 것에서 탈피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설계를 하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자유를 누려오던 정남이다.
강의가 들어 있지 않는 날들은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면서 나름대로의 시상에 빠지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시들을 엮어내는 정남이다.
정남은 언니들조차도 만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간간히 어머니가 찾아오시기는 하지만 자신 스스로 찾아 가는 일이 거의 없는 생활이다.
그것은 지난 과거들을 일부러 추억하기도 싫었지만 동생인 성열이의 생활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기만 했던 것이다.
또한 아직도 아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다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속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