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국 선교 여행 중 만난 한자(漢字)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중국의 도로 사정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60, 70년도 그랬지만 속된 말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마을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 차도 사람도 편히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중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오고 있는 것 같다. 고속도로만 해도 현대 공법으로 건설되어 산이 있어도 피해가지 않고 터널을 뚫어 시원하게 달릴 수 있게 닦아 놓았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두 개의 한자 단어가 입구에 붙어 있었다. 하나는 'OO檖道(수도)'인데 앞에 'OO'는 지역 명일 테고, '수도'가 터널을 뜻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檖(수)'는 '돌배나무'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가끔 '따르다, 순종하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에 근거한다면 딴전 피우지 말고 굴 안으로 잘 따라가라는 말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또 터널 입구 위쪽 눈에 잘 띄는 곳에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개차등(開車灯)'. 등을 켜라는 뜻인데, '灯(등)'을 우리나라에서는 '등(燈)'의 약자로, 중국에서는 번체(繁體)로 흔히 쓰인다. 그러니까 이것을 직역하자면 '차의 등불을 켜기 시작하라'는 뜻이 될 것이다. 중국은 전기(電氣)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1 Km에 가까운 긴 터널에도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려면 차의 등을 켤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음식점을 들어가니 어김없이 '소심지활(小心地滑)'이란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음식점마다 바닥을 넓은 타일로 붙여놓아 미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경고문을 벽에 부착해 놓은 것 같은데, 그 뜻을 살펴보면 '소심(小心)'이란 말은 마음을 조금 두다, 관심을 조금 쓰다 등의 뜻으로 우리가 애용하는 '조심(操心)' 또는 주의(注意)‘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지활(地滑)' 은 '땅(바닥)이 미끄럽다'는 뜻이니 전체를 함께 풀이해 보면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얘기가 된다.
용정에서 시가지를 산보할 때 '사람을 구한다' 또는 '방을 내 놓는다'는 광고지가 길거리에 많이 붙어 있었다. 이런 구인 광고가 전봇대에 붙어 있었다. '초세차공(招洗車工)'. '세차공을 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보통 '초(招)' 대신에 '구원할 구(救)'자를 많이 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招'는 중심이 고용주에게 있는 게 아니라 고용을 당하는 사람에게 있고, '救'는 '구원하다'는 훈(訓)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중심이 고용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더 점잖은 글자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물건을 팔 때 주로 쓰는 한자는 '팔 매(賣)' 자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매매(賣買)'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엔 '매(賣)'를 쓰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팔 때 '팔 售(수)'자을 쓰고 있었다. 언어는 습관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같은 뜻을 가진 한자를 지역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售房'은 방을 판다는 뜻이고, '急售北大房(급수배대방)'은 큰 방을 나누어 급히 판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北'은 '나눌 배'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방을 판다(售)'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집 전체를 판다는 의미보다는 부동산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기 때문에 사용권을 넘긴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한자의 구성 원리는 육서(六書)에 기초하고 있다.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가 그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象形)문자가 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가차(假借)문자는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비슷한 음을 빌려 쓰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내가 용정에서 본 것 중 '이 마트'라는 간판이 있었다. 다 알다시피 영어 말 'E Mart'에서 온 것인데, 이것을 한자로 '伊瑪特(이마특)'이라고 쓰고 있었다. 이 세 개 나라 글자를 병기해서 달아 놓은 간판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중국 심양 공항 구내 서점에서 산 중국 책의 제목이 <朝鮮..我們第一次戰敗(조선..아문제일차전패)>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Korea:The First War We Lost>이다. 책을 쓴 사람이 Bevin Alexander인데 중국에서 번역할 때 이 저자의 이름을 '貝文(패문) 亞歷山大(아력산대)로 표기해 놓았다. 이것도 가차문자이다. 워싱턴(Washington)을 華盛頓(화성돈)으로, 홍콩(Hong Kong)을 香港(향항)으로, 언더우드(Underwood)를 元杜尤(원두우)로 표기하는 것 등도 모두 비슷한 한자 음(音)을 빌려 쓴 가차문자이다.
길림시(吉林市)에서 만난 한 중국인 집사님이 인상에 남는다. 이름은 정자체로 馬艶(마염)이라고 했다. 물론 간자체로 쓰고 있지만 그를 '마얀(mayan)' 집사님이라고 불렀다. 식사를 하면서 마침 옆에 앉은 그에게 필담으로 '名(명)?'이라고 물으니 간자체로 '마염'이라고 적어 주었다. 나는 앞에 '마'는 간자체로도 알 수 있겠는데 '염'(중국 발음은 yan)은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는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지금은 남편이 운영하는 큰 포도주 가공회사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이튿날 호텔 2층 뷔페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중국이 전국으로 간자체를 통일해서 쓴 것이 1950년 대 중반이라고 하니까 간자체를 정자체와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70이 넘은 노인층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문을 겸비한 듯한 노인 분을 찾아가서 일부러 물어 보았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 답해 주기 어렵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중국어 사전을 뒤지고서야 마얀(mayan)의 '얀'자가 정자체로 '고울 염(艶)'이라는 것을 알았다. 활동적이면서도 고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년 봄쯤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을 것 같다며 그 때 뵈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 복음화의 불씨가 될 분 같이 여겨져 시간 날 때마다 馬艶(마얀)을 위해 기도할 작정이다.