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작은 백산에서 유래한 소백산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3.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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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 작은 백산에서 유래한 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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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05:29조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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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작은 백산에서 유래한 소백산
태백산을 지나 선달산을 지난 백두대간은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에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넘어가는 고치령을 지난 뒤 소백산에 이른다.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 조선 중종 때의 천문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이렇게 말한 소백산(小白山)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1568미터)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대간에 위치한 이 산은 해발 1440미터에 이르며, 북동쪽에 국망봉(1421미터)이 있어 험준한 연봉을 이룬다. 북서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이른바 고위평탄면을 이루며, 그 위를 국망천이 흘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동남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이 발원한다.
소백산의 ‘백산’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
’에서 유래한 것인데, 소백산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ㆍ백제ㆍ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연화봉이 있고 이곳에서 약 4킬로미터 정도 더 내려가면 제2연화봉(1357미터)에 이른다. 이 산의 남쪽 4킬로미터 정도에 죽령이 있으며, 5번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통과한다. 제2연화봉 동남쪽 기슭에는 643년(선덕여왕 12)에 두운조사가 창건했다는 유명한 희방사와 내륙에서 가장 큰 폭포인 희방폭포가 있다.
소백산은 장엄하나 완만한 산등성이와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 그리고 울창한 산림이 수려한 계곡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어 많은 등산객이 찾아든다. 주요 등산로는 죽령의 가운데에 있는 희방사역을 기점으로 하여 희방폭포와 제2연화봉을 거쳐 올라가는 코스와 북쪽의 국망천, 남쪽의 죽계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 등이 있다. 소백산 일대는 예로부터 산삼을 비롯하여 많은 약초가 자라 지금도 약초 채취가 활발하며, 풍기는 이들 약초의 집산지이자 풍기 인삼으로 이름난 곳이다. 죽령과 제2연화봉 사이의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우주 관측소인 국립천문대가 있다.
소백산 일대는 웅장한 산악 경관과 천연의 삼림, 사찰, 폭포가 많으며 주변에 부석사나 온달산성 등의 명승고적이 많아 1987년 12월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면적이 320.5제곱킬로미터로 경상북도 영주시ㆍ봉화군, 충청북도 단양군에 걸쳐 있다. 공원 내에는 희방사ㆍ부석사ㆍ보국사ㆍ초암사ㆍ구인사ㆍ비로사ㆍ성혈사 등 여러 사찰과 암자가 있다.
특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절로 평가받는 부석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하고,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의 정봉인 비로봉으로 등정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높이 28미터로 내륙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희방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숲과 그늘과 괴암이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폭포 바로 위에는 선덕여왕 12년에 두문스님이 창건한 희방사가 자리한다. 다음은 『택리지』의 기록이다.
소백산에는 옥금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바위와 샘의 훌륭한 경치가 수십 리에 걸쳐 있고 그 위에 있는 비로전은 신라 때 지은 옛 절이다. 마을 입구에는 퇴계 이황을 모신 서원이 있다. 대부분 태백산과 소백산의 샘과 돌은 모두 낮고 평평한 골짜기 안에 있고, 산허리 이상에는 돌이 없는 까닭에 산이 비록 웅장하여도 살기가 적은 편이다. 먼 데서 바라보면 봉우리들이 솟아나지 않아서 엉기어 있는 듯 보인다. 산은 구름이 가득, 냇물이 흐르듯 하며 하늘에 닿아 북쪽이 막혔고, 때로는 자색 구름과 흰 구름이 그 위에 떠 있기도 한다. 옛 시절에 술사였던 남사고가 소백산을 보고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와 넙죽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소백산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아름다운 골짜기와 완만한 산등성이, 울창한 숲 등이 뛰어난 경치를 이룬다.
『지지(地誌)』에서도 “병란을 피하는 데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 좋은 지역”이라고 하였다. 퇴계 이황은 이곳 소백산을 오르며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지었다.
잠시 후에 가마가 마련되었다고 알려왔다. 간단하게 만들어 걸으면서도 쓰기에 편리하였다. 마침내 민서경과 헤어져서 나는 말을 타고 갔다. 응기와 중수 등 여러 중들이 앞뒤에서 혹은 인도하고 뒤를 따르기도 하였다.
위의 글을 보면 사대부들은 대개 승려가 메는 가마를 타거나 말을 타고 산을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퇴계가 같은 글에서 “처음에 답답하게 막혔던 것이 필경은 쾌함을 얻은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서 옛사람들의 산행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산을 오르는 것이 학문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음을 얘기한 것이다. 이중환은 이어서 소백산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백두산에서 태백산까지는 한 줄기의 영(嶺)으로 통한 까닭에 좌우에 다른 봉우리가 없다. 그렇지만 소백산 아래로는 자주 맥이 끊어지는데, 끊어져서 된 산은 속리산이 처음이다. 속리산은 석화성(石火星, 암봉들이 불꽃처럼 일어서서 산의 능선을 이루는 형상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그렇지만 돌의 형세가 높고 크며, 겹쳐진 봉우리의 뾰족한 돌 끝이 다보록하게 모여서 마치 갓 피어난 연꽃 같고, 또 횃불을 멀리 벌려 세운 듯도 싶다. 산 밑은 모두 돌로 된 골이 깊게 감싸고돌아서 여덟 굽이 아홉 돌림, 즉 ‘팔곡구요’라는 이름이 있다.
산이 이미 빼어난 돌로 이루어졌고, 샘물이 돌에서 나오는 까닭에 물맛이 맑고 차갑기 그지없다. 빛도 또한 아청빛(검푸른색)이어서 사랑스러운데, 이 물이 바로 충주에서 남한강으로 접어드는 달천의 상류다. 온 산을 빙 둘러서 신비롭고도 넓은 골짜기가 많고, 그윽한 샘과 기이한 돌이 묘하고 아늑한 형상은 금강산 다음이다.
이런 평을 한 것은 아마도 소백산의 형세가 토산(土山, 육산)이며 포근하기 때문이고, 산 아래를 흐르는 영춘과 단양 일대의 남한강 풍광이 빼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단양군 대강면에서 경북 예천군 상리면으로 넘어가는 싸리재와 뱀재를 지난 백두대간은 하늘재(630미터)에 이른다. 하늘재, 즉 계립령과 문경새재(632미터)와 이화령(548미터)을 지난 백두대간은 백화산, 시루봉, 운재, 대야산, 청화산을 지나 속리산에 이른다. 이 부근을 두고 ‘천 봉우리, 만 구렁이 깎아지른 듯 깊숙하여 사람들이 들어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 골짜기의 물이 합쳐져 작은 냇물이 되어 들을 지나고, 청화산 남쪽을 따라 동쪽으로 용추에 흘러드는데 이것이 병천이다.
『택리지』에 “병천 남쪽이 도장산(827미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병천은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에 있는 마을로 기이한 바위와 맑은 물이 아름답고 도장산은 상주와 무령의 경계에 있다. 또한 속리산의 북동쪽 문경시에 자리한 청화산(984미터)과 맞닿았으며, 모두 용유동이라 한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화산마을은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답고 용추(龍湫,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깊이 팬 웅덩이)가 있으므로 영조 때의 학자 송영흠이 용유동이라 이름 지었다. 이곳의 평지는 모두 넓고 편평한 바위이고, 큰 냇물이 서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도장산 전망바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와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의 경계에 있는 명산이다. 백두대간 자락의 마지막 비경 지대다.
『택리지』에는 용유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작은 백산에서 유래한 소백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