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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오, 「새끼」, 『새끼』, 밥북, 2018, 59쪽-80쪽
5조 32194651 최용희 필타작품
문이 화들짝 열렸다. 건들바람에도 삐거덕거리던 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건 공양보살이였다. 들어오기가 무섭게 스님의 장삼자락부터 끌어당겼다. 무명 띠보다 가벼운 스님이 파 뿌리처럼 뽑혔다. 연줄에 묶인 연처럼 공양보살의 뒤를 따르는 스님이 그렁그렁 가래를 삭였다.
“어데… 뭔 일 났는가?”
풍경소리가 스님의 말보다 더 크게 울렸다. 스님의 묻는 말을 풍경소리에 흘려버린 보살이 그답지 않게 허둥댔다. 적광전 층계참엔 수북이 쌓인 낙엽이 저희들끼리 몸을 부비며 새벽바람을 이겨내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초겨울 무서리로 새하얗다. 그러나 앞선 보살이나 뒤따르는 스님이나 어둑한 너덜길일 뿐이었다. 공양보살이 적광전으로 뛰어들었다. 어찌나 급했던지 불전에 올려야 할 삼배를, 꾸벅하니 합장으로 대신했다.
“불당에… 부처님 앞에… 이를 어쩐댜. 어쪄면 조아유. 시님!”
공양보살이 스님을 끌어당겼다. 허물처럼 스님이 풀썩 주저앉았다.
“허어, 이런 낭패할 때가… 나무관세음보살.”
고라니였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스님을 배웅하고 나니 정리할 게 많았다. 법당 문을 떼어낸 후로는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날아드는 낙엽도 낙엽이지만 닦아도 닦아도 쌓이는 미세먼지는 야속하기까지 했다. 툭하면 꺼지는 향촉을 피우는 일 역시 손이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약사여래를 모신 연좌를 닦으려는데 뭔가 시커먼 물체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고라니 새끼였다. 부식된 폐선처럼 온몸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앙상하게 드러난 뼈마디가 당장에라도 거죽을 뚫고 나올 정도로 참혹했다. 숨이 넘어갈 듯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보살이 스님에게 뭔가를 해보라고 채근했지만 스님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고라니 곁으로 다가간 스님이 합장을 했다. 야윈 몸과는 달리 법고처럼 차오른 배가 눈에 띄었다.
“출산인가?”
스님이 묻자 보살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저런 몸으로 새끼라니. 그렇다 하더라도 시기가 아니었다. 고라니 등속 같은 산짐승은 오뉴월에 새끼를 낳았다. 지금은 무서리 허연 입동 어름 아닌가.
스님이 한 손으로 고라니 등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는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낯선 인연인데도 고라니는 놀라는 기척 없이 수굿했다. 몸이 차가웠다. 마루장이 얼음장이었다. 스님이 공양보살에게 보료를 내오라고 일렀다. 보살에게 보료를 받아든 스님이 고라니 엉치를 들썩여봤지만 움쩍도 않았다. 야위긴 했어도 뼈대가 있는 짐승이었다. 축 처진 상태라 무게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이번에는 고라니까지 버둥댔다. 스님이 목덜미를 쓰다듬을 땐 얌전하던 녀석이, 들어 옮기려 하자 완강히 저항했다. 스님이 행전을 끌러 고라니 눈을 감쌌다. 한바탕 소동을 거친 다음에야 고라니를 보료에 누일 수 있었다.
땀이 흥건한 보살에게 스님이 생각나는 대로 주문했다. 이불 갖고 온나, 요사채 말고 주지실 누비이불 말이다. 목이 마른갑다. 물 좀 뎁혀 온나, 불이 어둡노, 내 눈이 침침하노, 심지 좀 돋가라. 이런저런 심부름으로 공양보살은 그 어느 때보다 분방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늘 얼굴을 찡그리던 공양보살이 이번엔, 이른 새벽 살얼음판인데도 군말 한마디 없었다.
법상에 놓인 촛불이 출렁했다. 바람인가. 망량이로구나. 헛것이 보이다니! 공양보살에게 물을 데워오라고 이른 후였다. 깜빡했는가 싶었는데 그 탄지일순에 이매가 들다니, 아득히 먼 길, 소가 사람을 끄는지 사람이 소를 끄는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소고삐가 엉뚱한 데로 흘렀다. 돌아다보니 누군가 어렴풋했다. 고단하실 텐데 고만 저한테 넘기셔요.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어렴풋한 얼굴이 사람 좋게 웃었다. 그리곤 오던 길을, 그래야 할 것처럼 휘적휘적 되밟아가는 게 아닌가. 아, 그랬구나. 저 어렴풋한 얼굴,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젊은이가 공양실을 기웃거렸다. 행색으로 보아 나그네 같은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해진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걸친 입성은 여름이라 그렇다 쳐도, 머리는 까치집처럼 얼크러졌고 쑥 들어간 눈매는 영락없는 비렁뱅이 꼴이었다. 외국인 같지는 않은데 하는 말투가 영 어눌했다. 좀 덜떨어진 얼치기 같게만 여겨졌다. 무슨 일이든 해 줄 테니 밥이나 얻어먹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비렁뱅이같이 생긴 사내는 조르고 그럴 때마다 공양보살은 손사래를 내젓고, 동정을 지켜보던 스님이 선장을 두드렸다. “거사께서야, 어디서 온 줄은 모르겠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듯하니, 정 그러시다면 공부하는 셈 치고 한 번 있어 보시게.” 했다.
그날 밤, 원주실을 겸하고 있는 주지실에 셋이 모여 앉았다. 스님이 화두 삼아 차를 냈다. 차는 떫었다. 한빈한 살림에 차까지 사서야 되겠냐며 손수 재배하고 덖어냈다. 조미료에 길들어진 입맛으로 본다면 거칠게 느껴지겠으나 스님이나 보살에게는 감로가 따로 없었다. 스님이 먼저 신참에게 근본을 묻자, 필리핀 사람이고 나이는 스물이며 한국에 온 지는 1년이 조금 안 된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온 그 1년 동안 뭘 했냐고 했더니 그냥, ‘이것저것’이라고만 둘러댔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 했으나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더는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그 한국인 아버지를 찾으려고 입국했다는 사실을 안 건 그러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총각 처사, 우리 절에선 얼마를 기실 작정이우? 가량이라도 섰수?”
공양보살이 묻자 젊은이는 태평인데 지켜보는 스님이 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쯧쯔… 겨우 의사소통이나 될 사람이 ‘가량’이 뭔 말인 줄 알고? 그냥 있는 대로 있다 내키면 뜨겄지. 맥없는 절밥에 찰거머리 붙을까.”
이름을 물었더니 존이라고 했다.
“존…?”
스님과 보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어색했던 것이다. 말이 어눌해서 그렇지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 아닌가. 영어 이름을 쓴다는 게 영 어울리지 않았다. 뜬눈으로 새우다시피한 스님이 다음 날 아침 젊은이를 불러 앉혔다. 사각모로 낸 한자에는 ‘무일’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이게 자네 이름이니 앞으론, 어디 가서든 이 이름으로 살아가게.”
무일이 좋아했다. 세상 모든 걸 가진 듯 기뻐했다. 법명이자 속명이 된 그의 이름 ‘무일’은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쉽게 쓰고 쉽게 불리라고 무일이라고 했는데 무일 자신은 그 이름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치 그 이름 자체가 자신의 전부이기라도 한 양 파고들었다.
“스님?”
“와.”
“무일이 뭡니까?”
“무일? 무일은 무일이지. 자네 이름 아니던고?”
“제 이름인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 뜻이, 궁금해서요.”
“일러주지 않았던고, 없을 무 자에 하나 일.”
며칠 지나 또 물어왔다.
“없을 무, 하나 일이면 없는 게 하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무일이 사뭇 진지했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은 거기까지였다. 자네 이름이니 자네가 깨달아야지 달리 누가 깨우쳐두겠냐고. 열심히 궁구하다보면 터득할 날이 있을 것이니 정으로 돌을 쪼개듯 차근차근 생각해 보라고.
겉에서 지켜보자니 실다웠다. 장작을 팬다, 모깃불을 지핀다, 해우소로 뻗은 호박순을 돌린다 하며, 큰일이고 잔심부름이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을 시키면 군말 없이 묵묵히 해냈다. 꾀를 쓸 줄도 요령을 부릴 줄도 몰랐다. 그러고는 며칠이 지났을 즈음, 큰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이제야 떠나려는가 싶어 조금은 섭섭했으나 마음에 담고 있던 일이라 낙담할 것도 아니었다. 여비에라도 보태라고 봉투를 내밀자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중이 되겠다고 했다. 중도 그냥 중이 아니라 아도나 마라난타 같은 대화상이 되겠단다. 기가 찼다. 잔가 바다 건너 비율빈에서 온 사람인 건 알겠네만 그 같은 선지시잉 오시기 전에 이미 법력이 신통했던 분들인데 자네는 부처님 존호도 모르는 까막눈이 아닌가 했더니, 어디서 주워들었던지 까막눈이 부처님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되레 반문하는 게 아닌가. 속으론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내칠 일만도 아니었다. 이 고단한 산중생활을 자청하기가 쉬운 일인가. 객기로 될 일도 아니고 결기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그 뜻이 가상했다. 기다려 보자고 했다. 성급하게 굴 rt 없이, 다문 일 년이라도 불목하니로 절밥을 먹어보고, 근기를 키우고 나서 행자가 되던 사미가 되던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이 절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무일이었다. 스님이 나지막이 불호를 외웠다.
“나무관세음보살…!”
무심한 화상. 어디 가서 무슨 수로… 굶고 지내지는 건 아닌지. 비율빈은 따뜻한 나라라던데 고뿔이나 들지ㅣ 않았는지. 온다 간다 한 마디 말도 없었다. 쓰다 달다 내색도 없었다. 어디로 간다 언제 오겠다는 말은커녕 어떤 기미도 없었다. 벌써 사흘이었다. 그 사흘간이 삼추 같기만 한 스님이었다. 자리를 비운 때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자세한 말은 안 했지만 추단해보기로는, 사람을 찾는 듯했다. 주소며 전화번호며 필리핀 제 어미에게까지 성화를 부리는 걸로 봐서는 쉬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풍경에 매달려 있던 잉어가 고욤나무를 흔들었다. 혼곤한 잠에 빠져있던 바람이 눈을 비볐다. ‘아차, 늦었구나. 허공에 매달려서도 용케 살아가는 저 잉어님 아니었음 새님들에게 또 혼날 뻔했네.’ 풍경이 서늘하게 울자 새들이 고욤나무 가지에 줄을 섰다. 사자산 너머로 푸르스름한 동이 텄다.
아기에게 마음을 주듯 스님이 고라니 입에다 더운물을 떠 넣었다. 고라니는 코끝을 벌름거리기만 할 뿐 좀체 넘기려 하지 않았다.
“나무관세음보살! 허어! 뭐라도 좀 자셔야지.”
스님이 혼잣소리를 하며 고라니와 공양보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럴 때마다 공양보살은 고라니의 아픔이 마치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인 양 어쩔 줄 몰라 했다. 난감해 하던 스님이, “소!” 하고 소리쳤다. 공양보살이 스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엉덩이를 들썩하더니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아니래유, 시님. 허구헌 델 놔두구 해필, 부처님 기신 법당이 뭐래유, 법당이…. 동티나게 생겼구먼유. 불각 중에 외양간을 맹글 수도 없구.”
공양보살이 알아듣는 척이 없자 스님이 또, “소!”하며 뭔가를 입에 털어 넣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 우황을 그렇게 불렀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딱 한 알 남은 우황청심환이었다. 사시공양을 건너뛰는 날이 있었을진 몰라도 약장에 청심환 떨어지는 날은 없었다. 세 알 남았던 것을, 무일이 떠나는 바람에 연거푸 두 알을 털어 넣고 남은 한 알이 전부였다. 그만큼 귀하게 여겼다. 망구를 넘긴 노스님에겐 없어서는 안 될 상비약이기도 했다. 다른 심부름은 몰라도 이번만큼은 곤란하다는 듯 머뭇거리자 스님이 주장자를 내려치듯, “소”하고 외쳤다
해필 하구는… 이럴 때 좀 붙어있지. 공양보살의 발걸음이 어지러웠다. 새벽바람이야 늘 맞던 것이다. 석간수에 빨래를 하다 보면 시리다 못해 손이 깨지듯 저리고 따가웠다. 초겨울 추위가 갑작스럽다 하지만 어디 엄동설한에 비기랴. 지금 공양보살의 마음 한쪽이 텅 빈 듯 시린 것은 새벽바람 때문도, 세상을 온통 뒤덮은 무서리 때문도 아니었다. 손을 꼽아보면 사흘, 그 사흘이 까마득해지는 것은 사람. 그랬다, 사람때문이었다. 무일이 떠나면서 그가 들어섰던 마음까지도 가지고 간 것이다.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니 얼굴부터가 섭섭했다. 단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토록 또렷하던 얼굴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자신같이 귀애했다. 아니 자식이라고 믿었다. 그도 그렇게 믿고 따랐었다.
채마전을 일구던 무일이 괭이를 내려놓고는 쪼그려 앉았다. 따뜻한 볕에 조는가 싶어 보살이 고양이 발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놀랠 요량으로 야옹, 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꺼진 고랑에 눈길을 둔 무일은 그대로 석상이었다. 보살이 무일의 어깨를 토닥거리고 나서야 몸을 풀었다.
“무일 시님, 먼 생각?”
보살이 무일의 그림자를 깔고 앉았다.
땅콩이 싹을 내밀고 있었다. 지난 가을 수확할 때 숨어 있던 땅콩 알이 봄이 되자 싹을 틔운 것인데 무일의 괭이질에 드러난 것이다. 버려진 땅콩에서 올라온 싹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굵고 실했다.
“벨걸. 땅콩 싹 첨 봐? 좀 있어바. 시상천지 되다 새싹으로 범벅일 텐디. 거기다 꽃 벙글고 새까지 울어 싸 바. 멀미 안 하고 배길 장사 있나.”
노르스름한 새싹에 정신이 팔려있던 무일이 꿈을 꾸듯 말했다.
“저 땅콩… 꼭 나 같지 않나요?”
무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필리핀에 있는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필리핀이란 나라가 낯설어졌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임에도 서먹서먹했다. 쥐궁멍을 넘보는 고슴도치처럼 주변으로만 맴돌았다. 그렇다고 한국이란 나라에 정감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나라. 그러나 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처지가 아닌가, 어머니나 나나. 어머니가 야속했다. 순진한 건지 지능이 모자라는 건지. 20년이 넘는 세월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니. 다시 오겠다는, 기한도 엇ㅂ는 약속을 믿고 있다니. 기억의 저 끝까지, 몇 번이고를 훑어 내려가 봐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는 들어보질 못했다. 태평스런 어머니와 달리 그는 괴로웠다. 갈등의 연속이었더. 무책임한 데다 내일까지 없는 어머니와는 말도 하기 싫었다.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를 코피노라고 따돌렸다. 커갈수록 그의 외모는 한국 사람을 닮아갔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생산되자마자 폐품 처리되는 불량품, 절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아도 땅콩은 싹을 틔웠다. 그 어떤 싹보다 튼실한, 무릎에 턱을 걸고 앉은 무일이 좀체 일어설 줄 모르자 공양보살이 땅콩 싹을 흙으로 덮었다. 새한테 들키지 말고 두더지한테 먹히지 말라고 덮은 흙을 토닥거렸다. 밤사이 행주치마에 달린 주머니를 뒤졌다. 먹기 좋게 고들고들해진 누룽지를 무일에게 건네자 합장한 무일이 연신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야!”
공양보살이 허공에다 손을 저었다. 주지실을 나오던 보살이 발을 접질린 것이다. 길이 미끄러웠다. 무일이 떠난 허전함 위에 무서리까지 덮쳤으니 조심한다고는 했어도 허방을 디딘 것이다. 길이 설기도 했다. 공양실 쪽 길은 눈을 감고도 훤했지만 적광전에서 주지실 가는 길은 에움에다 다닌 적도 없어 설 수밖에 없었다. 보살이 절뚝거리며 법당에 들어서자 스님이 손부터 내밀었다. 고라니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은 스님은 영락없는 여염 할아버지였다.
청심환을 숟갈에 받아든 스님의 손이 떨렸다. 잘금거리는 청심환을 손으로 받쳐 들곤 고라니 입속에 흘려 넣었다. 고라니가 코를 벌름거리며 몇 모금 받아넘기자 스님이 기특하다는 듯 고라니 등을 토닥거렸다. 고라니도 그런 스님의 뜻을 아는지 눈을 끔벅이는 게 아닌가.
푸르스름하던 여명이 환하게 밝았다.
“고만 내려가 보시게. 여기 소임은 내게 맡기고.”
그러나 노스님을 두고는 공양실로 갈 입장이 아니었다. 기력이 쇠하기로는 저 어린 고라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스님이었다. 연로한 나이에 공양이라고 해봐야 종지만 한 발우에 산채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마저 동절기에는 오후 불식이라고 해서 점심 공양은 거르고 있었다. 고라니에게는 찬바람 막아줄 거죽이라도 있다지만 스님에게서야 홀껍데기나 마찬가지인 납의 두어 벌이 고작 아닌가. 보잘것없는 공양에, 입성 또한 변변찮다 보니 늘 송구할 뿐이었다. 고뿔 한번 걸리지 않고 엄동을 내놓는 스님이야말로 인동초라고 믿었다. 바람이라도 휙 불면 언제 꺼질지 모를, 그런 스님을 남기고 내려갈 순 없었다.
하긴, 보살 자신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스님의 나이로부터 딱 스무 해를 내리면 보살의 나이였다. 스님의 세수가 여든하나이니 보살 역시 환갑 진갑 다 넘긴 연치였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기력이었다. 그럴 때마다 약사여래께, 제발이지 큰 병에나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위태롭기로 말하면 스님이나 보살이나 고라니에 버금가는 처지였다.
“시님! 허물어낸 축담이야 어째 해볼 순 없드라두 여그 법당 문짝은, 그냥 놔뒀다간 큰일낼 일이구먼유. 시님이 입적하심 불 짐이라도 쬐겠지만 부처님 얼어 죽어 바유 팔열지옥에 가서나 불구경할까. 그나저나 무일 시님이 와야 먼 수를 내도 내지.”
부처님 얼어 죽는다는 말에, 경황 중에도 스님이 허허 웃었다. 그래, 무일이 그놈이 와야 뭐가 되도 되지. 이 산중에서 힘쓸 사람이라곤 무일이 유일했다.
스님의 눈이 허공에 닿았다. 적광전 문에 막히든가, 담장에 걸리든가 했어야 할 눈길이 사자산 너머 허공에까지 닿은 것이다. 산과 허공이 맞닿은 자리에 작은 점이 흐릿했다. 무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절간 담장이 허물어지고 적광전 문짝까지 떨어져 나간 사달은 무일에게 있었다.
발걸음이 뜸하던 무일이 스님을 찾은 건, 슬그머니 외출을 하고 난 다음 날이었다. 무슨 불만이라도 있던지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가람을 둘러치고 잇는 담장을 허물잔다. 멀쩡한 담장을, 거쳐 간 대중들 노고가 얼마인데 그걸 함부로 허물 수 있겠냐고 딱 잘라냈다. 완고한 스님에게서야 답이 뻔할 것 같았던지 이번엔 공양보살을 찾았다.
“보살님? 생각해 보세요. 절이란 너나없이 성불하자는 데가 아닙니까?”
“그렇지. 머라드라… 그래 옳거니, 예배드릴 적 하는 말 안 있는 갑나. 자타일시 성불도.”
“그렇지요? 자타일시 성불도!”
보살이 무일을 빤히 쳐다봤다. 초등학교 겨우 마친 자신을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성불이라니. 누군 성불할 줄 몰라 평생을 공양간 원주로 살아가는 줄 아남? 속내를 숨긴 채 무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시험 삼아 물어올 위인은 아니었다. 한국말 겨우 튼 실력으로 예불문이나 간신히 읽어내는 수준이었다. 인성이 착하다는 건 점골 사는 너구리가 먼저 알았다. 한참을 서 있자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색했던지.
“담장 말예요 저 담장부터 없어져야 절이 될 것 같아서요. 다 같이 성불하자고 하면서 사람 차별하고 짐승 못 오게 막고, 태어나길 짐승으로 태어났지 그게 어디 짐승 탓도 아닐 텐데.”
공양보살이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듯했다. 사실 담장이란 게 경계의 다른 말이고 보면 소유욕의 상징에 불과했다. 일반 가정이나 정부 기관 같은 데서나 필요하지 무소유와 무등을 가치로 내건 절에서 쌓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어 왔고, 견고하기까지 한 담장을 허물자는 데는 선뜻 수긍할 수 없었다. 내 소관이 아니고 큰시님에게 답을 달라고 하자 그럼 같이 가서 설득해 보자는 게 아닌가.
처음엔, 택도 없다고, 다음 날엔, 먼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또 그다음 날엔, 부처님 공양에 시님 수발도 바쁜데 이젠 산짐승 밥까지 챙겨야겠냐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다 결국엔 무일의 설득에 넘어가고만 보살이었다. 그만큼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스님이 허허 웃었다. 무일이야 제가 내놓은 공론이니 그렇다 쳐도, 연등행렬에 따라나선 부네각시도 아니고 무일의 꽁무니에 붙어 앉은 공양보살이 실없어 보였던 것이다.
“담장을 없애자는 데 둘이 공론을 모았다 이 말이지? 반대 하나에 찬성 둘이라…. 허기사 찬반으로 따진다면야 가근방 짐승하고 풀벌레에 바람개비까지, 이 늙은이 하나 반대한다고 될 일이겠는가.”
그러곤 연방 허허 웃어젖혔다.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담장이 허물어지던 날, 그렇게 생각해서 그랬던지 온갖 날짐승에 길짐승이 경내 가득 모여들었다. 다들 신명이 잡혀서는 풍물도 치고 춤도 추고 시끌벅적했다. 길짐승 중에도 산짐승들이 제일 좋아했다. 한 식구처럼 지내던 다람쥐나 족제비는 물론이고 오소리 토끼 고라니 가끔은 산돼지란 놈까지 어슬렁댔다. 그러나 담장이 있을 땐 몰래 숨어들어 와서는 한바탕 분탕질을 해놓곤 가던 녀석들이, 담장이 없어지자 제집인 양 필요한 것만 축내고 돌아갔다. 처음엔 사람을 보고 경계하는 척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같이 놀아달라며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했다.
적광전 문짝을 떼어낸 건 새였다. 적광전은 본존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에불당이라 열어놓을 때가 많았다. 담장이 있을 때는 기웃거리기만 하던 새들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길짐승을 보고는 저들 역시 만만하게 보았던지, 고방창고는 물론 적광전 상량에까지 날아들었다. 들어오는 것까진 좋은 데 나가질 못하고 갇혀서 푸덕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적광전에 뛰어든 동박새 한 마리가 유리문을 들이받고 죽은 적이 있었다. 파스텔로 그린 듯 연두색 고운 동박새를 손에 든 스님이 망연자실했다. 가여운 주검을 자작나무 아래 묻은 스님이 그날로 적광전 문짝을 떼어냈다. 떼어내기는 무일이 했지만 스님의 분부였으니, 스님이 한 일이었다.
떨어져 나가는 법당 문짝을 보면서 공양보살이 하소연을 했다.
“어쩌먼 좋누, 어쩌먼 좋누, 우리 부처님, 추와서 우째 기시라고.”
그 소리에 스님이 선장을 냅다 두드려댔다.
“답답한 화상이로고. 비 맞고 선 돌미륵은 부처님 아니드나? 창공을 등짐에 짊어진 마애불은 부처님이 아니고? 칠성암 암각불은 어데 구들장 우에 기신다? 동백새가 외는 법문은 법문이 아니드나 이말이다!”
보살이 고개를 저었다.
“우쨀기고 우쨀기고 우리 시님, 죽은 새 땜시 한 정신 나가뿌렀네.”
이런 연차로 본다면 이 어리고 병든 고라니는 스님이 불러들였다고 봐야 했다.
동이 터 오르자 햇살이 푸짐했다. 따뜻한 햇살 쪽으로 보료를 옮기려 하자 고라니가 벌떡 일어섰다.
“오매야!” 보살이 기겁하며 놀랐다. 느닷없이 튀어 오른 고라니도 고라니였지만 그 고라니가 싸놓은 배설물 때문이었다. 스님 무르팍에서 자는 듯 누웠던 고라니가 벌떡 일어서나마자 뭔가를 후다닥 쏟아 내는 게 아닌가. 거무죽죽한 물똥이었다. 법고처럼 차오른 배 안에서 쏟아 낸 배설물은 엄청났다. 적광전 마룻바닥이 고라니가 싸놓은 배설물로 흥건했다. 어서 피하시라고 장삼자락을 잡아당겼지만 스님은 그냥 조는 듯 태연했다. 튀어 오르는 배설물을 고스란히 덮어쓴 스님이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살아났구나. 이제야 살아났어!”
설사를 마친 고라니가 적광전 문턱을 넘었다. 앞발을 절었다. 절뚝거리던 고라니는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층계참 낙엽 더미에 픽, 쓰러졌다. 스님이 혀를 찼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고라니가 꼭 무일로 보였던 것이다.
“큰스님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요?”
지난봄, 행자로 받아들였다. 사문에 든 지 이태째였다. 무명초를 잘라내고 5계를 내렸다. 연비까지 뜨고 나자 무일이 물어왔다. 행자로서 해야 할 일과 무엇인지를. 겨우 우리말을 알아듣기나 하는 그에게 염불은 벅찰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던 스님이 운을 뗐다.
“일러줄 터이니 따라 해 보거라. 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어느 것이 젤로 외기 쉬우냐?”
무일이, “서가모니”했다. 그러자 스님이, 차후로는 석가모니불만 열심히 정근하라고 했다. 새벽 도량석을 돌 때도 조석 예불을 올릴 때도 그냥 석가모니불만 외우란다. 무일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스님의 말씀이니 어쩌겠는가. 그날부터 무일은 ‘무일’과 서가모니불‘만 외고 다녔다. 무일은 죽을 때까지 깨우쳐야 할 화두요 석가모니부처님은 죽고 나서도 모셔야 할 신앙이었다. 그는 늘 중얼거렸다.
“무일 서가모니불 무일 서가모니불….”
한참을 염하다 보면 무일 자신이 석가모니 부처님인지 부처님 이름이 무일인지 착각할 때가 많았다. 그런 무일을 보면서 스님은 늘 미소지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보살 역시 따라 웃었다.
“허어! 보살님도 좋은 일 있는감?”
“말이라구유. 요 작은 절간에 시님을 두 분이나 모시잖유.”
“저런! 이 늙은 것두 중으로 쳐 주는감.”
“밸 흠한 말씸 다 허시네유. 시님이 시님 아님 우리넨 그럼 인두잡이게유.”
무일이 행자 공부를 닦아나가자 스님과 보살의 나날은 봄날 같기만 했다.
걸레로 고라니 똥을 치우던 보살이 일주문 쪽을 바라봤다. 저벅저벅 소리가 들리고 보살님!하고 무일이 달려올 것만 같았다. 가람 전체가 그들먹했는데… 허전했다. 어디 가서 굶고 지내는 건 아닌지, 무소식이 희소식 이랬던가, 몸이나 성해 있으면…. 볼일이 있다면 가끔 산문을 나선 적은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사흘씩이나 자리를 비운 적은 없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자식같이 따르던 한 식구 아니었던가. 바삭바삭 타들어 가는 속에 애꿎은 냉수만 들이킬 뿐이었다.
스님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아니 조바심 나기로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속내였다. 이끌어야 할 제자였다. 같이 깨우쳐 성불해야 할 도박이기도 했다. 속가의 인정으로 따져서는 손자뻘이었다. 손자가 아니라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여든에 날아든 새끼, 망상이었다. 문중의 제자를 핏줄에 비견하다니. 지엄한 계율이 서릿발로 섰다.
’사랑하지 말라. 떠나보내야 할 아픔이 남지 않겠느냐. 원망하지도 말아라. 다시 만날 인연이 괴롭지 않겠느냐.‘
이 모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스님이건만 무일을 볼 때면 측은하고 불쌍하고 저릿한 아픔이 늘 가슴을 저몄다. 사문의 늙은 고목이 이 무슨 주책이란 말인가.
무심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무일이 말했었다. 자신은 꺽정이라고. 꺽정이. 연어와는 달리, 바다에서 부화해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강으로 올라와 사는 민물고기. 밝은 대낮을 싫어해 평생을 야행성으로 살아가는 어둠의 동물. 필리핀이란 대양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온 혼열아.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몸으로, 주위의 질시와 냉대를 받아야 했던 떠돌이, 코피노, 존, 꺽정이.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무일 그 자신 말고는, 다른 어떤 이도 대신할 수 없는 업보인 것을. 밤 깊도록 괴로워하는 무일을 보면서 그저 측은하단 생각만 해줄 뿐 달리 도와줄 방도는 없었다.
스님이 눈을 비볐다. 백내장 흐릿한 시야로 참새 떼가 날아들었다. 햇살을 심지 삼아 서 있는 석둥 아래, 소복이 모여 앉은 새들은 잔치라도 벌이는지 연방 재잘거렸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의 눈길이 다시 층게참 아래로 떨어졌다. 고라니는 아직도 넘어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일어서 보려고 버둥거리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헛발질이었다. 병약한 몸에 설사까지 해댔으니 기력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죽지 않고 지금껏 버텨온 게 용하달 뿐이다.
“자네도 생겨날 땐 부모가 있었을 테지. 원망 말게. 업보인 게야… 생겨난 것두 이날까지 지내온 것두 다 업보인 것을. 어쩌겠나, 녹여내야지. 그래야 다음 생이라도 편하실 게 아닌가.”
사람한테 하는 소리 같았다. 보살이 듣기에는 꼭 무일에게 하는 말 같았다.
유난히 긴 하루였다.
한 바구니 싸놓은 고라니 똥을 치우는 데도 한참 걸렸다. 어린 것을 저리 놔둬선 안 된다고 스님이 우기는 바람에 고라니를 공양실로 데리고 왔다. 절뚝거리는 앞발에 부목을 대주고 푸성귀를 챙겨줬더니 나갈 생각을 안 했다. 한 신구 늘었으니 보살님 공덕도 높아질 거라는 스님의 말에 보살이 정색했다. 갈이 살아보지 않은 터라 식성이 어떤지, 뭘 좋아하는 뭘 줘서는 안 되는지 일러달라고. 스님이 시래기 한 올을 고라니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좋고 나쁜고를 떠나 어거지로 먹이지만 않으면 제가 알아서 먹을 거라고. 보살이 행주에 물가를 닦으며 고라니를 살폈다. 겨우 한나절 데리고 있었을 뿐인데 그새 통통해진 것 같았다.
“하나만 더유, 시님. 야를 머라 불러야 할지. 짐생아? 놀갱아? 하기도 뭣하구유.”
어린 고라니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던 스님이 선장을 매만졌다.
“고라니라… 성은 고가로 하고, 비로자나 부처님 가피를 받았으니 고비가 어떻누?”
보살이 헤에, 웃었다.
“고비야 일루 온나. 늘근 애미 등짝 좀 긁어다구.”
스님이 허허, 웃었다.
산중이었다. 밤이 일찍 찾아왔다. 산 그림자 설핏하다 싶으면 어느새 캄캄해졌다. 스님에게 드릴 저녁 공양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가슴이 덜컥했다. 평소에는 들으려 해도 잘 들리지 않던 벨소리가 천둥치듯 요란한 게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기 앞에 앉은 공양보살이 수화기를 든 건 그로부터 벨이 몇 번 더 울고 나서였다. 어디여! 누구유?를 연이어 찾던 보살이 전화벨보다 더 크게 울먹였다. 기다리라고 쪼매만 기다리라고, 큰시님 모시고 올팅게 끊지 말고 쪼매만 기다리라고. 보살이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관절염이고 뭐고, 나는 듯이 주지실 문을 두드렸다. 하루 종일 고라니 간호에 시달려서 그런지 앉자마자 선정에 든 스님이었다. 조는 듯 삼매에 잠겨 있던 스님이 눈을 떴다.
“무신…? 뭔 일 또 났는가!”
보살이 스님의 장삼자락부터 거며 잡았다. 영문도 모른 스님이 무 뽑히듯 일어났다.
“무일 행자가, 글쎄 무일 행자가….”
무일이란 말에 스님이 깜짝 놀랐다.
“무일? 무일이 왔어?”
“왔어유, 전화가. 근데 글쎄….”
답답하다는 듯 스님이 재촉하자 보살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찾았대유. 글쎄, 한국에 있는 즈 아부지를, 생부를, 대전 어딘가에서 찾았대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살 자신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전화 받은 게 꿈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보살이 그러했으니 듣는 스님이야 오죽하겠는가. 스님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물었다.
“무일이, 우리 무일이 부친을 찾았다고? 그래 그래야지. 진즉에 그랬어야지.”
스님이 재게 걸었다. 아마도 전화 왔다는 말을 무일이 왔다는 말로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몰랐다. ’왔다‘는 말에 스님의 마음은 그저 기쁘기만 한 것이다. 보살을 제치고 앞서 걷는 스님의 발걸음은, 물결에 떠 있는 연잎인 듯 가벼워 보였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그런 두 사람을 고즈넉이 지켜보고 있었다.
-인물
위 작품에는 총 3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스님과 공양보살, 그리고 무일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스님과 공양보살은 무일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들에게는 없는 ‘자식’의 자리가 채워짐을 느낍니다. 그래서 무일이라는 인물이 떠나고 난 뒤에도, 무일을 잊지 못합니다. 또한 무일이라는 인물은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설정으로 필리핀에서 홀로 한국까지 와서 그의 아버지를 찾고 있는 인물입니다. 버림받은 ‘새끼’와 ‘새끼’가 없는 인물들의 만남을 통해서 인물이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줄거리
어느 날, 고라니 한 마리가 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됩니다. 스님과 공양보살은 고라니를 마치 자신의 자식인 것처럼 보살피게 되죠. 그리고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고라니를 보면서, 한국인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필리핀에서 홀로 온 ‘존’이라는 아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은 과거에 그를 잠시 거두어 주면서 그에게 ‘무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들은 그와 있으면서 무엇인가 만족스럽게 느낍니다. 하지만, 그가 사흘 만에 떠나고 난 후에 그들은 젊은 무일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지내는 와중에 그들은 고라니를 만나게 된 것이었고, 그들은 고라니에게 ‘고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들은 겨우 한 나절동안 데리고 있었던 고라니에게 정이 들어버립니다. 그렇게 찾아온 밤에 한 통의 전화가 오고, 공양보살은 스님에게 허겁지겁 뛰어가 말합니다. 무일이가 아버지를 찾았다고. 이에 스님은 체념한 듯 행동하며 고즈넉이 그들을 내려다보는 부처님을 비추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시간구조
1. 서술의 순서
(1)고라니가 쓰러진 채 발견되고, 스님과 공양보살은 고라니를 보살핍니다.
(2)스님은 문뜩 무일이를 처음 보았을 때를 회상하게 됩니다.
(3)갑작스럽게 나타난 무일을 스님은 거두어 주고, 그에게 ‘무일’이라는 이름을 줍니다.
(4)무일은 며칠 만에 갑자기 떠납니다.
(5)공양보살은 고라니를 보살피다가 마음이 허해져 무일이와 함께 있었을 때를 회상합니다.
(6)절의 일을 무일이 도와주었습니다.
(7)무일은 버려진 땅콩에서 싹이 난 것을 보며 자신이 겪은 괴로움과 고통을 회상합니다.
(8)과거 무일은 버려진 자식이라는 콤플렉스와 타인의 시선에 고통받았습니다.
(9)스님은 담이 없어진 것을 바라보며 또다시 무일과의 일을 회상합니다.
(10)스님은 무일의 요구를 못 이겨 절에 문과 담을 모두 없애고 맙니다.
(11)스님과 공양보살이 고라니를 돌보다가 밤이 됩니다.
(12)그때 무일의 전화를 통해 그가 그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을 스님과 공양보살이 알게 됩니다.
2. 이야기의 순서
1.(8)과거 무일은 버려진 자식이라는 콤플렉스와 타인의 시선에 고통받았습니다.
2.(3)갑작스럽게 나타난 무일을 스님은 거두어 주고, 그에게 ‘무일’이라는 이름을 줍니다.
3.(6)절의 일을 무일이 도와주었습니다.
4.(7)무일은 버려진 땅콩에서 싹이 난 것을 보며 자신이 겪은 괴로움과 고통을 회상합니다.
5.(10)스님은 무일의 요구를 못 이겨 절에 문과 담을 모두 없애고 맙니다.
6.(4)무일은 며칠 만에 갑자기 떠납니다.
7.(1)고라니가 쓰러진 채 발견되고, 스님과 공양보살은 고라니를 보살핍니다.
8.(2)스님은 문뜩 무일이를 처음 보았을 때를 회상하게 됩니다.
9.(5)공양보살은 고라니를 보살피다가 마음이 허해져 무일이와 함께 있었을 때를 회상합니다.
10.(9)스님은 담이 없어진 것을 바라보며 또다시 무일과의 일을 회상합니다.
11.(11)스님과 공양보살이 고라니를 돌보다가 밤이 됩니다.
12.(12)그때 무일의 전화를 통해 그가 그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을 스님과 공양보살이 알게 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
“손을 꼽아보면 사흘, 그 사흘이 까마득해지는 것은 사람. 그랬다, 사람이다.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니 얼굴부터가 섭섭했다. 단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토록 또렷하던 얼굴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자식같이 귀애했다. 아니 자식이라고 믿었다. 그도 그렇게 믿고 따랐었다.”
이 장면에서 ‘무일’이라는 인물을 스님과 공양보살이 자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으로 인해 스님과 공양보살이 고라니에게 잘해주는 이유와 왜 그들이 무일이라는 인물을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장치/도구
이 작품에서 절의 담과 문이 ‘무일’이라는 인물로 인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무일’이 떠난 뒤에는 그 담이 없어진 연유로 산짐승들이 제 맘껏 절로 들어오곤 한다. 산짐승들은 담이 있을 땐 분탕질을 했지만, 오히려 담을 허문 뒤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이는 ‘무일’도 산짐승처럼 갑자기 절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님과 공양보살에게 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의도
무소유적인 성격이 강한 스님이 무일이라는 인물을 만남으로써 자식, 그러니까 새끼에 대해 소유욕을 느낀다. 그리고 스님의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 무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면서 좌절되는데,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영원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끼.hwp 분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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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초점이 되는 이야기 속 인물이 무일과 스님인데 각자가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사건에 대한 감정을 나태내고 있어 시간 서술이 집약적으로 드러나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일을 자식으로 여겼던 그 소유욕이 좌절되었다고 주제에 적혀 있는데, 어째서 그렇게 적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필타본에 적혀 있듯이 마지막에 스님은 무일의 소식을 듣고 흥분하여 빠른 걸음으로 보살을 앞서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라니가 변을 쏟았을 때에도 침착했던 스님의 모습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달라진 모습에서 무일을 향한 애정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소유욕)이 되살아났다고 생각했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학우님은 왜 좌절되었다고 표현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주신다면 이해하는 데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 분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물을 해석하신 부분이 작품 이해를 도왔던 것 같습니다.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무일과 고비가 느닷없이 찾아왔고, 찾아간 곳에서 보살핌을 받는다는 점에서 '새끼'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작품의 배경인 절이라는 공간을 잘 보여주는 묘사가 몰입감을 높였다고 생각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곳 자체도 '비어있다', '비어야만 한다' 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인 절 안에서 인연을 만들어간다는 서사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