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부인 양천 허 씨(사계 김장생의 7대 조비) 묘의 봉분 모양이 둥글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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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사진이 양천허씨의 묘, 뒤에 보이는 (조그만) 봉분이 김장생의 묘이다.//오른쪽 사진은 옆에서 본 모습]
이 묘는 逆葬이다. 허씨 묘가 먼저이고, 김장생 묘는 遷葬이다. 후손들은 (이 묘를) “할머니가 손자를 업어주는 형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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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金集)가 쓴 “先祖妣 贈 貞敬夫人 陽川許氏의 묘갈”에
“여기가 우리 선조 비 허 씨의 묘소이다. 선조고(註; 金問, 1373~1393)의 묘소는 長湍에 있고, 연산에서 장례를 모신 것은 우리가 선조 비(註; 추정, 1377~1455)로부터 시작하였다. 고려 말부터 지금까지 300년 동안 가업이 그대로 계속되어 왔던 것은 실로 우리 선조 비 때문이다.(此我先祖妣許氏之墓。先祖考墓在長湍。葬連山。實自我先祖妣始。自麗季迄今三百祀。不墜家業。亶由我先祖妣也。)”고 하였다. [묘소는 충남 논산시 고정리 산 7-4에 있다.]
선조비의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112명(註; 직계후손)이 배출되었다. 그 자손이 급제하면 선조 비 양천 허 씨의 은덕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선조 비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흙을 한 짐씩 가져와 봉분위에 쌓았다고 한다. 급제자가 백 명이 넘으니 흙도 백 지게가 넘자 흙이 묘의 魂遊石으로 내려오지 않게 쌓았기 때문에 봉분의 모양이 둥글지 않고 옆으로 나온 독특한 모양을 하게 되었다(후손, 김용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