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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 인왕산 산행후기
일시: 2023. 3. 19
참석: 150명 (25회 12명)
산행: 3Km (2시간)
젊은 등산객들
아랫말에 매화, 산수유가 한창이지만 바쁜 서울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꽃 구경하러 멀리 갈 필요 없다. 서울 도심 인왕산에 가면 된다. 인왕산 서쪽 바위절벽 산비탈을 꽃망울 터진 산수유가 노랗게 물들였고, 성급한 놈들은 벌써 터졌지만 개나리도 꽃망울 터지기 직전이었다. 다음주말이면 인왕산이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이겠다. 드문드문 붉은 진달래는 꼽사리다.
4년여만에 찾은 인왕산 산행에서 ‘등산이 다시 떴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인왕산 정상 오르는 길은 정체되어 긴 줄이 섰다. 인왕산은 꽃보다 예쁜 젊은 등산객들 세상이었다. 조망명소마다 레깅스나 캐주얼 패션의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고 밝은 모습으로 이폼저폼 바꿔가며 사진찍기에 바빴다.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요가나 수영장 같은 실내활동이 어려워진 2030세대, 소위 ‘MZ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건강을 다지는 야외활동에 눈을 돌려 산으로 몰려온 것이다. 허리수술하고 인터넷 ‘랜선 등산’을 즐기다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등린이(등산+어린이)’라 부르며 근처의 안전한 산을 찾는다. 그 대표적인 산이 서울에서는 인왕산과 아차산이다. 지하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야간산행도 가능하고, 멋진 뷰 맛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보다 예쁘게! 보다 멋지게!’ SNS에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경험을 공유하는 인증문화가 확산되면서 혼자, 연인, 친구들과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이 더욱 증가했다.
‘등린이’들이 인왕산, 아차산에 갔다가 청계산,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 주변 산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등산의 매력에 빠져 먼 곳의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같은 큰 산으로 다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들은 엄두도 못냈던 산속에서의 백패킹이나, 비바크도 거침없이 도전한다.
그래서, 인왕산, 아차산, 등 서울의 산자락들은 주말 명소로 떠오르며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었고, 노티나는 검은색이나 단풍색 등산복이 레깅스나 캐주얼한 운동복 패션으로 확 바뀌었다. 등산복, 배낭과 텐트 등 등산용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아웃도어 산업은 제2차 부흥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MZ세대들의 체력이 이전 X세대나 베이비붐 세대들에 비해 약해서 문제란다. 전국에서 매년 1만 2,000여건의 산악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들의 안전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등산을 즐기기 위해서는 생활속에서 체력을 다지는 운동도 병행해야 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우리 총동산악회도 젊은 후배들이 왕창 쏟아져 들어왔으면 좋겠다.
독립문역 독립공원
주로 경복궁역, 창의문에서 출발했지 독립문역에서 출발하는 인왕산 산행은 처음이었다. 작년에 참석을 못했다.
버스, 지하철 환승이 착착 이루어져 독립문역에 30여분 일찍 도착했다. 이곳에 와서 자주독립 역사의 상징물인 독립문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4번출구는 공사중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독립공원으로 올라가 독립문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날씨는 맑은데 미세먼지가 많아 하늘과 맞닿은 경계는 잿빛이다.
독립문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의 자주, 자강 운동의 기념물이다. 갑오경장이후 독립협회에서 자주독립의 의지로 사대외교의 상징인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프랑스 개선문을 본 따서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하였다. 예전엔 큰 길 한복판에 있었고 전차도 비껴갔었는데 이리로 옮겨 놓았다.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서재필 동상, 독립관, 3.1운동 기념탑, 유관순 동상을 차례차례 둘러보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걸어갔다. 애국선열들의 불멸의 애국혼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서대문형무소’하면 긴 붉은 벽돌담장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나 드라마의 많은 장면들이 내 머리에 각인시켜 놓았다. 옛 날엔 경성감옥, 최근엔 서울구치소라 했는데,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투사들이 옥고를 치렀고, 사형도 당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하자 감옥, 사형장, 보안과 청사, 담장과 망루 등을 사적으로 보존하고 공원으로 꾸며 1992년 광복절에 문을 열었다. 남쪽에 있던 감옥청사를 발굴하고 있다.
인왕산 산행 출발 집결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입구에서 큰 길로 내려갔다.
5번출구 앞은 우리 동문 말고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관람하러 가는 사람들, 안산이나 인왕산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위쪽으로 올라 가세요!" 5번출구 앞으로 가려는데, 집행부에서 목청 돋구어 알린다. 무리 지어 올라갔다.
현수막이 걸린 실제 모임장소는 5번출구에서 150여미터 위 독립공원의 북쪽 끝머리 소나무숲 아래, 정자 남쪽 공간이다. 번잡하지 않고 우리 동문들 뿐이다. 어째 동기들은 한 명도 안보였다. 정자앞 의자에 앉아 정자에 몰려 있는 앳된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엣 시절 생각도 하고, 정자 위 언덕에 있는 활짝 핀 매화를 구경하며 동기들을 기다렸다. 서울에도 확실히 봄물이 올랐다.
내가 안 보였는지 일승이 전화로 "어디야?" 확인하고는 바로 올라왔다. 동기들은 5번출구 앞에 모여있었다. 얼마전 무악재 고개 넘어 홍은동으로 이사를 왔다던 현주도 보이고, 신청 못하고 온 박영도 보였다. 현주는 몇 년 만에 총동산행 참석이었다.
10시 10분, 동문들 다 모이자 총동산악회장의 인사와 함께 사대부고 재학생 10여명도 참석했다고 소개를 하였다. 아까 보았던 앳된 청소년들이 손자 손녀뻘 후배들이었다. 함께 산행을 한다니 청춘의 기운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구호를 외친 후 인왕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무악재 하늘다리
줄지어 무악재로 직진하였다. 통일로 위로 강파이프 아치교 하늘다리가 보였다.
나란히 이웃해 있는 숲길 자락길로 유명한 안산과 바위산인 우백호 인왕산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던 시절에는 가파르고 길목이 좁은 고개로 연결되어 있었고, 숲이 우거져서 호랑이와 산적의 출몰이 잦아 혼자 넘기에는 위험했다고 한다. 호환과 산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모아서 함께 재를 넘으면서 ‘모아재’라고도 불렀다.
1번국도와 통일로, 도로가 생기면서 고개는 여러 번 깎였고, 2017년 하늘다리가 놓이면서 현재의 무악재 모습이 되었다. 22미터 하늘다리 높이가 원래의 고개 높이만큼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무악재에서 도로 왼쪽 데크 계단을 빙돌아 하늘다리로 올랐다. 두 산을 오가는 사람들만 아니라 식물의 증진과 동물들의 자연스런 이동을 고려해 다리를 두 부분으로 나눠 1/5은 통행로, 나머지는 녹지로 조성하였다. 두 산의 다리 주변에도 녹지를 복원하기 위해 많은 나무와 풀꽃들을 심어 놓았다.
육중한 바위 덩어리 인왕산을 머리 위에 두고, 하늘다리를 걸으면서 보니 산비탈은 노란빛으로 은은하게 일렁였다. 발 아래 통일로에 분주한 차들이 보이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도시는 온통 잿빛, 아파트도 건물도 윤곽만 보였다. 남산타워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 다리 덕분에 안산과 인왕산을 연계하여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인왕정 올라가는 길
하늘다리를 건너서 우측 사선으로 길게 뻗은 계단길로 올라갔다.
계단길을 오르니 봄물 오른 작은 생태공원이 나타났고, 개나리 움트는 산비탈 쪽으로 데크길이 길게 이어졌다. 인왕산 둘레길과 만나는 곳에는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다. 데크길이 끝나자 야자매트 깔린 흙길이 나오고, 좌측에 바로 인왕정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계단길이 나왔다. 한꺼번에 몰리니 복잡하여 인왕산 둘레길 따라 배드민턴장으로 걸어 나갔다.
화장실 표시가 있는 또다시 인왕정과 둘레길 갈림길이 나타났다. 여동들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청포도를 안주 삼아 영숙이 직접 담가온 쌀막걸리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이제는 막걸리 장인 솜씨, 확실히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알콜 도수가 높고 맛이 있다.
그 맛에 반해 오죽했으면 막걸리 대장 장용이가 선불로 쌀값을 지불했을까! 영숙이 코가 꿰어 산행 때마다 막걸리를 담가 와야 하는데 조금도 귀찮아 하지 않는다. 장인의 경지에 오르면 술 담그는 자체가 예술작품을 빚어내듯 하나의 즐거움이다.
30기수 후배들은 인사만 하고 둘레길로 나가고, 뒤따라 온 30회 후배들은 잠시 쉬면서 막걸리 한 모금 챙겨 마시고 둘레길로 나갔다. 그 앞의 산비탈에는 노란 산우유 꽃들이 산비탈을 따라 길게 이어져 피어 있다.
뒤처질 것을 염려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려고 먼저 출발하였다.
살짝 핀 개나리 위로 얼굴바위를 바라보며 제법 운치 있는 나무계단과 난간이 있는 흙길을 왼쪽으로 빙돌아 인왕정으로 향했다.
곧 또다시 갈림길이다. 앞쪽에는 체력단련장, 왼쪽은 둘레길에서 올라오는 계단길, 우측에는 조망명소와 인왕정 오르는 계단길이 있다. 인왕정 오르는 긴 계단길로 올랐다.
경사진 계단길을 오르기는 정말 힘들다. 허리 아프기 전후가 명확히 갈린다. 나이 들어 땅에서 짱짱하게 제대로 걷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리든 무릎이든 한 두군데는 고장나기 마련이다.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것만이 기적은 아니고, 제대로 걷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천천히라도 걸어 산을 오를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20회 여선배들 뒤따라 천천히 올라 인왕정에 도착했다. 19회 선배들 먼저 올라와 쉬었다가 막 출발하려 하기에 사진 한 장 찍어 드리고 잠시 쉬었다. 미세먼지 속에서도 건너편 안산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저 안산에 올라가 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
동기들은 인왕정에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바로 해골바위로 향했다.
데크 끝 조망명소
바위절벽에 잔도처럼 길게 놓인 데크길을 따라 해골바위로 향했다.
데크길 아래는 온통 개나리 밭이다. 살짝 벌어진 개나리, 산수유 군락지의 활짝 핀 산수유 꽃들과 꼽사리인 듯 드문드문 활짝 핀 진달래 꽃들을 바라보며 걸으니 미세먼지가 잔뜩일지라도 기분은 상쾌했다. 다음 주말부터는 이곳도 꽃난리가 나겠다!
산수유 군락지를 통과해 올라오는 계단길과 만나는 갈림길을 지나 데크길 끝에 있는 인왕산 경관 조망명소에 도착했다. 산수유 꽃터널로 올라온 사람들은 꽃말처럼 ‘영원불멸의 사랑’을 얻은 양 표정도 화사하였다. 조망명소에 서서 산아래로 길게 뻗어내린 산수유 군락지의 활짝 핀 산수유 꽃들을 잠시 감상하였다.
휘어지고 엉켜 있는 까만 가지에 폭죽처럼 터져 몽글몽글 달려있는 샛노란 산수유 꽃들, 가까이서 보는 송이송이 꽃들도 아름답지만, 다닥다닥 붙어서 노란 천을 뒤집어쓴 것 같은 무리 진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여기에 개나리 꽃을 더하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황홀함 그 자체일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죽인다! 죽여!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두고 도심의 빌딩숲은 미세먼지로 온통 잿빛이라 윤곽만 보였다.
산수유전망대 해골바위
인왕산공원 경관 조망명소를 나와 사진을 찍고 지척에 있는 해골바위로 향했다.
조망명소에서 살짝 핀 개나리밭 사이로 난 산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데크 난간 너머로 이정표와 해골바위가 보인다. 다가서니 이정표 기둥에는 ‘산수유전망대’라 써 있는데, 이정표 앞 데크 위에서는 산수유 군락지 꼭대기만 보였다.
넓은 암반 위에 커다란 검은 바위 덩어리, 전체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토끼 모양 같은데, 두 눈이 동그랗게 푹 파인 부분만 보면 해골바위이다. 내가 알고 있던 진짜 해골 닮은 바위는 국사당에서 성곽길로 오르는 소나무숲 속에 있는 거대한 바위이다. 인왕산에 해골바위가 2개나 있다!
이쪽 해골바위에는 누군가 계단 홈을 파 놓아 쉽게 해골바위 꼭대기로 오를 수 있다. 그 홈을 밟고 해골바위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곳이 진짜 전망대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멀리 보는 멋진 조망은 망했지만 가까운 조망은 그런대로 볼만 했다.
이 해골바위 뿐만 아니라 저 아래 해골바위와 선바위도 1억 5000만년 오랜 세월동안 바람이 오가면서 깎아 만든 걸작품들이다. 선바위는 구멍은 묘하게 뚫렸고 모양도 무척 기괴하지만 인왕산 무속신앙의 최고로 영험한 기도 대상물이다.
인왕산 정상 방향 좌우로 얼굴바위와 모자바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바위들은 바라보는 각도와 시선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한다. 얼굴바위가 부처바위가 되기도 하고, 모자바위가 달팽이바위가 되기도 한다. 모자바위 아래로 또다른 해골바위와 멋진 곡선으로 흐르는 하얀 성곽도 보였다.
성곽으로 가는 숲길
해골바위를 뒤로하고, 얼굴바위를 바라보며 걸어 올라갔다.
숲길을 걷다가 큰 바위 앞에 묘하게 구부러진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크지 않은 몸체로 햇볕을 쫓아 몸을 틀고 들다가 괴상하게
뒤틀어져 버린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온통 바위라 뿌리를 내릴 땅이 좁으니 큰 나무들은 별로 없다. 모자바위가 어느 순간 산으로 기어올라가는 달팽이 바위로 다가왔다.
요리조리 바위길을 돌아서 빠져나가니 병풍처럼 바위로 둘러 쌓인 기도처가 나왔다. 인왕산에는 기도발 좋은 곳이 많은데 이런 곳에도 숨어있다. 물 한 대접과 소주 올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바위에 투박하게 새겨진 작은 마애불을 보니, 오래전 선바위를 보고서 성곽으로 가려다 이곳까지 올라왔다 간 기억이 났다.
무속신앙과 불교의 합작품인 이 마애불을 무속인들은 ‘인왕산 제석할매’라 부른다. ‘제석할매’는 자손의 점지나 출산을 도와주고 자손의 명(命)과 복(福)을 관장하는 무속의 중요 여신이다. 촛불함까지 있는 것을 보니 오며 가며 보다는 작정하고 올라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기도처 돌계단을 내려가다, 왼쪽으로 돌아 긴 데크길로 모자바위 밑을 지났다. 산길을 계속 가면 또다른 기도처 나오고 곧 한양도성 성곽을 만난다.
인왕산 범바위 오르는 길
성곽 앞 소나무 숲속에서 장용이 가지고 온 오랜지를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쉬는 동안, 둘레길에서 인왕정 올라가는 계단길로 먼저 올라가 헤어져 혼자 정상으로 올라간 박영과 연결이 되어 범바위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22회 선배들 지나가고는 한동안 사람들이 없었다.
먼저 길을 나서 데크길을 조금 내려가 왼쪽으로 성곽 위에 설치된 계단을 넘었다. 바로 사직공원에서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순성길이다. 성곽을 넘는 계단 위에서 보면, 성곽은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 내려가 도심으로 슬그머니 숨어 든다.
성곽을 왼쪽에 두고 범바위까지 길게 이어진 성곽길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주일 인왕산 성곽길은 만원이었다. 벌써 정상을 돌고 내려오는 사람들, 연인 혹은 친구들과 올라가는 레깅스나 캐주얼 패션의 젊은 청춘들, 혼자 산책하듯 천천히 걷는 사람, 애기 무등 태우고 혹은 손잡고 올라가는 사람, 등등. 성곽을 따라 인왕산으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가쁜 숨을 토하며 마지막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몇 년 전만해도 이 길을 단숨에 올랐었는데 이젠 허리가 감당을 못한다. 곡성 군부대의 철책 아래에서 한숨을 고르며 쫄깃쫄깃 당기는 허리도 다리도 쉬었다. 동기들 올라와 먼저 범바위 철계단을 올라갔다.
한 무리의 서양 외국인 남녀들과 같이 올라갔다. 인왕산은 서양 외국인들 사이에서 꼭 가봐야 할 서울의 산 중 첫째이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에 가벼운 옷차림인 것을 보면 산책하듯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고 제대로 알고 온 것 같다. 철계단에서 이근수 선배님이 우리들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기에 길을 막고 지체하여서 외국인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고, 좁은 밧줄 난간 구간을 지나서면 범바위이다. 사람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인왕산 범바위
범바위는 시야가 시원하게 트였지만 미세먼지가 멋진 모습 보기를 방해하였다.
고개를 돌리면 동서남북의 멋진 풍경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와야 하는데, 북쪽 인왕산의 정상 방향만 선명하다. 안산과 백련산쪽 서대문구 풍경과 북악산쪽 풍경은 그런대로 비교적 잘 보였지만, 남산과 시티뷰는 안개낀 듯 흐릿하였고, 아차산과 검단산 줄기, 롯데타워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폼나게 인증사진 찍기에 바빴다. 선명한 인왕산 정상 쪽으로는 인증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데크에 꽉 차서 지나가기도 힘들었다. 우린 거기까지 가지 않고, 범바위 위의 조금 한산한 곳에서 인증사진을 한 장 찍었다.
범바위는 일출, 일몰, 그리고 야경의 최고 조망명소이기도 하다. 인왕산 포토 맛집으로 주목받는 범바위는 몇 년 전부터 찾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 새벽부터 사진 동호인들이 터를 잡기도 하고, 해질녘이면 일몰과 야경을 즐기고자 야간산행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인왕산 정상 오르는 급경사 길에는 정체된 사람들로 긴 줄이 섰다. 한참을 기다릴 것 같아 동기들은 정상 가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 갔다. 범바위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인왕천 약수터 갈림길이다. 박영과 함께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가려고 인왕천 약수터 갈림길에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기에 길이 엇갈렸다 생각하고 혼자 인왕천 약수터로 재빨리 내려갔다.
인왕천 약수터 가는 길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지그재그 데크 계단길이다.
오래전 흙길과 계단길이 섞여 있을 때 두세 번인가 빡세게 오르내렸었다. 계단길 도처에 나무의 기둥이 뻗어 나와 길을 막고 있다. 안 자르고 나무를 살린 것은 너무도 잘한 일이다. 감사하다고 고개인사를 깊숙이 하고 지나가면 된다.
계단길 중간에 전망 데크도 만들어 놓았다. 범바위에서 잘 안보였던 수성동 계곡과 서촌 일대, 그리고 경복궁방향의 시티 뷰를 정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미세먼지로 잘 안보이지만 멀리 아차산과 검단산 줄기 및 롯데타워 일대 시티뷰도 볼 수 있다.
계속 이어진 데크 계단길에서 마지막 고개인사를 깊숙히 하고 내려서면 바로 인왕천 약수터이다. 약수터는 데크를 만들어 지붕을 씌워 놓았다. 약수를 호스에 연결해 큰 둥근 통에 받지만 음용은 부적합이다. 앞선 젊은 친구들은 벌컥벌컥 한 바가지를 나누어 마신 뒤 한 친구가 알려줘서 알았다. "괜찮아! 죽지만 않은면 돼!" 쿨하게 답하고는 수성동 계곡방향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누군가가 약수터 바위벽에 새겨진 일본식 표기인 仁旺泉의 旺에서 날日을 지워 버리고 제대로 된 仁王泉으로 만들어 놓았다.
약수터 갈림길에서 수성동 계곡은 조금 우회하는 길이고, 석굴암 쪽으로 가다 또다른 갈림길에서는 수성동 계곡으로 빠르게 내려가는 길이다. 석굴암 쪽으로 향했다.
수성동 계곡 가는 길
인왕천 약수터에서 석굴암으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갔다.
이쪽 길은 정비가 덜 되었다. 돌길, 숲길, 계단길이 교대로 나오고, 철수한 군부대 흔적까지 더해 적막하였다. 대부분 인왕천 약수터 갈림길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이쪽으로 통행하는 등산객들이 너무 적었다.
나무 난간 돌계단길을 돌아 내려가자 과거 인왕산 경비를 담당했던 백호부대 암벽등반 훈련장, 수호신 쉼터와 계곡 수영장 흔적이 남아 있다. 얼마전까지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아까 인왕천 갈림길에서 우회하여야 했다.
수호신 쉼터 계단길에서 범바위를 올려다 보니, 데크 난간에 서서 인왕산 정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깨알만하게 보였다.
거친 돌길을 걸어 큰 길 가까이 내려오니, 과거 부대가 있던 넓은 공터에서는 어느 산악회의 시산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계곡을 건너려는데 왼편 바위에 부부 산신 암각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바로 위에 또 하나의 산신과 동자 음각도 보였다.
알아보니, 1900년대 전후의 망국에 불안하던 민중 신앙 자취로 군부대가 떠나고 동네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신령한 산으로 알려진 인왕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조각이라며 문화재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아직이다.
옛부대 옆 계곡을 빠져 나와 큰 길에서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인왕천 약수터로 우회하여 오르는 긴 계단길이 보였다.
수성동 계곡
인왕산길 큰 길을 건너서 왼쪽으로 조금 가다가 우측으로 내려가면 수성동 계곡이다.
나무 다리를 건너면 석굴암 가는 계곡길과 만나고, 그 길 끝에는 청계천의 발원지 안내판이 있다. 계곡의 상류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도롱뇽을 비롯해 가재, 개구리, 버들치 등이 산다고 하는데 물이 없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겠다.
안내판부터 수성동 계곡 입구까지 공원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최근에 조성한 공원이라 정갈하지만 인공적인 면이 다소 보인다. 낡은 아파트를 없애고 계곡의 암반들을 최대한 노출시켜 옛모습으로 복원하려고 애를 써서 많은 부분 원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계곡 한복판에 단아한 모습으로 서있는 ‘사모정’이란 네모난 정자가 한 멋을 더한다. 정자가 있는 자리가 안평대군의 별장 비해당(匪懈堂)이 있던 자리, 지금은 비해당의 흔적도 없지만 그리로 넘나들던 돌다리 기린교는 홀로 남아 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인왕산 ‘수성동’의 배경이다. 그림에는 장대한 바위들 사이로 개울이 흐르고, 개울에는 장대석을 두 개 맞댄 돌다리(기린교)가 놓여있고, 시동을 데리고 그 다리를 건넌 선비들은 한가로이 풍광을 즐기고 있다. 수성동 풍경 원형이 겸재의 그림 속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보다 실제 계곡의 경치가 더 멋있다.
수성동 계곡은 평소에 계곡물을 보기 힘들고, 비가 와도 계곡물은 금방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러니, 비 오는 날 혹은 비 온 다음날 일찍 찾아가야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물소리를 들으며 수성동 계곡의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수성동(水聲洞)이란 이름도 기린교 밑을 흐르는 물소리가 몹시 청아하고 커서 붙여졌다고 한다.
내가 수성동 계곡을 둘러보고 서촌으로 내려가는 동안 동기들은 인왕산 숲길을 걷고 있었다.
서촌 산책
수성동 계곡을 나와 서촌을 기웃거리며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인왕산 아래 경복궁 서쪽 동네를 오늘날 ‘서촌’이라고 부른다. 서촌은 북촌과 함께 서울의 오래된 동네로 전통적인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공간이 되었다. 왕궁에 인접해 있는 이곳은 수백 년간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정치인의 터전이었다.
북촌은 양반들이 주로 살았고, 서촌은 왕족과 역관, 의원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근대에는 이상, 이중섭, 윤동주, 이상범, 박노수 등과 같은 이름난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다. 세종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세종마을로도 불린다.
골목이 많아 길찾기가 쉽지 않고, 건물들은 층고가 낮아 고개들면 하늘을 볼 수 있다. 골목마다 개성을 지닌 빈티지숍, 와인가게, 디저트가게, 커피하우스, 빵집, 책방, 카페 등이 많아 젊은이들이 많이 몰린다.
가장 맛있는 족발집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있는 3대째 족발집 아들의 고집스러운 맛과 전통이 있는 '가장 맛있는 족발집'은 진짜 맛있었다.
깔끔한 반찬, 시원한 콩나물국, 야들야들 부드러운 족발이 술을 당기게 하였다. 야채에 비벼 먹는 막국수도 매콤한게 맛있었다.
식사하는 도중, 시산제 때 했어야 하는데 늦어버린 36회 정순철 전총동산악회장에 대한 감사패 전달이 있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가 이 가게의 캐치플레이즈인 모양, 말 그대로 따라 하였다. 이번 집행부에는 미식가가 있는가 보다.
달마다 맛집 순례이다. 또 다음달을 기대한다.
'가자, 산으로! 천하부고 오르자!' 표어도 붙여논 가게 주인 센스도 만점이다. 결론은 다시 오고 싶은 가게이다.
졸업하면 76회인 산악회 동아리 어린 후배들, 산행하고 맛있게 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참여 해주어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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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선배님 ~
김주묵 후배님!
그날의 산행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사진과 어울어지는 멋진 수필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5회 후배님들의 화기애애한 모습도 너무 좋습니다.
또한 19회 사진을 멋지게 찍어주셔서 깜짝 놀랐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또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