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주일설교
본문: 딤후 1:7-8
제목: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1.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딤후1:7)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분이 전능한 하나님이시요, 그분 손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님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8-31)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도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과 자세로 찬송을 부르며 화형대 앞에 나아갔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존 폭스가 쓴 ‘기독교 순교사화’를 꼭 한번은 읽어야 한다.
사도와 그 제자들의 순교로 시작하여 메리 여왕시대까지의 순교자 열전을 다루고 있다.
청교도 시대에는 영국의 각 가정에, 각 교회에, 비치되어 영국의 명예혁명을 성공케 한 책이다.
카톨릭식 신교가 지배하는 가운데 영국 시민들은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인지를 분별하게 되었고, 그 영향을 소리 없이 받은 결과,
거짓 교사들과 정치인들은 불신하며, 종교와 정치를 개혁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순교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몸은 죽이되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된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다.
주일 예배마다 외는 사도신경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성령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아무것도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없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결코 끊을 수 없는 피조물들, 장래 일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니까 두려워하게 되고, 또 두려워하니까 염려 걱정을 하게 된다.
참새 한 마리도 주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님이 알고 계시고 헤아리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그 뜻을, 그 이유를 지금은 당장 알 수 없지만,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니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희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신7:21)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데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다른 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 뿐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염려가 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자기의 자아가 여전히 중심에 있다는 증거이다.
믿음은 말씀에서 나기 때문에 말씀을 공부하면서 기도하면서 그 중심을 내쫓아야 한다.
두려움과 염려가 가시떨기이고, 그것이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에 영접하는 것이요, 그 후에는 나의 의, 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 믿음 없이 행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스라엘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았다고 로마서는 말씀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2세들도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 3백년 암흑시대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결코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는데 그 두려워하는 마음은 누가 주는가?
그건 사탄이 주는 마음이다.
가나안 바로 앞에서, 열 정탐꾼들의 말만 듣고 겁을 먹고 밤새도록 두려워 떨며 통곡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이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2-3)
종일 걱정하고도 모자라 밤새 걱정하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다.
철옹성이고 거인 자손들이 있다는 말에 혼비백산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14:9)
두려워하는 마음이 오면 사탄이 주는 생각이구나 알아채리고서 물리쳐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아 메뚜기 사고방식을 벗어던지고 우리야말로 믿음의 거인인 것을 알자.
떡으로만 살아서는, 환경에 따라서 두려워 떠는 자가 될 수 밖에 없고,
말씀으로 살아야, 비로소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
2. 하나님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7)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대를 그대로 본 받거나,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인지 세상의 의 혹은 나의 의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좌파도 되지 말고 우파도 되지 말라는 것이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22:2)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1:7)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하는 자들이 극우나 극좌의 무리에 속해 행동하는 것은 꼴불견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정면 도전하는 불법행위들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는 어느 한쪽에 속해 있다가 그들과 함께 멸망하고 몰락하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편이고 공의와 정의의 편이고 그리스도의 편일 뿐이다.
모든 해석은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지혜, 지혜와 계시의 영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기독교인들이여, 제발 책을 읽으라. 경건서적들을 읽으라.
피흘리며 고난과 핍박 속에서 성경을 바로 해석한 책들을 보석 같은 유산으로 남겨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것은 능력이다.
사람과 세상의 지혜와 아름다운 말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순전한 말씀과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해석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온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는,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보석 같은 책들을 보면 그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은, 다 시대의 사상으로,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흰 것을 만나 봐야, 내가 회색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다.
순전한 말씀(해석)이 아닌 곳에 성령은 능력으로 나타나실 수 없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에는 사탄의 농간과 사탄의 능력이 나타날 뿐이다.
교회 안에서의 설교와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노라”(고후2:17)
다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진리 안에서의 사랑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와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다음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절제하는 마음이다.
능력이나 사랑도 절제하는 마음이 없으면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 밖에 없다.
절제는 성령의 마지막 열매이고, 이 열매 없이는 승리의 관을 얻을 수 없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는 것이 절제하는 마음이다.
능력도 사랑도 절제하는 마음으로 할 때 조화롭고 아름답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승리하자.
3.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옥중서신이다.
바울은 우리 주를 증언하는 일에 있어서 옥에 갇히는 고난도 겪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디모데에게도 갇힌 자 된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몸은 감옥에 갇혔어도 주의 말씀은 갇히지 않았다고 하였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다.
주께서 하시는 일에, 바울은 이의제기가 있을 수 없었고, 항상 믿음으로 순종하였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우리 주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다, 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자취를 따라 아버지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도 이렇게 왕에게 응답하였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7-18)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의 믿음을 말리지 못하였다.
능히 건져내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다.
돌아가야 할 본향을 사모하였고,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고,
상 주심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고난을 받으라! 이렇게 노골적으로 명령하는 종교가 기독교이고 성경이다.
축복과 평안과 형통만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종교이다.
그러나 무조건 고난이 아니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이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받는 고난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능력으로 받는 고난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불뱀과 전갈이 있는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하여,
헤브론의 영광에 이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이른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고난 끝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신다.
위대하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심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시고 우리가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심을 믿으시라.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반드시 상 주시는 분임을 믿으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은 그리스도인을 영광으로 인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