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복지의 사각 지역에 있는 노숙인을 위한 회복 사역을 20여 년간 지속한 교회가 있다. 물만골교회 담임 문상식 목사는 노숙인 무료급식 사역이 계기가 돼 노숙인 수련회를 해마다 진행하며 이들에게 삶의 위로를 전하려는 노력해 왔다. 점차 발전해 노숙인 신앙 공동체와 교회를 형성했고, 이를 통해서 이들의 신앙 회복과 자활을 돕는 목회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부산에서 문 목사를 만났다.
노숙인 사역 시작 배경
문상식 목사가 노숙인 사역을 시작한 때는 IMF 무렵이다. 당시 부교역자였던 문 목사가 진행하던 제자훈련반에 참석하던 한 여 집사가 빵과 두유를 사서 부산역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나눠 주는 일을 시작했는데, 이 일이 교회에 알려지면서 제자훈련반 30명이 ‘예수향기’라는 조직을 만들어 노숙인에게 먹을 것과 거처, 직업, 교회로 인도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부산역에서 무료급식 단체와 협력해서 봉사했다가 1999년 10월부터 예수사랑선교회를 세워 사역을 진행했다. 이후 비영리 민간단체 사랑나라로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이후 2005년 아시아태평경제정상회담이 부산에서 개최되면서 노숙인 배식 장소가 부산진역으로 밀려났다. 이때 4개 단체가 모여 고정식 텐트를 치고 급식을 진행했다가 다른 단체들이 가세하면서 15개 단체가 매일 세 끼를 제공하는 무료급식 사역으로 확대됐고, 매일 350명이 와서 식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역 근처에 노숙인 종합센터가 세워지면서 매일 급식을 통해 120명 노숙인과 쪽방 거주민을 대상으로 식사를 지금까지 제공하는데 문 목사도 교인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 점심 봉사를 해 오고 있다.
노숙인 수련회
이후 문 목사는 2003년부터 사랑나라수련회를 시작했다. 노숙인 수련회를 시작한 이유는 노숙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다. 급식을 통해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는 채워 주고 있지만 노숙인의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대부분의 노숙인이 역기능 가정 출신으로 상처가 많고 정신과 영이 무너져 있습니다. 사역 초기에는 이것을 몰라 육체적인 필요가 채워지면 노숙 생활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후 짧은 기간이지만 수련회를 열어 이들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합니다. 자원을 총동원해서 잘 먹고 잘 쉬고 좋은 것을 보여 주고 누리도록 합니다. 노숙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받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매년 봄 가을 2회에 걸쳐 3박 4일 과정으로 진행되는 사랑나라수련회에는 코로나 이후에는 연 1회 진행하며, 매회 30-50명의 노숙인이 참가한다. 2024년 1월까지 32회가 진행됐다.
수련회 초기에는 어려운 점도 많았다. 그러나 문 목사는 오히려 은혜가 넘쳤다고 말한다. 장소나 인력은 열악했지만 노숙인 정부 지원이 없었던 시기여서 당장의 삶이 절실했던 이들에게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노숙인들도 열심히 참여했고, 참여 후 신앙적 결단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후 노숙인에 대한 정부의 복지 지원이 시작되고 노숙인들이 기초 수급자가 되면서 배고픔의 절실함이 사라졌다. 문 목사는 이에 맞춰 수련회 내용과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설교와 강의 중심에서 나들이와 공연 관람 같은 경험 중심으로 진행했다. 금년 1월에 진행된 사랑나라수련회부터는 노숙인과 함께 여행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금년에는 거제와 통영에서 노숙인 수련회를 진행했는데 관광과 체험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또 3명이 한 조가 돼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수련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서로 돌보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사랑나라수련회에서 섬기는 이들은 주로 노숙인 신앙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이들이다. 처음에는 노숙인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수련회 준비와 운영에 필요한 스태프로 활약하고 있다.
실패를 맛보며 시작한 교회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은 노숙인 중에서 노숙 생활을 접고 새롭게 살아보고자 기도하고 결심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실제적인 변화는 쉽지 않았다. 며칠 만에 노숙인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들에 대한 꾸준하고 지속적인 양육과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문 목사는 우선 김해 장유에서 노숙인과 일반인이 함께 어울리는 교회를 개척했다. 또 농가 주택을 얻어 노숙인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역 모두 실패를 맛봤다.
문 목사는 노숙인 사역에 대한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노숙인이 통제받기를 극도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여느 시설처럼 생활 규칙을 만들고 지킬 것을 강요했어요. 이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게다가 노숙인 대부분이 중독 문제가 있었고, 서로 만나면 싸우는 등 공동체가 바람 잘 날이 없었어요.”
문 목사는 2006년 부산 달동네인 물만골에 들어와서 다시 한 번 노숙인 공동체(이하 예향가족공동체)를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당시 물만골에는 20여 개의 절이 있었는데, 교회가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이후 문 목사가 마을 공동체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마을 사업에도 열심히 활약한 덕분에 지금은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았다.
예향가족공동체는 노숙인의 회복과 자립을 목표로 한다. 이 목표는 노숙인들이 하나님을 만나야 가능하기 때문에 예향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물만골교회를 시작했다. 물만골 주민은 지금도 물만골교회를 노숙인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활용 공간이 필요해졌고, 교회 주변에 집을 재건축해 거주 공간을 확장했다. 동시에 10명에 달하는 노숙인 공동체 유지와 이들의 재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첫째, 문 목사는 노숙인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서로 간의 이해와 최소한의 규칙, 그리고 노숙인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그는 노숙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힘썼다. 예향가족공동체도 시작이 쉽지 않았다. 노숙인끼리 서로 이해를 못 한 상태에서 매일이 다툼의 연속이었다. 문 목사도 오랫동안 노숙인 식사를 하면서 이들을 섬겼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노숙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처음 보면 노숙인은 보통 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이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행동 교정만으로는 어렵고,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 원인을 노숙인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배제라고 봅니다. 일반인이 어릴 때부터 가족으로부터 관계를 배우고 삶 훈련을 받지만, 노숙인은 대부분 역기능 가정에서 태어나 이러한 기본적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동체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는 사회 시스템의 돌봄을 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노숙자’를 ‘홈리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홈’은 집·가족 개념이 더 강하다. 가족으로부터 돌봄과 관계를 맺으면서 한 사람이 성장하기 때문에 가족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문 목사는 공동체에 속한 노숙인과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가족처럼 돌봄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예향가족공동체는 다수가 아닌 소수로 운영되는 것이 운영 목적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예향가족공동체는 느슨한 공동체다. 아무리 노숙인 공동체 규칙을 세워도 지킬 능력이 부족하기에 강제적인 규칙을 부여하기보다는 노숙인들이 서로 모여서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도록 해서 스스로 지키게 했다. 가령 공동체에서 술은 먹지 않기 등을 서로 약속하면서 지키도록 독려하며 최소한의 규칙으로 공동체를 유지한다. 또한 서로 격려하며 성경 읽기나 신앙 훈련, 기도회도 같이 참여한다. 주일 11시에 예향가족공동체를 포함해 15명이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성경 공부를 한다. 수요예배도 참여한다. 노숙인이 아닌 교인들도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서로 특별 대우를 하지 않으며 동일한 신앙의 지체로 서로를 대한다.
둘째, 문 목사는 노숙인들이 재활을 위해서 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숙인에게 일을 하게 만들고 공동체가 자립하려면 수익이 필요했다. 2008년에 정부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노숙인들은 일용직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문 목사가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은 건축이었다. 그때까지 건축에 관심이 없었지만 폐가였던 교회를 노숙인들과 함께 재건축을 했고, 이를 본 마을 주민 요청으로 집수리나 재건축을 몇 차례 진행하면서 건축 기술을 습득했기에 건축은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문 목사는 건축사무소를 통해서 예향가족공동체 식구들과 일을 시작했다. 물만골에서 집수리나 재건축 요청을 받아 20군데 재건축을 포함 50여 가구를 수리해 주었다. 이렇게 노숙인들이 건축 기술을 습득해서 일한 결과로 받은 월급을 공동체에서 관리해 주며, 건축회사는 건축 수익으로 사랑나라선교회를 후원하고 있다.
더 많은 신앙 공동체 형성을 위해
그는 노숙인 신앙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눈높이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원칙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제일 연약한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들 입장에서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교회밖에는 없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영혼을 회복시키는 것을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함께 뭉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문 목사는 건강한 노숙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희망이다. 이를 위해서 올해부터 공동체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독서 모임, 매월 공동체 리더 모임 등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더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신앙 공동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공동체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물만골에서 100가구의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공동체는 수혜자인 동시에 자신이 사역자이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약한 자들이 받는 이익이 있습니다. 약함을 통해서 얻어지는 유익을 통해서 회복됩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관계 맺는 훈련을 통해서 자신과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직간접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첫댓글 희망하시는대로 앞으로도 건강한 노숙인 공동체가 이어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