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언제부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을까?＞(feat.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두부@박상문]

여성은 언제부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을까?

여성은 언제부터 마라톤 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할 수 있었을까?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때부터 마라톤 종목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24년 전인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 때부터 여성은 800미터 이상 육상 종목에 참가할 수 있었다. 운동 경기에서 성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최초의 공식 여자 마라톤 대회는 언제 개최되었을까? 1973년 서독에서 개최된 마라톤이며, 1974년에는 같은 곳에서 최초의 국제 여자 마라톤 대회가 개최되었다.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의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북라이프, 2017년)에는 이처럼 여성이 마라톤에 참가하지 못했던 성차별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파이크는 여성이 마라톤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발언권을 갖는다는 의미”(37쪽)라고 말한다. “10킬로미터 혹은 20킬로미터나 40킬로미터를 달리겠다는 결심은 여성의 몸이 각자의 것이며 얼마나 멀리 달릴지, 누구와 잠자리를 할지, 무엇을 먹을지, 임신중절을 할 것인지, 하루하루를 헤쳐나가기 위해 팔다리를 어떻게 흔들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37쪽)

그리스 여성인 스타마타 레비티는 서른 살의 미혼모였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당시 레비티는 마라톤에 출전하겠다고 신청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러나 레비티는 마라톤 경기가 정식으로 치러진 다음 날 혼자 달리기를 해서 약 5시간 30분을 달려 풀코스를 완주했다. 여자 마라톤의 비공식 최초 기록인 것이다. 레비티는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3시간 반 정도가 걸릴 거라고 예상해요. 그보다 덜 걸릴 수도 있지요. 꿈에서 황금과 설탕을 입힌 금박 아몬드를 앞치마 한 가득 가지고 있었거든요! 혹시 알아요, 내 심장이 그만큼 단단하고 내 두 다리도 굳건히 버텨줄지?”

“20세기 대부분 기간, 지금 우리가 장거리라고 생각하는 거리 정도를 달렸던 여성들은 마치 품행이 단정치 못한 것인 양 비난을 받았다. 고상한 여성들은 노골적으로 가슴이 움직이게 되는 일은 찬성하지 않았다. 땀을 흘리는 일은 괴이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매력이 없다고 봤다. 달리고 싶어 마음을 바꾼 여성들은 육체적으로 처참한 결과가 있을 거라는 경고를 받았다.”(82쪽)

이 책에는 마라톤뿐만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에서 여성의 마라톤 대회 출전이 금지된 역사 속에서도 달리기를 해온 여성들을 소개한다. 1923년 콤라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프랜시스 헤이워드, 1926년 폴리테크닉 마라톤에 참가한 바이올렛 피어시(국제육상경기연맹은 피어시의 기록인 3시간 45분을 최초의 여자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으로 인정한다), 1963년 웨스턴 헤미스피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메리 레퍼, 1918년 투르 드 파리 마라톤에 참가한 마리 루이스 르드뤼, 1959년 파이크스 피크 마라톤에 참가한 알렌 피퍼, 1964년 5월 잉글랜드 남단의 와이트섬에서 열린 마라톤에 참가한 데일 그리그, 1964년 8월 마라톤에 참가해 3시간 19분 33초를 기록한 밀리 샘슨 등이 있다.

2013년 알렌 피퍼는 인터뷰에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관계자들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여자들은 그저 집에 있으면서 쿠키나 굽고 아기나 낳는 존재였습니다”고 말했다. 또 데일 그리그가 참가했을 때는 구급차가 레이스 내내 뒤에서 따라가는 조건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1966년 보스턴 마라톤에 남장을 한 여성인 로베르타 깁 빈게이가 참가했다. 출발선 근처 관목에 숨어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기다린 빈게이는 남자 마라토너 행세를 할 계획이었다. 빈게이가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대회 관계자들이 격분했다고 한다. “여성은 생리적으로 마라톤처럼 긴 거리를 달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빈게이의 정식 참가 요청을 이미 거절했기 때문”(104쪽)이었다. 1년 뒤인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캐서린 스위처는 ‘K. 스위처’라는 이름으로 신청하고 참가했다. 그런데 레이스 감독관이 마라토너 무리에 뛰어들어 스위처를 코스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덩치가 큰, 정말 거구의 남자가 이를 드러낸 채 달려들려고 했어요. 어떻게 손을 써보기도 전에 내 어깨를 움켜쥐고 뒤로 던지듯 밀치면서 소리쳤어요. ‘번호표 내놓고 당장 내 대회에서 꺼져버려!’”(105쪽)

- “번호표 내놓고 당장 내 대회에서 꺼져버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여성은 달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날아갈 듯이 달려도 잡힐 것이다. 여성이 하면 어색한 일이 달리기만은 아니지만, 여성이 품위를 잃는 유일한 행동이 달리기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의 일이 아니며, 지금도 종종 발생한다. 2015년 호주에서는 “무슬림 계열 학교 교장이 처녀성을 잃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여학생들의 달리기 활동을 금지시켰”(113쪽)고, 2005년에는 파키스탄에서 “마라톤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50명의 여성이 체포되”(155쪽)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 여자 마라톤에 참가해 ‘2시간 24분 52초’라는 기록을 세우며 여성 최초로 금메달을 수상한 존 베노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아홉, 나의 한 번뿐인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냈다.” (현재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은 2023년 9월 24일, 독일 베를린마라톤에서 티지스트 아세파가 세운 2시간 11분 53초다.)

-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아홉, 나의 한 번뿐인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냈다.”

- 2023년 9월 24일, 독일 베를린마라톤에서 여자 세계기록을 세운 티지스트 아세파.

한때 마라톤을 “해변에서 수평선까지 헤엄쳐가는 일만큼 추상적인 목표”(203쪽)였고, “40킬로미터 달리기가 400킬로미터 달리기처럼”(212쪽) 생각했던 파이크는 “가부장적 역사에 반대하기 위해 달릴 것이며, 힘과 속도를 영원한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저주를 퍼붓는 차원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달릴 것”(215쪽)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이 세상에서 내 몸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나는 절망과 부동 사이의 관계를 지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서 모두 이해했다.……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내 두 발로 절망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었던 걸까?……다리가 뻐근하고 기분이 가벼워지고 식욕이 생기는 점을 제외한 별다른 영향 없이 몇 시간씩 달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 걸 바꿀 수 있는지 깨달았다. 어디로 갈 수 있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달리기하는 여성에 대한 기우는 터무니없어 보였다.”(169쪽)

“나는 어렵사리 결승선을 통과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물 흐르듯 통과한 것도 아니다. 이 마라톤의 의미는 스피드나 고통에 있지 않았고, 내 몸과 도시의 교감에 있었다. 개인 최고 기록 같은 전리품은 필요 없었다. 나는 달리기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른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온갖 종류의 대회에 참가하면서 나에게 달리기는 존재의 한 방식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대상으로 나 자신을 시험하는 방식도 아니고, 나와 비슷한 수준의 마라토너들과의 경쟁도 아니다. 극복할 것은 나의 의구심뿐이었고, 나는 달리기를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과 충분히 교감하게 되었다.……달리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놀라움을 준다.……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323-324쪽)

-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의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민경@권윤정]

한동안 맘에 드는 달리기 책이없어
심심했는데~ 역시나 북도슨트이신
두부대장님 덕분에 대리만족할수 있겠어요^^
세심한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