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금용(古爲今用)
옛날 것을 지금 사용한다는 뜻으로, 옛 것을 정리하여 좋은 점을 새로운 사회 발전에 이용한다. 또는 옛 것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古 : 옛 고(口/2)
爲 : 할 위(爪/8)
今 : 이제 금(人/2)
用 : 쓸 용(用/0)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서부터 온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禮之用, 和爲貴.
예절의 쓰임은 화합을 귀하게 여긴다.
德不孤, 必有隣.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四海之內, 皆兄弟.
사방 바다의 안인 온 세상은 다 형제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위에 인용한 이 다섯 구절은, 모두 공자(孔子)의 언행록인 논어(論語)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용했을까? 이 다섯 구절이 지난 북경올림픽에서 외국 선수와 관람객을 환영하는 데 쓰는 표어(標語)로 제정됐었기 때문이다.
논어라는 책은, 공자가 한 말과 공자의 행동과 공자가 제자 및 당시 사람들과 주고받은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자가 그때그때 말하고 행동했던 것을 그 제자들이 기록해 두었다가 제자의 제자들이 모아서 정리 편집한 책이다. 2400여년 전에 이미 완성되어 각지에 퍼졌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쯤에 전래되어 백제(百濟)의 왕인(王仁) 박사가 일본(日本)에 전해 주어 일본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통일신라(統一新羅)시대 나라의 학교인 국학(國學)에서 필수과목의 교재로 삼아 가르쳤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선비들은 논어를 어릴 때부터 배워 거의 다 외우고 일상의 대화에 자주 언급되었다.
오늘날에도 자주 쓰이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교언영색(巧言令色: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함)' 등등의 성어(成語)가 모두 논어에서 나왔다.
논어는 2000여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재해석하여 그 시대의 정신적인 이정표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한(漢)나라 유학자들은 한나라의 시대 상황에 맞게, 송(宋)나라 학자들은 송나라 시대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활용하였다.
오늘날은 오늘날의 실정에 맞게 재해석하여 논어의 열기가 고조되어 가고 있다. 화합(和合)을 강조하는 북경올림픽에, 올림픽준비위원회에서 최근의 참신한 말을 다 버리고 논어에서 다섯 구절을 뽑아와 올림픽의 표어로 사용한 것은 논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지만, 중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네들의 전통문화(傳統文化)를 현대에 잘 접목시키는지를 알 수가 있다.
1988년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20년 앞서 올림픽을 개최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우리 나라를 알리고 우리나라를 일으키는 데 올림픽을 잘 활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경제'만 중시하여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세계에 선양하는 작업을 성공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중국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주변에 중국 전통가옥도 많이 지어놓고 또 중국 전통식의 정원도 꾸며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정말 '옛날 것을 오늘에 잘 활용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이율곡선생의 상소문과 오늘의 세태
李栗谷 先生의 上疏文
조선왕조시대에 있어서 가장 손꼽혔던 수제(秀才)의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상소문을 올린 이도 이율곡 선생이라고 본다.
그의 상소문은 네 가지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상소문과는 달랐다. 첫째는 그 건수에 있어서 70 건을 넘고 있다는 점이요, 둘째는 그 내용이 시국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요, 셋째는 그 문장이 뛰어나고 설파력이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주고, 넷째는 자신의 상소 내용에 대한 확신을, 목숨을 걸고 책임진다는 것을 명백히 천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율곡 선생의 상소문 중 13대 명종(明宗) 21년(1566년), 선생의 나이 31세 때에 상소한 간원진시사소(諫院陳時事疏)의 내용을 정부 각료 여러분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서 붓을 들었다.
상소 전년인 1565년에는 민생을 핍박하는 악덕관리들이 많아서 전국 8도에 암행어사를 많이 파견해야 했으며, 조정의 기강을 교란시킨 요승(妖僧) 보우(普雨)를 삭탈관직하고 제주에 유배하였던바, 현지에서 장살(杖殺)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가하면, 권신 윤원형(尹元衡)이 모든 관작(官爵)을 삭탈 당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정국이 어렵게 돌아가자 조정에서는 이퇴계선생을 대제학으로 발탁하고, 일본과 유통하여 강철제련법(鋼鐵製鍊法)을 배우도록 하는 한편, 다음 해로 이어지는 문화풍토 선양의 기운이 솟구쳐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퇴계선생의 성학십도(聖學十道)요,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紹修書院)이 등장하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민심이반이 극심하여 임꺽정(林巨正)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발호하였으니 당시의 민심동향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와 같은 상황 하에서 쓰인 것이 이율곡 선생의 진시사소(陳時事疏)이다. 그 상소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정부 각료들에게는 값진 거울이 아닐 수 없다.
거울에는 고금의 차이가 없다(鏡無古今). 다만 피조물(被照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경(書經)에서 보면 문이시이 치이도동(文以時異 治以道同)이라 천명한 구절을 몇 번이고 음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즉 문장의 표현은 시대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지켜야할 정도(正道)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옛날에 부국강병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나, 오늘날 선진국으로 발전하자는 것이나 서로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부국강병형의 나라도, 선진형의 나라도 따지고 보면 경쟁력을 확실히 갖추자는 동일한 의미의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율곡선생의 상소문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엄숙한 충고이며 경각을 주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李栗谷先生의 上疏文 要旨를 여기에 소개한다.
천하의 모든 일은 발전하지 못하면 퇴영할 뿐이요(天下之事 不進則退), 나라의 형세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지러워질뿐이다(國家之勢 不治則亂). 발전과 퇴영과 治亂은 실제로 사람에게 달려있다(進退治亂, 實由於人).
그럼으로 군주는 治와 亂의 기미를 잘 살펴서(人君 當審治亂之幾), 치도(治道)의 길을 찾아서 능란하게 대응하고(應其所以治), 변란(變亂)의 원인을 찾아서 과감히 척결해 나가야한다(去其所以亂).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풍류를 즐기면서 국고를 낭비하는 놀이판을 없애야 하고(內無聲色之好娛),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는 스포츠를 빙자한 사냥놀이를 없애야 한다(凡無戈獵之好).
정치상황은 아직 민심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으며(時政尙未有以大慰民心), 사회기강은 아직도 가다듬어지지 않고 있으며(紀綱尙未整肅), 공직자들이 지켜야할 도덕의식은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公道尙未恢張), 탐관오리들의 비행과 불법 및 부패풍조는 아직 척결되지 못하고 있으며(貪風尙有戢斂), 각종 재해는 날로 심해져서 백성들은 탈진상태인데(災異疊出 民力已殫), 나라의 혜택은 내려가지 않고 백성들의 고질병만 해마다 더해가고 있으니 (惠澤未下 良民積年痼疾), 이를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의 신약은 없다(一藥難救).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위직 관료들은 일을 얼버무리느라 급급하고(大官 習於糊塗), 하위직 관리들은 눈치 보며 교활할 뿐이며(小官 習於滑稽), 안으로는 틈만 나면 놀기 좋아해서 게으름 부리고(內而 習於偸惰), 밖으로는 일선 공직자들이 백성을 괴롭히고 있다(外而列邑 習於誅求).
군주께서는 다음의 사항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1. 마음을 바로하고 정치의 근본을 정립해야한다(正心 以立治本).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뜻을 크게 세워서 대국적으로 상황을 살펴야 하고(立大志), 둘째 학문에 힘써서 치도의 바른 길 찾기 위해 공부하며(勉學問), 셋째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한다(親正人).
2. 학덕이 있는 인물을 기용하여 내각풍토를 맑게해야 한다(用賢以淸朝廷).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간사한 무리와 정직한 사람을 잘 구별해서 중용해야 하고(辨邪正), 둘째 성실한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는 사기를 돋우어 주며(振士氣), 셋째 전문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합당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求俊乂).
3. 민생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한다(安民 以固邦本).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가난한 백성들이 逆民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고(窮民轉爲逆民), 둘째 떠도는 백성이 없도록 해야하며(民將盡散), 셋째 외직에서 일할 수 있는 인물을 다양하게 찾아 쓰고(選外官), 넷째 무질서하게 제기되는 송사를 공평히 처리해야 한다(平獄訟).
거듭 말하거니와 상소문의 내용을 깊이 살펴 들어가 보면 이율곡선생께서는 오늘의 우리들을 통렬히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겨들게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논조가 오늘의 현실상황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정론(正論)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믿게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율곡선생께서는 시폐광정(時弊匡正)을 위한 상소문도 많이 올렸지만 자신이 공직에서 사임하기 위한 상소도 많이 올렸다. 30대에 9번이나 관직사퇴를 하기 위한 상소를 했었는가 하면, 40대(49세 卒)에는 무려 11번이나 사직소를 올린 바 있다.
중용(中庸)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길을 끈다.
擇善固執 精一之謂也
(택선고집 정일지위야)
君子時中 執中之謂也
(군자시중 집중지위야)
즉, 최선이라 여겨지거든 성실히 지켜라, 그것을 정일(精一)이라 하며, 선비로서 머물러야 할 곳에는 머물고 떠나야 할 때에는 떠나라, 그것이 중용지도를 지키는 길이라는 뜻이다.
요즈음 문제의 보도기사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들 중, 임기문제를 많이 시비삼고 있다. 만약 그 문제를 이율곡선생에게 문의했다면 율곡선생은 분명이 일언반구의 대답도 하지 안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답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며, 지극히 소인배들의 말이라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상위직의 상사가 바뀌어도 그 상사로 하여금 뜻을 펼쳐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위직들은 예의상 사의를 표하는 것이 직장윤리이거늘, 하물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자기 자리 사수하기 위해 구차스러운 괴변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기관기능을 위해서 봉직한다는 생각에서가 아니고 나의 밥통을 챙기겠다는 이욕동기의 발로(發露)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소문이란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지 않는 한, 설득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율곡선생의 그 많은 상소문이 불오(不汚)의 명문으로 전적(典籍)의 귀중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공명정대한 입각점에서 나라 위한 충정을 토로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정당 내부에서의 토론 풍토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일당일언(一黨一言) 뿐이기 때문이다. 즉 이구동성(異口同聲) 뿐이다.
정치인 자신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인 개개인의 정론(政論)과 정론(正論)은 이른바 당론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율곡선생의 시무육조방략(時務六條方略) 상소와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이 당시 조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세력들의 당론에 봉쇄당했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의 참상을 불러들인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보지 않을 수 없다.
토론문화는 국무회의 장면이 보도되는 내용을 놓고 보아도 짐작되거니와 일반적인 경우 국무위원 간의 토론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만 국무위원들이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만이 비교적 많이 비추어진다. 그러한 장면도 이율곡선생에게는 마땅치 않게 여겨질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회라는 국가 최고 최대의 토론장을 물리적으로 점거하여 그곳에서 노숙자의 모습을 연출하면서도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처럼 생각하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일부 의원들의 작태(作態)등은 용납할 수 없는 거기소이란(去其所以亂)에 해당하며, 건설 현장이나 소방작업장에서나 쓰이는 온갖 용구를 동원하여 신성한 의사당의 기물과 영조물의 일부를 파괴하면서도 그것을 제지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욕설과 폭력을 자행하는 그 몰골은 변사정(辨邪正)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에 혀를 차는 타설지탄(打舌之嘆)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온 세상이 경제난으로 인하여 민생의 어려움을 걱정하면서 노심초사하며 지내고 있는 판국인데 현직 의원들이 그것도 임시회기 중에 부인을 대동하고 단순히 골프놀이를 하기 위하여 외유를 했다는 사실은 틈만 나면 유흥을 즐기겠다는 내이습우투타(內而習于偸惰)에 해당되는 바, 율곡선생은 그러 현상 앞에서는 크게 노했을 것이다.
나라의 세금징수업무를 다루는 수장들이 줄줄이 비리혐의를 받고 고발을 당하는 불행한 모습과 그들의 가정과 가정으로 뒷거래되었던 값비싼 그림이 전달한 이도 없고 받은 이도 없다는데 그 그림은 실물로 그들 가정에 버젓이 보관되어 있다하니 과연 귀신부지(鬼神不知)의 괴상(怪狀)으로 믿어야할까? 이런 일은 습어주구(習於誅求)에 해당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초기에 미흡했던 정체성(正體性) 천명이라든가, 주요 인사 선정기준의 모호성 및 당력기반(黨力基盤) 구축전략의 실패 등으로 인한 지지자이탈의 표심을 회복하지 못하여 안타깝다.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된 금융위기와 그로 말미암은 실업난의 가중추세는 민생의 곤궁함을 더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곤궁에 시달리는 일부 민중은 정부에 대하여 등을 돌리면서 사회적 분위기를 더 어렵게 느끼게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데올로기적 갈등현상의 심화추세는 사회의 불안정함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일근로자 계층의 사람들은 일당 수입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군중집회이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당(日當)에 이끌려 다니는 일부의 사람들은 그때 그때 군중 분위기에 휩쓸려서 반정부시위대열에 뛰어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전교조의 경우는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일제고사 거부도 불사하는 사태로 학생들을 몰고 가기도 하였는가하면,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는 이미 수면으로 부상되어 좌냐? 우냐? 하는 이념적 분쟁선상에서 새롭게 도정(道程)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고 있다.
어느 탈북인사가 전하는 e-mail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와서 놀란 일이 여러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거리에 자동차가 많다는데 놀랬고, 둘째는 도시마다 고층 빌딩이 많다는데 놀랬으며, 셋째는 언론의 자유가 많다는데 놀랬는데, 넷째로 더욱 놀란 것은 김정은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북한보다 많은 것 같다는데 참으로 놀랬다고 하였다.
물론 그의 말은 통계상의 비교치가 아니라 개인적인 감각치(感覺値)를 말한 것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북관(南北觀)의 정서 풍토가 불안정하다는 단면의 노정(露呈)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일련의 상황을 이율곡선생의 표현을 빌려서 기술한다면 그것이 곧 궁민전위역민(窮民轉爲逆民)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듭 언급하거니와 이율곡선생의 상소문을 거울삼자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역사는 4계절의 순한적(循環的) 변화처럼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변화가 불가변의 우주논리(宇宙論理)에 의해서 4계절의 변화를 정서(整序)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시유고금(時有古今)이요, 도무고금(道無古今)이라는 말이 있다. 즉 시간개념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차이가 있지만, 도리(道理)라는 이치에는 과거와 현재의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위금용(古爲今用)' 즉 옛 경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쓰인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1565년에는 요승(妖僧) 보우(普雨)도, 권신 윤원형(尹元衡)도 모두 삭탈관직 당했다. 당시 이율곡선생은 불과 30세의 청장년이었지만, 요승 보우를 논죄하는 상소문 (論妖僧普雨疏)에서는 명종(明宗)에게 진간하기를 "온 나라의 공론을 믿지 않으시고 한낱 요승을 옹호했다(不信擧國之公論而護一妖僧)는 후세에 남겨질 오명을 어떻게 씻을 것입니까?"라고 했는가 하면,
같은 해에 윤원형을 논죄하는 상소문 (論尹元衡疏)에서는 "윤원형의 죄는 머리카락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임금님께서는 끝내 잘못인줄 아시면서 그를 감싸려 하십니까(元衡之罪 擢髮難數而 殿下 終始曲護)?"라고 진간(進諫)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시폐광정소(時弊匡正疏)를 참고하면 참고할수록 역사의 거울은 우리의 미래를 보다 뜻있게 비추어주지 않을까 해서 여기에 이율곡선생의 상소문 일부를 소개하였다.
충효예의 리더십
일찍이 김구 선생은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의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나라의 철학에 쏠리어 사상의 독립,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해 남을 의지하고 저희끼리 추태를 보이게 된다"하여 우리의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또한 화랑제도를 만든 진흥왕(신라 24대)은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모름지기 먼저 배달국의 역사를 가르치라(欲興邦國 須先 風月道)"고 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다. 역사를 버리고서는 민족이 없고 민족을 버리고서는 역사가 없다"하여 역사의식을 강조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미국의 뉴 프런티어 정신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 그리고 영국의 기사도 정신과 이스라엘의 선민사상 등은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정신이 무어냐는 질문에는 머뭇거려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민족의 정신인 홍익인간정신, 상무정신, 화랑도 정신, 호국정신, 선비정신, 충무공 정신, 새마을 정신등을 바로 알고 이 정신들의 기초로 작용되어져온 충·효·예 사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 사료된다.
忠이란 치우침이 없는(中) 바른 마음(心)으로 오직 나라를 위해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中+心] 나라 사랑이자 국가 윤리이고, 孝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考+子, 老+子]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이자 가정윤리이며, 禮는 대인관계에 있어 하늘의 순리에 따라 도리를 다함으로써 조화와 질서를 유지케 하는[示+豊] 이웃 사랑이자 사회윤리이다. 한 마디로 한국인으로서 지녀야 할 보편적 가치이자 덕목이라 하겠다.
그러함에도 이러한 충효예를 우리사상이 아닌 외래사상으로 보거나 시대에 맞지 않다는 등 자조적(自嘲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고 생각된다. 그 배경에는 일제 치하의 '사이또 교육시책' 등 외세의 영향도 있었지만 우리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교육환경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공자(孔子)시대(B.C 500년경) 보다 훨씬 전인 고조선시대의 중일사상(B.C 2,150), 배달국 시대(B.C 3,898)의 삼륜구서(三倫九誓) 등 훌륭한 사상이 있어 왔음을 알아야 하겠다.
요컨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깃발에 새긴 도깨비 상은 바로 배달국 시대 14대(B.C 2707) 임금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의 용안이었다. 그리고 그 깃발 아래 모인 2,300만 거리 응원 인파는 마침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으며 높은 문화의 수준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된바 있다. 이것은 바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저력이자 자산이었던 것이다.
특히 기성세대 계층에서 그동안 우리민족의 상고사(上古史)부문을 애써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던때에 'W 세대'가 치우천왕 像(상)을 들고 나왔다는 점은 실로 획기적인 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자조적으로 여기도록 교육되어져 온 점이다. 예컨데 우리 민족은 '조선왕조 시대에서부터 정당정치'를 해왔음에도 '당파싸움하다 망한 것처럼' 배웠고,'백제국 멸망 당시 왕성(王城)의 인구는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낙화암에서 자결한 궁녀(宮女)는 삼천명'으로, 동이족(東夷族)의 의미는 '동쪽의 넓은 땅에 사는 어진 민족'으로 해석되어야 함에도 '동쪽의 오랑캐'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신라의 '세속오계(世俗五戒)'는 배달국 시대에는 '도의원리(道義原理)'로, 고조선 시대에는 '오상지도(五常之道)'였음에도 마치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만든 것처럼 배웠다. 그러다 보니 충·효·예 정신도 이런 맥락에서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리더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연구되고 있지만 그 범주가 워낙 넓어서 한마디로 '이것이다'라고 정의되지는 못하고 있는 단어이다. 리더십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리더십 환경에 맞는 이론 개발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 수 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에서 보듯이 한국인에게는 한국인에 맞는,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한 리더십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리더십을 설명하자면 '바다를 항해중인 선장(Leader)이 풍랑을 만나 어려움에 처한 여객선(Ship)의 승객을 온전하게 이끌고 가는 리더의 모습(Leader + Ship)에 비유'하기도 하고, Leader라는 단어의 스펠링 즉, '부하들의 말을 경청(Listen)할 수 있어야 하고 부하를 교육(Education)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부하를 도와주고(Assist) 토론하며(Discuss) 부하를 정확히 평가(Evalueation)하고 끝까지 부하를 책임(Responsibility)질 수 있는 자세를 가진 리더에 의해서 지도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 되기도 한다.
또 현자(賢者)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자(老子)는 "어떤 과업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그것은 리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해냈다(以無爲而有爲)"라고 부하들이 여기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는 "리더는 신뢰성을 바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을 한방향으로 정렬시켜 부하들로 하여금 동기가 유발되도록 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서산대사는 "눈 덮인 광야를 걸어 갈 때는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날의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들의 길이 될 것이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라 하여 리더의 진정한 모습과 역할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더십의 본질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어떤 리더십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충·효·예의 리더십은 '가정과 사회, 국가를 위하여 옳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동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즉 효(孝)에 바탕을 둔 리더십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항상 부모님의 기대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지도록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예(禮)에 바탕을 둔 리더십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적 관점에서 생활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충(忠)에 바탕을 둔 리더십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항상 나라를 생각하면서 각자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십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 교육하거나 적용되고 있는 리더십 이론은 우리민족의 사상과 철학의 바탕위에 서양의 것을 접목한 것이라기 보다는 서양의 이론과 지식을 단순하게 전수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등 각 분야의 리더에 의해 적용되는 리더십은 어딘지 불안정하며, 어떤 리더는 리더 자신의 가정문제(孝)로 인해 사회(禮)와 국가(忠)를 이끌어 가는데 걸림돌로 작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동도서기 사혼양재(東道西器 士魂洋才)라는 말처럼 우리의 좋은 것들을 지켜가면서 서양의 이론을 접목시켜나가는 고위금용(古爲今用)의 지혜와 처변불경(處變不驚)의 정신에 바탕을 둔 한국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며, 그러한 리더십이 바로 '충·효·예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라고 생각된다.
▶️ 古(예 고)는 ❶회의문자로 여러(十) 대에 걸쳐 입(口)으로 전해온다는 뜻이 합(合)하여 옛날을 뜻한다. 十(십)과 口(구)를 합(合)한 모양으로 十代(십대)나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 낡다, 옛날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古자는 '옛날'이나 '예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古자는 口(입 구)자와 十(열 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古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자 위로 中(가운데 중)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입'과 '방패'를 표현한 것이다. 방패는 전쟁에 쓰이는 무기로 古자는 오래전에 있었던 전쟁 이야기를 말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전쟁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후세에게 들려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古자에 攵(칠 복)자를 더한 故(옛 고)자가 '옛날'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고로 口자를 '세대'로 해석하여 古자는 10세대를 거친 것이니 '옛날'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갑골문에서의 十자는 丨자 형태로 그려졌었기 때문에 같은 시기 古자에 그려졌던 中자와는 모양이 다르다. 그래서 古(고)는 헌 또는 낡은의 뜻으로 ①옛, 예, 예전 ②옛날 ③선조 ④묵다 ⑤오래 되다 ⑥예스럽다 ⑦순박하다 ⑧잠시(暫時) ⑨우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예 석(昔),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제 금(今), 새 신(新)이다. 용례로는 옛날과 지금을 고금(古今), 옛 시대를 고대(古代), 옛 일을 고사(古事), 옛 역사를 고사(古史), 옛날 사람을 고인(古人), 옛날부터 현재까지를 고래(古來), 옛적부터 내려오는 관례를 고례(古例), 예로부터 전해 내려옴을 고전(古傳), 옛날의 법식이나 의식 또는 고대의 책을 고전(古典), 오랜 역사를 지니는 옛 절을 고찰(古刹), 오래 전부터 그 일에 종사하던 사람을 고참(古參), 낡은 당집을 고당(古堂), 옛날에 지은 오래된 성을 고성(古城), 옛 궁궐을 고궁(古宮), 고대의 무덤이나 옛 무덤을 고분(古墳), 70세를 일컬음으로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에는 드문 일이다는 뜻의 말을 고희(古稀), 고금을 통하여 홀로 뛰어나다를 이르는 말을 고금독보(古今獨步),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속을 이르는 말을 고래지풍(古來之風), 늙은이들의 말로 예로부터 전하여 옴을 이르는 말을 고로상전(古老相傳), 오래 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고색창연(古色蒼然), 옛날부터 지금까지를 일컫는 말을 고왕금래(古往今來), 가락이 썩 예스러워서 화창하는 이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고조독탄(古調獨彈),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고 세력 있는 집안을 일컫는 말을 고족대가(古族大家), 옛 모양 그대로임을 일컫는 말을 고태의연(古態依然), 옛 곡조라서 연주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고조불탄(古調不彈), 오래 된 우물에는 물결이 일지 않는다는 뜻으로 마음을 굳게 가져 정절을 지키는 여자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고정무파(古井無波) 등에 쓰인다.
▶️ 爲(할 위)는 ❶상형문자로 为(위), 為(위)는 통자(通字), 为(위)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轉)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爲자는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爲자는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爲자를 보면 본래는 코끼리와 손이 함께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조련시킨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爲자의 본래 의미는 '길들이다'였다. 하지만 후에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하게 시킨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爲(위)는 ①하다 ②위하다 ③다스리다 ④되다, 이루어지다 ⑤생각하다 ⑥삼다 ⑦배우다 ⑧가장(假裝)하다 ⑨속하다 ⑩있다 ⑪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사(徙),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구를 전(轉)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치부致富하려면 자연히 어질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위부불인(爲富不仁), 바퀴도 되고 탄환도 된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대로 맡겨 둠을 이르는 말을 위륜위탄(爲輪爲彈), 겉으로는 그것을 위하는 체하면서 실상은 다른 것을 위함 곧 속과 겉이 다름을 일컫는 말을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 되거나 안 되거나 좌우 간 또는 하든지 아니 하든지를 일컫는 말을 위불위간(爲不爲間), 선을 행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위선최락(爲善最樂),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뜻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어육(爲魚肉),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함이나 남을 위해 정성껏 꾀함을 일컫는 말을 위인설관(爲人設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진적위산(塵積爲山),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등에 쓰인다.
▶️ 今(이제 금)은 ❶회의문자로 仐(금)의 본자(本字)이다. 세월이 흐르고 쌓여(合) 지금에 이르렀다는 뜻이 합(合)하여 지금, 이제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今자는 '이제'나 '오늘', '곧'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今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今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알파벳의 A자 아래에 획이 그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口(입 구)자를 거꾸로 뒤집어 그린 것으로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전국시대 명문(銘文)에서도 今자는 '머금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이제'나 '곧', '현재'와 같은 시간적인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口(입 구)자가 더해진 含(머금을 함)자가 '머금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今(금)은 한자어(漢字語) 위에 사용하여 지금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이제, 지금 ②오늘 ③현대 ④곧, 바로 ⑤혹은(그렇지 아니하면), 만약(萬若) ⑥이, 이것 ⑦저(발어사)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옛 고(古), 예 석(昔), 어제 작(昨)이다. 용례로는 지금의 세대를 금대(今代), 올 겨울이나 올해 겨울을 금동(今冬), 지금까지를 금래(今來), 현재 왕위에 앉아 있는 임금을 금상(今上), 오늘 저녁을 금석(今夕), 이승이나 지금의 세상을 금세(今世), 오늘 아침을 금단(今旦), 오늘 밤을 금야(今夜),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임을 금여고(今如古), 지금 세상의 사람을 금인(今人), 오늘을 금천(今天), 이번을 금회(今回), 올해를 금년(今年), 오늘이나 내일 사이를 금명(今明), 이제나 방금이나 지금 막을 금방(今方), 이제나 방금이나 일이 진행되는 바로 그때를 금시(今時), 오늘이나 지금을 금일(今日), 이번을 금번(今番), 이번 주일을 금주(今週), 이제 또는 이 시간을 지금(只今), 어제와 오늘 또는 요즈음을 작금(昨今), 옛날과 지금을 고금(古今), 눈앞의 형편 아래 또는 바로 지금을 목금(目今), 바로 이제나 지금을 방금(方今), 이제까지나 아직도를 상금(尙今),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음을 일컫는 말을 금고일반(今古一般), 지금이 옛날보다 못함을 이르는 말을 금불여고(今不如古), 지금과 옛날을 비교할 때 차이가 매우 심하여 느껴지는 감정을 일컫는 말을 금석지감(今昔之感), 어떤 일을 한 뒤에 이내 좋은 보람으로서 복을 누르게 됨을 이르는 말을 금시발복(今時發福), 이제야 처음 봄을 일컫는 말을 금시초견(今時初見),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들음을 일컫는 말을 금시초문(今時初聞), 오늘 일을 일컫는 말을 금일지사(今日之事), 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을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이르는 말을 금시작비(今是昨非), 널리 옛일을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됨을 이르는 말을 박고지금(博古知今), 어저께는 나쁘다고 생각한 것이 오늘은 좋다고 생각된다는 말을 작비금시(昨非今是), 때와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옛날과 지금이나 동양과 서양을 가리키는 말을 고금동서(古今東西),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고금동연(古今同然), 동양과 서양 그리고 옛날과 오늘 곧 어디서나 또는 언제나의 뜻을 이르는 말을 동서고금(東西古今), 시대가 변하여 예와 이제가 같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고금부동(古今不同), 아주 뛰어나서 예나 이제나 견줄 만한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고금무쌍(古今無雙),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늘 그러함을 일컫는 말을 비금비석(非今非昔), 옛적부터 이제에 이르기까지의 온 세상을 일컫는 말을 고금천지(古今天地), 이전에는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와서는 그르다고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작시금비(昨是今非) 등에 쓰인다.
▶️ 用(쓸 용)은 ❶상형문자로 감옥이나 집 따위를 둘러싸는 나무 울타리의 모양 같으나 卜(복; 점)과 中(중; 맞다)을 합(合)한 모양이니 화살을 그릇에 넣는 모습이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물건을 속에 넣는다는 뜻에서 꿰뚫고 나가다, 물건을 쓰다, 일이 진행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用자는 ‘쓰다’나 ‘부리다’, ‘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用자는 주술 도구를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걸개가 있는 ‘종’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用자의 쓰임을 보면 이것은 나무로 만든 통을 그린 것이다. 用자가 ‘나무통’을 뜻하다가 후에 ‘쓰다’라는 뜻으로 전용되면서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결합한 桶(통 통)자가 ‘나무통’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用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나무통’이라는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用(용)은 (1)용돈 (2)비용(費用) (3)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무엇에 쓰이거나 또는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쓰다 ②부리다, 사역하다 ③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시행하다 ④일하다 ⑤등용하다 ⑥다스리다 ⑦들어주다 ⑧하다, 행하다 ⑨작용(作用), 능력(能力) ⑩용도(用度), 쓸데 ⑪방비(防備), 준비(準備) ⑫재물(財物), 재산(財産), 밑천 ⑬효용(效用) ⑭씀씀이, 비용(費用) ⑮그릇 ⑯도구(道具), 연장(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⑰써(=以)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사(捨)이다. 용례로는 볼 일을 용건(用件) 또는 용무(用務), 무엇을 하거나 만드는데 쓰는 제구를 용구(用具), 기구를 사용함을 용기(用器), 쓰고 있는 예를 용례(用例), 용도에 따라 나눔을 용별(用別), 사람을 씀을 용인(用人), 쓰는 물품을 용품(用品),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을 용역(用役), 어떤 일에 쓰기 위한 토지를 용지(用地), 사용하는 방법을 용법(用法), 사용하는 말을 용어(用語), 돈이나 물품 따위의 쓸 곳을 용처(用處), 쓰이는 곳을 용도(用途), 대변이나 소변을 봄을 용변(用便),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다 함께 사용함을 용장용단(用長用短), 돈을 마치 물 쓰듯이 마구 씀을 용전여수(用錢如水), 대롱을 통해 하늘을 살핀다는 용관규천(用管窺天),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음을 용의주도(用意周到), 일자리를 얻었을 때에는 나가서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 버리면 물러나 몸을 숨긴다는 용행사장(用行舍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