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가장 이름난 명당들은 어디인가?”
조선의 팔대명당 중 한곳은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석실 마을에 있는 안동 김씨 분산墳山 김번金璠의 묘이다. 원래 이 땅은 남양홍씨 땅이었는데 그의 아내가 남편이 죽자 친정에 얘기해 이곳에 묘 자리를 잡았다는 김번의 묘를 홍씨들은 금시발복할 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물을 가져다 붓고 “물이 나는 곳이라 묘 자리로는 부적당하다.”고 하였는데 홍씨가 “그래도 괜찮다”고 하여 묘를 썼다고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농단했던 안동김씨도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막을 내렸다. 그의 후손이 방랑시인 김삿갓 즉 김병연이다.
김삿갓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산소 때문에 송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명당터라고 알려진 곳에 산소를 썼는데, 바로 옆에다 다른 사람이 산소를 썼다. 그 사실을 안 원주인이 산소를 파가게 해달라고 고을 원에게 호소를 하였다. 그런데 묘 옆에다 묘를 쓴 사람이 세도가 있었던지 아니면 고을 원이 뇌물을 먹었는지 파간다는 말과 잡아들이라는 말만 난무하고 차일피일 하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삿갓이 시 한 편을 남겼다.
“파간다. 파간다. 하는 것은 저쪽이요.
잡아오라, 잡아오라 하는 것은 원님의 말씀이라,
오늘 내일 하니 세월은 한이 없고,
날짜는 길기만 한가.
이런 탈, 저란 탈로 미루니
적막강산이 백년도 더 가겠구나.“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 역사는 결국 어느 한 편만을 들지 않고 돌고 돌아간다. 순환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또 다른 명당은 김극뉴金克뉴의 묘를 들 수 있는데,그의 후손 가운데는 기호학파의 대부로 불리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그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또 그 후손에서〈구운몽〉을 쓴 김만중이 나왔다. 김장생과 김집은 조선의 유학자 중 유일하게 부자가 함께 문묘에 배향된 영광을 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김극뉴의 묘가 명당자리여서 후손에게 음덕을 내려준 것이라 하였다.
그곳은 말의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묘지가 있는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馬屹里의 마흘마을 뒷산의 형세가, 금방이라도 말이 하늘을 향해 내 달리듯 솟아 있기 때문이다. 묘지 앞에서 사방을 둘러 보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산들이 하나같이 말의 형상을 띄고 있다. 한편 김장생의 묘는 돈암서원 근처인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의 고정산에 있다.
조선 8대 명당 가운데 또 하나는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의 묘인데, 현재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다. 후삼국시대 신라 경애왕의 요청으로 왕건의 휘하 장수들과 군대를 이끌고 대구 팔공산 아래에서 후백제 견훤을 맞아 싸웠는데, 이때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 죽은 것이었다.
왕건은 머리가 잘린 그의 시신을 찾아내 이곳에 장사지냈다. 당시 시신에는 머리가 없었기 때문에 금으로 그 모양을 만들어 붙였으며, 도굴을 염려하여 봉분을 세 개로 만들어서 어느 것이 신숭겸의 묘인지를 구별할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생명의 은인인 신숭겸에게 자신이 묻힐 묏자리로 생각했던 조선의 팔대명당을 아낌없이 내 준 것이다. 풍수지리가들은 이곳을 군왕가장지지君王可葬之地라 부르며 대략 2,500년 정도의 지기가 보장되는 곳이라 평한다.
그렇다면 명당은 과연 대대손손 이어지는가? 아니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오래 가지 않은 것이 명당의 기운이다.
2024년 3월 1일
김장생의 묘, 김번의 묘, 신숭겸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