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저물어 간다
2010년은 한국에게 새로운 출발의 해가될 것이다
선진국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해가…
저물어 가는 2009년은 2차대전 후 세계경제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해였다. 2010년은 각국의 정책 총동원 효과가 기대되는 데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대국의 성장이 유지될 전망이어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단 성장률이 다시 플러스 3%로 돌아설 것을 예상한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높은 실업률과 계속되는 수급 조정으로 성장률은 1.25%에 그칠 예정이어서 회복 속도가 늦을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상향조정된 예상성장률이 4.5%다. OECD 멤버 중에서도 두드러진다. 선진국형의 산업구조를 가지면서도 수출경쟁력과 재정 여력이 있고, 신흥국의 다이너미즘이 남아 있는 한국의 강점이 반영된 것이다.
2010년은 한국에 있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될 것이다. 우선 가장 큰 것은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멤버가 되어 '문자 그대로' 선진국 멤버가 되는 것이다. 한국 미디어에서는 G20 보도만 눈에 띄는데,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한 세계의 신흥국 중에서 DAC의 멤버가 된 것은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선진국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G20은 위기관리를 위해서 황급하게 신흥국·자원부국을 끼워 넣은 조직에 불과하다.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할 뿐이다.
이런 G20에서는 경제체제나 경제운영 원칙을 서로 공유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반면 DAC는 (개발)도상국 인권보호와 부패방지 등의 원조정책을 가지고 있고, 그 원조 정책의 배경에 있는 일정한 가치관도 공유할 수 있는 나라들의 집단이다. 단순히 외환보유액이 많거나 재정이 풍요롭다고 들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여기에 한국이 가맹한 의의는 지극히 크며, 한국의 발전 역사에서 가장 긍지를 가질 만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DAC 가입은 이런 성과와 동시에 원조의 증대와 원조 체제의 정비, 환경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 등 '도와주는 측'이 된 후의 세계가 한국에 거는 공헌에 대한 기대는 단숨에 커진다. 이젠 국제사회에 '너그러운 눈으로 봐달라'는 식으로는 얘기할 수 없으며, '선진국'으로서의 아이덴티티 확립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선진국' 아이덴티티 확립의 계기가 한일 합병 100년에 해당하는 2010년에 돌아왔다는 점도, 기묘한 역사의 우연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세계 최대의 원조국이 됐다. 일본의 경우 선진국이 도상국을 일방적으로 '지도'하려 하지 않고, 도상국의 주도권을 존중하려고 하는 원조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자유주의에 집착한 미국에서도, 인권원리주의에 가까운 유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일본이건 미국이나 유럽이건, 원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선진국'으로서의 아이덴티티 형성에는 자국의 경제발전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이것을 확립하려 하고, 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자립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도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이 한일간의 역사문제 해결에 연결되리라고까진 생각할 수 없지만, 미래를 향해 대등한 입장에서의 공동작업을 해나간다면 적어도 한국 스스로의 자신감과 연결되고, 한국의 눈높이를 높이는 데 공헌할 것이다.
또 하나의 출발은 고령화 사회에의 진입이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의 앞자락(1955년생)은 2010년에 50대 후반에 접어들어, 많은 사람이 제1선으로부터의 은퇴를 의식하게 된다. 2018년에는 인구의 14%를 65세 이상이 점하는 고령화 사회가,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인 1964년생이 환갑이 넘는 2026년에는 65세 이상이 20%에까지 이르는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한다.
초고령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장수화(長壽化)는 의료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건강연령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큰 위기는 없다는 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 일본의 변명이었다. 기업도 노력을 계속해 정년연장과 함께 연금지급을 점점 늦췄지만,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 오고 말았다. 고령자는 스스로는 건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와 같은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젊은 세대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인구 감소사회에서 부동산 가격의 영원한 상승세는 기대할 수 없다. 국민과 정부의 부동산을 둘러싼 근시안적인 기대보다는 효율적이고 안정성 있는 복지제도 설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0년을 성숙하고, 안정되고, 세계에서 신뢰받는 선진 대한민국이 출발하는 해로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