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변치 않는 우정과 로또복권 이야기
나의 고향은 충청남도 어느 조그마한 시골입니다. 나의 친구는 8세 되던 해 어머님을 잃었습니다. 친구 어머님은 친구의 동생을 낳다가 어머님과 동생이 함께 사망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으나, 성인이 된 후에 알고 보니 애기를 낳을 때 애기가 머리부터 나와야 정상인데 발부터 나와서 모두 사망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사례가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기억으로 친구어머님의 장례를 치르는 날 친구의 허리에 삼베로 된 띠를 두르고 상여 뒤를 따라가며 울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후 친구의 아버님은 재혼을 했고, 새 어머니가 친구에게 모진 학대를 하여 그 친구는 항상 우울한 표정이었고, 의지할 곳은 친구 밖에 없어서 항상 우리 집에 와서 나와 같이 밥을 먹고 자고 가는 날도 많았고, 우리는 그렇게 우정을 쌓았습니다.
그 당시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다들 굶기를 밥 먹던 하든 시대였지요. 그래도 우리 집은 시골에서 부자 집에 속했는데, 그 친구 집은 봄만 되면 식량이 바닥나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식량으로 삼거나 칡뿌리를 캐서 먹고살고 해서 얼굴이 퉁퉁 붓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왔는데, 그 당시 편지 외에는 소식을 듣거나 전할 방법이 없었지요. 그래서 한 달에 두세 번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일반전화가 생기고 또 휴대폰이 일반화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통화했고 과거의 우정을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또복권이 생겨났는데, 시골에는 sbs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아침6시경전화가 왔는데, “친구 로또복권을 추첨할 때 번호가 대중없이 나오는가? 예를 들면, 7번이 나오고 36번이 나오고 1번이 나오고 그렇게 나오는가?”
“응 그렇게나오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어제 밤 꿈에 산에 큰불이 났는데, 혼자 도저히 끌 수 없어서 바위 위에 않아 있는데, 어떤 여자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손에는 사과 상자를 들고 내 앞에 내려놓는데 자세히 보니 4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로 기억되고 상자 뚜껑을 열면 “이번에 상금은 이 속에 있다”
그래서 그 뚜껑을 열어보니 번호가 1, 7, 36, 37,이 기억나고 나머지는 아무리 기억해도 모르겠다며, 이번 주에 이 번호로 로또 한번 사보세. 그래서 친구와 나는 그 번호를 찍고 나머지 두 개는 임의로 찍었는데(그 때만해도 자동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주에 4개 번호 중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첨이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하나도 안 나왔다고 했더니 “이 사람아 그게 개꿈인 모양 일세” 그러면서 허허 웃더군요.
다음 주 금요일 날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예사 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번 주에 그 번호로 다시 사보자고 했더니 친구의 대답이 “이 사람아 지금 고향에는 눈이 워낙 많이 와서 차가 다니지 않으니 자네가 한번 사보게”
그래서 토요일 날 그 번호로 샀는데 그날 밤 너무나 신기하게도 그 번호가 모두 나왔는데, 당첨금은 100만 원정도 됐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100만 원정도 당첨됐다면서 통장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친구의 대답이 “얼마를 송금할 라고?” 나는 “이 사람아 100만원 다해야지 뭘 얼마를 송금해” 그랬더니 친구는 “반만 하게, 만약 다하면 자네 다시는 안 볼 라네”
그래서 내가 “농촌에 비료 값이니, 농약 값이니 어려운데 다 보내겠으니 통장번호 좀 알려주게”라며, 아무리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고 “반만 보낸다면 알려 주겠네” 할 수 없이 반만 보내는 조건으로 5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해마다 겨울에는 농촌에 일이 없어 서울에 와서 나와 한 달 동안 같이 지낸 적이 많았고 갈 때면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2004년 겨울에 올 줄 알았는데 며칠 동안 전화가 없어서 연락 했더니 “이번겨울에는 몸이 좋지 않아 못갈 것 같다면서 다음에 몸이 이상 없을 때 갈게“ 그러더니 2005년 10월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부인과 아들 둘,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내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난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도 하고 술도 날마다 마시고 무척 힘들어 했었습니다.
그 다음해 여름 장마가 질 때 그 친구가 꿈에 나타나 “어~이 친구 지금 우리 집에 물이 자꾸 들어오니 자네가 좀 와보게”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해 부인에게 전화해 산소에 가보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자네가 와 보라는 말에 다음날 가서 보니 산소에 두더지가 여러 군데 구멍을 뚫어 물이 계속 들어가고 있어서 동네에서 삽을 빌려 그 구멍을 막고 물길을 돌리고, 해마다 그 친구의 제삿날엔 꼭 참석합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떠나고 한동안 자주 꿈에 보였는데, 자기가 죽은 것을 무척 억울해하는 꿈이 대부분 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꿈에서도 멀어 지더니, 약 2년 전 꿈에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어~이 친구 여기 로또 파는 곳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나는 ”저쪽 길 건너 편의점에서 팔던데“ 그랬더니 ”나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사니 자네가 나대신 두 장만 사보게“ 요즈음 농촌이 바빠서 이만 가네, 다음에 놀러올게”
다음날 오전 나는 그 편의점에서 10,000원을 주고 로또 두 장을 샀는데, 그게 2등에 당첨됐습니다. 세금공제하고 약5,300만원, 그 돈을 찾은 후 그 친구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친구가 했던 말 중에서 “나 대신”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생각 끝에 그 친구는 결혼을 늦게 해서 아들 두 명이 대학에 다니고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도 하는 걸로 알고 있고 또 객지에 학생 방을 얻을 때도 돈이 없어 빚을 내서 보증금을 준 걸로 알고 있는 관계로 그 돈을 친구부인에게 전해주기로 마음을 굳히고, 만나서 자초지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그 돈을 전해 주면서 빚이 있으면 갚으시고 아이들 훌륭하게 키워 주세요. 그래야 친구가 좋아하지 않겠어요?
그 당시 친구부인은 내 이야기를 반신반의 하면서 목 놓아 울더군요. 아직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만 저 역시 믿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자꾸만 눈물이나 몇 번을 쉬었습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친구를 사랑하렵니다.
첫댓글 감동 글 이라 아고라에서 퍼 왔더니...삭제 하네요.. 안되나? 일언반구 없이 삭제하다니.댓글도 달린글을...참나
이런분들이 많이 사는 사회가 된다면...ㅜㅠ 감동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