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모처럼 한율이가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 할아버지의 농원에서 하루를 묵고 집으로 돌아간 날 저녁이었어. 무슨 일인가 하며 순간 궁금했는데, 다름이 아니고 할아버지 농원에서 캐 간 달래와 냉이로 찌개를 끓여서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더구나. 지난 주말에 둥이네가 농원 나들이를 해서 하루를 묵으며 이런저런 체험도 하고 자연 관찰을 하기도 하고 했는데, 아마도 그중에도 달래와 냉이를 캤던 일이 가장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구나.
둥이네의 이번 농원 나들이는 몇 달만이었던 듯한데 아주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보낸 것 같구나. 날씨가 워낙 좋아서 바깥 활동을 하기도 좋았고 참으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체험을 했던 것도 같지? 농원에 오기 전부터 체험 활동 리스트를 만들어서 오면 좋겠다는 제안을 할아버지가 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번 농장 나들이의 목적은 따로 있었어. 그것은 한율이가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나무 한 그루를 심기 위한 것이었지. 한율이는 할아버지의 70세 생일인 칠순(七旬) 맞이 선물로 할아버지의 농원에 마가목이라는 나무를 심어주기로 했었지. 언니 한비는 지난 3월 초의 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할아버지가 원하는 만년필을 이미 선사해주었는데, 한율이는 이번에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선물할 나무를 농원으로 싣고 와서 모두 함께 그 나무를 심은 거지. 한율이가 할아버지에게 해주겠다는 선물을 할아버지가 정해서 주문을 했던 때문에 할아버지가 한율이에게 엎드려 절을 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받게 되어서 무척이나 기뻤단다. 그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한율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도 같고 말이야.
둥이네가 토요일 날 농원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으로 한 것이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나무를 심는 일이었지. 할아버지가 농원에 심을 나무로 마가목으로 정해서 주문을 한 것은 이 나무가 그 자태도 아름답지만, 그 못지않게 그 열매의 빨간 모습이 겨우내 예쁘기 때문이었어. 마가목은 특히 새잎이 피어날 때의 모습이 특이하단다. 그 모양이 마치 말의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한자로 ‘말의 이빨 나무’ 馬牙木(마아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마가목’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산방에서 좀 떨어진 곳에 몇 그루의 마가목이 자라고 있지만, 산방 창문으로 내다 볼 수 있는 곳에 마가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 주문을 했던 거야. 도랑 가 언덕 위의 대추나무와 산사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은 마가목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지 궁금하구나.
나무를 심고 나서는 또 풀꽃 한 종류를 심었지. 수레국화라는 화초를 산방 앞 도랑 가 화단에 심어서 농원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었어. 한비와 한율이가 심은 수레국화는 온실에서 일찍 싹을 틔워 벌써 꽃을 피운 것인데 보통의 꽃 빛은 아주 새뜻한 파랑인데 분홍과 하얀색 수레국화도 함께 심었지. 그 꽃의 모습을 기억하겠지만 그 모양이 마치 수레의 바퀴를 닮은 때문에 우리는 이 풀꽃을 수레국화라고 불러. 서양에서는 이 풀꽃이 옥수수밭에서 잡초로 자랐던 때문에 옥수수꽃, Cornflower라고 부른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본사가 있는 독일의 나라꽃 국화(國花)가 바로 이 수레국화이기도 하단다. 우리나라의 국화가 무궁화인 건 둥이들도 알고 있겠지.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에 둥이들은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지. 읍내의 장터에서 열리는 오일장(五日場) 구경을 할 수 있었어.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도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할아버지가 머무는 이곳 시골 읍내에서는 아직도 열리고 있단다. 주천 읍내의 장터에서는 매월 1일, 그리고 거기에다 5일을 더하는 날짜마다 오일장이 열려. 그날이 마침 16일인 장날이어서 둥이네는 장 구경에 나설 수 있었고 장터 한 귀퉁이에서 뻥튀기 장수가 뻥튀기하는 보기 드문 광경도 볼 수 있었지. 그 뻥튀기 장수는 할머니가 말린 옥수수로 둥이들에게 강냉이 뻥튀기를 해주기도 했지.
장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한비와 한율이는 또 다른 농원 체험을 시작했어. 제일 먼저 지난해 겨울을 비닐하우스에서 난 당근을 캔 뒤에는 밭둑에서 자라고 있는 냉이와 풀밭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있는 달래를 캤지.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시골에 살았던 때문에 봄이 되면 으레 할아버지의 누나, 한비 한율이의 왕고모할머니와 함께 밭과 들에 나가 달래와 냉이 같은 나물을 캐고는 했어. 한비 한율이가 나물 캐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의 아주 옛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단다.
한비와 한율이는 농원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온갖 나무와 풀들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가 있었지. 농원을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안길 가장자리에 핀 개나리였을 거야. 그리고 고목과도 같이 큰 나무에 피어있는 매실나무와 자두나무 꽃, 그리고 벚꽃이 가득 시야에 들어왔을 거야. 안길을 더 오르면서는 오른쪽으로 피어있는 진달래와 미선나무 덤불의 꽃도 볼 수 있었을 거야. 한비와 한율이가 태어난 이듬해인 2013년 봄에 둥이들의 나무로 심었던 미스킴라일락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아서 눈에 잘 띄지는 않았을 거고. 그리고 산방 옆 양쪽에 꽃을 피우고 있는 목련의 종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지 않았니? 왼편에 서 있는 흰 꽃이 피어있던 목련은 익숙한 것이지만 오른쪽에 서 있는 자줏빛 꽃이 핀 자목련(紫木蓮)은 아마도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이었을 거야. 도시의 목련은 모두 꽃을 지웠지만, 이곳 산촌의 목련은 그날도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지.
산방 앞 뜨락에서는 잔잔한 여러 봄철의 풀꽃들을 살펴볼 수 있었지. 한비가 가장 좋아하는 제비꽃은 물론 노란 양지꽃, 크로커스, 수선화, 산괴불주머니, 그리고 민들레. 분홍색 앙증맞은 꽃을 피운 앵초라는 꽃도 무척 인상적이지 않았니? 그처럼 여리고 귀여운 꽃이 거친 산골짜기의 양지편에 핀단다. 산방 앞 뜨락에 심은 앵초는 산골짜기에서 옮겨 키우고 있는 것이야. 일부러 심어 가꾸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자잘한 꽃송이를 가진 꽃다지도 예쁘지 않든? 이제 곧 냉이가 꽃을 피우면 밭 자락에 이 노란 꽃다지와 하얀 냉이 꽃이 보기 좋게 어우러지기도 한단다.
이리저리 돌아치며 한참을 놀더니 산방 앞으로 흐르는 도랑으로 내려가 작은 물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며 더 재미있게 노는 것 같더구나. 장화를 신은 발로 물을 텀벙거리기도 하면서 꽤 긴 시간을 도랑에서 보내더구나.
누구의 제안인지는 모르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둥이들이 아빠와 함께 솔방울 줍기에 나섰지. 아마도 난로를 피우는데 불쏘시개로 요긴하게 사용하는 솔방울을 주웠던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던 게 아닌가 싶었어. 율이와 비는 금세 한 바구니 가득 솔방울을 채워놓고 농원과의 아쉬운 작별을 했지.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시골의 농촌에서 보냈기에 한비와 한율이가 농원에서 특별하게 체험한 모든 것을 항상 자연스럽게 하면서 지냈어.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은 내던져 버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들과 산, 개울로 달려나가 맘껏 뛰어놀았지. 날이 어둑해서야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는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지고는 했어. 자연이 할아버지의 어린 친구와 할아버지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단다. 지금도 할아버지는 그때의 추억을 살려 지금의 농원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아.
둥이네가 돌아간 날 오후 햇볕이 더욱 따사로워지면서 산 섶과 산등성 곳곳의 산벚나무들이 일제히 꽃 문을 열기 시작했어. 일주일쯤의 시차를 두고 농원 안의 벚꽃이 이제 지기 시작하자 산자락의 산벚꽃이 한창이어서 아주 장관이구나. 한비와 한율이도 자주 농원에 와서 언제나 한결같은 자연 그대로의 숨결을 느끼고 자연이 주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해. (2022.4.21)
첫댓글 언젠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별볼 일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지요.내 문학의 감수성은 청소년 시절 시골에서 뛰놀던 때 생긴 것 같아요.손주들과 함께 한 농원에서 보낸 시간이 먼훗날 인격과 자연 친화적 심성 함양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순우의 손녀사랑에 저의 탄생70일이 지난 손녀사랑의 지침서가 되고 있어요.저는 우리 손녀 율이가 언제 커서 지 할애비가 좋아하는
맥주 한 캔이라도 사오는 날이 있을까요? 마가목을 선물한 한율이와 만년필을 선물한 한비의 마음이 너무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워
귀엽네요.저는 손녀의 장갑을 끼어준 모습이 마치 권투를 하는 것 같아, 너무나 사랑스러워 깔깔 웃어대고 있는데,의젓한 손녀들을 둔 순우는 얼마나 대견스러워 행복 하실까요? 이런게 사람사는 재미인 것 같네요.
나이가 들고보니 손주들이 너무 귀여
워요. 우리부부의 유전자를 손주들이
지니고 있는것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나도 작년 칠순에 강촌에가서 손주
들과 목장을 들린적이 있지요.
나는 가끔 손주들 손잡고 서울숲에
가면 너무 행복하던군요.
감수성이 민감한 손주들에게 자연
의 신비로움을 알려주는것은 할아
버지의 최고의 사랑이 될겁니다.
마가목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나무이름입니다. 그나저나 요즈음 자목련과 산벚꽃들이 산촌의 풍광을 돋보이게 하더군요~ 비교적 깊숙한 산비탈에 위치한 일반골프장은 구석구석에서 피어난 산벛꽃이 점점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신록사이에서 그 휘황찬 빛을 발하고 있어 한 시절 벚꽃과 개나리 그리고 진달래가 주던 감흥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더군요! 그나저나 이 나이에 무슨 소용이 있어 만년필을 소망했는지 궁금하네요! 소생도 일찌기 몽블랑 만년필을 받아 멋지게 싸인용으로 사용할까하고 보관만하다가 그냥 아들한테 물려주었지요~ 아쉽지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지요! 아무튼 행복한 두 손녀와 할아버지의 포근한 사랑을 듬뿍 받아갑니다!
어제 구리에 가기 전에 갈헌의 아파트단지 구경을 잠시 하면서 우리나라의 조경 수준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모든 시설물과 초목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거주민들의 이용에 매우 편리하고 쾌적하게 조성되어 있더군요. 그 나무 한 그루가 모두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자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우의 자연사랑이 손녀들에게 대를 이어 전해지니 우리의 조경문화는 더 크게 발전할 것이며 아름다운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벚꽃이 피기 무섭게 화르륵 져버렸는데 산벚꽃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군요.
훗날, 손주 손녀들이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인성에 좋은 영향을 주리라 믿어집니다. 물론 순우도 그런 원려가 있으시겠지만.
객담이지만, 나이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짐을 느낍니다. 가족 일에 결정을 내리기 어려움이 생길 때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라고나 할까요.
이른 아침 귤 전정을 하고 나 숨을 돌리고 손녀들과의 오붓한 갖는 순우를 봅니다. 어린 그애들에 옛 추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단란해보이고 부럽네요. 덕분에 나무와 꽃에 대한 상식도 늘어 갑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