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6년 , 드디어 오고타이 칸의 명을 받들어 바투가 이끄는 몽골제국 유럽원정군 12만명이 러시아로 출발했다.
혹한의 겨울기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러시아의 강들을 몽골군은 고속도로 처럼 사용하며
파죽지세로 모스크바와 주위의 공국들을 복속시킨다.
( 훗날 러시아의 겨울에 나폴레옹도 물러나고 히틀러도 무릎꿇었으나 , 몽골만은 성공하였다. )
그리고
12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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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이 러시아를 점령한지 4년만에
당시 동유럽의 강대국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폴란드 일부까지 손에 넣었다.
이렇게 되자 몽고군의 존재에 드디어 서방 기독교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유럽을 일대를 점령한 몽고군의 서유럽 진출에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러자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9세의 명령으로
슐레이지엔 공국의 (公國)공(公) 하인리히 2세는
독일과 폴란드의 병사 17만명과 당시 유럽 3대 기사단이자 독일 최강의 기사단이었던 튜튼기사단 3만명을 포함한
20만 연합군을 결성하여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는 몽고군에 대항해 맞서기로 하였다.
유럽 연합군은 병력을 5진으로 나누어 몽골군의 축차소모를 노렸다.
제 1진은 폴란드 농민들로 구성된 보병대로 몽골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제 2진과 3진은 지방 영주를 중심으로 기사와 그 종자, 그리고 영지에서 징병한 농민 보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4진과 5진은 결정적 시기에 전장에 뛰어들어 승부를 마무리 할 중장갑 기병으로,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와 독일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럽군의 최정예병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군 사령관 하인리히는 제 5진에 진영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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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이는 첫번째 전투에서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몽골의 선발대가 유럽연합군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제 1진 지휘관이었던 모라비아 변경백의 아들 ‘볼레슬라프’가 장난감 같은 활과
볼품없는 갑옷을 지닌 몽골군을 얕잡아보고 단독으로 돌격해버린 것이다.
그때 공을 뺏길까 두려웠던 2,3진의 지휘관들도 덩달아 출진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달아나는 척 하며 몽골 선발대가 그들을 바투가 있는곳까지 깊이 유인하여 포위시키고 일제히 공격했다.
그러자 1,2,3진의 농민병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 속절없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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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5진에 있었던 유럽군사령관 하인리히 2세가 이 소식을 듣고 불같이 대노하여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 경이 이끄는 튜튼기사단과 폴란드 기사단을 이끌고
1,2,3진을 구하기 위하여 레그니치로 달려갔다.
그러나 , 레그니치로 가는 왈슈타트(Wahlstatt) 평원에서 기사들은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곳에 , 몽골제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 케식텐' 과 ' 만구다이 '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서양이 자랑하는 정예병과 동양 정예병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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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은 몽골군을 잠시 바라보더니 크게 웃으며
" 저것도 군대라고 할 수 있는가 , 조잡한 갑옷과 저렇게 작은 말을 타면서 어찌 군대라고 자청하는가 "
하며 곧바로 랜스를 들고 기사들을 통솔하여 차지(Charge)대형을 짜고는 일제히 성호를 긋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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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채 적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만구다이가 쏘아내는 엄청난 화살비가 기사들의 머리위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화살비는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떨어졌고, 튜튼기사단은 계속 돌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기사들을 앗아간 죽음의 화살비가 그치자, 이번엔 몽골군 진형이 좌우로 벌어지더니
몽골의 정예기병 케식텐이 곡도를 빼어들고 기사단과 맞부딪혀왔다.
케식텐은 경기병대의 빠른 기동력을 이용, 유럽기사단의 측면을 뚫고들어가 허리를 자르고,
자연스레 고립되어버린 전방의 기사단과 맞붙었기 시작했다.
기동력이 사라진 기병이란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기 때문에, 유럽기사단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만구다이까지 기사단 주위를 선회하며 활을 쏘아대자 튜튼기사단은 공격도 하지못하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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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전투에서, 튜튼기사단과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 하인리히 2세는 전사했고
고립된 1,2,3진도 궤멸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몽골군이 시체에서 적의 귀를 일부 배어내었는데, 그 수량이 무려
사람만한 자루 아홉개에 가득 찰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서유럽은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서유럽에 신의 축복이 내린것인지는 몰라도,
그 해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면서 몽골의 수칙에 따라 바투는 발을 돌릴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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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철저히 파괴되었던지, 몽골군의 침입이 있은 지 6년 뒤 이곳을 방문했던 한 여행자는
자신이 본 것이 “벌판에 흩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해골뿐이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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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구 100만명의 유목민족 몽골이 점령했던 영토
( 고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몽골에 저항했으나 훗날 쿠빌라이 칸 시절에 항복하였음, 작은지도 참조 )
소림축구_-_남아지.mp3
첫댓글 정말 위대한 우리 조상님분들 ㅠㅠ 눈물나게 감사드립니다... 자랑스러운 고려
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업혀가는것도 정도껏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때 유럽을 정복했어야 됬는데..
뭔....고려가 왜 나와?...
이음악 삼국지11 "파죽" 입니다^^
몽골이 압승이라죠. 말을 다루는 개념자체가 달랐다고 하던데.
유럽말은 직진이 잘 될 뿐 지구력도 약하고 덩치가 커서 회전반경도 커서 조랑말타는 몽골병사의 기동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죠. 게다가 중갑옷으로 전사 움직임도 둔하고...몽골칼은 곡도라서 회전하면서도 적을 벨 수 있었죠. 활크기도 유럽활이 몽골활보다 2배는 더 커서 기동성이 많이 떨어지고 사거리도 더 활이 큰데도 떨어졌죠.
활은 길이가 길면 길수록 쏘기가 불편합니다. 길면 그만큼 더욱 뒤로 잡아당겨야 그 위력이 발생하는데 사람이 당기는 이상 그 한계는 분명하죠. 과거 고구려가 전투에서 강했던 것도 활이 크지 않고 작고 신축성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철기문명이 발달한 가야의 갑옷을 궤뚫어버릴 정도의 위력이었습니다. 활은 크기와 신축성의 영향이 큽니다. 일본의 고대활을 보면 엄청나게 큽니다. 사거리는 50미터내외라고 들었습니다. 엄청 조금 나가는거죠. 활시위를 당길때의 각도가 작아질수록 위력은 배가 됩니다.
위에 몽골군 나오는 사진. 영화 제목 알 수 없나요?
"몽골" 입니다. 생각보다 지루해요..;;
몽골이 잘싸웠는이유중 하나는 말이라고하죠...몽골말이 보기엔 서양말보다 작고볼품없어도...말굽이튼튼해서 편자를안박고 달릴수있다더군요.......서양말은 편자안박으면 얼마못뛰다고하더라구요.....원래몽골이싸움도잘했겟지만..ㅋㅋㅋ어쌔신이유래된부대도 이슬람쪽에있었는데..몽골잘못건딜였다가..사라졌다고합디다..
정말몽골은 ㅎㄷㄷ하죠. 그리고 옛날에는 몽골인족의 덩치가 서양인들보다 컷다고하네여. 서양은 11세기부터계속 된 흉년과 영주들의 착취로 인구수도 만이떨어지고 못먹은 사람들이 만아서 힘자체가 몽골인이 더쎗다고하네여. 그리고 몽골인은 동서양 할것없이 모든 강대국들을 다무너뜨렷죠. 몽골vs유럽을 동양vs서양이라고 칭하는것은 약간문제가 잇다고생각하네여. 몽골족은 예전부터 동서양의 중간쯤이라고보는게맞을듯싶네요. 돌궐도 고구려위쪽에도 잇엇지만 서돌궐은 지금 터키지방까지 분포해잇엇으니말이죠.
재미삼아 댓글 달아볼께요.보통 기병이 창을 사용할때는 동양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사르마티안들이 써서 전파된 양손으로 창을잡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식이
저때 중세까지 사용됐다는데요.이는 기병이 적과 충돌할때 돌진이 멈추게 됩니다.그런데 8번째 사진은 창을 한손으로 잡고 겨드랑이에 끼우고 있죠.
이를 couched lance라 하는데요.이 창사용법은 창의 중단을 잡는방법보다 거리에서 이점이 있고 가장 장점은 멈추지 않고 밀쳐내기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유럽은 11세기에 couched lance를 도입하고 봉건제와 자유민 전사의 몰락으로 유럽 보병의 밀집대형이 사라지게 됩니다.몽고는 이시기에 서방 세력과의 충돌에서couched lance를
도입하게 된다고 하네요.
가장 잘알려진 잘못된 진실들 몽고군이 발랐다고 나오는데 사실 저자료도 상당히 왜곡이 많은자료입니다 이거 완전 온라인 판타지 소설이에요요 보면 저 헝가리 폴란드는 유럽변방이어서 약합니다 듀튼기사단 이런거 다갖다붙인거고 오지도 않았어요 기사단자체 조직도 이름뿐이고 많이 와해됬구구요 실제 저병력들도 실제보다 10배정도 뻥튀기 된거구요
저기서 맞는건 몽고군 자체가 항복안하면 지나가는개도 다죽입니다 아예 사람이 못살게 만들어요 실제 서유럽 주력과 붙었으면 아 마 졌을듯해요 이유는
몽고쓰는 전법이 선봉이 치다 유인하고 옆에서 둘러싸서 쌈싸먹기전략인데 그때 폴란드 중보명 중기병한테 겁나 고생했읍니다 그이후에 수보타이가 엄청 고민했어요요 더진격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병력충원도 안되고 드가면 산악지대 고성들뿐이고 보급품은 2천키로를 달려야하고... 서유럽으 갈 엄두도 날 상황이 아니었어요 머라하는지 쩝암튼
그건 아니에요. 님이 말씀하시는 건 서유럽쪽에서 변명하는 걸 그대로 갔다 붙인 격이고요...어느 나라든 약해진 상황은 있겠지만, 몽고가 강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아요. 확실한 건 그 때 저 서구에서 막지 못할 위협적인 세력인 건 분명합니다.
아뽕세님올리는거 재밌게 잘보고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