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 일시: 2007.09.09(일)
* 제10 구간(우두령~황악산~추풍령) / 35구간중
* 산행거리: 도상거리(23.74km), 접속거리(0.0km)
산행거리(23.74km),
* 소요 시간: 7:15~8:30(선두~후미)
* 참석 인원: 51명
* 차량 운행: 대형 버스(45인승)1대.
* 날씨: 강한 햇빛, 가시거리: 양호, 시원한 바람이 불어줌
기온: 19~20도씨(해발고도 720m~1111m~221m)
* 기점간 거리(km)/시간(hr:min):
우두령(=질매재/720m/09:00)-(4.45km)-바람재-(2.85km)-
황악산(=황학산 비로봉1111.4m)-(5.55km)-궤방령(=괘방령)-
(4.25km)-가성산-(3.03km)-눌의산- (3.61km)-
추풍령/노래비(=당마루, 백령, 221m/17:00) // 23.74km/8시간 소요
* 진행 마루금(고도/시간):
우두령(=질매재/720m/09:00)-능선 억새길-삼성산/삼각점(985.6m/09:40)-
여정봉/헬기장(1030m/10:00)-억새길/급경사 계단길-무선통신 콘테이너/
작은것 2개/억새군락(910m/10:06)-비포장 도로-바람재/헬기장/고냉지(810m/10:21)-
벤치 2개/신선봉 갈림길(우측)-형제봉(1040m/10:50)-황악산/돌탑/정상 표지석 2개
(=황학산 비로봉 1111.4m/11:10)/곤천산 갈림길(좌측)/김천시 한눈에 보임-
백운봉(왼쪽으로 지나감/11:25)-억새길-독도주의/직지사 갈림길(우측 아래로)/3군데-
운수봉(670m/11:50)-시설 하우스-괘방령/점심 식사/물 급수/쉼터/민가/906국도
(300m/12:45~13:00)-길건넘-418m봉(13:15)-가성산(716m/14:35)/목적지 보임-
장군봉(616m/15:00)-663m봉-눌의산(743.3m/15:45)/목적지 보임-
급경사 흙 길 내리막-묘/포도밭/경부고속도로 밑 터널(16:30)-
포도밭/철길 건널목(16:40)-동네길 통과-4번 국도(우측으로 100m)/노래비(16:40)-
추풍령/노래비/공원(221m/16:50)//23.74km
[산행기]
03시 30분 문명의 기계음이 단잠을 깨우고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목이 쉰 장닭 울름에 홰치는 첫새벽에 핸드폰 모닝콜이 울렸다.
냉동 보관한 물품을 정리 하고 끼리끼리 모아 온도를 유지 하게 모아 담는다.
앞 구간에 맛있게 먹은 복숭아 통조림이 좋아 두 깡통을 얼렸다.
무더위에 목말라 아껴 나누어 먹으며 생명수임을 실감한 앞 구간이기도 해서 물주머니도 3L짜리로 바꾸었다.
덤으로 페트병 두 개도 얼려 챙기니 제법 무게가 나간다.
별일 있었도 손수 아침을 챙겨 먹는 성격이라 사골국물에 한 술 하고 집을 나선다.
어린 나이에 객지 생활 하러 상경 할 때 어머님이 두 가지를 부탁 하셨다.
그중 하나가 끼니 거르지 말 것을 당부 하셔서 지금도 지키려고 게으름 피우지 않는다.
젊어 방황에 세상의 짊은 혼자서 다 지고 다녀 여직 굳은 표정으로
아직 다 털어 버리지 못하고 수양 수련을 산을 통해 하려고
어둠속에 구도의 길을 재촉 한다.
*광주 블랙야크 상무점 출발 05:00시 문예회관 06:00 출발
문예회관 05:20분 출발인데 여총무가 보이지 않아 전화 해보니
아직 단잠 중에 놀란 목소리로 어찌하면 좋아다......,
다행이 집이 가까우니 물만 가지고 오라고 하고 기다는데 허전한 앞좌석 하나…….
위고문임이 예전 출발 시간인줄 아시고 늦게 출발 했는데 우환 중에 도로 공사로 뒤돌아
돌아오다 보니 한참 늦겠다 싶어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대원들에게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궁여지책으로 양해 말씀도 드리고 산행지 설명을 먼저 해 버리고 출발 하면
바로 쉬시도록 산행지 설명을 마치며 버스는 출발 했다.
출행인원은 51명이다.
당연히 좌석이 부족 하다,
회장님은 보조 차량을 운행 하자고 하시는 걸 임원 분들이 자리 양보 하고
불편을 감수하기로 하고 보조차 운행에 따른 부담을 해결 했다.
06:25 남원 곰재터널을 지나고 고리봉의 공룡능선이 새벽이슬에 젖어 짙다.
아직 가보지 못한 산이지만 공룡능선이란 이름값을 할 만한 산세가 여흥 있어 보인다.
도로에는 안개가 구간별로 짙고 바람에 휘날리기도 한다, 날씨는 좋을 것 같다.
곧이어 왼쪽으로 남원 청자골이 펼쳐지고 고령토의 산지로 일본에 청자문화를 전수한
도공들의 기운이 아침 여명 사이로 느껴지고 흰두건자락이 보이는 듯
흰 구름이 골마다 피어오른다.
청자의 상감에서 백학의 군무를 즐기려면 태토의 고름과 맨발로의 짓이김 속에
공기방울이 있어서는 갈라져 터지는 사금파리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맨발로 태토 작업 중인 도공의 인내를 배워야 옥빛 속에서
백학으로 승화 하여 순결한 마음에 짐스럽지 않는 육신과 살 수 있으리라.
사치재 언덕을 오르기전 우측에 대간능선상에 고남산이 우뚝하고 흰 구름의 사이로
코발트빛 하늘이 넓게 번져가고 사위는 고요하다.
사치재 넘어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07:00)
88고속국도에서 통영~대전간 고속국도로 갈아탔다.
가야산 능선이 조망 된다.
우두령이 여러 군데(덕유산 남령 옆에도 우두령이 있다) 있나보다
1089번 도로에 우두령 이정표가 있었는데 재 정상부에서 길이 없어져 버려서 되돌아 나와
다시 3번 도로로 타는데 10분 이상을 허비 했다.
감천의 발원지 2km 지점으로 대덕으로 가는 옛날 도로이다.
08:10 경북 상주, 김천 방향으로 3번 도로 타고 대덕 3거리를 직진으로 지나쳐
문의2리를 지난다.
9월 10일 내일이 광주블랙야크 산악회 창립일이다.
찰랑이가 동생들이랑 계란을 삶아 손수 축하 메시지를 적어서 많이 가져왔다.
큰 의미가 당긴 선물을 준비한 샘이다.
예쁜 마음에 감사하고 이번 대간 완주하고 나면
내면이 성숙한 숙녀가 되어 있을 것을 기대 한다.
901번 도로 원각사 방향으로 진행하며 우두령과 대덕산에서 발원 된 감천을 지나서
곧 우두령에 도착 한다.
이미 산행이 시작 되어 주능선 상부에 올라 있어야 할 시간이다.
*우두령 도착(=질매재, 720m/08:40)
황소 석상 둘레에서 몸 풀기를 하고 길(901도로) 건너 대간 들머리 입구의
색색의 리본터널로 계단흙길이 대원들을 맞는다.
하늘은 청자 빛으로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이 좋다.
등산로는 한적하고 깔끔한 바닥에 일정거리 오르막을 타다가
삼성산에서부터 시이소 타기로 백두대간 능선을 섭려 할 것이다.
첫 능선 길에 올랐고 청자빛 속에 한 마리 청학이 되었다.(09:32)
평지를 진행하며 억새가 만발하여 사람 키를 훨씬 넘고
중간 중간에 넝쿨 가지 꺾인 끝이 따갑게 자극 한다.
우측으로 김천 대항면이 멀리 군집된 회색 건물들이 보이고
하루 동안 오른쪽 대간 능선에서 우리 대원들을 바라보아 줄 것이다.
오늘 후미는 장승호 구조 대장님과 5조 조장님이신 아톰님이 맡아서 봉사 해주시기로 하셨다.
선두와 후미는 동료를 위한 많은 배려가 필요한 중요한 소임이라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 하고 자신의 페이스도 무시하고 그룹에 맞추고
그룹 구성원의 컨디션을 주시 하여 관리까지 해 주어야 모두가 즐산안산이 가능 하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삼성산/삼각점 통과(985.6m/09:40)
오늘의 노정 길이 아득하고 멀리 끝도 없이 가물거린다.
저 아득한 길이 인생길이다.
꿈과 희망은 있으되 많은 인내와 정성, 눈물이 함께 하여야 뒤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가을을 준비하는 자연의 몸놀림이 분주하다.
가을 채비를 잘 하여야 겨울도 잘 지나 봄을 맞을 수 있고 종족 번식의 본능에도 부합 한다.
억새길을 지나며 한눈파는 사이 삼성산을 지나쳤다.
억새 끝이 덜 핀 것은 은은한 색의 먹을 적시어 곱게 다듬은 붓 끝 같이 단정하다.
파란 청자빛 가을 하늘에 바람이 이끄는 되로 마음의 그리움 한 수 적어 바람에 날리어
한 점 흰 구름으로 날리어 본다.
??????
*여정봉/헬기장(1030m/10:00)
은색 테두리 액자 모양으로 여정봉 표식기가 대간길 문패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다.
성황당 깃발 같이 리본 표식기들도 시원한 바람에 휘날리며 내리막길로 대원들을 안내 한다.
등산길에 산바람이 동무 하니 너무 좋다.(대간 능선 기온:20도씨)
바람재전의 무선통신 안테나와 석축 옹벽이 회색으로 보인다.
내리막길로 바람재로 향하고 갈대의 순정인지? 억새의 순정인지?
흥얼이며 온몸을 억새길을 양 갈래로 가르며 억새 바다를 향해 한다.
배 지나간 자리 표시 없다 했던가? 인연은 가슴에 남는 감정이 있을 때 성립 된다.
가을 이 되면 왜 바람결에 날리는 낙엽에 연민을 느끼는지…….
전국 아마추어 무선사(HAM) 안테나가 비포장 길 건너로 보이고
길 한 모퉁이에 차를 파는 젊은이가 올라와 있다.
무선통신(HAM/김천시에서 무선을 증폭시키기 위해 설치) 컨테이너를 보러 넓은 길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억새가 키를 훨씬 넘기고 김천 시가지가 한눈에 조망 되고
빨래 줄 같은 거침없는 경부 고속도로가 달린다.(10:10)
무선통신(HAM) 안테나가 작은 컨테이너(910m) 위에 쏠라 태양전지와 함께 설치되었고
철망 울타리가 억새에 묻혔다.
일본뿐만 아니라 극동, 중동 지방까지도 거침없이 터지는 무선통신 전파를 이용해
국제분쟁이 있는 시기에는 미군들도 며칠씩 상주 하며 정보를 빠른 순간에 타전 받기도 한단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 차 한 잔 권하는 젊은이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뒤통수가 머쓱하다.
비포장 길 조금 내려오다 다시 왼쪽으로 억새를 헤치고 갈참나무 숲으로 들어섰다가
급경사 내리막 계단 상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람재 우측의 고랭지 밭은 빈 상태로
벌건 속살을 있는 되로 내 놓고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계단 내려가는 도중 관상수가 조림 되었고 억새가 바람재까지 미끄러지듯 펼쳐져서
헬기장에 흰점을 찍고 형제봉과 황학산이 좌로 방향을 잡고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재(헬기장/고랭지, 810m/10:20)/목장에서 급수 가능
오른쪽은 경북 김천 대항면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고, 왼쪽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이다.
인간의 길인가? 자연의 길인가?
인간의 길로서는 효용이 안 되는것 같고 넘나드는 바람만이
갈잎의 속삭임으로 지나는걸 알 수 있다.
한들 바람이 한량없이 세상 얘기를 보듬고 신선봉으로 오르고
억새는 바람이 전하는 얘기를 파란하늘에 흰 물감으로
가을 얘기 한 소절 남기고 떠난다.
바람재에는 헬기장이 같이 있고 펑퍼짐한 둔부로 백마잔등 같고
백색 억새 갈기가 가을빛에 은빛 윤기가 흐른다.
표지석에 글씨도 바람체로 사선으로 휘날리며
사각돌 속에서 바람이 지나 가며 흔적을 남기었다.
*이정표(10:22): 바람재 정상:0.8km, 형제봉:1.3km
형제봉을 향하여 한 무리 야크가 잡목 숲으로 줄지어 기러기 잠행이다.
흔치 않는 흰 물봉선화가 빨간 물봉선화 무리 사이에 끼어 자태를 뽐내고,
순결한 사연 가득 담긴 듯 통꽃이 부풀어 있다.
*이정표(신선봉 갈림 3거리(우측)/10:38): 바람재:0.8km, 형제봉:0.9km
바람재에서 경사 심한 오르막 계단 길을 올라오다 능선상부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신선봉(944m)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3거리로
통나무 벤치도 2개 있어 여러 분이 쉬어 간다.
하늘채님이 감식초 희석한 새콤한 물을 내 놓으시고 꼬감님이 복숭아를
나는 복숭아 통조림을 하나 내놓았고 메론, 오이 등등......,
시원찮은 아침식사에 에너지 보충할 때가 되었고,
쉼터로써 위치도 능선을 가는 구간이라 안성맞춤이다.
잉꼬(여)님의 다친 다리가 아직 성하지 않아서 불편해 하신다.
*형제봉(1040m/10:50):평범한 흙 길의 작은 봉우리
이정표: 바람재:1.3km, 황악산 정상:0.9km
형제봉 정상을 우측에 두고 우회지점으로 이정표에서 처음 오신 불태산님,
송계섭님 부부, 10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풀잎님 부부도 계속 뒤 따라 붙으신다.
우측 문바위 계곡 아래로 김천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날씨도 맑아 조망도 좋고 바람도 시원(20도씨)하여
목덜미 열기를 식혀 주어 모두들 질주를 하고 계신다.
앞 구간 하고 너무 대조적인 환경과 고무적인 현상이다.
*황악산 비로봉(=황학산, 1111m/11:10)
왼쪽 북서 방향의 영동 쪽에서 곤천산을 통해 올라 올수 있고,
동쪽 우측의 김천쪽 직지사에서는 여러 갈래로 올라 올수 있다.
정상은 잡풀 없이 깨끗하고 여유 있는 터에 돌 한 무더기와
번쩍이는 백두대간 해설판이 거울처럼 강한 햇빛에 반사 되어
양면 사진이 생기고 읽어 보기에는 눈 부셔서 성가시다.
정상석은 두 개가 있고 하나는 한뫼 산악회(1999.09.26)에서 세운 누런색의 자연석과
다른 하나는 검은색의 비석이 있다.
오른쪽 아래로 김천 시내가 한결 가깝게 다가오고 상수원인지?
복전지가 하늘 한 자락을 담았다.
경부 고속철도가 김천 시내를 가르며 빨래줄 지나듯 일자로 가르고 지나 부산으로 뻗는다.
오늘의 구간의 제일 주봉이다. 모두들 추억 한 자락을 각인 하느라 여념이 없고
하늘은 높고 푸르기만 하다.
황악산(1111.4m)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위치한 황악산은
해발 1,111.4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944m), 운수봉(67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다.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하며 비단같이 부드러운 편이며,
초입 일대 계곡 양쪽으로 늘어선 노송과 참나무가 하늘을 덮어 장관을 이룬다.
이 산은 김천시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소백산맥 가운데 위치한다.
예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고도 불렀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 옥같이 맑은 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가 아름답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으로 금오산, 북으로는 포성봉이 보인다. (발췌: 산림청)
황악산 정상을 직지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순간 온 몸은 햇빛에 노출 되고
은빛 억새 숲에 눈앞이 현란하다.
여기서 부터는 전방 우측 아래에 있는 직지사를 빼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백두대간 능선에서 오른쪽 김천 방향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동국제일가람의 천년사찰 직지사(直指寺)는 신라 눌지왕 2년 (서기 418년)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 할 때 금오산 위에서
황악산 절터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곳에 큰 절이 설 자리”라 하여
직지(直指)라 했다는 설이 있고,
선종의 가르침중에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유래 됐다는 설도 있다.
직지사는 사명대사가 15세에 출가 하여 임진왜란 때 승려 의병장으로도 유명한
큰 스님이 난 곳이기도 하다.
*백운봉(770m/11:25)
정상을 우측에 두고 거치지 않고 지나친다.
길 좋은 잡목 그늘 길을 여유 잡고 지난다.
이정표(11:26): 직지사 갈림길(우측 아래로)
이정표(11:32): 여시골산, 직지사(우측)/황악산
회장님이 괘방령에서 물통 하나만 허리 쌕에 차고 역으로 올라 오셔서
직지사로 내려가지 않도록 표식기를 놓고 기다리고 계셔서 모두 모여 한 장 찍었다.
바람에다 그늘의 등산로와 벤치까지 있고 여유 있게 넓은 길과
날씨는 앞 구간 산행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황악산에서 1.8km 왔다. 후미도 곧 뒤 따라 오고 있다.(11:43)
다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 된다.
직지사로 내려가는 우측 갈림길을 여러 개 지난다.
이정표(11:46): 황악산에서 2,260m 지점
여시골산(직진/능선길) / 직지사(우측 아래로/ 마지막 갈림길)
*운수봉(670m/11:51)
봉우리 같지 않는 능선길에 약간 볼록한 느낌이다.
깨끗한 바닥에 주변은 떡갈나무 숲이 그늘을 드리우고 표지석이 둥굴 넙적 하게 생겼다,
웃는 스마일 호빵-맨 얼굴 같다.
16명이나 가장 많은 대원들이 모였다.
모두들 호빵맨 표정으로 한순간을 웃으며 영원히 웃는 모습을 남겼다.
여시골산 능선 길 좌측에 바로 보이는 수직굴을 지나친다.(12:12)
*괘방령(=궤방령 도착,300m/12:45~13:00)
점심 식사/물 급수 가능/돌탑/정자 쉼터/민박 가능/민가/906국도(2차선 아스팔트)
괘방령이 다 와 간다,
눈 길 바로 앞에는 길 건너 418봉이고, 시설 하우스도 보이고 도로도 보인다.
아주 큰 상수리나무 그늘길 따라 도로에 내려섰다.
괘방령은 도계로써 오른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이고
왼쪽은 충청북도 영동군 매목면이다.
주변에는 평지 논이 많고, 재라고 느껴지지 않는 평지 도로(906번 국도)일 뿐이다.
도로 이편에 쉼터가 작은 연못을 비롯해 웃는 모습이 태연이 어색 하지 않는
목장승들과 함께 어울려 넓은 터에 잘 조성 되어 있다.
생명을 다해 죽은 나무토막도 미소를 조각하니 너무나 친근한 생동감이 꿈틀 된다.
명약 중에 명약과 보약 중에 보약이 웃음이라 했던가?
큰 돌탑에는 영동군 매곡면 각 동리 행정구역을 문패 달듯 하였고
백두대간 안내판, 정자, 산장 같은 예쁜 목조 건물도 신축중이고
그 앞에 수도꼭지에서는 물도 나온다,
울타리가 없어 자유로이 사용 가능 한것 같다.
민가도 반듯한 건물이 있고 가을들녁에 벼와 과실이 넉넉한 햇빛에 무르익고 있다.
콩나물국을 얼려서 시원하게 말아 드시는 총괄님 부부가 보기 좋다.
점심을 김밥으로 준비 하는데 요즘 산행도 힘들고 밥맛도 먹어 한 토막 먹고 만다.
다음부터는 개운한 국물과 밥 반공기와 김치만 준비해서 점심을 해결해야겠다.
일어서는데 양수영님,후리지아님, 풀잎님 부부가 도착 하신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떠난다.
[안내판 글]
괘방령(掛榜嶺)―해발고도: 300m
소재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러지고 잇다.
괘방령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려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던 관로였다면
괘방령은 과거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던 장사꾼들이 관원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려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906도로를 김천 방향으로 건너 논둑길을 밟고
다시 대간 능선을 타고 418봉의 숲길을 오른다.
여름의 화려한 날을 보낸 독버섯들이 사그라지고
찬바람을 맞으며 식용 버섯들이 귀두를 낙엽 속에서 들이민다.
*가성산(716m/14:35)
한참을 올라야 한다.
조금 먹은 김밥이 트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 성묘 준비 하느라 예초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오늘 거리도 만만치 않는 거리다, 몇몇 분은 쥐가 나고 근육이 뭉치기도 한다.
오늘 늦잠 자는 것을 깨워 왔더니 혼자 앞서 가던 여총무를 다라 잡았다.
어제 두 시까지 호박죽 쑤어 가지고 오려다 늦게 잠들어 일어나지 못 했단다.
물만 가져오라고 했는데 어디서 점심을 해결 했나? 재주도 좋다.
최중환님과 죽 산동무이다, 말씀 없이 혼자서 잘 다니신다.
능선길 잡아 오르고 나니 최미란님도 쥐가 나고 소산 부회장님한테
김성식님이 부탁을 하고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 가셨다면서
최미란님이랑 같이 오시기로 했다.(14:20)
봉우리마다 가지고 온 과일을 나누어 조금씩 먹으며 간다.
괘방령에서 1시간 왔다.
능선 잡기전 마지막 올라오는 길은 경사가 급한 흙길이다.
숨차게 올라 왔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며 조금 더 가면 가성산 정상이다.
능선길에 세월을 베고 하늘 부채를 흔들며 누운 노송이 김천 시내를 굽어보고
시원한 바람을 쌔고 있다,
겨울 북풍한설도 맞았으리라.
우측으로 경부고속도로와 철도 경부선, 4번 국도가 보이고
기차 소리도 나지막이 들린다.
여유 있는 터의 정상 바닥을 콘크리트 해 버렸다.
콘크리트를 벗어난 한편에 작은 표지석이 따가운 햇볕을 견디고 있다.
*장군봉(616m/15:00)
급경사 암릉지대도 지났다.(14:45)
김천 백두대간 종주대가 인쇄종이를 비닐로 코팅해서 갈참나무에
봉우리 표식기를 묶어 붙였다. 지나갑니다.
여기서 추풍령까지 2시간 걸린다.
*663봉: 장군봉과 눌의산의 2/3 지점으로 무명 봉우리를 지난다.
*눌의산/헬기장(743.3m/13:45)
여유 있는 깨끗한 바닥 터 한쪽에 표지석이 하늘 바라기를 하는
그늘이 없는 봉우리다.
정면으로 추풍령면 소재지와 뒷산인 금산과 추풍령 저수지가 뚜렷하다.
국철 경부선과 경부 고속도로, 국도 4호선이 헝클어진 실타래 같이 어지럽다.
눌의산(743.3m) :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에 위치한 눌의산은 추풍령 뒤쪽에
자리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영마루를 사이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올려
제몫의 역할을 다했을 눌의산의 늠름함이 살아 있다.
추풍령에서 시작하는 산행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보니
깨끗함을 자랑하고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한적한 산행길을 함께 한다.(발췌:산림청)
현제 정상에 봉수대는 확인 되지 않았다.
다음 구간이 아스라이 까마득하다.
정상 출구의 나무 그늘에서 배낭의 내용물 정리 차원에서 아낌없이 먹어 치우는데
곧 최중환님도 오셨다.
최중환님이 아끼고 귀하게 여기신다며 효소 음료를 나누어 주시며
힘이 펄펄 날거라고 하신다.
복숭아 통조림도 나누어 먹고 날개 돋힌듯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간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흙 길 급경사이다,
날씨가 궂거나 얼어 있다면 곤란한 구간일 것이다.
아니나 윤영애님도 한 바퀴 야무지게 구르고 배낭이 있어
더 구르지 않고 나무에 걸린다,
웃을 상황은 아니지만 코앞에서 일어난 일이라 어금니 물고 괜찮냐고 물었다.
다행히 괜찮지만 아프기는 할 것이다…….ㅎㅎㅎㅎ
산 아래 사과밭까지 올라온 길과 포도밭을 지난다.(16:25)
*추풍령/노래비/가로 공원(221m/16:50): 4번 국도, 경부고속도로, 국철 경부선
영남 제일의 관문으로 사연 많은 곳이기도 하고,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분기점과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도계로써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면의 경계이다.
경부 고속도로 밑 터널 통과한다.(16:30)
포도밭, 사과밭, 철도 건널목 건넌다(16:40).
동네 길 통과 하여 4번 국도 만나 우측으로 100m 지나
당마루에 있는 추풍령 노래비를 만난다(16:45).
조금 더 가면 추풍령 할매 갈비집이 4번 도로 왼편에 있고
도로 오른편에 있는 가로 공원에 도착 하였다.(16:50)
먼저 오신 20여명이 시원한 맥주에 선두의 여유를 즐기신다.
추풍령(221m)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흘러간 유행가를 통해서도 우리 귀에 익숙한 추풍령(秋風嶺·해발 221m)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나뉘는 백두대간 고갯마루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승용차를 타고 가면 고개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특히 요즘은 이곳을 지나는 국도 4호선 확장공사 고개 정상에 세워져 있던
'추풍령 노래비'마저 잠시 철거돼 어디가 추풍령인지도 분간하기 힘들다.
임진왜란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왜군과 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곳이기도 한
추풍령은 과거 조령(烏嶺), 죽령(竹嶺)과 함께 군사적 요충지이자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조령과 추풍령은 나라가 관리한 관로(官路). 길이 더 잘 닦여 있었던 터라
추풍령이 말을 타고 달리기에는 더 나았지만 과거길 선비들은 이 고개를 애써 피해갔다.
추풍낙엽(秋風落葉), 즉 낙방을 연상케 하는 이름 때문이었다.
과객들은 추풍령 대신 6km 정도 길이 더 멀고 험한 김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리 사이 '궤방령'을 더 많이 이용했다.
더욱이 궤방령의 '방(榜)'자는 합격자 발표 때 붙이는 '방(榜)'과 같은 글자다.
이 무렵 추풍령은 주막거리로 흥청거렸다.
1905년 경부선 철도 부설 후에도 추풍령 부근은 식당이 즐비하고
여인숙도 두 개나 있는 번화가였다.
일본인들이 김천은 몰라도 추풍령은 알던 시절.
그러나 추풍령의 호황은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먼지 폴폴 날리던 길에 지쳐 추풍령에서 으레 먹고 자고 다시 길을 떠나던 차들이
반나절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추풍령을 잇는 국도는
통행량이 급격히 줄었던 것.
현재는 백두대간을 산행하는 산악인들이나 드라이브 나온 연인들이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추풍령 고개를 따라 도로변에서 성업을 누리던 상가들도 하나 둘씩 떠나
지금은 썰렁한 분위기다.
고개 아래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인구도 1960년대 8천여 명이던 것이
지금은 2천800여 명으로 급감했다. 게다가 최근엔 추풍령 면소재지
우회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4, 5년 후 이 도로가 완공되면
대부분 차들은 추풍령을 그냥 지나칠 것으로 예상돼 상가 업주들의 걱정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황인성(56) 영동군의원(추풍령면)은 "면소재지 우회도로 공사가 완공되면
추풍령은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질 우려가 크다"며 "추풍령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주민들 중심으로 '추풍령 보존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원화 등
많은 노력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추풍령 할매갈비' 식당 이명선(45)씨는 "23년째 장사를 하는데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줄어 일대 업소들이 심각한 영업부진을 겪고 있다"며
한때 번화했던 추풍령의 옛 명성을 아쉬워했다.
추풍령 정상 부근에서 12년째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송점순(56)씨는
"충북은 밤 12시 통행금지가 없었던 곳이어서 예전엔 통행금지를 피해 경북 쪽에서
추풍령으로 술 마시러 오는 술꾼들도 많아 재미가 쏠쏠했다"며
"외지인들 발길이 뜸한 데다 우회도로 개설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발췌: 매일신문 2005-05-14)
현제 추풍령 주변 풍경은 사과와 캠벨포도가 많이 재배 되고 있어 수확이 한창이고
대형 모텔(카리브)도 있고 차량 통행은 간간히 있었다.
추풍령 정상의 노래비는 눌의산, 장군봉, 형제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길손의 눈길로 구성진 옛 음률을 끌어내며,
서울과 부산의 중간점(214km 지점)에서 제일의 재로서 옛 길의 명성을 되새김 하며
국철 경부선(1905년 부설)과 고속도로 경부선(1970년 7월 7일 개통)을
자식처럼 거느리고 백두대간을 호령하고 있다.
낮은 것이 낮은 것이 아니요, 높이 있다고 꼭 높은 것은 아님을 배워 본다.
추풍령이라는 유래는 김천 직지사에 머물던 사명대사가 고개를 지나는데
마치 “가을바람”처럼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와 추풍령이라 불렸다고 한다.
구름과 고개를 맞대어야 얻을 수 있는 령(領)을 대간 고개 중에
가장 낮으면서도 얻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전국에서 국철, 고속도로, 국도가 가장 근접한 곳이기도 하여 눌의산에서 내려다보면
한 묶음으로 묶인 실타래 같이 보였다.
77명의 에밀레의 혼을 묻고 국토의 동맥으로 태어난 고속도로는
나약과 빈곤을 불사르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기에 충분한 긍정적 역할을 담당 하였다.
추풍령면은 지자제가 실시되면서 황금면을 개명한 것으로
추풍령의 유명세를 기대하여 바꾸었다고 하고,
백두대간 분수령이 으레 그렇듯 물이 적어 불편 하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여
곡식 보다는 과수가 잘 된다.
물이 적고 메마르던 옛날에는 그저 메밀 농사가 고작이여서 고갯마루가
온통 하얀 메밀꽃이여서 백령(白領)이라 부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사기점 골짜기에 저수지(추풍령 저수지)를 파 겨우 논농사를 지었으나
이제는 모두가 포도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영남 호서의 접경으로 당마루라고 부르기도 하나 당집이나 당산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염원 성취와 새로운 꿈을 발견 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을 소원하여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발복이 당집에서 나겠는가?
인생사 마음에 달렸다 했거늘 심상을 바르게 가질 일이다.
구름도 바람도 사연을 갖고 넘는 고개에서
사연 하나 떠 올려 본다......,
너는 내 영혼의 작은 깃
쉼 없는 나래짓에
나는 지치고
창공은 창명하다
작은 나무 가지가
그립다…….
백두대간 바람재와 추풍령을 넘으며......, 바람(김 성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