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이명희 회장(62)은 여성으로선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다. 온라인 경제매거진 ‘에퀴터블’이 발표한 ‘2004년 한국의 100대 주식부자’에 따르면 그가 보유한 주식 가치만 9천1백억원으로 여성들 중에서는 부동의 1위이고, 남녀를 통틀어도 삼성 이건희·이재용 부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롯데 신동빈·신동주 형제에 이어 여섯 번째다.
하지만 이 회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결혼 후 10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내다 뒤늦게 경영에 뛰어들어 중소기업에 불과하던 신세계를 국내 굴지의 유통전문그룹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67년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66)과 결혼한 후 줄곧 집에서 살림하며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37),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33) 남매를 키워왔다. 그러다 79년 마흔 가까운 나이에 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신세계 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87년 이병철 명예회장이 타계한 후 신세계를 물려받은 그는 92년 신세계를 삼성그룹에서 내용적으로 분리한 데 이어 97년엔 법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98년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당시 1만5천원대였던 신세계 주가를 7년 만에 32만원대(2005년 5월 현재)로 20배 이상 끌어올렸다.
삼성가 사람들이 그렇듯 이 회장도 인터뷰는 고사하고 언론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갖고 있는 그의 자료사진이 증명사진 한 장밖에 없을 정도.
그런 그가 최근 한 일간지 인터뷰와 신세계 사보 특별기고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자신이 신세계를 이끌게 된 사연, 건강관리와 자녀교육 등 개인사를 처음으로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사보에서 이 회장은 고 이병철 명예회장에 대해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차갑고 냉정한 경영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막내딸인 내게는 큰 칭찬이나 꾸지람 없이 항상 정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살아 계시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거의 매일 어디든 동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할 정도.
“그때 아버지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뭐하노’였어요. 이 말은 경상도 사투리였지만 제게는 ‘어서 오라’고 하시는 가장 부드러운 말씀이었죠. 이처럼 아버지는 당신의 성격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함축적이고 간결했어요. 손님을 만날 때 저를 늘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죠.”
“아버지와 체질, 성격, 생김새, 취향, 편식하는 습관까지 닮아”
그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남편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있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있다가 아버지를 모시고 공장에 왔을 때 나랑 눈이 마주치면 아버지 몰래 윙크하라”는 짓궂은 요구를 했었다고. 이것을 공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공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헬기가 이륙하자마자 “했나?” 하고 물어보더라는 것.
또한 가슴 아픈 기억도 털어놓았다. 이 명예회장이 76년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어느 누구도 위로의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다고 한다. 그만이 아버지 곁에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고. 그러자 이 명예회장은 철없이 우는 막내딸에게 그간 자신이 조사한 수술 의사의 경력에서부터 위암 완치사례, 치료계획 등의 자료를 보여주며 오히려 딸을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