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이승엽과 현대 박진만이 그물망을 사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삼성과 현대는 재계의 라이벌이자 야구판에서도 자웅을 겨루는 맞수였다 . 현대는 삼성전에서 이기면 두둑한 승리보너스를 내놓곤 했다(사진=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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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협상 파트너였던 KBO 이상일 사무차장(현 사무총장)은
“프로야구단 창단 승인 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이라
, 기존 구단의 이해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
그러나 한 가지만 빼고는 모두 원만하게 합의했다”고 회상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잠실구장 사용권이었다.
KT는 “통신 라이벌 SK와 꼭 잠실에서 맞붙고 싶다”는 의사를 KBO에 전했다.
“목동구장에서 SK 전을 치르면 우리가 너무 초라하다”는 게 이유였다.
원체 KT의 의지가 강하다 보니 KBO도 설득이 불가한 상태였다.
LG 고위층이었던 K씨는 하 전 총장이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와
“대승적 차원에서 KT에게 잠실구장 9경기를 양보해달라”고 간청했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K씨는 “홈구장을 어떻게 다른 구단에게 빌려줄 수 있느냐”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K씨를 방문하고 돌아온 하 전 총장은 신 총재를 찾아가 “KT의 잠실구장 경기를 12경기로 줄여 다시 제안해보겠다”며
“LG, 두산 사장을 만나 무릎이라도 꿇고 사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LG와 두산은 여전히 “다른 건 몰라도 홈구장 사용권만은 내줄 수 없다”며 난색을 나타냈다.
야구계도 ‘KBO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KT의 요구를 받아준 KBO의 무리수를 지적하며
KT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2008년 1월 8일 KBO 이사회는 “KT의 창단을 환영하지만, 더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한다”고 결의했다.
이사회 결의는 그동안 KBO가 KT 측과 벌인 협상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권 행사였다.
3일 뒤 KT는 KBO 이사회의 요구에
‘프로야구 불참’이라는 결론으로 화답했다. ㅡ,ㅡ::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야구계 모두가 ‘7개 구단 체제는 곧 프로야구의 공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KT의 불참 선언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속으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 전 총장은 KT 불참 소식을 듣고 자리에서 푹 쓰러졌다.
그즈음 모 기업은 KBO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 “가입금을 받지 않을 테니 현대를 인수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사양하겠다”였다.
하 전 총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박)노준아, 그때 나한테 소개한 이장석이라는 친구 말이야.
그 친구 지금도 현대 인수할 생각 있다냐?”
히어로즈의 태동 히어로즈 초대 단장 박노준. 야구인 출신 첫 단장으로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 박 전 단장은 히어로즈를 떠날 때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가슴에 묻고 조용히 떠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히어로즈가 명문구단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넥센 히어로즈)
2007년 겨울. 박노준 SBS 해설위원은 호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었다.
그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 야구회관을 찾을 때면 신 총재와 하 총장과 만나 현대 인수와 관련해 담소를 나누곤 했다.
신 총재는 박 위원에게
“네가 발이 넓으니 현대 인수 기업을 찾아보라”며 “현대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신 총재 아들과 친구지간인 박 위원은 그럴 때면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하고
지인들에게 프로야구 참여를 권유했다.
하루는 박 위원이 호서대 J 교수에게 “혹시 현대 인수가 가능한 기업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운영과 마케팅만 잘하면 프로야구도 충분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J 교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기업까진 모르겠지만, 관심 있어할 사람은 안다”고 대답했다.
며칠이 지나고 박 위원은 J 교수의 소개로
자신을 ‘경영 컨설턴트’라고 소개한 40대 초반의 남자를 만났다.
명함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이장석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박 위원은 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현대 인수 기업이 없어 야구계가 공멸 위기에 놓였다”며 “그러나 야구단 경영만 잘한다면
프로야구는 충분히 승산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충분히 승산 있는 사업’이란 말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 몇 차례 만나면서 두 이는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이 대표도 프로야구단 경영에 조금씩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원체 야구팬인데다 프로야구 구단주를 꿈으로 삼았던지라,
이 대표는 박 위원과 만나면 만날수록 현대 인수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130억 원이 넘는 가입금 조달이었다.
이 대표는 ‘만약’이란 단서를 달고서
“만약 내가 인수한다면 가입금에 대해선 최대한의 유예기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위원은 “아마도 KBO에서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운영비 걱정도 했다. “한해 100억 원이 넘는 운영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한해 TV 광고비로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기업이 많다.
구단 성명권 판매만으로 수십억 원은 벌 수 있다
.” 박 위원은 이 대표에게 현대의 재무제표와 운영비 명세서를 건네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두 이는 한동안 만남이 뜸했다.
이 대표는 박 위원이 전달한 서류를 살펴보다가 책상에 넣은 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대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류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리고 박 위원에게 연락을 취해 만났다.
박 위원은 이 대표와 다시 만난 자리에서 “현대를 인수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기업인수와 합병 등 현업이 있기 때문에 목숨 걸고 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위원은 “3년 정도 열심히 구단을 운영하면 나름대로 보람이 있을 것”이라며
“3년 이후 다른 인수기업이 나올 수도 있으니 진지하게 현대 인수를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 히어로즈 이장석 사장(사진 맨 오른쪽)이 넥센 타이어와 메인스폰서 계약을 맺은 뒤 손을 모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사장은 히어로즈를 미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처럼 명문팀으로 키우려 한다. 구단 운영도 레드삭스식으로 하려 한다. 그러나 갈길은 멀다 . 히어로즈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이 사장은 3년 동안 개인돈 100억 원 이상을 히어로즈에 쏟아부었다.(사진=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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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대표는 박 위원의 설득에 현대 인수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박 위원은 곧바로 신 총재에게 이를 보고했고,
12월 중순 호서대 서울 캠퍼스에서 박 위원과 이 대표, KBO 이상일 사무차장이 회동했다.
양자는 허심탄회하게 현대 인수와 관련해 깊이 있는 논의를 벌였다.
하지만, 당시 KBO는 이 대표와 접촉하던 게 아니었다. 이미 KT와 만나 현대 인수를 어느 정도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 대표는 일종의 보험 성격이었다. 문제는 박 위원과 이 대표가
28일 KT가 현대 인수를 발표할 때까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KT 소식을 접하고 이대표는 KBO에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와 만나면서도 KBO는 한쪽에서 KT와도 현대 인수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으련만 전혀 힌트를 주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KBO와 KT의 인수협상 소식을 들었을 때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 박 위원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항의까지 했다.” 이 대표의 회상이다.
박 위원은 "자신도 몰랐다"며 "역시 KBO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 대표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나서 “여기서 끝냅시다”라고 말했다. 두 이는 그 후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창단 발표 이후 열흘이 조금 지나 KT가 ‘프로야구 참가 철회’를 발표하며 상황은 돌변했다.
KBO는 박 위원에게 전활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이 대표를 다시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위원은 고민 끝에 이 대표를 찾아가 KBO의 사정을 설명하고, 현대 인수를 설득했다.
이 대표는 KBO에 배신감을 느낀 터라, 박 위원의 설득을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현대 인수로 마음을 굳혔다.
“KBO의 일 처리엔 불만이 많았으나, 누군가 프로야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라면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 대표는 현대 인수를 전제로 박 위원에게 단장직을 제안했다.
2008년 1월 중순. 서울 광화문 센테니얼 사무실에서 하 총장, 이 차장, 박 위원, 이 대표가 비밀리에 모였다.
하 총장은 이 대표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 상에는 현대 인수 조건으로 가입금 132억 원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132억 원은 전해 현대 운영비로 쓰인 야구기금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132억 원을 다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120억 원만 받으라”고 요구했다. 하 총장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우리와 협상하는 사이 KT와도 협상하지 않았나. KT와 협상이 결렬됐다고 우릴 찾아온 게 아닌가.
12억 원 감액은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면엔 "KT엔 가입비 60억 원을 제시하고, 그보다 훨씬 규모가 적은 센테니얼을 상대론
현대가 날린 132억 원 전액 요구하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다.
일부에선 "KBO에서 KT에 요구한 60억 원만 내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만, 현대로 흘러간 운영비를 고스란히 책임진다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12억 원을 깎으려 했다.
하 총장은 "그럴 수 없다"고 펄펄 뛰었다.
하지만, 132억 원이든 120억 원이든 어쨌거나 야구기금을 1원이라도 받아내고,
무엇보다 현대 매각절차를 서두르는 게 중요했다. 계약서엔 가입비로 120억 원이 적혔다.
‘투맨 회사’ 센테니얼, ‘공룡’ 현대를 인수하다 지난해까지 히어로즈는 외국인 선수와 신인 선수의 계약금과 옵션을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그만큼 구단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엔 달랐다. 히어로즈는 2011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1라운드에 지명한 대졸투수 윤지웅에게 2억 원을 제시했다. 다른 구단에서 다소 놀란 고액이었다. 사진은 복도에서 남몰래 발목 고통을 참고 있는 클리프 브룸바(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2008년 1월 30일 KBO와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프로야구 제8구단 창단 조인식과 기자회견을 통해
현대 구단을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한다고 공식발표했다.
KBO 신상우 총재는 “새 구단의 연고지는 서울이며,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
가입금은 얼마 전 현대 인수에 나섰던 KT가 제시했던 60억 원보다
두 배 많은 120억 원”이라고 밝혔다.
센테니얼은 “기존 구단과는 차별화된 운영 및 마케팅으로 구단을 경영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구단 성명권 판매 등 다양한 스폰서 활용으로,
모그룹에 운영비를 받아 쓰는 기존 구단 운영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하겠다”고 발표했다.
야구계는 “센테니얼의 극적인 등장으로 현대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가 실업자가 되는 걸 막았다”며
“올 시즌 프로야구가 8개 구단 체재로 유지되는 것만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과연 센테니얼이 한해 운영비 150억 원 이상이 드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새어나왔다.
당장 가입금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센테니얼’이라는 회사 자체가 생경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센테니얼은 레저와 실외 엔터테이먼트의 투자와 인수합병,
전략자문을 담당하는 미국계 창업투자사로만 소개됐을 뿐 이 회사의 규모와 재정상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센테니얼이 미국계 창업투자사라는 건 다소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
미국 자본을 바탕으로 설립된 회사가 아니었다.
이장석, 남궁종환(현 히어로즈 부사장) 두이가 2천500만 원씩 출자한 경영 컨설턴트 회사였다.
직원도 두이가 전부였다.
센테니얼의 사무실을 방문한 바 있는 모 야구관계자는
“작은 회사들이 운집한 공동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남궁 부대표가 사무를 보고 있었다”며
“여직원도 따로 없었다”고 기억했다. ㅡ,ㅡ ::
하지만, 재계의 한 인사는 "센테니얼이 상주한 사무실은 굵직한 외국계 회사들이 상주하는 곳으로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이라고 했다.
그는 "2천만 원씩 투자해 5천만 원 자본금으로 시작한 회사라도 센테니얼의 매출액은 상당했다"고 기억했다.
사실 이 대표는 재계에선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LG 김영수 전 사장은 센테니얼이 현대 인수기업으로 확정되고
나서 지인에게 이 대표를 “잘 아는 친구”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 대표와 LG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외환위기 뒤 정부에서 대기업 빅딜(사업 맞교환)을 유도했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도 대상이었다. 이때 두 기업의 빅딜을 위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아서 디 리틀(ADL)’이 선정됐다. 이 대표는 그때 ADL 평가단의 핵심 멤버였다
. ADL가 현대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바람에 LG반도체가 현대로 넘어갔다.
LG는 ‘공정하지 못한 평가였다’고 분개했지만, 이를 뒤집을 순 없었다.
반도체에 각별한 애정이 있던 LG로서는 이 대표가 주머니 송곳처럼 불편한 존재였는지 모른다.”
이 대표는 처음에 ‘유니콘스’란 팀명을 그대로 쓰려고 했다.
전통이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유니콘스는 날지 못하는 말이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운명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래 생각한 게 ‘천마(天馬)’ 페가수스였다. 훨훨 날고 싶었다.
그런데 단어가 어려웠다. 또 동물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평범한 모든 이가 영웅이란 의미의 히어로즈를 팀명으로 삼았다.
프로야구의 구원자로 나선 센테니얼에 ‘히어로즈’는 꽤 적당한 이름처럼 들렸다.
그러나 팀명을 제외하면 제대로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가입금 120억 원 가운데 계약금 20억 원을 내는 것부터 어려웠다.
히어로즈 내부 사정을 깊숙이 아는 야구 관계자는 “창단 때부터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털어놨다.
“2008년 2월 초에 열린 KBO 단장회의에 박노준 단장이 참석기로 했다.
박 단장은 이장석 사장에게 ‘계약금 20억 원을 내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사장은 ‘맞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2억 원만 받았다.
미리 준비된 돈이라기보다 이 사장이 어디서 어렵게 구해온 듯한 인상이었다.
그때 ‘아, 이 사장이 실탄이 없는 상태에서 현대 인수를 감행했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히어로즈 내부 인사는 "20억 원은 이 사장이 제시한 금액이 아니라
KBO 단장회의에서 나온 금액"이라며 "가입비 120억 원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12억 원을
계약금으로 내는 게 상식적이지 않는냐는 의견이 많아 12억 원을 냈다"고 말했다.
![]() 히어로즈 응원단장 심윤섭 씨. 그는 "히어로즈의 역사가 오래지 않아, 팬들이 히어로즈 고유의 응원을 낯설어한다"며 "관중이 최대한 쉽게 응원을 따라할 수 있도록 화려한 동작보다는 쉬운 동작 위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히어로즈가 야구계에 뛰어들었을 때 그들을 바라보는 야구계의 반응이 '딱' 그랬다. 낯설음과 의심의 연속이었다. 만약 히어로즈가 여건이 좋아 '보통 구단'을 지향했다면, 잡음없이 야구팬들과 만났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지 모른다. (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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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장은 많은 실탄을 준비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현대를 인수한데다 야구단만 창단하면 메인스폰서와 서브스폰서가 몰려올 것으로 예상했다.
“창단을 고민하던 시점에서 KBO가 ‘메인스폰서를 물어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메인스폰서를 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장 가입금과 구단 운영비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히어로즈 태동 초반 다소 혼란스러웠던 것도 운영비를 충당하려고 다니느라 구단 운영에 신경 쓰지 못한 탓이었다.”
이 사장은 구단 CEO가 되자마자 책상에 앉아있는 대신 돈줄을 찾아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다.
이는 박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이 사장에게 ‘다양한 스폰서십으로 충분히 운영비 조달이 가능하다’고 말한 이는 다름 아닌 박 단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메인스폰서를 찾은 건 이 사장도, 박 단장도 아니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나진균 전 사무국장이었다.
나 국장은 박 단장의 부탁을 받고,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메인스폰서가 되줄 수 없겠느냐”고 간청했다.
그러다 연결된 곳이 우리담배였다. 우리담배 본부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나 국장의 소개로
히어로즈는 우리담배와 메인스폰서 협상을 진행했다.
2월 21일 히어로즈는 우리담배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총액 300억 원의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담배의 등장으로 히어로즈는 선수단 및 프런트의 급여를 책임질 수 있게 됐다.
자금난으로 목이 타들어가던 히어로즈엔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히어로즈는 우리담배를 연결한 나 국장에게 1억 원 이상을 소개비조로 제시했다.
그러나 나 국장은 “소개비를 받으려 한 게 아니다”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3월 24일 히어로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350여 명의 하객이 참가한 가운데
대망의 구단 창단식을 개최했다
프로야구 최초로 메인스폰서를 통해 운영비를 조달하는 신개념 야구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히어로즈의 서울 입성기 올 시즌 히어로즈는 좋은 투수들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고서도 괜찮은 팀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가 놀라웠다. 야수진에서도 강정호가 여전히 건재했고,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조금씩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사진=넥센 히어로즈)
히어로즈가 야구계의 영웅으로 등장했지만, 정작 소속 선수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신이었던 현대와 비교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모 베테랑 선수는 “KT가 새로운 주인이 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선수들이 만세를 불렀다”며
“막상 센테니얼이란 회사가 등장하자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KT는 현대 인수를 발표하면서 목동구장과 2군 훈련장인 원당구장을 자주 방문했다.
목동구장 리모델링과 김시진 감독과 함께 선수단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특히나 KT는 김 감독에게 “홍성흔, 박재홍 등 유명선수는 물론이려니와
최고 실력의 외국인 선수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그즈음 외국인 선수 물색 차 미국에 머물던 현대 스카우트팀은
“200만 달러도 괜찮으니 ‘좋다 싶은 선수’는 모두 잡으라”는 특명을 받았다.
KT 유니폼을 맞추려고 신체 사이즈를 잴 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러나 KT가 KBO에 대한 불신과 기존 구단들과의 갈등으로 현대 인수를 백지화하며
선수들은 졸지에 꿈을 잃어버렸다.
“KT가 백지화를 선언했을 때도
‘KT 정도의 큰 회사가 달려들 정도면 그 정도 대기업이 언제든 현대를 인수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한 번도 듣지 못한 센테니얼이 현대의 새 주인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KIA, SK처럼 새 구단이 등장할 때마다 공격적 투자가 이뤄진 점을 상기하며 내심 기대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공격적 투자는 고사하고 대대적인 연봉 삭감 바람이 불었다.”ㅡ,ㅡ:;
현대 주축선수였던 A의 말처럼 센테니얼은 ‘효율적인 구단 운영’을 내세워 선수들의 연봉을 대폭 삭감했다.
연봉 삭감은 주로 고액선수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당시 주전 포수였던 김동수는 전년도 연봉 3억 원에서
80%가 깎인 6천만 원을 제시받았고,
외야수 전준호는 2억 5천만 원에서 72%가 깎인 7천만 원을 제시받았다.
주축투수 정민태는 3억 1천80만 원에서 8천만 원, 송지만은 6억 원에서 2억 원으로 깎였다.
선수들이 집단 반발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던 건 아니었다.
“현대는 KBO의 야구기금으로 연명하면서도
주요 선수들의 연봉은 삼성, LG보다 많이 줬다. 현실적인 연봉 시스템 적용이 필요했다.
거기다 우리는 처음부터 ‘자금이 풍부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고,
선수들에게도 사전에 ‘고통분담 차원에서 연봉 삭감을 이해해달라’고 충분히 설명했다.
현대 인수기업이 보이지 않을 땐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구단 정상화에 애쓰겠다고 했던 선수들이
막상 새 주인이 나타나자 한해 연봉을 다소 깎았다고 집단 반발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히어로즈 핵심 관계자는 덧붙여
“2007년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도 15명의 선수를 정리했으나
우리는 한 명의 선수도 자르지 않았다”며
“어느 신규구단이 기존 구단 선수들을 100% 고용승계하느냐”고 반문했다.
히어로즈의 연봉 후려치기의 주범은 박 단장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 단장은 선수들을 만나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 언론에 등장해 연봉 삭감의 배경을 설명한 것도 박 단장이었다.
하지만, 히어로즈 내부 관계자는 “박 단장이 연봉 삭감을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포츠춘추>의 취재결과, 히어로즈는
2008년도 총연봉액으로 32억 원(코칭스태프, 외국인 선수 제외)을 책정했다.
전해 현대 총연봉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러니까 32억 원의 총연봉액에 맞추다 보니 선수단 연봉을 후려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선수들이 반발한 건 연봉뿐만이 아니었다.
구단이 김시진 감독, 이광근 수석코치, 염경엽 수비코치 등 그간 동고동락했던 코칭스태프를 정리하며
선수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모 선수는 “구단에서 분명히 기존 코칭스태프의 변화는 없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새로운 코칭스태프가 등장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다음은 내 차례’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애초 히어로즈 고위층은 김 감독 유임을 놓고 고심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와
‘창단 구단은 베테랑 감독이 와서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조언이 힘을 얻으며 새 감독 선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이광환 전 LG 감독이 적임자로 떠올랐다.
히어로즈는 김 감독에게 수석코치직을 제안했다.
“2년 뒤 다시 감독직을 되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감독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수석코치를 할 수 있겠느냐”며
“팀에 부담 주고 싶지 않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박 단장은 이 감독에게 2년 계약을 조건으로 계약금과 연봉으로 각각 1억 원을 제시했다
여느 팀 수석코치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 감독은 고사를 거듭하다가
“야구계를 위해 도와달라”는 박 단장의 간청에 결국, 감독직을 승낙했다.
강병철 2군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도 박 단장의 “야구계를 위해 희생해달라”는 읍소에 두말하지 않고 달려왔다.
김시진 감독이 선수들을 다독거리고 팀을 떠나고 새 코칭스태프가 전면에 등장하며
선수단의 반발은 수그러드는가 싶었다. 그러나 히어로즈의 재정난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우리담배 메인스폰서 계약 체결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목동구장(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모그룹의 지원이 전무한 히어로즈는 메인스폰서 우리담배의 스폰서비가 생명줄이었다.
히어로즈는 우리담배에 구단명 및 사용권, 로고, 선수 초상권, 광고물 게시권 등의 권리를 제공하는 대가로
2008년 2월부터 2010년까지 10월까지 해마다 70억 원씩을 현금으로, 30억 원을 현물로 받기로 계약했다.
히어로즈는 이 돈으로 선수단 연봉, 훈련비, 구단 운영비를 충당하려 했다.
2008년 4월까지 정상적으로 스폰서비가 입금되며 히어로즈는 조금씩 안정을 찾는가 싶었다.
하지만, 5월부터 스폰서비가 밀리며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장석 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2월부터 11월까지 10번에 나눠 매달 7억 원씩을 입금하기로 돼 있었다.
처음엔 ‘10번에 나눠주면 구단 운영에 제약이 많으니 3번에 나눠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담배 CEO가 ‘나는 지금껏 사업하면서 한 번도 직원들 월급이 밀린 적이 없다’며
‘히어로즈 선수들의 월급만은 제날짜에 맞춰 직접 챙겨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5, 6월 차례로 스폰서비가 연체됐다. 목동구장 리모델링으로 20억 원을 썼던
차라, 예비비가 따로 없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KBO 이사회에서 ‘우리담배가 스폰서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더니
각 구단 사장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이 사장은 KBO 이사들에게 스폰서비 연체를 들어 “가입비 상환을 다소 늦춰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가 8개 구단 가운데 막내니까, 이렇게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으니까 가입비를 조금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럴 줄 알았다’ ‘그러기에 뭐하러 야구판에 들어왔느냐’는 냉소와 비난뿐이었다.”
이사회의 거절로 이 사장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 돈 나올 때는 막막했고, 6월 31일까지 가입비 1차 분납금 24억 원은 반드시 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사장은 1차 분납금을 내지 못했다.
히어로즈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히어로즈가 약속한 날짜에 가입금을 내지 못하면서 난리가 났다.
‘제2의 쌍방울’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정작 히어로즈 측은 ‘돈은 있지만, KBO가 약속을 지켜줘야 가입금을 내겠다’고 버텼다.
여기서 약속은 ‘2차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히어로즈에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 사장의 본심이 아니라 시간 끌기 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시간 끌기와는 관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KBO와 7개 구단에 휩쓸려 가다간 KBO에서 약속했던 사항들도 무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털어놨다. KBO는 히어로즈에게도 KT 때처럼 잠실구장
홈경기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히어로즈가 야구팬, 선수들을 볼모로 위험한 도박을 벌인다’는 비난을 들어가며 감행한
이 사장의 분납금 미납은 7월 7일 KBO에 24억 원을 납부하며 일단락났다.
그러나 일시적 작전은 통했을지 몰라도, 히어로즈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했다.
우리담배가 기다렸다는 듯 “히어로즈가 가입금을 밀리며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는 바람에
자사 이미지가 추락했다”며 메인스폰서 계약 철회를 발표한 것이었다
. 여기다 ‘모 주류업체가 KBO 실세와 구 현대 프런트를 등에 업고
재정난에 허덕이는 히어로즈를 강제로 쫓아내고 새 구단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이 사장과 히어로즈는 크게 흔들렸다.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이미지는 더 나빠졌다.
선수단은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프런트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야 했다.
히어로즈에 근무했던 모 관계자는 “온종일 빚쟁이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우리담배가 메인스폰서 계약 철회를 주장하며 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다.
서브 스폰서도 비슷했다. 현대 때부터 거래한 용품사가 참다 참다 못해
‘더는 용품을 지원해줄 수 없다’며 떠났다.
원정 호텔과 식당도 외상이 깔렸다
매번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몇 개월이 흐르니까 상대 입에서
쌍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 출근하는 게 곤욕 그 자체였다.”
단장을 비롯한 전체 프런트의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출장 시 직원이 제돈으로 선결제 하는 게 일반화됐다.
그러나 출장비 결제는 느리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며 선수단도 재정난을 피부로 실감했다.
“구단이 선수들에게 나뉘는 배트 쿠폰이 있다.
히어로즈는 다른 구단보다 값싼 배트 업체와 거래해 쿠폰 단가가 낮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대금 결제를 미루면서 그 배트 업체마저도 우리가 내는 쿠폰을 받지 않았다.
공 역시 결제가 안 되다 보니까 얼마간 새 공이 입고되지 않았다.
듣기로는 모 구단에서 훈련구를 빌려왔다고 했다.
원정경기를 가도 예전 현대 때는 환대받는다는 느낌이었는데
히어로즈 때는 우릴 불편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변에서 들어보니 ‘쌍방울이 딱 그랬다’고 했다.”ㅡ,ㅡ::
![]() 히어로즈 마스코트 '턱돌이'(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모 야구인은 “이 사장은 트레이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켜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한다는 게 기본구상이었다.
그러나 자금압박을 극심하게 받던 2008년 11월부터 트레이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춘추>가 입수한 자료로는 그러한 지적은 사실이었다.
2008년 히어로즈는 LG와 트레이드를 논의했다.
강타자 S 선수를 주는 조건으로 투수 S와 야수 L를 받으려 했다. 이때 ‘+현금’은 논의되지 않았다.
(?송지만 --심수창 ,이대형 )
두산과 트레이드 카드를 맞출 때도 현금 트레이드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SK에 베테랑 L를 주고, 포수 Z를 받으려 했을 때도 히어로즈가 ‘+@’로 부른 현금은 3억 원 선이었다.
(?이숭용--정상호 )
강타자 L과 롯데 야수 L를 트레이드 하려 했을 때도 ‘+@’는 3억 원 아래였다.
(?이택근-이원석 )
이해 9월 초 삼성과 처음으로 장원삼 트레이드를 논의했을 때 ‘선수대 선수’가 주 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담배로부터 지원이 끊기는 등 돈 나올 구멍이 막히면서
히어로즈는 본격적으로 현금 트레이드에 나섰다.
출발은 삼성과의 장원삼 트레이드였다.
이해 11월 14일 히어로즈는 좌완 에이스 장원삼을 삼성으로 전격 트레이드했다
. 장원삼을 주는 대신, 삼성의 왼손투수 박성훈과 현금 30억 원을 받았다.
현금 30억 원은 12월 말까지 내야 하는 가입금 2차 분납비를 웃도는 금액이었다.
당시 트레이드 과정을 잘 아는 K씨는 “가입비 2차 분납금을 내지 못하면
이장석 사장의 경영권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며 “일단 분납금으로 24억 원을 쓰고
, 나머지 6억 원은 외상 결제대금으로 쓴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6개 구단의 반대로 장원삼 트레이드는 일주일 만에 취소됐다.
장원삼을 팔아 경영권을 수호하려던 이 사장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가 싶었다
. 순리대로라면 이 사장은 30억 원을 삼성에 돌려주는 통에 또다시 분납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고,
KBO와 지루한 싸움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싸움은 고사하고 잡음도 나오지 않았다.
히어로즈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에 30억 원을 돌려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두 구단의 통장을 조회하면 삼성에서 히어로즈로 돈이 넘어간 흔적만 있을 뿐
다시 돌아온 흔적은 없을 것”이라며 “양측이 ‘내년 시즌 종료 뒤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트레이드를 시도하자’는 약속을 맺었다”고 고백했다.
삼성 최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히어로즈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8개 구단의 일원으로서 인정하고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원삼 트레이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대승적 차원에서 히어로즈의 이탈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 히어로즈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예상됐던 황재균(사진 왼쪽부터)과 강정호. 그러나 이제 황재균은 없다. 강정호의 미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장원삼 트레이드로 곤욕을 치른 이 사장은
“앞으로도 현금 트레이드를 할 생각이냐”는 <스포츠춘추>의 질문에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2009시즌을 앞두고 메인스폰서가 구해지지 않으며 이 사장은 현실과 이상에서 방황한다.
그렇다고 히어로즈가 메인스폰서 물색에 소홀했던 건 아니었다.
“2009시즌을 앞두고 중견기업 몇 군데와 공기업 한군데서 ‘메인스폰서에 관심이 많다’고 연락이 왔다.
실무진들이 만나 합의점을 찾아 계약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꼭 회장 선에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나 시범경기 도중 대기업과 메인스폰서 체결을 구두합의까지 했는데
역시 회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사장은 외국계 기업에도 눈을 돌렸다.
당시 수입차 업계에선 “일본 굴지의 자동차 회사가 히어로즈 메인스폰서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사장은 “사실이었다”고 털어놨다.
“일본 자동차 회사와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전됐다.
솔직히 우리 쪽에서도 일본 브랜드라, 메인스폰서로 삼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 회사가 일본을 넘어 세계적 브랜드이기 때문에 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그 자동차 회사의 한국 딜러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계약이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안다.”
히어로즈는 2009시즌을 메인스폰서 없이 버텼다.
한해 15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프로야구단에서 히어로즈 생존은 그 자체만으로 기적이었다.
구단 직원 전체가 희생에 나선 결과였다. 주목할 건 2009시즌이 끝나도록 히어로즈가 트레이드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빠듯한 살림에도 히어로즈가 현금 트레이드에 나서지 않은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히어로즈가 정규 시즌 막판까지 4위권 싸움을 벌이며 선전했다. 구단 고위층에서도
‘혹시나 4강에 진출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본 배경은 이 사장 자체가 현금 트레이드를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봤을 때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면 선수를 팔지 않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 보였다.”
히어로즈 내부 관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그해 시즌 종료 후
이택근과 이현승을 LG와 두산에 넘기고,
장원삼을 뒤늦게 삼성에 보내면서 현금 35억 원을 확보했다.
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히어로즈는 나머지 최종 잔여 납입금 36억 원을 낼 수 있었다.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 2010시즌을 앞두고 마일영을 한화로 트레이드하면서 현금 3억 원을 받았다.
지난 7월에는 황재균을 롯데로 보냈으나, 현금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KBO가 현금 트레이드를 확인할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 현 야구규약상 100억 원 이상의 이적료가 오가도
KBO와 언론에 1억 원이라고 발표하면 그만이다.
법의 맹점을 노리는 이들 못지 않게 법의 맹점을 가만히 지켜보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현금 트레이드는 이제 밀실에서 이뤄질 것이다.
롯데와 히어로즈 트레이드에 깊숙이 관여했던 모 인사는
“나중에 회고록을 쓰면 재밌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히어로즈 어떻게 볼 것인가?? 히어로즈 조태룡 단장이 벽에 붙여진 메모를 살피고 있다. 말이 메모지지, 서브스폰서가 적혀진 메모지들이다. 지난해 히어로즈는 30개의 서브스폰서를 확보했다. 올해는 70개 이상을 기록했다. 내년엔 100개를 돌파한 서브스폰서로만 1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목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올 시즌 히어로즈는 넥센 타이어와 30억 원 규모의 메인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서브스폰서와도 다양한 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달리 운영비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분위기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게 있다. 2008년 창단 때부터 2010년까지
히어로즈의 재정상태가 어떻게 변화했느냐는 것이다.
<스포츠춘추>의 취재결과 히어로즈는 창단 첫해인 2008년 8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입장료 18억 원과 우리담배로부터 받은 46억 원, 중계권료 10억, 서브스폰서및 기타수입이 6억 원이었다.
지출은 250억 원으로 수입보다 3배가 많았다. 목동구장 리모델링비를 포함한 초기 투자로 30억 원,
가입비 60억 원, 순수 운영비만 160억 원을 썼다.
2009년 히어로즈는 메인스폰서없이 ‘서울 히어로즈’란 이름으로 한 시즌을 보냈다.
수입이 ‘팍’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입은 많은 변동이 없었다.
여러 선수를 팔며 전해 우리담배로부터 받았던 46억 원 이상을 번 까닭이다.
하지만, 잔여 가입비 60억 원과 운영적자 폭이 커지며 지출 역시 늘었다.
이해 히어로즈는 100억 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은 메인스폰서 넥슨 타이어로부터 30억 원,
현대해상으로부터 12억 원의 헬멧 광고비를 받으며 수입 폭이 커졌다.
두 회사를 제외한 서브스폰서가 70개 이상으로 늘어나며 스폰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관중수입 40억 원과 마일영 트레이드 대금으로 받은 3억 원,
매점 보증금 등을 더해 히어로즈는 총 150억 원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지출은 160억 원으로 적자는 10억 원에 그쳤다.
1년 전 100억 원보다 적자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 모그룹 지원 없이 적자 10억 원을 기록한 건 야구계에선 ‘대단한 일’로 통한다.
히어로즈는 내년도 메인과 서브스폰서를 합쳐 매출 70억 원을 목표로 한다.
가능하다면 창단 4년 차에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조태룡 단장은 올 시즌 초 히어로즈를 아기로 비유했다.
“히어로즈는 나이로 치자면 아직 우유가 필요한 2, 3살이다.
저항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저항력을 갖춘 다음 정작 히어로즈가 구현하고 싶은 야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어째서 선수들을 팔아가면서까지 힘들게 운영비를 충당해 구단 운영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는 이상 내년 시즌 설령 흑자를 기록해도
결국, 히어로즈는 고객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이 사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우린 아직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처음 야구판에 들어오면서 네 가지 목표를 정했다.
먼저 가입비 120억 원을 완납해 KBO 리그 정회원이 되자고 결심했다.
두 번째는 2011년까지 재정적으로 정상화하자고 다짐했다.
세 번째는 ‘2013년까지 반드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다’였다.
마지막 네 번째는 2018년까지 10만 명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해
한 시즌 만 명 이상에게 홈구장 연간회원권을 팔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첫 번째 목표를 이뤘고, 이제 두 번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우리의 트레이드를 놓고 실망한 이들이 많다는 걸 잘 안다.
비난하는 이유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재정적으로 탄탄해진 게 사실이다.
올 시즌 적자를 10억 원까지 줄일 수 있던 것도 허약했던 재무구조가 차츰 정상화됐기 때문이다.
히어로즈가 선수들을 팔면서까지 구단을 운영해왔던 것도
세 번째 목표로 넘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히어로즈가 구현하고 싶은 야구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모그룹의 지원에서 벗어난 프로야구단이 자생력을 갖추고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프로야구단이 사업적으로 성공한다는 걸 꼭 보여줄 참이다.”
이 사장은 자신의 꿈을 이룰 때까지 히어로즈를 떠날 생각도, 매각할 의사도 없다.
그러나 개인의 꿈이 언제나 아름다운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상대의 꿈은 내 희망을 접어버리는 악몽이 될 수 있다.
이 사장은 구단을 더 강하게 만들려고 현금 트레이드를 활용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팬이 떠난 구단의 미래는 없다.
![]()
대기업 소유의 프로야구단은 단기적 성과에 얽매인다. 구단 사장부터 성적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그러나 히어로즈처럼 개인 소유의 프로야구단은 중장기적 발전 계획에 따라 '긴 호흡'으로 구단을 운영할 수 있다. 히어로즈가 한국야구계에 새 바람을 몰고온 건 사실이다. 구단 경영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것도 맞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의 가치를 창조할 때가 됐다 (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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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는 영웅인가, 악인인가. 그들은 올 시즌까지 ‘악한 영웅’이었다.
분명한 건 히어로즈가 8개 구단 가운데 엄연한 한 축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실체를 부정할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게
다가 히어로즈가 야구규약을 심각하게 위배하지 않는 이상
독점적 구조의 프로야구에서 그들을 내쫓을 명분도 없다.
프로야구단은 기업이다. 모그룹 홍보차원에서, 사회에 부를 환원하기 위해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대기업도 있겠지만, 원래 프로야구단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그 자체가 독립 기업이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두말할 필요없이 수익창출이다.
히어로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구단을 운영한다고 해도
반드시 비난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히어로즈 경영진의 입장만은 명확히 해야한다.
구단이 우승을 위해 운영하는지, 돈을 벌기 위해 경영하는지 말이다.
그래야 고객이 바른 선택을 하지 않겠는가.
이제 야구계와 팬들은 히어로즈가 영웅도, 악인도 아닌
예측 가능한 ‘보통 구단’이 되길 희망한다.
야구로 돈을 버는 일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