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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박재동.김이준수 지음
마을에서 함께 놀고, 먹고, 모이고, 협동하고, 말하고 예술하고, 교육하고, 일한다는 것을 '마을공동체 네트워크'라 칭한다.
1. 우리는 마을에서, 논다.
a) 아파트의 모든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안다. 파크리오맘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부근의 파크리오라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아파트 한 칸 한 칸의 사적 재산물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집합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라 정의한다.
거주자 임유화씨는 파크리오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인터넷 카페부터 개설하여 이웃 만들기에 힘썼다.
= 주민들이 들락거릴 만한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파크리오맘에 대해 적극 홍보했고 매일 두 시간 이상 관리하면서 회원을 모았다.
= 이웃들이 많아지자 2009년 새봄 초록 파티라는 파크리오맘 제 1회 정기모임을 열어 다양한 소모임도 갖고 활발한 활동 (제테크 공부, 퀼트나 바느질)들이 이루어졌다.
파크리오의 놀이터는 다른 단지에서는 볼 수 없는 놀이터 공유 도서관이 있다.
이유는? 놀다가도 쉬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은 아이들은 놀이터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게하며 친구들과 함께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서로 얼굴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이라는 곳은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지 아이가 어떻게 커가는지 관심을 두고, 아이들의 이름이 뭔지도 아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삭막한 아파트지만, 파크리오맘은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서는 물론 누가 뉘 집 아이들인지 알고 같이 키워간다는 마음으로 재밌게 살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도 이런 활동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b) 이웃사촌이 와글와글, 마을이 놀이터다! 성미산 마을
20년 이상 함께 마을을 만든 공동체의 풍경, 그 풍경은 우리가 개발과 성장만 좆아 공동체는 무너지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1994년 성산동에 사는 부모 몇몇의 고민이 그 시작이다. 자녀가 경쟁에 치여 공부에 매몰되기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들은 직접 어린이집을 만들어어 스스로 아이들을 돌보기로 뜻을 모았다. 공동 육아의 시작이었다.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이 속속 판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성미산 마을은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던 것이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여러 모임으로 조직됬다.
마을은 인간의 삶을 위한 무대이자 틀이다. 주민들은 마을에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다시 마을의 어떤 모습을 만들어낸다.
= 마을극장이 생기기 전 이미 성미산마을에는 연극, 밴드, 댄스, 사진, 영상 등 동아리가 생겼다.
= 마을 축제는 마을의 활력소로 2001년부터 해마다 5월이면 일주일 동안 축제가 열린다.
= 마을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카페 '작은나무'에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협동조합형 카페로 200명이 넘는 마을 주민들의 명패가 카페 안에 전시되어 있다.
= '성미산 밥상'은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고 화학 첨가물을 쓰지 않는 마을 식당으로, 요리를 좋아하는 마을 주민이 다른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꿈을 이룬 곳이다. 역시 협동조합형 식당으로 출자자들의 이름이 식당 벽면에 새겨져 있다.
그 결과, 공동 육아와 대안 학교를 해오면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울림두레생활협동조합'도 만들었다.
2. 우리는 마을에서 먹는다.
a) '어울려 먹기'를 통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 수운잡방
아베 야로의 인기만화 '심야 식당'을 원작으로 만든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 상영된다. 화면 속 음식과 동일한 음식을 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시간이다.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 위즈돔을 통해 한 직장인이 개설한 '심야 식당'의 모습을 본 떳다.
수운잡방은 커피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노동자 협동조합 적정기업 이피쿱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공간을 일터로만 사용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나서 뭔가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되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 공간을 마을 사람들에게 활짝 개방했다. 누군가는 코워킹 공간으로 활용하며, 누군가는 함께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장소로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무언가를 함께 먹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알게 된 작자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 그 외에도 수운잡방은 서스펜디드 커피를 새생각하고 있다. '맡겨두는커피'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커피 한 잔이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이웃을 위해 커피 값을 지불해 두는 것이다.
b) 이동하는 마을을 아시나요? 이웃랄랄라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잠만 자는 우리 동네를 활기찬 초록빛으로 바꿀 1인 가족을 찾습니다.' 라는 공지 글의 한 구 절이다. 2010년 회사원이자 독립생활자인 이정인 씨는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독립생활자들을 만나고 싶어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독립해서 혼자 산다는 것은 분명 책임을 요하는 일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힘들이지 않아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은 특별히 더 힘을 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5퍼센트에 달해 있었다.
공식모임은 월 1회, 텃밧 농사를 시작으로 즐거운 공동체 활동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1인 가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먹을거리다. 그래서 힘을 모아 작물을 재배할수 있고, 다 자란 뒤 그것을 함께 먹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텃밭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공간적으로 고정돼 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얘기하고 교감한다는 점에서 이동하는 마을이라 할 수 있는 이웃랄랄라의 시작이었다.
2012년 땅으로 내려와 진짜 텃밭을 분양받은 것이다. 주민 한 명이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시민텃밭 한때기를 물어왔다. 덕분에 옥상이 아닌 한강의 노들섬에서 텃밭 경작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밭두렁 라디오를 진행했고, 텃밭에서 라디오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에게는 굉장한 경험이었다.
3. 우리는 마을에서 모인다.
a) 따로 또 같이 살기의 신공이 궁금하다면, 은실이네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거치며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을 거부할 수 없는 명령 같은 것이 되었다. 집의 소유를 향한 욕망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다. 그런 과정에서 집집은 사는 곳이아닌 사는 것이 되어버렸다. 제테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재산 중식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셰어하우스, 은실이네/ 따로 또 같이 살기를 실천하는, 삶과 생활의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통해 비슷한 가치관으로 엮인 공동체다. 혼자살면 버리는 것들을 공동으로 기록하고 소비하며 생활하면 한 사람당 매달 임대료와 생활비로 30만원 가량을 내면 충분하다는 것이 소란씨의 설명이다.
+ 각자에게 걷은 공동 생활비가 있다. 이 돈으로 동네 생활협동조합에서 장을 보거나 그때 필요한 것을 사기도 하고 매달 상조회비로 1만원 씩을 걷어 함께 사는 사람들의 경조사에 대비하기도한다.
사실 셰어하우스는 심각한 주거 문제의 대안으로 일본에서는 어느정도 보편화되어있다. 자기만의의 공간을 지키면서 동시에 어울려 사는, 일종의 공동체 생활이 독립생활자들의 구미에 맞으면서 이들으의 중심으로 확산된 것이다. 독립적으로 살면서도 고립립되지 않을 수 있는 주거 형태이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 유일한 원칙이 방 하나에 한 사람씩 이다. 당당해지고 싶은 여성이라면 생활의 자립을 꾀할 수 있는 경제적인 소득과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사색할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싸우기도 하지만 보살펴주는 느낌이 좋다.
b) 공동 주거와 마을 공동체를 고민하는 방법
동네공간의 운영자 중 한명인 김기민씨, 다운타운 프로젝트에서도 강조하는 것이지만, 마을에서는 곧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대 많은 대도시들은 이런 기횔를 차단하고 있다. 자신에게만 골몰하도록 하고, 타인에게 관심 갖지 않은고 자기 혼자만 살아남는 데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성북동은 골목이 구불구불 길을 이룬곳이다. 골목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집의 연장이자 집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된다. 또 마을과 지역의 조건에 맞게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은 교류의 기회나 문화의 골목 안에서 피워낼 수만 있다 골목은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모두가 힘든 세상, 무엇이 잘못됐나?하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면 결국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며 관계를 맺는게 중요하다.
협동조합 주택을 만들면 각자 부담할 돈이 적어 외부 도움을 덜 받아도 되고, 지역과 가치 중심으로 하는 주거, 생활 공동체도 가능해 지기 때문에 주고 공동체 공부를 더 하면서 다른 공동 주거를 해나갈 사람을 섭외하고 활성화 시킬방법을 고민하고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4. 우리는 마을에서, 협동한다.
a) 청년들의 협동으로 일군 느낌의 공동체, 우리마을카페오공과 우리동네사람들
적게 소비함하면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가능한가? '비싸고 큰 소비가 이뤄지는 강남이라는 공간에서 그게 가능할까?' 오공은 주인장의 인원수 50을 뜻한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50명의 청년들이 만든 협동조합 카페이자 커뮤니티 공간이다.
귀촌은 도시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농어촌으로 들어가는 기존의 귀촌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는 청년들의 현실적인 상황도 반영한 것이지만, 이들게는 장기적으로 청년들의 협업과 네트워크에 뿌리를 둔 마을 공동체를 여러 지역에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농어촌과 도시에 문화 공간, 생태 공간 등을 다양하게 만들어,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도시건 농어촌 지역역이건 원하는 곳으로 이주하면서 살 수있는 일종의 마을 공동체 연합을 그들은 꿈 꾸었다.
카페오공과 우동사는 이렇게 적게 쓰면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동사는 의료 두레, 공동 주거 교육 연구 등 구성원들이 필요로 할 때 자금을 빌려 줄 수 있는 연대 은행, 텃밭오공에 대한 연구를, 카페오공은 3만 엔 비즈니스, 재능 나눔, 심야 식당, 연찬, 나누기 , 대안 화폐, 기본 소득 등에 대한 연구와 사례를 맡고 있다.
20세기를 지배하던 경쟁의 논리가 이런 청년들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신 협동과 협력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의 협동조합 운동이 그것을 대변한다.
b) 협동으로 일구는 마을 리얼버라이어티, 성대골
아파트와 다세대 등 공동 주택과 단독 주택이 공존한다. 누구도 그냥 지나치기 힘든 전통 시장도 있고, 왕복 2차선 도로를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언덕배기를 오르낼이는 풍경도 정겹다. 이곳에서도 마을공도체를 만들기 위하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성대골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연대와 협동이다. 서로 필요와 욕구 읽어주고 찾아주고 풀어주기 위해 힘을 모은다. 마을 오지라퍼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서 불씨를 지피면 마을 사람들이 힘 부채질하여 횃불로 만든다. 자연럽 팀플레이가 이루어진다.
첫번째 사업은 마을 어린이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잘 아는 사람들도 아닌 분들이 정말 도서관을 만들거라는 확신도 없었을텐데 모금 통장에 돈이 쌓는 것을 보고 이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라 마응ㄹ 사람 모두가 꾸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협동은 언제 잘 되나? 자신의 것을 먼저 내놓을 때 잘 된다. 신뢰를 쌓기에는 뻔한 이야기지만 진심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고,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성골의 협동조합 1호점은 2010년 마을카페 사이시옷이다. 주민의 힘으 만든 마을 사랑방.
또 다른 자랑은 에너지 자립이다.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를 계기로 우려와 원자력을 에너지로 사용하 것에 대한 경각심이 성대골에서도 터져나와 에너지 지킴이가 되기로 하여 에너지 약이 곧 에너지 생산이라며 기치를 내걸었다.
5. 우리는 마을에 말한다.
a) 마을을 담는 신문의 분투기, 마을 신문 도봉 N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 소식을 마을 사람들이 직접 전하는 매체서 매스미디어와 1인 미디어가 놓치는 틈을 메우고는 마을 신문에는 담을 수 없었던 마을의 생생한 소식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담겨있다. 도봉 N의 장점은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신문이라는데 있었다. 주민 한명 한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으며, 주민들의 후원 주점 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애정을 확인하여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전국 곳곳의 마을 신문이 배송되는 것을 보고 나 혹은 너의 이야기, 마을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 마을 신문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좀 더 서로를 연결된 존재로 인식하면서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금 당장 내가 가볼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b) 마을 방송에 내가 나와서 정말 좋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만만한 방송국이라고 불리는 와보숑,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다 편안하고 즐겁게 방송을 만들고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이들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기획하고 진행한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에 시끌시끌성북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참여해 교육을 받은것으로 시작됬다.
결과적으로 와보숑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사업 구상을 하고 논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결사체로서는 충분하지만 사업체로는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뉴스나 프로그램의 기획 회의를 할때면 카톡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어떤 난ㄹ은 카톡으로 회의하느라 밤을 세기도 해서 그럴듯한 공간이나 장비가 있었으면 하지만 열정과 의지 곧 사람의 문제라 됬다며 그만큼 주민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고 이것을 함게 조율하고 결론을 낸다고 이야기한다.
마을 미디어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을과 함께, 주민과 함께 전진하는 일이다. 마을 미디어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어떤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려고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나누는 것일 때, 마을 미디어는 마을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주민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6. 우리는 마을에서, 예술한다.
a) 어쩌다 마주친 골목길에서 예술을 접한다는 것, 예찬길 마을공동체
그 골목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던 한 청년의 작은 몸짓이 골목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20살 무렵 2004년부터 그 골목에 살기 시작한 김광민씨다. 음악과 함께 살아오던 그가 이곳에 악기사를 차린 것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곳이 하나가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주민센터의 딱딱한 공간보다 악기사에서 기타교실을 하면 분위기도 부드럽고 사람들도 좋아할 것라는 의견이었다. 악기사이니 훨씬 현장감도 날 것이고 마을 한가운데 있으니 주민들도 접근하기 편한터였다. 지금의 서강로 11길은 예찬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예술을 찬양하는 길,
강좌니 축제니 공연 등 마을의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힘든 일이 없었을까? 김광민씨가 모든 분야에
주가 되다 보니 사업에는 소홀해졌었다는게 문제였다. 하지만 마을학교 등 다양ㅇ한 마을공동체 사업에도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그의 수고가 덜어졌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큰 갈등은 없었다 말한다.
예찬길은 좁고 짧아서 좋다. 정기적으로 날을 정해놓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 만나고, 전할 말이나 일이 있으면 지나가면서 이야기해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b)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소소한 예술, 000간, 창신동 봉제 마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창신동에서 만든 옷을 입었을 만큼 이곳은 한때 의류 생산에서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서울시가 2012년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하기로 결정한 이곳에서는 과거보다는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싱이 돌아가고 재단이 이뤄지고 있다. 원래 창신동은 복숭아나무와 앵두나무가 우거진 과수원 지역이었다. 이렇게 붉은 열매가 많아 홍숫골로 불렸는데, 1914년 한성부 관청이던 인창방과 순신방에서 한 자씩 떠서 창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창시자 인 두 사람은 키다리와 콩이라는 별칭으로 활동하면서 한 해 동안 창신동 주민들과 여러 형태로 관계를 형성하며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친해지면서 커뮤니티 도서관 뭐든지를 만들게 되었다. 도서관이 생긴 뒤로는 다양한 문화 활동이나 마을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지금 뭐든지는 주민들이 조합우언으로 참여해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함께 모여 뭐든지 함으로써,
봉제마을에서 가장 흔하게 본수 있는 것이 버려진 원단이다. 창신동 일대에는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단 심지 등이 무수히 배출되고 있어서 자투리의 재발견을 통해 남는 공간, 제품, 자원, 인력 등을 찾아내서 거기에 다양하고 새로운쓰임을 입혀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한 것이 000간 플랫폼이다.
= 키다리와 콩은 버려지는 원단 자투리로 방석을 만들었다. 원단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것은 물론, 이것으로 수익도 낼 수있겠다 싶었다. 또 계절절과 유행에 따라 원단이 다르니 이렇게 다양한 천들을 담아 만든 방석은 봉제 노동의 흔적이 담긴 저장소라는 의미도 있었다.
예술가 개인의 작품 활동이 지역과 만나면서 외연과 내용이 넓어지고, 그렇게 확장된 작품 활동이 지역의 삶과 일자리로 연결되고, 예술가와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또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생겨 앞으로도 지역의 변화를 위해 함께 살기를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 창신동에 이와 같은 새로운 기운이 깃들자 정부도 인근 동대문 패션 상가와 이곳의 봉제 산업을 연계하기 위해 창신동의 빈 공간이나 폐공간을 청년 디자이너들에게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7. 우리는 마을에서 교육한다.
a) 재미있어서 학교이고 마을이라네, 삼각산재미난마을
우선 가까운 곳에 1960년 4.19의거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위패를 모신 국립 4.19민주묘지가 있다. 서울의 자랑거리인 북한산 둘레길과도 연계되어 있는 곳, 재미난 마을이 만들어진 최초의 동기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였다. 그들은 공동 육아를 통해 그 문제를 풀어가기로 의견을 모으고, 1999년 공동 육아 협동조합 꿈꾸는 어린이집을 꾸렸다. 아이들을 위해서 모였지만 공동 육아를 하면서 부모들도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좋은 교육 환경과 교육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얻은 답들을 공동 육아에 적용해 보면서 그들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배워나갔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아빠들의 태도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아내의 몫으로만 여기던 육아를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함께 바깥으로만 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마을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재미난 학교의 아이들은 국 영 수도 배우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공부들을 많이 한다. 텃밭을 가꾸고, 재래시장 등으로 마실을 다닌다. 친구 집에 인사를 다녀오라는 숙제를 받기도 하며, 친구가 아프면 단체로 병문안도 간다. 재미있는 것은 재미난학교의 아이들이 교사에게 높임말을 씆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은 반말로 자기 의견을 교사에게 전달하고, 교사는 그 말을 경청 아이들 진지하게 토론을 한. 교사와 학생이 반말로 소통하는 것은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고 서로 수평적인 관계일 때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있기 때문이다.
마을 자체가 어른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가 되었다. 호기심, 상상력, 자유가 사람에게 필요한 성장의 생태 환경이라면, 재미난 마을은 그런 것을 갖춘 공간이다.
b) 교육 격차, 꿈 격차를 없애는 마을을 아시나요? 공릉동 꿈마을공동체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무관하게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것은 교육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교육은 부와 지위의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사교육은 격차 사회를 부추긴다.
함께하는 교육이 있고, 함께 꿀 수 있는 꿈이 있다면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다른사람과 비교나 경쟁을 하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꿈마을 일원으로 동기부여 콘텐츠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획, 진행하는 모티브하우스의 기획팀장 곽수경 씨는 각자 자신만의 가치와 꿈을 통해 삶을 가꿔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과 보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젊은 사람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마을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아이들에게 멘토 노릇을 할 수 있는 청년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제안한 것이 모티브 하우스이다. 센터장은 공릉 꿈마을의 주역이 아이들이라고 강조했다. 모티브하우스는 마을 축제 참여 등 마을에 녹아드는 과정을 통해 사업의 지혜와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 사업이 금전적인 이익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되고 힘든 부분이었지만 교육의 근본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자기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할지 방향을 더욱 확고히 다진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행동해라 라는 훈계를 되풀이하는것은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남과 더불어 사는 방법, 즐겁게 잘사는 방법을 일상에서 익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교육이다. 마을공도체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다.
8. 우리는 마을에서, 일한다
a) 마을에서 정상적으로 살기위하여, 아빠맘두부
밤을 넘기거나 유통 기한이 2주씩이나 되는 두부 같은 것은 이들에게 없다. 오늘 만들어 오늘 배달한다는 것이 원칙인 아빠맘두부, 박치득 씨를 비롯해 한 동네에 사는 아빠 네 명이 작당 모의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중년의 남자 넷, 그들은 직장을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두부 만들기에 전문적인 지식도 없었던 그들이, 2012년 은평구 갈현동에 가내 수공업 규모의 두부 공장을 차릴 만한 공간을 구하고 시설을 갖춘 뒤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포장 두부와 다른 두부를 만들려면 포장 두부의 특성인 보존성을 포기해야만 했다.
--> 아빠맘두부는 직화 방식으로 두부는 만드는 전통 방시은 노동이 많이 필요한 방식이라 하고, 두부는 만드는 과정 못지않게 재료인 콩의 품질도 중요하게 여겼다고말한다. 또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지는 자신들이 만든 두부를 사서 먹는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었다. 마을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그들은 두부를 판매하기 전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시식회를 가졌다. 주민들의 피드백은 품질을ㄹ 높여가는 데뿐 아니라 아빠맘두부를 알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꿈꾸는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내 소비자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사 먹음으로써 지역순환 경제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신선한 두부를 사 먹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서로 다른 두부 맛을 비교하고 맛있는 두부를 파는 마을 두부집을 소개하는 책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라며 궁금해한다.
b) 결혼 이주 여성들 함께 꾸리는 마을 기업, 마을 무지개
예산 규모는 크지 않으나 결혼 이주 여성들의 정서 문화 지원을 위한 동아리 활동을 해보기로 하고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문화사업팀장을 맡은 전명순씨는 음식, 바느질, 노래, 책읽기 등 총 15회에 걸친 프로그램을 진행해 결혼 이주 여성들과 한글 교실을 넘어서 만남을 가졌다.
그러던 중 이주 여성들의 정서적 아픔을 깨닫게 해준 중국 여성과만만디라는 중국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때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 주고 서로의 선생님이 되었다. 그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고 주도적으로 내용을 채우면서 어른바 배워요 시리즈가 줄을 잇기 시작했고, 그렇게 함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꿈꾸는 의미를 다잡았던 것이다.
마을 무지개는 지역사회와 함께하기로 한 자신들의 원칙을 잊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지역 중심으로 활동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교육 서비스업이라고 봐야 하잖아요. 대표가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관곌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느끼고 있어요. 능력이 뛰어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만들면서 서로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인 것 같아요.'
마을무지개의 미덕은 이주 여성을 한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바라본다는 것, 경제 활동을 함께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일구어 간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이 함께 만드는 다문화 공동체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사회 속에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각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뜻이 맞는 누군가를 찾으려고 애쓴다. 나 또한 사람에 치이고 사람에 눌리고 사람에 내 자신이 좌지우지 되던 나를 보면 한 없이 작아져 있는 내가 싫다. 그 때 혼자있을 공간을 찾고, 누군가 말을 안 걸어줬으면 좋겠고, 나에게 신경을 꺼줬으면 한다는 맘을 가지지만 그것도 한 때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공동체라는 단어에 더 마음이 가고 나 또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길 바란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나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나또한 주동자가 되어 그들을 리드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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