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이 지났습니다.
나름대로 주마간산이나마 에세이 쓰기를 지켜보면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에세이가 스스로, 또는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그리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코멘트를 수용하면서 나름대로 놀랄 만큼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아이들 예를 들겠습니다.
첫 번째 은서의 첫 에세이는 에세이의 꼴을 갖추기는 커녕 문장 채우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10개의 에세이가 마치 올챙이의 진화처럼 나름대로 여러가지 주제, 여러가지 수사법(rhetoric)과 논증, 다양한 소재 찾기 등을 통해 에세이의 꼴을 갖추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당초 제가 은서, 지섭이에게 각기 주제를 주고 이를 쓰게 하려 했지만 첫 번째 에세이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글쓰기 자체가 자유를 향한 모험이듯이 이를 향한 방법으로 자율처럼 좋은 스승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둘 째 지섭이의 에세이는 단일한 소재와 테마, 즉 하나의 영화와 글 등에서 글감을 의존하다가 주장을 정해 놓고 논거(the basis)를 찾아 자신의 주장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에세이에서도 이에 준하는 놀라운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의 요인은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의 계몽적 지도보다는, 아이들 상호간에 다른 아이들의 에세이를 보면서 일정한 '정전 [正典, canon]' 삼기 - 본받기 - 파괴하기와 스스로의 에세이 '정전 [正典, canon]' 재창조 하기 등의 과정이 놀라울 만큼 빠르면서도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의 경우 지난 겨울방학 영어 일기쓰기를 시도했다가 절반의 실패로 끝난 적이 있습니다.
은서에겐 쉬우면서도 대중적인 영어 명연설문 한두 패러그래피와 동영상으로 유도했지만 지속성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지섭이에겐 주로 좋아하는 팝송이나 락 등의 영어가사와 음악으로 영어일기를 의도했습니다만, 흥미끌기 이상의 효과를 거두진 못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지난 겨울방학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1주에 2~3회 영어일기 쓰기를 하자고 했던 상태에서 목사님의 집단지성식(Collective Intelligence Method) 영어에세이 쓰기 제안을 보고 '아! 이거구나'하는 느낌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아이들이 당초 기대와 효과를 순식간에 뛰어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쯤 해서 아이들마다 스스로 써온 10편의 에세이 과정을 점검해보시면서, 아이들 나름의 <정전 [正典, canon] 만들기 - 파괴하기 - 재창조하기> 의 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제언해봅니다.
사실 저도 의욕을 가지고 지켜보곤 있지만 일과 업무 등으로 시간이 쫓겨 저희 은지 글보기도 여력이 부족합니다. 특히 고등부로 갈수록 단어찾으며 해석하기도 힘들고(제 영어 수준으론) 이경희 선생님(부군이신지 사모님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의 토로대로 코멘트를 할 때 오역이 나오지 않을까 자괴감이 들어 쉽게 댓글달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 가장 가까운 부모님들께서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관심을 쏟아주시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입니다.
몇 가지 제 나름의 기준을 예시해보겠습니다.
1. 함께 토피카(Topica) 고민하기
토피카는 참인 명제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고전이나 독서를 통해 좋은 문구를 노트에 기록해나아가는 방식이 원론이지만 그 때 그 때 글감에 맞는 명언, 명구 등을 함께 찾아주는 방식도 좋을 듯 합니다. 논리적으로 참인 명제를 찾아 한 문장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의 체험(대단히 중요), 주변 지식, 논리적 근거 등을 찾아 살을 붙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끌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스피치나 라이팅에서 토피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글이나 토론을 듣고 나서 기억되는 문장이 바로 토피카이고, 또 인용하거나 예시하는 토피카가 참일 경우 본론과 주장이 참이 되어 반박의 여지가 없게 됩니다. 반대로 토피카가 거짓 명제일 경우 논증이나 주장 또한 허술해져서 반박이나 논쟁에서 꺼꾸러지게 됩니다.
2. 가능한 글감을 자신의 고통, 줄거움, 깨달음, 독서 등 문화체험, 여행 등 직접체험 등에서 찾기
교육적으로 에세이는 스스로 깨달음의 과정이자 이의 전달을 통한 공감과 설득의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대부분 영미의 대학에서는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 극복하고 깨달은 도덕적, 윤리적 각성, 스스로 참여하여 얻은 공동체 경험, 리더십(꼭 리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도 중요)을 통한 연구학습 능력 등을 중시합니다. 이럴 경우 생생한 개인적 경험과 깨달음은 어느 학생과도 다른 나름대로의 창의적 생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각자의 체험보다 더 좋은 개성은 없기 때문이죠.
3. '서론 - 본론 - 결론'이 아니라 '첫문장 - 중심문장 - 끝맺음 문장' 식 매뉴얼 제안
말하기도 마찬가지이지만 글쓰기를 3단계로 요약하면
- 쓸 것에 대해 써라
- 써라
- 쓴 것에 대해 써라
등의 3단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이 3문장을 먼저 써놓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 글 쓸 것 + 명제나 전제, 또는 경험에서 나오는 독특한 첫문장 (충격적인 깨달음이나 경험, 또는 인용도 좋겠습니다.)
- 써라 + 중심문장의 근거가 되는 경험, 일화, 통계수치, 지식적 근거, 독서나 영화 리뷰의 경우 핵심적인 스토리 중심으로 요약하기 등 (백과사전, 신문기사 등을 활용해도 좋겠습니다)
- 글 쓴 것 + 한 걸음 나아간 끝문장 (자신의 의지,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 기대와 소망 등)
등의 방식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심스러운 것은 자칫 이러한 우리 아이들의 <정전 [正典, canon] 만들기>가 억압이나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가능한 함께 즐기고 얘기하면서, 스스로 동기를 찾아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에세이 쓰기를 귀찮아하고 짜증내 하는 날엔, '첫문장 - 중심문장 - 끝맺음 문장' 이 세문장만 쓰라고 풀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문장 만들기를 어려워하는 어린이들에겐 핵심 단어 3가지, 단어에 동사와 형용사(무얼 했니?, 어떠했니? 등), 형용사와 부사(어땠는데?-어떤, 어떻게) 등을 덧붙여 나가는 방식도 어떨까 싶구요. 영미나 서유럽 고등학생들의 에세이 쓰기에는 형용사와 부사를 적절히 사용할수록 가점을 주는 기준이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신만의 생생한 체험에 바탕한 표현을 중시합니다.
이젠 우리 아이들의 인내심과 끈기가 중요할 수도 있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적절한 동기부여, 즉 당근과 채찍도 중요하겠지요.
오바마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에서 오바마를 공부시킬 때 새벽 3시에 깨워 밥을 먹이고 영어를 가르친 후 인도네시아 학교에 보냈다는 일화는 중요한 채찍의 교훈입니다. 저 또한 초등학교 시절 교사이셨던 어머님께 매일 일기를 쓰도록 훈련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 느낌엔 우리 아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스스로 강한 동기를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저 놀라울 뿐이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하시고......
좋은 꿈 꾸시고, 행복한 여름 보내시길....
끝으로 감동적인 글쓰기 영화 한 편 추천^^
당신을 이해하는 단 한명의 친구를 만난다! 세상을 등진 남자와 세상으로 막 나오려는 남자... 마침내 이 두사람의 아름다운 조우가 시작됩니다.
길거리 농구를 즐기는 고등학생 자말 월러스(Jamal Wallace: 로버트 브라운 분) 그의 친구들은 동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이상한 남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베일에 쌓인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한 자말은 어느날 밤 그의 아파트에 몰래 침입하지만 실수로 가방을 놓고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베일의 주인공 포레스터는 가방 속에서 평범함을 뛰어넘는 자말의 수많은 글들을 발견한다.
다음 날, 자말은 가방을 찾기 위해 아파트를 찾아가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반응 뿐. 그러나 포레스터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문학적 재능을 지닌 자말을 문학세계로 이끌어주기로 한 것이다. 포레스터는 지난 수년간 한번도 문을 열지 않았던 자신만의 세계에 자말을 받아들인다. 한편 자말의 문학적 재능이 교내테스트에서 드러나면서 자말은 맨하튼의 명문대 예비학교에 농구특기장학생으로 스카우트된다. 그러나 그때가지도 자말은 아파트의 괴팍한 노인이 위대한 작가 포레스터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자말은 자신의 가족과 삶을 나눈 고향 브롱스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항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는 낯설고도 엄격한 지식 공동체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승 포레스터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친구 클레어가 있다. 그리고 때묻은 고전서적들과 정적만이 가득했던 포레스터의 은둔지는 두 작가의 웃음과 논쟁, 학문에의 열정으로 채워진다. 포레스터는 이 어린 제자를 따라 지난 40여년간 닫고 살아온 창 밖의 세상에 조금씩 닿아간다.
{친애하는 자말에게.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변한다.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거다. - William Forrester}
그리고 포레스터는 자말에게 소중한 유산을 남겨주고는 주님 곁으로 떠납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감동과 눈물을 아로새겨 주는 명화입니다.
모방(Mimesis)은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자연과 역사에 대한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멋진 고전에 대한
감동적인 사건과 체험에 대한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에 대한........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모방과 창조의 교차로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우리'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동터오는 7월 2일 새벽
슈베르트의 <밤과 꿈 ; Nacht Und Traume>을 들으며
은지 아범 올림
첫댓글 사랑하는 은지 아버님,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매일 설교를 써야하고 1주일에 한번씩 메콩강 편지를 쓰면서 글쓰기에 대한 전문적 기준이나 배움이 부족하여 참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짧은 가르침입니다만 번뜩이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떤 쓸 것에 대해 써라, 써라, 쓴 것에 대해 써라 -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먼 훗날 오늘의 맨트를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좋은 말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프로가 말하니 역시 다르군요. 서론-본론-결론을 쓸것에 대해 써라, 써라, 쓴것에 대해 써라로 요약하니 훨신 더 쉽게 느껴 지는군요.. 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지금 올려주신 이 글이 지금 에세이를 쓰고 있는 여러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 갑습니다.
이쯤에서 뭔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늘 이 공간에 들려 주시는 은지 아버님. 좋은 의견으로 이끌어주시는 진정한 스승이십니다
귀한 글, 영화이야기, 음악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말씀입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정리도 되고요. 은지 아버님의 글과 자료들을 통해서 저도 학생의 입장이 되어서 함께 배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