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대장과 함께
격동기 한국사를 곱씹는 공간이자
전남북 山群을 비롯한
유장한 智異를 바라보는
백아산에서의 인문기행 맛보기!
- 오름길에서 바라본 무등산과 호남정맥 -
- 오름길에서 바라본 하늘다리 -
- 하늘다리 -
- 마당바위 -
"마당바위는 사방 어느 쪽에서 보나 빼어나게 생긴 바위 봉우리였다.
산줄기 위에 우뚝 치솟은 그 모습은 바위의 무게감으로 장중했으며,
위로 뻗치는 기상으로 장쾌했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으로 수려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였다.
그 바위는 이십 미터 이상의 위에 그냥 덩그렇게 놓인 형상이 아니고
그 뿌리를 그 거대한 바위가 산 아랫부분과 유연하게 연결을 이루어
자연스러운 조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 벼랑바위 사이를 어렵사리 타서 위에 오르면, 거기에 또 하나의 경이가 펼쳐져 있었다.
삼백여 평을 헤아리는 그야말로 넓은 '마당'이 질펀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무슨 조화인지 바위가 평평해서 된 '바위마당'이 아니고 흙으로 된 '흙마당'이었다.
그리고 바위는 담을 치듯이 가장자리를 따라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넓은 바위가 흙을 담고 있는 격이었다.
물이 있는 곳에 고기 있는 것이 자연의 철칙이듯이
그 흙에도 갈대·소나무·잔디·풀 같은 것들이 뿌릿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바위’는 살벌하지 않고 그지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 <태백산맥> 제9권 226쪽 -
"빨치산에게나 토벌대에게나 그것은 천연적인 망루고 초소였다.
백아산지구에서 그것을 빼앗기자 토벌대는 그곳에다 곧바로 병력을 배치시켰다.
그 마당의 흙은 텐트치기에도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앗겼다는 것은 백아산지구로서는 실질적으로 안방문을 다 열어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감시를 받았고, 심리적으로 심장을 빼버린 것 같았고,
상징적으로 백아산지구가 없어져버린 것 같았던 것이다.
실질적 피해를 없애고,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고,
상징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마당바위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토벌대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번째 싸움에서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거기에 맞서 빨치산들은 네번째 공격을 준비했으나 실행에 옮길 수가 없게 되었다.
토벌대들은 남아 있는 해방구 반을 마저 없애고 말겠다는 듯
지난번 장마 때의 공격처럼 막강한 병력과 화력을 동원해 밀어닥쳤던 것이다."
"박격포탄이 제멋대로 날아들어 해방구를 뒤집어엎고 있는 속에서
빨치산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일단 배수진을 친 곳은 해방구와 천연경계를 이루며
곡선으로 길게 뻥어나가고 있는 산줄기의 고지들이었다.
백아산보다 낮은 그 봉우리들에 빨치산이 붙인 이름은,
해방구의 무등산 쪽 입구로부터 따발고지·폭탄고지·승리고지·강철고지·인민고지 등이었다.
그 고지들로 물러선 것이 박격포탄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 하더라도
일단 해방구 전체를 적에게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철고지에 배치된 조원제는 멀찍하게 솟아 있는 마당바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하늘을 배경삼아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우뚝 솟아 있는 바위는 멋들어지고,
몇 차례씩 목숨을 걸고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마당바위를 빼앗긴 지는 오래고,
이제 반 남았던 해방구까지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파악된 일이었지만 토벌대들은 군경이 합동으로 작전을 펴면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각 지구를 차례로 돌아가며 공략해대고 있었다.
그건 이쪽의 병력 소모를 꾀하면서, 해방구를 파괴하려는 이중작전이었다.
적들의 그 집중화된 공격에 각 지구들은 어찌할 수 없이 많은 피해를 당해가고 있었다.
역시 군인들이 가세된 화력전은 그 위력이 만만찮았던 것이다."
- <태백산맥> 제9권 227쪽 -
- 백아산정 -
백아산은 석회석으로 된 흰바위가 소나무 숲에 가려져
바람이 불면 흰거위가 나무에 앉아 움직이는 형상이라 하여 흰 백, 거위 아자를 써서 백아산이라 이름하였다.
하지만 남도 사람들의 마음에 백아산만큼이나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 아픔이 어린 산이다.
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와 험한 산세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전남총사령부가 주둔(노치리 뒷산 해발 700m고지)했다.
또, 수리, 노치, 솔치 지역에 병기 공장을 건립하고 활동했으며
노치 동화석골에 진지를 구축, 백아산 매봉과 마당바위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간의 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하여 남도 사람들은 늘 백아산에 대해서 조심한다.
- 백아산정에서 바라본 천불봉과 하늘다리 -
- 백아산정에서 바라본 조계산과 모후산 -
- 백아산정에서 바라본 지리(만복대~노고단~반야~천왕)_zoom -
- 팔각정 -
첫댓글 아픔역사을 담고 있는 백아산의 마당바위와 태백산맥에 서린 사연들 ~
민족간의 전쟁이 너무 아픈 역사인것 같습니다
☆유대장님은 빨지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은정보와 일가견이 있으시니 덕분에 ㅡ사진과 글들 잘 읽어봤습니다
'허접한 빨찌 산쟁이'에 불과한 저에게 과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슴돠^^
게시물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우리네 격동기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도 있으며,
無等과 智異는 물론이요..
전북 남부와 전남 내륙의 산무리들을 유장하게 바라볼 수 있는 名山이랍니다!!
함께할 이번 주 일욜이
기다려지는 화욜 아침입니다,
동부능선 대장님~🤗
의미 깊은 곳이군요.
마당바위는 정말 절묘하게 생겼군요.
그리고 그곳에서 백운산 도솔, 똬리봉, 상봉, 억불봉 능선도 보일겠죠?
그렇고 말고요~ㅎ
農道인 전남이지만서도!
내륙에는 山群들이 무성하게스리 이뤄짐을
백아산줄기에선 읽어낼 수 있는 독보적인 묘미가 있답니다,
먼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