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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여행산문집이 나왔다. 이병률의 <끌림>은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간간히 선물해주던 책이었는데... 이병률의 신간 소식이 들리자 곧바로 예약주문하고 기다렸다. 7월이 되어 반가운 손님으로 도착했다. 이번에는 어떤 색깔의 바람 소리가 들릴까. 왜 이 사람은 이처럼 외로울까. 이 사람의 사랑은 뭘까. 그가 말하는 사랑에 관한 (완결될 수 없는) 정의가 책에 담겨있지만 나는 의문하게 된다.
끝없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이병률에게 사랑은 뭔가. 붙잡지도 못하면서도 놓치도 못하는 사랑은 뭔가.
이병률의 여행산문집을 읽는 방법
하나. 책에 담긴 정형화되지 않는 사진들을 술술 넘겨본다.
둘. 영화의 scene 넘버처럼, 장면과 장면으로 이동하면서 읽는다.
셋. 사이사이 책에 없는 자기 사연을 넣는다.
넷. 살아있는 한 사람의 여행이기에,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여행기라는 인지하고서 읽는다.
다섯. 여행산문집 한 권이란 단지 여행이란 사건과 주제로 특정기간 묶여졌을 뿐인 책이다.
내가 이병률의 여행산문집을 읽는 방법이다. 사진을 보고, 사연을 보고, 얘기를 듣고, 글을 읽고.
그리고 상상을 하고 그리워하고, 짠해하고, 안타까워하고, 내 꿈이지만 내꿈 아닌 것 같은 꿈을 꾼다.
이 책을 읽으며 이상한 경험을 했다. 사실은 그리움에 아득하였다. 43#의 높고 쓸쓸한 당신을 읽는데, 어째 이건 박완서 작가를 두고 쓴 글 같다고 생각됐다. 잠들기 전 읽은 글이다. 설마 그럴까 하고서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 박완서 작가가 아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아렸다.
다음날 아침, 책에 실린 글이 박완서 작가를 두고 쓴 글인지 아닌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역시나 그랬다. 이 글은 2011년 1월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신 뒤, 이병률이 문예지에 쓴 글이었던 것이다. 글을 읽다보면 간혹 이런 재미를 발견한다. 질문자가 굳이 답변을 원하지 않는 글에 어떤 답, 근거, 이유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수수께끼와 같지만, 질문을 낸 이가 실제로는 질문하지 않은 수수께끼. 읽는 이만이 수수께끼처럼 느껴져, 수수께끼를 푸는 질문. 나의 독서가 끝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병률을 읽었는데, 박완서와 만나다니. 박완서는 내게 참 여러 인연이 있구나. 이런 우연은 나로 하여금 타닥타닥 글을 쓰게 한다. 갑자기 뭔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만들지도 못하는 요리를 기어이 만들듯, 나로 하여금 타닥타닥.
날마다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죽는데, 그 중 연관성 있는 죽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박완서의 죽음도 그러했다. 그 즈음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 생을 다하려는가보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누군가 떠나갈거라 예상되는 꿈을 꾸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내내 불안하다. 누가 떠나갈건가 싶으면서. 그 즈음, 박완서 작가의 부음 소식을 들렸다. 어쩌면 이런 과정은, 누구말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신비주의자(혹은 의미론자)인 내가, 사후적으로 의미작업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혹 그런 일이 있다. 그러했기에, 이번 책에서 글을 통해 또 그분을 만나는 게 우연이라고만 생각되진 않는다.
시인이기도 한 이병률의 글은 시처럼,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을 느끼게 해준다.
"11월과 12월 사이를 좋아합니다. 그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공감하게 된다. 별 의미없는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알 수 없는 무엇에 끌려가고, 알고보니 그랬더라는 시선에 나는 공감하게 된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말임에도, 말들과 말들이 만나는 말들의 세상에 (나도 모르게) 쏙 들어가는 기분을 이병률의 헐렁한 여행산문집을 통해 나는 느낀다. 그 중 박완서 작가와 연관된 부분을 옮겨놓는다.
*
43#
높고 쓸쓸한 당신
몰타에 왔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왔다. 딸깍, 내 손으로 호텔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냥 주룩주룩 흐른다. 하지만 착각이다. 흘릴 눈물도 없다는 듯 쏟아내질 못한다. 이토록 팽팽하면서도 터지지 않는 비닥난 몸의 상태가 문득 두렵다.
여기까지 잘 굴러온 트렁크의 바퀴를 더 이상 굴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으며, 창밖으로 파란 바다를 옆에 짊어지고 지친 듯이 뛰고 있는 노인의 희미한 움직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해 한치의 시간도 쓸 수 없었던 지난 삼사 개월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인지도, 아니면 당신의 부재 때문인지도.
당신은 외로웠을까. 이른 새벽 강가를 걷는 당신 뒷모습을 좇으며 당신의 외로움이 어느 만큼인지 궁금했다. 걷다가 나무 아래 멈춰 서고 걷다가 다시 나무 아래 멈춰 서는 당신. 뼛속까지 외로웠을까. 그럴 때면 당신 마음은 어찌했을까. 그럴 때면 당신 마음을 당신 마음에게 잘해주었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당신은 반지 하나를 사고 싶어했다. 그냥 손가락이 허전해서라고 했다. 반지 파는 상점에 들러 진주 반지를 들여다보던 당신이 말했다.
"진주는 외롭다는데....."
"선생님, 그러면 진주 말고 다른 거 하세요."
당신은 진주를 택했고 나는 가만히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선생님, 그 반지 끼고 외로우면 어쩌시려구요?"
"외로운 게 뭐가 대수라고. 외로우면 좀 어때. 외로워봤자지."
그래, 외로워봤자다. 외로움은 다가 아니더라.
언젠가 당신에게 불쑥 물었다. 그런저런 말들이 지나간 후였다.
"선생님, 어떻게 사셨어요?"
많은 사람들, 당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묻고자 했을 그 고통의 날들과 관련하는 당신 남편과 당신의 아들......당신의 인생 전체에 대한 안부였다.
"견뎠지. 뭘 어떻게 살았겠어....."
부러 냉정하게 자신을 누르는 음성이었다. 아마득한 당신 세월은 이런 방식으로 눌린 채로 냉담히 아득히 굳었을 것이다.
건배할 때마다 당신이 자주 했던 말, 그 말도 그래서 생긴 말이었을까.
어쩌면 당신의 마음을 빗는 도구이기도 했던 그 말.
"즐겁게 살자."
고백하자면 나에게 그 말은 힘든 말이었다. 당신이 애써왔던 삶을 쏙 빼닮은 말 같아서였다. 당신 스스로에게 당부한 말이었으니 만약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삶이 이토록 의연할 수 있었겠는가. 당신이 즐겁게 살자는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통의 반대편이어야 할 것. 이 삶의 그 어떤 작은 고통까지도 모두 지워내자는 것.
"만약에요. 다른 나라에 살게 된다면 선생님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항주杭州에 살고 싶어요."
"항주가 왜 좋아요?"
"물 있고, 사람 있고......따뜻하잖아."
항주는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속도도 느리고 단조롭다. 게다가 시적이기까지 해서 유난히 젊은 여행자들의 인적이 드물다. 하지만 당신 일생에 있어 그곳처럼 진하고 찬란한 '자리'는 없는 듯했다. 봄마다 항주이야기를 꺼내실 정도였으니, 항주에서 며칠 지내는 중에도 항주이야기를 하실 정도였으니.
"제가 항주 좋은 거 알려면 아직 멀었겠죠?"
"하지만 언젠가 병률이도 알게 되겠지."
젊은 사람들은 모른다. 쉬운 것은 겨우 알 수 있을지라도 어려운 것은 모른다. 어쩌면 쉬운 것도 어려운 것도 자기 소관이 아니므로, 모르고 있는 것조차 모른다. 당신을 겹벚꽃 나무 아래 서시라 해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랬다. 왜 꽃 옆에서 찍은 사진을 그토록 옆에 두고 보면서, 당신이 많이 웃곤 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항주와 상해, 그 중간에 위치한 수상마을 우쩐烏鎭에 들러 하루를 묵었을 때 햇살이 좋은 물가에 당신과 내가 나란히 앉았다. 그때 가방에 든 것이 생각났다. 지난밤 항주 식당에서 마시다 남은 중국술 반 병이 배낭에 들어 있었는데 아무리 한낮이라고는 해도 멋진 경치 앞에서라면 어울릴 것 같았다. 술병을 꺼내 당신에게 먼저 건넸다. 술잔이 없었지만 술잔이 없어도 될 만큼 그 자리는 충분했다. 얼마 남지 않은 양이었지만 몇 모금만으로도 충분히 취기가 몰려왔다. 취기에 기대어 당신과 나는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때 멀리서 우리를 오래 지켜보고 있던 중국인 일가족이 우리 앞에 서더니 말했다.
"이 사람 효자네, 효자야."
나를 당신의 아들로 본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이 말을 당신에게 통역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노모를 데리고 아름다운 경치 있는 데를 여행하는 것이지. 요즘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당신의 입가에 푸지게, 함박꽃이 피었다. 나는 그 순간 당신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랬으면, 아들이었으면. 그리하여 당신이 가지를 붙들어 조금은 든든했으면. 내가 당신에게 오래 그토록 그랬으면.
그해는 당신의 팔순이었다. 선물을 사기 위해 며칠을 망설였지만 적당한 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삼청동 어느 가게를 지나다 목걸이를 골랐다. 모양은 진주였으나 당신이 샀던 것처럼 진짜는 아니었다. 진주는 외롭다지만, 가짜 진주는 외롭지 않을 거라는 장난스러운 생각으로 포장을 부탁했다.
"선생님, 참 잘 어울리세요. 근데 글쎄, 저는 그게 진짜 같아 보이는데 진짜가 아니라네요. 진짜가 아닌 것 선물해드려서 죄송해요."
당신이 말한다.
"결혼식 올리는 것도 아닌데 진짜 아니면 어때요?"
12월 초, 긴 여행에서 돌아와 당신을 찾았을 적에도 당신은 내가 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투병 중이었다. 병을 앓는다는 것은 그랬다. 주변에 눈길을 줄 수 없는, 동유럽 수도원에서 지낸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고 싶어 약속을 잡은 거였는데 당신 집에 들어서니 약속을 놓치고 있던 당신이 화들짝 놀랐다. 약속을 잊고 계실 정도로 힘드시구나 하는 생각에 나 역시 많이 놀랐지만 당신이 자꾸 미안해하는 바람에 나는 조금만 앉아 있다가 얼른 물러나 돌아왔다. 수도원에서 당신을 위해 드렸던 간절한 기도와 상관없이 아차 싶게도 당신은 아프고 있었다. 휑한 겨울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며 나오는 길. 아, 모든 것이 금방 물러갔으면 했다.
"엽서가 너무 이뻤어. 엽서가 너무 이뻐서 자꾸 들여다보고 읽고 그랬어. 병률이 어디 있는지 지도도 들여다보고 그랬어."
여러 수도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드리는데 당신은 나중에 같이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여행을 하며 보낸 엽서가 한 장이 아니라 두장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엽서가 또 오는 중이겠네. 그럼 그것도 기다려야겠네" 하셨다.
이제, 당신은 아이 같다. 하지만 당신이 두 번째 엽서를 받기는 한 것인지 당신이 그리 물리도록 누워 지낸 병실을 다시 찾았을 때도 그것을 물을 기회는 없었다.
당신은 치료를 끝마치지 못하고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성탄이어서 당신을 뵈러 병실에 간 거였다. 나의 기도는 짧지 않았으므로 오래 당신 손에 잡고 있었다. 당신이 봄이 되면 어디 먼 곳을 다녀오자고 했다. 옆에서 당신의 딸들은 너무 먼 데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주 먼 곳이어야겠다고 당신은 힘주어 말했다. 다시 항주를 찾게 될 거란 예감도, 어쩌면 시코쿠의 나오시마에 가게 될 거란 들뜸도 스쳤다. 분명 봄과 함께일거였다.
그 시간 고통이었겠으나 당신의 혈색은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 안색, 지금 아주 좋아 보인다고 칭찬드렸다. 좋아지는 중이었으니, 봄을 기다리는 중이었으니 당신의 얼굴빛은 봄의 편이었을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성탄이었다.
당신이 황망히 떠나고 당신의 빈집을 찾았을 때 당신은 없었다. 당신의 집에 당신의 표정이 없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신이 없으니 당신의 집이 벼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마당에서 따낸 많은 살구로 잼을 만들었다며 가져가라 내밀 것 같고, 마당에 조팝나무 꽃이 피었냐며 전화를 걸면 좋은 꽃 다 지기 전에 한번 다녀가라고 당부할 것 같았다.그런데 당신은 거짓말 같다.
당신이 없는데 '나라'가 없어졌다. 당신이 떠났는데 내 신발 모두가 사라졌다. 당신은 우리와 이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전화가 고장난 것이다. 잠시 연락이 어려운 것이다. 멀리 한번 던진 공을 잃을 것이며 여행가방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랑이 아려서 사랑이 저물어 이별한 것도 아니다. 당신은 곧 저 먼 곳 반환점을 돌아 도착할 것 같다. 그리고 기운이 조금 더 남았다는 듯 한번 더 큰 원을 그리고 달려와 "나, 잘했지?" 할 것 같다.
당신, 여행가방을 찾아 돌아올 때는 길을 잃지 말기를. 당신, 잠시 거짓말이었다며 얼른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그래도 당신에게 하나만 묻겠다. 이 벌판에서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외로웠던가. 마당에 풀 번지듯 번지는 외로움이었을까. 탁해진 눈가를 닦을 때에도 컴컴하게 쳐들어오는 외로움이었을까. 그 외로움에는 그래도 단맛이 섞였을까.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가.
"외롭지 않으면 또 무엇으로 살아요?"
당신은 그 외로움의 힘으로 가장 멀리 가겠다는 것인가. 훨훨, 당신이 가고자 했던 곳들을 당신은 지독히 밟으며 다닐런가. 어쩌면 우리는 그곳에서 외로움의 힘으로 마주쳐 그렇게 술 한잔 나눌런가.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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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올초였던가. 지난 2월, 박완서의 유작 <기나긴 하루>를 읽고 난 뒤 소감을 적어놓았는데, 그걸 여기에 붙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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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3일 1931년생 박완서는 생을 다했다. 가 보지 못한 길이 아름답다, 고 말하던 박완서는 담낭암 치료를 받다가 생을 다했다. 2012년 1월, 그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며 여러 책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유작 3편과 김윤식, 신경숙, 김애란이 추천한 세 작품이 실린 《기나긴 하루》에 눈길이 갔다. 어떤 작품으로 생과 이별을 했을까 싶어. 사실상 이별을 했다기보다는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는 게 맞다. 표제작인 <기나긴 하루>를 읽었다. 누구의 하루처럼, 그야말로 하루였다. 작년 가을 [긴 하루]란 제목의 작은 그림 한 점을 선물받았는데, 이런 우연이 있나, 싶으면서 친근감을 가지고 읽었던 작품집이다.
남편의 경제력 부족으로 경제적으로 어머니에게서 자립할 수 없는 며느리가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임에 가사도우미를 하는 그 하루를 통해, 독립적인 어른이 됐다며 이혼조차 알리지 않는 며느리와 아들. 자립하여 할 말 다하는 친구인 올케의 삶 그리고 자립할 수 없어 눈치보며 살아가는 화자인 며느리를 통해 가족간의 모든 문제가 자립적인 삶일까를 의문해보게 했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작품은 박완서의 작품이기에 가능한 작품으로 생각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라는 작품이다. 발표 연도상으로 보면, 2010년 2월로, 가장 최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을 보면, 자기 미래를 알고 쓴 글이 아닐까 생각되는 작품이 있다. 단지 단상과도 같은 기록을 남기는데도, 내가 경험하게될, 내가 듣게될 미래를 내 정신/몸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섬뜩한 글들이 있더라. 이 작품 또한 박완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미래를 작가 박완서는 미리 알고 쓴 작품같았다. 박완서의 작품은 멀고 먼 미래를 향하거나, 머나먼 이상을 바라보는 작품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를 상기하며, 현재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이 결국 미래로 흘러갈 무엇이 될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이 작품 또한 그렇다. 과거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한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 같았다. 할아버지 품에 귀하게 자란 화자는 뭘 의식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다. 나이 차 나는 오빠와 같이 자란 화자는 도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6.25 한국전쟁으로 오빠를 잃게 된다. 스무살에 멈춰버린 자신이란 말을 하던 작가는 경제감각 있는 온순한 남편을 만나 순탄하게 살다가, <나목>이란 작품으로 등단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온 국민이 환희에 들떴던 88 올림픽에 남편을 잃고 석달 후 아들을 잃게 된다. 남편이 죽은 뒤 자신을 데려가라고 했는데, 아들을 데려간 것이다. 남부럽지 않게 잘 자란 아들이었다. 다시 시련이다. 딸들과 주변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살아가다, 회복하다,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에, 집을 떠나게 되었다. 단지 "부재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 이후 그 이후 20년 가까이 일년에 서너번씩, 때론 자비로, 때론 일에 다른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제작년 다녀온 이탤리 여행에서, 여행 첫날부터 작가는 심하게 앓는다. 그렇게 여행 중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겨우 과정으로서 여행을 마친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내렸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 찾는 아래층에 안전하게 발을 디디자 비로소 고래 뱃속을 빠져나왔구나, 하는 현실감이 왔다. 이번 여행길을 통틀어 방금 내린 비행기까지가 다 고래 뱃속의 일로 여겨졌다. 어쩌면 지난 이십년 동안의 설렘도 목적도 없는 여행이다. 다 고래 뱃속 안에서의 헤맴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내 땅에 첫발을 디딘 착지감은 눈 감고도 느낄 수 있는 첫사랑과의 터치처럼 에로틱하기조차 했다. 죽어서도 당신에게 스미고 싶어. 그런 황홀경이었다. "( 43쪽)
지나놓고 보면, 거기에 그런 뜻이, 하는 생각을 하는데. 박완서의 몸은 어쩌면 이 글을 쓸 때, 고래 속 요나의 삶과 고래 속 세계를 벗어난 자유로운 삶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 나와 바다 속 고래의 요나의 삶과 같은 삶을 다 살았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이젠 그가 꾼 긴 꿈 하나가 끝나는 때라는 걸 안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내겐 유독 남달랐다. 나 역시 설사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했다해도, 몸이라도 먼저 아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2012년 2월, 《기나긴 하루 》를 읽고서 간략 메모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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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히는 관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A는 B를 읽지만 B는 A를 읽지 못한다. C는 A를 읽는다. 그렇다고 A가 C를 읽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A가 A 자신을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B 역시. C역시. 이처럼 누가 누구를 읽기란 어렵다. 하여 누가 누구를 읽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읽혀지는 부분,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말. 읽혀지지 않는 게 글이 되기도 할 수 있다는 말. 읽히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읽는 건 읽고 싶어 착각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는 말. 읽어지는 마음이 있는 한 외롭지 않다는 말. 한 사람을 읽는다는 건 읽는 대상이 되는 한 사람의 자리를 읽는 한 사람이 미리 만들어놓는다는 말. 들키는 관계 역시 그렇다. 읽히는 대상의 자리가 읽는 사람에게 순간 생기는 것. 이병률은 박완서에게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고 물으며 박완서의 높고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읽었을지 몰라도, 이병률이 모르는(보지않는) 신경안써도 되는 고요히 흐르는 박완서를 읽지 못한 건 아닐까 싶어졌다. 물론 박완서의 작품을 읽으며, 과거 한때에서 시작되어 과거로 눈을 돌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먼 미래로 흐르는 강 같다,고 읽는 게 내가 읽은 박완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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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완서씨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 저의 4~50대 나침판이었습니다. 권태롭고 숨막히는 남편을 피하려는 방법으로 자식의 공부를 핑계삼아 남편곁을 떠나 자식이 삶의 등불인냥 살았지만 자식의 뒷 모습을 보고서야 결국 자기가 돌아갈 곳이 그 쓸쓸한 남편 곁임을 크게 일깨워 주는 책이었죠.저도 어떻게든 남편을 떠나고 싶었고 자식의 미래에 열중하고 있을때였기에 수시로 저에게 지시를 내리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아니 아니지...' 덕을 많이 본 나침판이었죠. 여건이 비슷했던 친구들에게 그 책을 선물 하기도 하고 제법 설득력있게 이야기로 방향을 돌려보기도 했었던 생각이 납니다. 모든 것들이 옛 이야기로 흘러갔군요,ㅎ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